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김진의 정치인사이드]홍어와 민주당  

‘동교동’흥망성쇠 대변하는 ‘정치적 생선’ 

외부기고자 중앙일보 정치전문기자 jinjin@joongang.co.kr
한화갑 민주당 대표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보낸 홍어를 민주당 관계자가 들고 있다.
1993년 어느날 한 남정네가 목포의 어물전을 찾았다. 그는 45만원짜리 큼지막한 홍어를 골라 “고급 종이에 싸 주쇼”라고 주문했다. 주인은 “고급 종이 찾는 이는 첨 보네이”라고 궁금해 했다. 남정네는 “아따, 이번에 영국 관광 가는데 케임브리지에 들러 선상님 드릴라 안카요”라고 했다. “선상님” 소리에 주인은 놀랐다. 그는 홍어를 내려 놓으며 “이건 칠레산이요. 쪼께 기다리쇼잉”라고 했다. 그는 진짜 흑산도 홍어를 곱게 포장해 주었고 돈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측근 김옥두 전 의원이 전하는 동화 같은 얘기다. 당시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던 DJ 집은 호남의 열성 지지자들에겐 꿈의 순례 코스였다. 몇몇은 DJ가 좋아하는 흑산도 홍어를 들고 갔다. 삭히지 않은 회를 좋아한 DJ를 위해 그들은 스튜어디스에게 부탁해 비행기 냉장고에 넣어 갔다. 한국 정치사에서 특정 정치인 또는 정치세력과 특정한 음식이 관련 있는 경우는 더러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상징 음식은 막걸리였다. 그는 말년에 궁정동 안가 만찬에서는 양주 시바스 리갈을 자주 마셨지만 그것은 한정식 안주에 술좌석 분위기를 고려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농민 출신인 박정희의 술은 원래 막걸리였다. 그는 모내기를 나가서는 양복바지를 걷어붙인 채 논두렁에서 농부와 막걸리를 주고받곤 했다. 청와대 관저에서 특보나 지인들과 어울려 저녁을 먹을 때 박 대통령은 경기도 원당에서 가져오는 막걸리에다 맥주를 섞어 만든 ‘비탁(비어+탁주)’을 즐겼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야당 시절 부친의 어장에서 잡은 멸치를 명절 때 돌리곤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생선 요리를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멸치나 특정 생선이 YS나 상도동의 상징 어족(魚族)으로 자리 잡을 정도로 정치성을 띤 것은 없었다. 그러나 ‘동교동의 홍어’는 다르다. 우리 정치에서 특정 정치세력과 음식이 연관된 것은 동교동의 홍어가 가장 대표적이다. 홍어는 동교동과 민주당의 흥망성쇠와 붙어 다녔다. 60년대 동교동에는 홍어가 곧잘 상에 올랐다. 귀한 생선이었지만 호남 바닷가의 지지자들이 보내 주곤 했다. 70년대 가택연금이 심할 때 홍어는 출입 금지였다. DJ의 아들도, 신문도 못 들어올 때였다. 80년 봄 홍어는 동교동에 반짝 돌아왔다. 호시절은 잠시, 바로 감옥을 거쳐 미국에서 유랑 생활을 하면서 DJ는 홍어 맛을 수년간 잊어야 했다. 90년대 들어 홍어는 동교동에 돌아왔고 아들 김홍일 의원 집에서 헤엄쳤다. DJ를 따라 런던에도 가고 청와대 구경도 했다. DJ와 노무현 대통령이 빠져나간 민주당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몰락했다. 당사 주변은 물론 흑산도를 지역구로 갖고 있는 한화갑 대표집에서도 홍어는 사라졌다. 그러던 민주당에 요즘 홍어가 돌아왔다. 김홍일 의원이 홍어 세 마리를 풀어 당사에선 모처럼 막걸리 파티가 열렸다. 한화갑 대표 당선 선물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홍어 두 마리를 보내오기도 했다. 지금 흑산도·홍도에서 조업하고 있는 홍어잡이 배는 아홉 척이다. 민주당 의원 숫자와 똑같다. 민주당은 옛날처럼 홍어 배가 수십척으로 늘어나길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정일 의원 측 도청 사건이 터졌다. 당은 서둘러 공식 사과 성명을 냈는데 당 사람들은 모처럼 돌아온 홍어가 한두 마리라도 달아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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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호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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