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를 아는가? 문경은 예부터 신(申·辛)씨가 많고, 돌(石)이 많고, 호랑이(虎)가 많다고 하여 이 같은 별칭이 붙었다. 호랑이는 사라졌지만 문경의 강기(剛氣)를 돋우는 돌은 여전하고, 또 신씨들의 활약도 만만찮다.
우선 현 시장이 신현국 씨이고, 3선 국회의원 출신이자 문경대 총장인 신영국,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전직 국회의원 신국환 씨가 있다. 문경 출신인 언론인으로는 한국경제신문 신상민 사장이 있다.
또 문경에서 자유총연맹 회원을 가장 오래 지냈다는 분은 신현정 씨이며, 시에서 가장 크게 소 사육을 하는 농부는 신명균 씨다. 전북현대모터스의 청소년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신광훈 씨도 있고, 활공랜드에서 맹활약하는 패러글라이더는 신성철 씨며, 문경사과 생산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흙벗농원에는 신범철 씨가 있다.
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신석호의 신씨는 평산 신(申)씨를 말한다. 2004년 산양면의 한 무덤에서 400년 된 미라가 발견됐다. 금선단(金線緞) 저고리와 치마를 걸친 생생한 모습의 여인이었다. 이 여인이 살았던 집안이 평산 신씨 가문이다. 이들은 고려 개국공신인 장절공(壯節公) 신숭겸 장군의 후손이다.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 조선 말 판소리의 대가 신재효, 초대 국회부의장인 신익희가 유명하다. 문경 출신 중에는 신씨가 아니라도 씩씩한 산악의 기운을 받은 듯 각계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사람이 많다. 그 중에서도 지역 명문인 문경중학교는 쟁쟁한 인물을 배출하는 산실 역할을 해왔다.
각계에서 활동 중인 문경중 출신은 대부분 중학교 졸업 후 대구나 서울의 명문 고교로 진학했다. 특이하게도 문경 출신은 한국의 건설업계를 주름잡고 있다.
서종욱(15회·59) 대우건설 사장과 이상한(12회) 부사장은 같은 회사에서 중추를 이루고 김중겸(15회) 현대건설 사장, 남선건설의 윤성길(4회) 회장과 윤정호(25회) 대표, 태영의 변탁(4회) 이사회 의장과 권오훈(15회) 상무, 황민욱(5회) 전 한화건설 전무, 김석구(6회) 경주월드 대표, 홍승표(6회) 남진공영 대표 등이 있다.
올 봄 대우건설 서 사장은 새로 사장에 취임한 경쟁사 현대건설의 김 사장에게 술을 샀다. 그들은 문경중학교 15회 동기동창으로 1, 2위를 다투던 친구였다. 두 사람은 모두 지방에서는 유지로 꼽히는 양조장집 아들이었다. 서 사장은 인물이 잘생기고 말주변이 좋아 ‘탤런트’로 불렸고, 김 사장은 조용하면서 집념이 강해 ‘진국’으로 통했다.
해외건설 붐이 일었던 1970년대 서 사장은 리비아에서 땀을 흘렸고, 김 사장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실력을 발휘했다. 변탁 태영 이사회 의장은 태영건설 대표를 지냈고, 2002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대한스키협회 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2006년 토리노겨울올림픽 단장으로 세계 7위라는 역대 최고 기록을 냈다.
문경중학교 출신으로 학계에서 유명한 사람은 미 항공우주국(NASA) 핵물리학자로 미국에서 생활하는 여영기(4회) 씨와 케이스웨스턴대학 교수인 이동훈(4회) 씨다. 고려대 법대 학장인 채이식(14회) 교수, 서강대 신방대학원장인 김학수(15회) 교수, 서울대 농대 부학장인 김경욱(15회) 교수도 있다.
젊은 학자로는 경희대 전자정보대학 정연모(23회) 교수, 신흥대학 행정학과 김정호(24회) 교수 등이 있다. 관계에서는 황원탁(4회) 전 독일대사, 천기호(2회) 전 경찰청 치안감, 국토해양부 도로국장인 권진봉(18회) 씨, 행정안전부의 고윤환(23회) 국장이 눈에 띈다.
기업계 인사로는 코콤의 고진태(4회) 회장과 고성욱(13회) 사장, 이창무(7회) 아세아제지 대표, 박병재(7회, 영창악기 대표 부회장 겸 현대산업개발 상근 고문) 전 현대자동차 대표, 류장림(23회) 시공테크 대표가 있다. STX의 유럽대표이사 사장인 신상호 씨는 지난해 산업포장을 수상했고, 벌크선 수주를 확장하는 데 공로를 세웠다.
