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ANTHROPY - 음악과 돈은 나눌수록 행복하다

권혁일 해피빈재단 대표




11월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주택에서 권혁일(44) 해피빈 재단 대표를 만났다. 연신 미소를 지으며 수줍게 얘기하는 모습이 마치 순박한 시골 총각 같다. 하지만 그의 삶은 보기보다는 치열했다. 그는 공대를 졸업하고 IT업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네이버 창업 멤버로 참여해 앞만 보고 달렸다. 네이버가 정상궤도에 올랐을때는 사회공헌 활동에 나섰다.

현재 그는 네이버의 기부문화를 이끄는 해피빈 사업을 맡고 있다. 7년 동안 300억원 넘는 기부금을 모으는 성과를 올렸다. 그는 “성공을 위해 열심히 살았고, 지금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며 “3막 인생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1막 이해진과 만남, 네이버를 만들다

권 대표는 “성공에는 실력·사람·운 3가지 조건이 따라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서울대학원 제어계측공학 석사를 마친 후 1995년 삼성SDS에 입사했을 때 그가 운 좋게 만난 사람이 이해진 NHN의장이다. 바로 옆자리였다. 이 의장은 대학원 후배인데다 C++ 등 프로그래밍 능력이 뛰어난 권 대표를 눈여겨봤다. 사내 벤처팀을 만들 때 그를 불러들였다.

그가 꺼낸 첫 얘기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의 미래는 불투명하다”였다. “1000명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MS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했지요. 이 의장은 한글이 유일한 희망으로 봤어요. 한글 분야는 외국에서 소프트웨어가 들어와도 익히는데 적어도 3년은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한글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보자고 하더군요.”

권 대표는 이 의장과 함께 3년간의 연구 끝에 한글 검색 엔진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이 네이버의 원천기술이다. 사내벤처팀은 1997년 사내 벤처 1호 기업 네이버로 발전했다. 이때부터 권 대표의 삶은 더욱 치열해졌다.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연구에 몰두하는 날이 계속됐다. 그가 네이버의 핵심인 검색엔진 개발을 맡았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서버 장비가 부족했어요. 한정된 용량으로 많은 서비스를 해야 했지요. 서버가 불안정할 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목숨이 줄어드는 기분이었죠.”

네이버는 2000년 인터넷 게임 업체 한게임과 합병하고 NHN을 설립했다. 합병 시너지는 컸다. 인터넷 검색과 게임을 이용하는 고객이 한꺼번에 늘면서 2003년 10월 부동의 1위인 야후코리아를 제치고 검색 시장 1위에 올랐다.

그 무렵 네이버재팬 CTO(최고기술책임자)였던 권 대표는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7년 동안 밤낮없이 일했더니 급격하게 건강이 나빠졌다. 심각하게 회사를 그만둘지를 고민했다. “창업멤버끼리는 동질감이 높아요. 누가 쉬고 싶다고 푸념하면 너만 힘드냐고 난리가 납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저는 불쌍하다고 이제 쉬게 해주라고 하더군요(웃음).”

2막 해피빈 기부 문화를 만들다

삶의 변화가 필요했다. 마침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부각되는 시기였다. 권 대표는 이 의장과 상의 끝에 2004년 NHN에 사회공헌팀을 만들기로 했다. 권 대표와 직원 한 명으로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기부 문화를 정착해보겠다’는 당찬 목표를 세웠다.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기 때문에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1년간의 준비 끝에 2005년 온라인 기부포털 사이트 해피빈(http://happybean.naver.com)을 선보였다. 기부 시스템도 투명하게 바꿨다. 기부를 하면 해당 금액이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한 내역을 모두 공개했다. 그의 예상과 달리 기부자는 극히 소수였다. 그는 수 십 차례 시장조사 끝에 그 이유를 알았다.

