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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인터뷰] 강원택 서울대 교수가 바라본 4·10총선 함의와 정국 전망 

“국민의 명령은 협치(協治), 尹(윤석열 대통령)이 먼저 변하고, 李(이재명 대표)도 미래지향적으로”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윤석열 심판’ 프레임이 지배한 총선… 尹, 남은 임기 3년 ‘소통’만이 살 길
“민주당은 연정·개헌안 안 받을 것, 투쟁 위주 조국당과 차별화 꾀할 듯”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4·10 총선을 계기로 단기적으론 윤석열 대통령의 스타일 변화, 장기적으론 보수의 외연 확장을 이뤄내지 못하면 보수당의 패배는 지속될 것으로 본다.
최근 12년 동안 치러진 세 차례 총선에서 보수는 모조리 패했다. 그중 최근 두 번의 총선은 대패였다. 4·10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수도권 122석 중 얻은 의석은 19석(서울 11석·인천 2석·경기 6석)이 전부였다. 또 하나 심상찮은 지표는 20대 여성 69.9%, 30대 여성 58.6%, 40대 여성 63.0%, 50대 여성 54.3%가 민주당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지역·세대·젠더에 걸쳐 국민의힘을 위시한 보수정당 지지 기반이 부자, 노인, 영남 위주로 축소됐다는 뜻이다. 총선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4월 12일 강원택(63)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를 만났다. 강 교수는 “보수가 더 이상 한국 사회의 주류(mainstream)가 아님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리셋’을 주문했다. 소수파(minority)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2년 동안 ‘불통’ 행보로 일관했으니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 참패는 어찌 보면 예견된 사태일 수 있다.

총선 결과에 담긴 민의를 어떻게 해석하나?

“사실 야당인 민주당이 그렇게 매력적이진 않았다. 이재명 대표의 직접적 통제를 강화하는 형태로 바꾸려다 보니 공천 잡음이 컸다. 충성심만 보다 보니 김준혁 당선인을 포함해 ‘걸러지지 않은’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럼에도 야당 후보의 도덕성, 역량이 아니라 전체적인 국민의 뜻은 ‘윤석열 대통령이 문제 있다’는 일종의 항의(protest)였다. 거의 100% 윤 정부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선거였다.”

일부 보수 지지층에선 ‘부동산이라는 확실한 심판 요인이 있었던 문재인 정부 때와 달리 윤 대통령은 국민 삶에 가혹한 피해를 미친 정책이 거의 없었음에도 너무 가혹하게 심판 받았다’는 동정론도 있더라.

“정책적 측면에서 큰 잘못은 없었다고 본다. 윤 대통령은 의대 증원 문제나 한·일 관계에서 보듯 결단할 때 결단할 줄 아는 매력도 있다. 그러나 거기엔 어쩔 수 없이 ‘독단의 이미지’가 부여된다. 정치는 커뮤니케이션의 주고받음을 통해 끌고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당선된 뒤에는 소통의 문을 닫았다. KBS와 사전 녹화 인터뷰를 했을 뿐 기자회견도 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윤 대통령에게 보수층도 상당한 불만을 가졌다.”

준엄한 심판을 겪었으니 대통령도 바꾸려 하지 않을까?

“하루아침에 스타일이 바뀔 것 같진 않다. 그래도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이제부터는 자신이 자초한 여소야대다. 저렇게 야당이 강해지면 관료 집단에 대한 통제력도 약화할 수밖에 없다. 국민 다수로부터 ‘그래도 임기가 3년이나 남았는데 대통령이 저렇게 무너지면 되겠는가’라는 여론을 끌어내려면 국민과 소통하고, 지지율을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는 윤 대통령 향한 국민의 항의”


▎총선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고심에 빠졌다. 이재명, 조국, 이준석 등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형국이다.
인적 쇄신이 첫 시험대다. 다만 총선 직후 나온 총리나 비서실장 하마평을 보면 변화의 의지가 회의적으로 비친다.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 총리 교체는 윤 정부 2기의 협치 흐름을 상징한다. 윤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를 만나서 총리 추천에 관한 교감을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일종의 연립정부 모델이 한국적 현실에서 가능할까?

“민주당이 안 받을 것이다. 야당이 이를 받게 되면 국정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과거 DJP(김대중·김종필)연합 형태로 가면 좋겠지만, 민주당은 ‘3년 뒤에 보자’고 나올 것이다. 그래도 주요 보직에 관한 인선을 협의하는, 최소한 야당을 존중해주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지금은 민주당이 ‘이 사람은 절대 안된다’고 하면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이 임기 5년 내내 거대 야당에 포위된 정치 환경은 87년 직선제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은 지켰다. 이러면 서로가 서로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 정치가 더 엄혹해질 수 있지 않을까?

“이재명 대표가 달라질 것 같다. 이제는 강성, 반대만 하는 모습보다 국가 전체를 관리하는 정치인(statesman) 같은 느낌을 주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면 여야 간 협상의 여지가 생긴다. 정무가 굉장히 중요해질 듯싶다.”