[한국경제신문] 대표인 신상민 씨는 신씨 문중의 회장을 맡고 있다. 물론 문경중 출신만 뛰어난 것은 아니다. 예천중학교를 나온 문경 동로면 출신의 이한성(53) 씨는 현직 국회의원으로 창원지검 검사장(사시 22회)을 지냈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판·검사가 대결을 벌여 승리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지난해 자랑스런 문경인상을 받은 아시아트레딩 엄태우(71) 대표와 대우건설 이상한(62) 부사장은 각각 문경 산양면과 점촌 출신의 뛰어난 기업인이다. 금융계에서는 유진투자증권의 이인환(50) 전무가 돋보인다.
점촌 출신으로 대우증권에서 뼈가 굵은 그는 업계 최초로 기업의 경영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통합경영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고,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ERP)과 업무원가관리시스템을 도입해 효율적 원가관리를 실현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대통령 표창과 함께 ‘신지식금융인’에 선정됐다.
이제 문경에 살고 있는 인물을 살펴보자. 지리산 청학동에서 한학을 배운 특이한 학력을 지닌 조수복(60) 선생은 <본초강목>에 나오는 청려(명아주)장 지팡이를 만든다. 청려장은 어버이날과 노인의날에 선물로 불티나게 팔리는 문경의 특산품이 됐다. 문경새재아리랑을 전수받은 송옥자(58) 선생은 문경읍 출신으로 현재 충주여중에서 국악 강사를 하고 있다.
문경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공장(한 해 매출 1,400억 원)을 운영하는 사람은 이이주(58) 사장이다. 전기·전자용 코일을 생산하는 삼동문경공장을 1999년 설립해 지난해 산업훈장을 받았다. 동로면 간송리에 사는 하문상(31) 씨는 최연소 이장이다. 2007년 추석 때 TV에서 하는 이장·통장 전국노래자랑에서 인기상을 받기도 했다.
문경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이 사람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조령초등학교를 나온 김정옥(61) 선생이다. 중요무형문화재인 도예 명장으로 찻사발축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경북대 명예교수로 7대째 가업을 이어 도자기를 빚고 있으며 2006년 자랑스런 한국인상을 받았다. 젊은 도예가로 경북 무형문화재인 이학천(49) 선생도 유명하다.
그는 2007년 신지식인에 선발되기도 했다. 방짜유기로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은 이봉주(83) 선생은 평북 정주 사람이다. 문경에 정착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징을 만들어 화제가 됐다. 자수의 달인인 김시인(63) 선생은 경북무형문화재다. 그는 자수 가운데서도 가장 어렵다는 육골침을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아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장수 황씨 소윤공파 집안의 독특한 가양주인 ‘호산춘’을 빚어내는 권숙자(78) 선생도 문경의 자랑이다. 안동에서 19세에 이곳으로 시집온 그는 200년 전통의 술을 빚어 문경의 풍류를 돋우는 경북무형문화재다. 신현국 시장이 가장 고마운 분이라고 표현한 강덕수 STX 회장도 ‘문경의 사람들’에서 뺄 수 없다. 고향은 이웃 구미이지만, 기꺼이 문경에 리조트를 지어 이 고장 경제에 큰 도움을 준 은인이다.
다양한 문경의 인물들에 접근하다 보면 하나같은 공통점이 있다. 이 고을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문경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이 애향심과 뚜렷한 정체성이 문경을 움직이는 힘이 아닐까? 문경은 자연도 아름답지만 사람 또한 아름답다.
