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음악으로 엿보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과거사 

2024년 4월 14일, 이란이 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했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매우 오래되었는데,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두 나라의 지도자들은 과거의 친선(?) 관계를 기억하여 자중하길 바란다.

▎바빌론 유수를 표현한 그림인 [추방되는 유대인의 슬픔], 에드워드 벤데맨 작 / 사진:위키피디아
다윗과 솔로몬이 통치했고 예루살렘이 수도였던 고대의 유다 왕국은 기원전 586년 무렵 당대의 초강대국 신바빌로니아 제국에게 정복당했다. 신바빌로니아인들은 유대인들을 자신들의 수도인 바빌론으로 데려가 약 60년 동안 노예로 삼았다. 이 동안의 구금 상태 혹은 그로부터의 해방을 ‘바빌론 유수(Babylonian Captivity)’라고 부른다. ‘유수(幽囚)’는 ‘잡아 가둠’이라는 뜻이다. ‘바빌론 유수’는 실화이며 구약성경, 즉 예레미야와 (일종의 노래 모음일 수 있는) 시편에도 적혀 있다. 시편 137편이 이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전쟁에 패배한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잡혀가다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유대 땅 시온을 떠올리며 울고 있는데, 바빌로니아군은 그런 유대인들의 염장을 지른다. “노래나 부르라고 시켰다!” 분노한 유대인들이 “바빌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그대로 네게 갚는 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라며 매우 과격하게 반응했고, 급기야는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라는 대사로 137편을 끝낸다. 적의 아이들까지 죽이겠다는 강렬한 보복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1970년대에 독일에서 활동했던 음악 그룹 ‘보니 M(Boney M)’은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곡에서 이 사건과 시편 137편을 노래했다. 이 흑인 가수들은 시편 137편의 과격한 후반부는 빼고 앞부분만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의 선율로 노래했다. “바빌론 강가에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 시온을 기억하면서. 사악한 자들이 우리를 쫓아내면서 우리에게 노래를 시켰지. 이국의 땅에서 어찌 찬송가를 부를 수 있겠는가.”

유대인들을 데려간 신바빌로니아의 왕은 네부카드네자르 2세로 알려져 있다. 구약성경에서 느부갓네살로도 번역되는 이 토목 군주는 바벨탑의 원형으로 추측되는 (현존하지는 않는) 에테멘앙키 탑을 세우는 등 인류사에 크게 공헌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악마 그 자체였다. 네부카드네자르 왕은 유다 왕국 시드기야 왕의 두 자식을 왕이 보는 앞에서 죽이고는 왕의 눈을 뽑았다고 한다.

네부카드네자르의 이탈리아어는 나부코도노소르다. 1836년, 오귀스트 아니세부르주아와 프란시스 코르뉘라는 프랑스 극작가들이 쓴 연극 [나부코도노소르]는 네부카드네자르와 바빌론 유수를 소재로 삼았다. 이 연극 대본 등을 참고해 쓰인 오페라가 베르디의 [나부코]다. ‘나부코’는 ‘나부코도노소르’의 줄임말인 셈이다. [나부코]는 바빌론 유수와 네부카드네자르 2세를 정확히 고증한 것 같지는 않다. 말하자면 일종의 팩션 대본을 음악화한 셈인데, 아무튼 바빌론에 억류된 유대인들의 처지를 소개하는 노래로 대단한 명곡을 들려준다. [히브리 노예의 합창]이다. “날아라. 상념이여 빛나는 날개를 타고, 내 조국 산비탈과 언덕에 내려앉아라.… 그리워라. 요르단강둑, 시온의 무너진 탑들 반갑네, 아, 잃어버린 아름다운 내 조국! 아, 가슴에 사무치는 그리움!” 등이 이 노래 가사의 일부다.

히브리인은 고대 가나안 지방에 살았던 민족이다. 셈의 증손자이자 아브라함의 6대조인 에벨에서 유래했다. 이스라엘인이라고도 한다. 셈은 노아의 방주로 유명한 노아의 세 아들 중 장남인 셈(Shem)이다. 셈의 후예인 히브리인은 곧 유대인이다. 셈족(Semites) 유대인은 아시아인이며 약간 어두운 피부색의 중동인들이다. 그런데 신바빌로니아인들은 넓게 볼 때 셈족이다.


▎키루스 2세가 신바빌로니아 왕국을 공격하기 전인 기원전 540년경의 극동 지도. ‘Persian Empire’가 키루스 2세가 이끄는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이며 붉은색으로 칠해진 ‘Neo-Babylonian Empire’가 유대 왕국을 공격했던 신바빌로니아 제국이다.
같은 민족일 수도 있는 유대인과 그 원수 신바빌로니아인들은 전혀 다른 민족인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처지가 바뀌게 된다. 신바빌로니아는 한국어 성경에 고레스왕으로 적힌 키루스 2세(Cyrus, BC 576/590?~530)의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에 의해 정복당했다. 이 왕조의 건국자였던 키루스 대제 정복왕은 재위 기간 29년 동안에 메디아, 신바빌로니아, 리디아 등을 정복했다. 역사상 최초의 제국이었던 페르시아 왕조의 지존은 놀라운 일을 벌였다. 그 이전까지 어떤 왕도, 어떤 인간도 보여주지 않았던 태도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선보였다. 정복된 나라에서 관용적 정책을 펼친 것이다. 덕분에, 바빌론에 잡혀 와서 60여 년 동안 자유롭지 못했던 유대인들이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최초로 대왕 호칭을 받은 키루스 2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유대인들이 유대교 성전을 짓는 것까지 허락했다.