민주당은 175석이 ‘이재명 색깔’로 거의 채워진 분위기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로부터 방어막을 치기 위해서였겠지만, 오히려 대권 가도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시선도 있더라.

“이런 상황이 됐으니 측근 의원들이 충성 경쟁할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밖에 보이지 않는’ 당의 일사불란함은 이 대표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 왜냐하면 이번 총선의 판단 기준은 윤석열이었다. 회고적인 투표였다. 하지만 다음 대선은 미래지향적인 선거다. 그런데 ‘이재명이 다음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면 민주당에서 과잉이 생길 것이고, 사고가 날 수 있다. 사실 이 정도까지 크게 이길 줄 알았더라면 이 대표가 공천을 그렇게 ‘무리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이번 총선은 독특하게도 ‘윤석열 심판’이라는 단일 프레임이 한국 사회에 내재된 거의 모든 갈등선을 다 뒤덮었다.

“국론이 분열되지 않은, 굉장히 통합적인 선거였다. 선거 때가 되면 서로 상이한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연합체(coalition)처럼 묶어 놓는다. 이를 얼마나 잘 지키느냐가 대통령 지지율을 유지해가는 방법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준석을 내쫓았다. 사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이 0.73%p 차로 이겼을 때 굉장히 중요한 두 지점이 ‘이대남(20대 남성층)’과 ‘서울’이었다. 이들이 이번 선거 때 이탈했다. 이종섭·황상무 사건에서 대통령의 ‘고집’이 보인 것이다.”

“175석, 이재명 대선 가도에 오히려 부담”


▎이재명(가운데) 민주당 대표는 총선을 승리로 이끈 뒤 진중 모드로 전환 중이다.
국민의힘이 선전할 수 있었던 판세를 윤 대통령이 그르쳤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수도권 열 몇 석이 넘어가게 만든 중요한 요인이 윤 대통령이라고 본다. 호남도 지역주의 때문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이 충분히 끌어안지 못한 탓에 이렇게 분노한 것이다. 어찌보면 이낙연 새로운미래 대표도 윤 대통령의 ‘유탄’을 맞은 셈이다. ‘윤석열과 더 잘 싸울 수 있는 자가 누구냐’는 호남의 판단에서 이낙연 대표는 너무 약해 보였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훨씬 눈에 들어온 것이다.”

민주당은 협치의 조건으로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윤 대통령 입장에서 받기 어려운 카드일 텐데.

“아마 안 받을 것이다. 그래서 제2부속실 설치처럼 제도적으로 관리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김 여사의 역할은 앞으로 최소화될 것이다.”

대통령이 끝까지 김 여사를 보호하면, 민주당은 협치의 진의를 따질 듯하다.

“그렇게 되면 다른 것을 양보하는 정치적 거래를 해야 한다. 이제 대선 레이스로 간다면, 힘 빠진 대통령의 부인을 공격해봐야 민주당에 득 될 것이 별로 없다. 이제 민주당이 김건희 특검을 그렇게까지 강하게 주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조국혁신당은 계속 ‘특검하자’고 하겠지만, 대권 프로젝트를 시작한 민주당은 다른 입장이다.”

민주당 등 범야권 200석이 불발됐지만 여야 합의를 통한 개헌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이제 국회는 민주당 마음대로, 행정부는 국민의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충돌이 생기면 풀기 굉장히 어려워졌다. (87년 체제를) 개헌하려면 대통령 권한을 줄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재명 대표가 가장 반대할 것 같다.”

일각에선 대통령 탄핵 이야기도 나온다.

“지금까지 국회에서 이미 두 차례나 탄핵안이 가결됐고, 한번은 실제로 받아들여졌다. 사람들이 이제 내 마음에 안 드는 대통령은 언제든 탄핵으로 내쫓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빌미를 찾으려 한다. 대통령제의 안정성이 굉장히 약화됐다. (87년 체제에서 나온 대통령의) 권위가 안 받아들여진다.”

이번 총선은 ‘보수=주류, 진보=비주류’라는 도식이 한참 낡았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보수는 옛이야기, 이승만·박정희에서 끝난다. 박근혜 탄핵은 그런 옛날 보수의 종언을 상징했다. 사실 박정희의 경제성장은 부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성장의 혜택을 받았다. 지금 그런 메시지가 없는 보수는 갇혀 있다. 그 결과, 두 번의 총선에서 연달아 180석 이상을 내줬다. 위기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수도권에서 당선이 안 되고 영남 출신이 많아지니까 변화의 추동력이 안 나온다. 영남, 부자, 남성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서 외연 확장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30대인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김재섭 국민의힘 후보의 당선은 의미를 부여할 만하지 않을까?

“지금 보수가 최대한 모을 수 있는 숫자가 국회 의석 3분의 1이다. 이를 돌파하려면 근본적 자기 혁신, 가진 자들의 양보, 이런 가치를 상징할 수 있는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 ‘코어(core) 보수층’은 자신들 때문에 보수가 망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계층적 이슈가 점점 커질수록 소수파가 되는 보수는 집권할 수 없다. 사정이 이런데, 국민의힘은 이준석을 내쫓고 김기현을 앉혔다. 이는 비단 윤 대통령의 문제가 아니라 보수 세력 전체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계층이 중시되는 구도에선 포퓰리즘 정책이 득세할 수 있다.