한지제조장 ‘김삼식 정신’
배 곯아도 허튼 짓 않는 58년 뚝심
<조선왕조실록> 담는 1등 종이 뽑히다
찻사발 고을의 고선희 ‘문경다례원’원장
茶 안 나는 도시가 찻잔 품격은 최고
다기는 쓸수록 아름다워지는 물건…칠석날 ‘낡은 그릇 선발대회’ 눈길
문경의 길 닦기 17년 동일건설 고대용 사장
“건설업 투명해져 술상무도 잘랐죠”
지방 건설업자가 털어놓는 ‘지역에서 기업하기’
농업도 벤처다, ‘민들레식품’서수분
“나는 이제 일편단심 민들레랍니다”
인생 새로 갈아 ‘문경 명물’ 심었다
민들레의 잎과 뿌리의 약효 _ 민들레 잎에 들어있는 베타카로틴은 유해산소를 제거해 노화와 성인병을 막아주는 항산화물질이며, 비타민A와 비타민C가 풍부해 야맹증과 감기에 그만이다. 칼슘 함량도 높아 뼈·치아 건강을 돕고 혈압도 조절해준다. 빈혈을 막는 철분도 꽤 들어있다. 잎 몇 닢만 먹으면 병원에서 처방받은 이뇨제와 별 차이 없을 만큼 소변 보기가 좋다. 몸에 난 사마귀와 검버섯도 없애준다. 뿌리는 해열제이며, 종기를 삭이고 위를 튼튼하게 하는 약재다. 간 기능 개선 효과도 뛰어나며 당뇨병과 고혈압 치료에도 좋다. 뿌리를 먹으면 모유가 부족한 산모는 젖이 나온다. 호흡기 염증과 홍역·이하선염·수두에도 위력을 발휘한다. |
도천 천한봉 선생과 막내딸 천경희 씨. |
일본에서 스타로 모시는 ‘이도다완의 거장’…무형문화재 ‘문경요’ 천한봉 선생
“문경 막사발은 글로벌 경쟁력 지녔죠”
이 땅의 옛 백성들은 막사발에 밥이나 국, 그리고 반찬을 담았다. 목이 컬컬해지면 이 사발에 막걸리를 부어 들이켜기도 했다. 서민의 애환이 서린 막사발에는 필요한 것 이상의 꾸밈이 없다. 소박하고 단아한 맵시여서 보기만 해도 정겨움이 생겨난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의 영남지방에서 가져간 막사발에 반해버렸다.
막사발로 막 쓰기에는 그 물건이 너무 귀해 보였다. 그는 이것을 ‘이도다완(井戶茶碗)’이라고 부르며 차회를 열었고, 그때 사용한 찻사발은 일본 국보로 지정됐다. 문경 운달산 자락에 있는 ‘문경요’는 청자도 백자도 아닌 조선의 막사발을 구워낸다. 문경요의 도천(陶泉) 천한봉(76) 선생은 일본에서 더 유명한 도예가다.
도쿄(東京)를 비롯한 대도시 백화점에서는 자주 그의 찻사발 전시회가 열린다. 일본 다도계에서는 그를 ‘옛 백제인’ 모시듯 한다. 1976년 그곳에서 다기 전시회가 열렸을 때 일본인들은 깜짝 놀랐다. 자신들이 국보로 모셔둔 이도다완을 직접 만들어내는 도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고학자와 골동품 애호가들이 일제히 탄성을 질렀고, 이날 이후 도천 선생은 일본의 스타가 됐다. 1990년 대통령이 방일했을 때 도천의 작품이 일본 왕실에 주는 선물로 채택됐고, 왕실에서는 매우 만족해했다고 한다. 도천 선생은 1974년 일본으로 건너가 1년간 다완에 관한 공부를 했는데, 이때 국보 이도다완을 눈여겨본 뒤 그것을 만드는 도공의 손길과 호흡을 상상하며 기억해 놓았다.
그런 눈썰미와 열정이 ‘일본 국보’의 재현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도천 선생은 일본의 흙과 한국의 흙이 달라 일본에서는 우리가 만드는 사발을 그대로 만들기 어렵다고 말한다. 특히 문경의 흙은 찻사발을 만들기에 좋은 석회암이 많이 섞여 담백한 빛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일본 내각부는 도천 선생에게 문화훈장인 ‘욱일쌍광장’을 걸어주었다. 도천은 1970년대부터 전시회를 통해 매년 15만 달러 내외의 외화를 벌어들였고 2005년 우리 정부는 그의 수출실적을 평가해 동탑산업훈장을 수여했다. 도천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그의 조부는 독립운동을 한 천보락 장군이라고 한다.
부친은 일제 때 징용을 갔다. 그 바람에 그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대동아전쟁의 폭격 속에서 어린 시절을 지낸다. 그의 피 속에는 일본과 싸우고 일제에 희생된 조상의 비원(悲願)이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옛 슬픔과 분노를 주무르고 구운 듯 도자기를 만들어 오히려 그들에게 베푸는 사람이 되었다.
해방 후 도천은 귀국해 아버지의 고향인 문경에 정착했다. 부친이 돌아간 후 열네 살에 도자기공장에 취업한다. 그러다 전쟁을 맞아 난리통에 세 번씩이나 입대하는 기구한 기록을 세운다. 전쟁이 끝나 도자기를 만들려고 했는데 사람들은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를 쓰는 바람에 도자기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요강을 만들어 판다. 이 요강장수는 1970년대 차문화가 생겨나면서 다시 다완을 만들기 시작한다. 1974년에는 1년간 일본에 유학을 다녀오기도 한다. 도천은 다섯 딸을 두었는데 그 중 맏딸 천명숙(48)과 막내 천경희(38)가 가업을 잇고 있다. 그의 거실에는 큰 마루를 놓아 그 위에 도예 작품들을 진열해 놓았다. 그 중 하나를 집어 들고 물어보았다. 몇 백만 원을 훌쩍 넘는 귀한 물건이었다.