기부에 대한 사람들의 경험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 동안 기부 관련 방송을 보면 병이나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겁니다. 당장은 기부 금액을 모을 수 있지요. 그러다보면 사람들은 기부를 특별한 일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식으로는 기부 문화가 확산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기부를 자연스럽게 연결할 고리가 필요했다. 권 대표가 고심 끝에 찾은 게 콩이다. 이 콩의 이름이 해피빈이다. 기부 전용 사이버 머니로 한 알에 100원이다. 그는 기부를 권유하기 보다 이 콩을 나눠줬다. “네이버에서 메일을 보내거나 블로그에 포스트를 남기면 콩을 하나씩 드립니다.

콩알이 쌓이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기부처를 알아보게 돼요. 현재 해피빈 블로그인 해피로그에 소속된 NGO단체는 6000여개에 달합니다. 기부자는 관심사에 맞는 단체나 기부처를 찾게 되는 거죠. 또 기부를 하게 되면 단체에서는 감사함을 전하는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권 대표는 기부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콩을 통해 NGO단체들과 관계를 맺게 했다. 해피빈을 통해 기부 인프라를 만든 것이다. 11월 19일 기준 모금액은 326억원에 이른다. 약 880만명의 네티즌이 참여한 결과다. 권 대표는 “직접 콩을 충전해서 기부하는 금액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자랑했다.

“처음엔 콩을 직접 사서 기부하는 금액이 1억원만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콩을 충전해서 기부하는 금액이 연간 25억원을 넘고 있어요. 콩을 갖고 있는 잠재적 기부자는 1700만명에 이릅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기부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지요. 다행히 기대했던 결과가 나타나고 있어 기쁩니다.”

3막 음악 스튜디오 오픈하고 작곡 준비

언젠가 해피빈 워크숍에서 각자의 꿈을 적는 시간이 있었다. 권 대표는 ‘작곡가’라고 적었다. 오랫동안 가슴 깊숙이 묻어온 꿈이었다. 중학교 때는 중창단원이었고, 대학교 시절엔 기타를 매고 다녔다. 음감이 좋아서 친구들이 노래를 하면 곧잘 반주를 해줬다. 최근 권 대표는 그 동안 밀어뒀던 꿈을 끄집어냈다.

지난 7월 판교에 집을 지으면서 음악실을 만들었다. 2층은 주거 공간이고 1층이 음악 스튜디오다. 1층에 피아노는 기본이고 여러 종류의 기타와 드럼을 갖춘 밴드 연습실이 있다. 한 켠엔 녹음과 믹싱 작업을 할 수 있는 소규모 스튜디오도 마련했다. 음향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1층 전체에 방음장치를 했다.

낮이고 밤이고 아무리 큰 소리로 연주를 해도 밖으로 새나가지 않는다. 권 대표는 연습실이나 녹음실이 필요한 음악가들을 위해 이곳을 개방했다. 이미 ‘아낌없이 주는 나무’ 멤버였던 김현호씨가 CMM(기독교 음악) 앨범을 이곳에서 녹음했다.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함춘호씨, 드러머 권낙주 씨 등 음악가들도 찾아온다.

음악가들이 이곳을 찾는데는 독특한 건물 디자인도 한 몫 했다. 이 주택 이름이 하우스 세븐디그리(House 7°)다. 바닥 평면이 7도 기울진 평형사변형 땅을 그대로 살려서 집을 지었다. 집 앞 우체통부터 TV·소파 등이 살짝 기울어져 있다. 덕분에 집 안의 모든 가구를 맞춤형으로 제작했다.

권 대표의 꿈을 실현해 준 이는 그의 형 권혁천 원건축사무소장이다. 어렸을 때부터 동생의 음악적 재능을 알았던 형이 꼼꼼하게 신경 써서 지은 집이다. 권 대표는 “3~5년 후에는 다같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좋은 노래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한 시간 뒤 사진촬영을 위해 그에게 기타를 건넸다. 그는 로망스를 시작으로 3곡을 연달아 연주했다. 그제야 수줍음은 사라지고 얼굴 가득 행복한 웃음이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