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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라 형제에 속아 소금 1천 섬 날려 

소금장수 김두원의 소금 값 반환 투쟁
“구휼금 거부하며 일본공사에 변상 요구…평생 항일투쟁으로 이어가”
전봉관의 구한말 百景 ? 

전봉관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한일병합 이후에도 김두원의 투쟁은 이어졌다. 일본 총리, 의회, 조선총독, 경시총감 등에게 매일같이 탄원서를 보냈고, 고관들을 쫓아다니며 소금 값을 돌려줄 것을 애원했다. 김두원은 71세가 된 1920년까지 탄원서 투쟁을 지속했다.
김두원은 원산을 거점으로 동해안 일대를 오가며 소금을 도매하는 거상(巨商)이었다. 1907년 천일염이 등장하기 이전 한국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모두 바닷물을 끓여서 얻은 자염(煮鹽)이었다. 손이 많이 가고, 연료비도 많이 들어 값이 몹시 비쌌다.



어지간한 자본 없이는 값비싼 소금을 도매로 취급할 수 없었다. 1899년 5월 김두원은 경상북도 장기군(포항) 모포로 내려가 객주 김쌍동의 집에 머물면서 가을 김장철에 내다 팔 소금을 매집했다. 한 달 남짓 지나자 객줏집 창고는 1088섬 소금 가마니로 가득 찼다. 매입원가는 5191원이었지만, 김장철 원산에서 매도하면 1만원은 넉넉히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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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6호 (2009.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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