“이 그릇을 왜 명품이라고 하는 건지요?”
“그릇을 뒤집어보면 매피(梅皮)가 올라 붙은 것이 보이지요? 우연히 만들어진 그것이 귀한 것이지요.”
“실수로 잘못 만든 것처럼 보이는데요?”
“허허…. 바로 그것입니다. 진짜 귀한 작품은 인간이 실수하는 사이 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문경 대승사 철산스님, ‘칠장(漆醬) 맛’의 비밀을 설법하다
“송홧가루가 된장 만들 듯 보시하게”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不作不食)’는 불교의 치열한 혁명정신은 봉암사뿐 아니라 대승사에서도 느껴졌다. 이곳의 주지 철산 탄공스님(사진)은 절 옆에 아예 단지와 그릇을 만드는 요(窯)를 차렸다. 거기서 만든 단지를 이용해 칠장된장을 담근다. 칠장(漆醬)은 옻을 넣어 담근 장을 말한다.
하안거가 끝나는 날인 8월5일 오후 나절 수천 개의 단지가 늘어선 절 입구에 들어섰다. 수행정진을 끝내고 떠나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들의 인사로 잠시 시끌시끌한 절간. 한쪽에는 선원(禪院) 건물을 짓는 공사로 붉은 흙이 배를 드러내고 있다. 절집답지 않게 넓은 유리창이 있는 방에 앉아 철산스님은 말없이 차를 따랐다.
“어찌하여 스님은 된장을 직접 담그실 생각을 하셨습니까?”
“절에서 신도들에게 이것저것 받기만 하니 뭔가 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 오래 됐는데 요즘 사람들이 된장을 잘 안 담그더라고. 그래서 내가 담가 나눠줘야겠다 싶었어요. 한 5년쯤 됐습니다.”
“된장 담그는 법은 어디서 배우셨는지요?”
“절에서 오래 내려오는 전승(傳承) 된장이 있습니다. 간장도 담그지요. 절에서 하는 방법 그대로입니다.”
“절 앞에 있는 단지들을 보았습니다.”
“예. 그것들은 모두 이 절의 가마에서 만든 단지입니다. 항아리 또한 된장 맛에 영향을 미칩니다. 항아리가 덜 구워지거나 더 구워지면 장맛이 달라집니다. 또 이 고장의 흙으로 빚은 단지 속에서 된장이 익어야 제대로 맛이 나지요. 그래서 가마를 만들어 아예 단지와 그릇을 제대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철산스님은 된장 맛이 좋은 비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 넣습니다. 옻을 넣고 오미자도 넣고 표고도 넣고. 소금은 간수를 5년 이상 빨아낸 죽염을 씁니다. 소금물에 메주를 넣지 않고, 물을 먼저 넣고 메주를 넣은 뒤 한 달쯤 두어 발효꽃이 피면 그때 소금을 넣지요. 여기는 물 좋고 공기도 좋아 된장이 맛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탄공스님은 혼잣말처럼 칠장된장의 진짜 비밀을 슬쩍 흘린다.
“사실은 저 된장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지. 사불산(대승사의 뒷산)이 만드는 거지. 사불산의 소나무가 송홧가루를 뿌릴 때 단지를 다 열어놔. 송홧가루가 들어가야 칠장된장이 완성되는 것이거든. 햇살과 바람과 송홧가루가 된장 맛을 만드는 천연 조미료지. 세상 일이란 나 혼자 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 다 누군가가 도와주는 것이지. 저 소나무들은 자기네들이 된장을 다 만들고는 시치미를 뚝 떼는 셈이니 얼마나 고맙고 기특한가? 된장을 먹으면서 그런 생각까지 해낼 줄 알면 진짜 보시받은 것이지. 사불산 소나무가 된장 만들 듯 다른 사람에게 공덕 베풀며 살아라. 그것이 칠장된장의 설법이야.”
귀를 기울여야 들릴 만큼 낮은 소리로 말하던 대승사 된장스님의 목청이 딱 한 번 높아지던 때는 바로 그때였다.
대승사 _ 조계종 제8교구인 직지사의 말사다. 소백산맥을 관통하는 죽령 서남쪽 40리 지점에 있는 사불산의 품에 안겨 있다. 조선 초 득통기화가 이 지역에 머무르며 ‘반야경’을 연구하다 절을 개창하고 후학을 지도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몇 차례 중수했다. 1912년 절 내에 유일강원이 개설돼 권상로·안진호 등의 석학을 배출했다. 부속 암자로 성철스님이 정진했던 묘적암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