“이미 정치적 양극화가 나타났다. 포퓰리즘은 ‘피플 vs 엘리트’ 구도다. 지금 보수가 ‘탐욕스러운 보수 vs 선량한 다수 시민’ 프레임에 딱 엮여 있다.”

“개헌?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가장 반대할 것”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정치 양극화와 포퓰리즘의 득세를 우려한다.
국가 채무가 1100조원을 돌파했다. GDP 대비 50%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이런 실정에서 민주당이 기본소득 등 재정 확장을 추진할 수 있을까?

“야당이 막 (돈을 풀라고) 던지진 않을 것 같다. 문제는, 필요하다면 진보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차용할 수 있는 보수의 변화다. 패배자,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보수가 어떤 기대감을 줄 수 있을 지에 대해 실용적 방식을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다. 단순히 10만원을 지원하는 것보다 본질적인 것이 무엇이냐인데, 지금 보수에는 (콘텐트가) 없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윤 대통령의 결론은 대개 옳다. 하지만 그 과정을 보면 따르기가 싫다’고 말하더라. 왜 대통령의 지향성은 정서적으로 스며들지 못할까?

“호남 출신도 뽑고, 진보적 사람, 젊은 사람도 데려가 앉히는 등 사람을 폭넓게 쓰는 인사 정책이 없다. 대통령 자신이 소통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런 모든 현상에 진보는 분노했고, 보수는 ‘되는 게 뭔가? 뭐 하고 있나’라며 불만이었다. 민주당 일부 후보자의 막말 파동이 없었다면 100석 밑으로 내려갔을 수도 있었다.”

소위 ‘조국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나?

“우리 사회 양극화의 산물이다. 돌이켜보면 2년 전 대선에서 왜 윤석열이었나? ‘문재인과 가장 잘 싸우는 사람이 누구냐’로 골랐다. 이번엔 똑같은 이유로 봤더니 이낙연보다 조국이었던 셈이다. 특히 호남 민심은 이재명 대표에 대해 그리 호감도가 높지 않다.”

“2년 뒤 지선과 대선에서 尹은 관심 대상 아냐”

그렇다면 향후 대권을 놓고 이재명과 조국의 미묘한 경쟁 구도가 성립할까?

“조국 대표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남겨두고 있다. 조 대표가 구속되면 당의 구심점이 사라진다. 8년 전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떠오른다. 총선에서 호남 의석을 휩쓸었지만 결국 없어지지 않았나. 불만을 표출하는 용도로 적절해서 선택된 것이라면 조국혁신당도 일회용이 될 수 있다.”

똑같이 총선에서 대패했지만,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4년 전 황교안 전 대표와 결이 다른 인상을 준다.

“패장이 됐지만, 사람들이 한동훈 때문에 안 찍은 것은 아니지 않나. 황교안 전 대표의 ‘올드 보수’에 비하면 나이, 외모, 언행 등 한동훈에게 매료된 보수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경쟁 관계가 되겠지만, 당분간 지켜봐야 할 인물이다. 양극화 정치에서 ‘누가 이재명과 가장 잘 싸울까’를 생각하면 다시 (지지세가) 한동훈한테 갈 수도 있다.”

2년 후 지방선거, 3년 후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윤 대통령은 그때에도 ‘보수의 걸림돌’일까?

“지금은 임기 중반이다. 이번 총선은 윤 대통령을 심판한 선거였지만, 2년 뒤 지방선거부터는 미래지향적으로 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윤 대통령은 관심의 대상도 아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도 반대만 하는 무책임한 야당에서 이제부터는 책임질 지분이 생긴 것이다. 투쟁만 하면 대선 가도에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다.”

절묘하게도 총선 결과로 국민은 ‘협치하라’는 메시지를 정치권에 보낸 셈이 됐다.

“(역설적이게도 총선 결과로 인해) 협상의 여지가 생겼다. 조정의 정치력을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증명하고 싶어 할 것이다. 물론 더 절박한 윤 대통령이 움직여야 한다. 별로 높은 확률은 아니지만 완전히 국정운영 스타일을 바꾼다면, 협치 가능성이 있다.”

이제부터 윤 대통령은 진짜 ‘정치’를 해야 할 환경에 직면했다.

“여당은 (총선을 통해) 윤 대통령이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한동훈, 오세훈, 원희룡, 나경원 등 국민의힘에서 차기를 노리는 사람이라면 대통령과 차별화하려 할 것이다. 이제 여당이라고 대통령을 무조건 지지하지 않는다. 바뀌지 않으면 대통령 본인이 불편해지는 상황이다.”

-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김상선 기자 kim.sangseon@joongang.co.kr / 녹취 정리 김도원 월간중앙 인턴기자

202405호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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