놀라운 관용에 감동한 유대인들은 키루스 2세를 구원자로, 메시아로, 빛을 가져온 자로, 즉 샛별로 불렀다.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이 아닌 자가 구원자로 인정받은 유일한 인물이 이 대왕이었다. 그런데 대왕의 마지막 호칭인 ‘샛별’의 히브리어인 ‘헬렐(Helel)’이 나중에 라틴어로 번역되어 루시퍼(Lucifer)가 되었고, 루시퍼는 더 나중에 이상하게도 사탄, 즉 악마가 된다. 루시퍼의 악마화 과정이 의도적이었다면, 그 과정을 당시의 유대인들이 주도했다면, 그들은 배은망덕한 사람들이다.

키루스 2세를 찬양하는 음악은 많지 않지만, 흥미롭게도 미국의 행진곡 작곡가였던 칼 킹(Karl King)은 [Cyrus the Great]이라는 곡을 1921년에 작곡했고, 이 곡은 그의 대표작 [Barnum and Bailey’s Favorite]와 함께 미국 공군이나 해군, 육군 군악대가 종종 연주하는 유명한 곡이 되었다. ‘Barnum and Bailey’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유명했던 서커스단이었다. 미군은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나라로서, 이번 이란의 공격에 대응하기도 했다.

키루스 2세의 관용 정책은 그의 후계자인 다리우스 1세 등도 계승했다. 다리우스 대왕은 유대교 사원의 복구 사업에 돈을 지원했고, 그리스 문화에 호의적이었으며, 왕위와 관련해서는 이집트의 종교의식을 따랐고, 이집트의 신인 아문을 기리는 사원을 짓기도 했다. 그에게 고유한 종교가 없었을까? 있었다. 조로아스터교다. 키루스 2세와 다리우스 1세는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었다.

이 종교는 세계의 주요 종교들과 도덕 체계가 탄생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추상적 개념의 신, 계약의 공정함으로 구체화한 추상적 정의 혹은 도덕 개념 등이 이 종교에서 제안되었다. 일신론과 선악 개념, 종말론, 신과 맺은 성스러운 계약 같은 개념들도 이 위대한 고대 종교에서 나왔다. 조로아스터교는 세계를 창조했다는 아후라 마즈다의 예언자를 자처했던 조로아스터가 창시했다. 키루스 2세 등이 다스렸던 기원전 6세기경의 세계 제국 페르시아에서 널리 퍼졌고 통치 이념이 되기도 했다. 페르시아는 1935년 팔레비 왕정이 국호를 이란으로 바꿀 때까지 그 지역에서 흥망성쇠했던 나라들을 말한다. 이란은 ‘아리아인의 땅’이라는 뜻이다. 페르시아는 한때 세계 문명의 중심지였고 선진적 종교의 지혜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곳이었다. 이 사실은 예수 탄생 이야기에도 반영되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동방박사 3인이 페르시아의 마기(magi), 즉 사제들이라는 이야기다. “동방박사 세 사람 귀한 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별 따라 왔도다”라고 노래하는 찬송가 [동방박사 세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다.


▎[세 명의 동방박사](The Three Magi), 이탈리아 라벤나 소재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Basilica of Sant’Apollinare Nuovo)의 비잔틴 벽화(서기 565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 비잔틴 시대의 그림은 동방박사들의 옷차림을 페르시아 사람의 그것으로 묘사했다고 한다. / 사진:위키피디아
동방박사를 페르시아인으로, 점성술사이자 사제들로 인식한 기초 위에 작곡된 오페라가 있다. 한국에서는 [아말과 동방박사]로 알려져 매년 크리스마스 때 종종 연주된다. 이탈리아인으로서 미국에서 활동했던 작곡가 잔 카를로 메노티의 [아말과 밤 방문자들](Amahl and the Night Visitors)이다. 아이들을 위해 TV용 오페라로 작곡된 이 오페라에서 밤의 방문자들은 선물을 가지고 온 산타클로스다. 그들의 이름이 카스파르, 발타자르, 멜키오르이고, 마기로서의 동방박사들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동방박사가 페르시아인이라는 점은 여러 예술에서 표현되었고 학자들도 대체로 동의한다. 예수 시절 가난한 유대인을 보러 온 이들은 오늘날의 이란 사람의 선조일 수 있는 페르시아 사람들이다.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는 페르시아어로는 ‘자라투스트라’였는데, 이것을 기원전 5세기경의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리스어로 바꿔 부른 것이 조로아스터다. 자라투스트라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적]의 등장인물 자라스트로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마적]에서 자라스트로는 밤의 여왕이 다스리는 거짓된 세계를 이성의 빛으로 밝히려고 한다.

이란 땅에서 조로아스터교는 오늘날 다수가 믿는 종교가 아니다. 8500만 명이 사는 인구 대국 이란에는 이슬람교도가 많다. 무려 99%에 이른다. 900만 명이 사는 이스라엘 땅에서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은 인구의 74%다(이스라엘의 기독교도 비중은 인구의 2%다). 이란인들이 과거처럼 조로아스터교를 믿는다면 이스라엘과의 적대 관계가 사라질까.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니겠지만, 고레스왕과 조로아스터교의 관용이 아쉽긴 하다. 물론 유대인들의 관용도 아쉽다.

※ 김진호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405호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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