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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장백관 유로자전거나라 대표 - “감동한 여행객 1명이 100명 몰고 온다” 

 


유럽 여행을 직접 준비해본 배낭여행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회사. 바로 ‘유로자전거나라’다. 여행 관련 인터넷 카페를 잠시만 뒤져봐도 이곳의 투어 프로그램을 다녀온 후기를 숱하게 볼 수 있다. 최근에는 프랑스·이탈리아 여행객들의 필수 체험 코스처럼 여겨질 정도다.

이 회사는 항공권, 호텔 숙박권 위주로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는 다른 여행사와 달리 ‘유럽 전문 지식 가이드’를 표방하며 가이드 투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부분 하루 일정의 프로그램인데다 가격도 실비를 제외하고 2만~8만원 선으로 부담스럽지 않아 자유로운 일정을 선호하는 유럽 여행객 사이에서 큰 인기다. 대규모 미술관을 돌며 주요 작품만 쏙쏙 뽑아 보고 가이드의 상세한 설명을 듣다 보면 “본전은 찾고도 남는다”는 게 많은 사람의 반응이다.

여행비 벌기 위해 시작

가이드 위주의 유럽 투어 상품을 최초로 개발한 건 유로자전거나라의 장백관 (47)대표다. 자신이 유럽을 여행하며 느낀 아쉬운 점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탈리아, 프랑스로 시작해 이제는 영국, 스페인, 체코, 오스트리아, 그리스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시차에 적응할 틈도 없이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일하고 있는 장 대표를 10월 28일 서울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처음부터 여행 사업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고 말한다. 부모를 잃고 보육시설에서 성장한 장 대표는 특유의 ‘역마살’ 탓인지 어려서부터 가출을 반복하며 구두닦이, 앵벌이 등 안 해 본 일 없이 자랐다. 철이 들며 마음을 다잡은 뒤에는 금융권에 취업했다. 매일 밤을 세우며 치열하게 일했다. 그러나 성과가 좋아도 매번 승진에서 탈락했다. 학연·지연이 없는 탓에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울분이 치민 그는 2000년 서른 여섯의 어느 날,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유럽으로 떠났다. 틈나는대로 가장 싼 항공권을 구해 외국을 여행하곤 했던 장 대표는 이때 아예 유럽에 눌러앉다시피 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한국인 여행객을 만나면 장 대표가 “내게 가이드를 받아보지 않겠냐”며 다가갔다. 주요 유적지와 관광지에 데려다 주고 알고 있는 정보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하루의 식사가 그의 첫 가이드 요금이었다. 당시 하루 8시간 일하는 가이드 요금이 400달러나 됐으니 그저 길 안내만 해줘도 여행객들은 고마워했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해보라”는 사람도 많았다.

장 대표 역시 배낭여행객으로서 관광지와 주요 유적을 돌아볼 때마다 관련 정보와 역사적 배경 지식이 없는 것에 대해 늘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유럽여행에 참고로 할 가이드북도 요즘처럼 많지 않았다. ‘무작정 유럽으로 나온 가난한 배낭여행객의 길라잡이가 되어 주자’고 결심했다. 박리다매로 몇 명이 오든 한 사람당 1만5000원만 내면 로마 시내를 돌며 가이드 투어를 해줬다.

장 대표가 혼자 하는 사업이었으니 처음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주변의 배낭여행객을 상대로 ‘구전 마케팅’을 하는 게 유일한 모객 방법이었다. 밤에는 역사책을 붙잡고 가이드 공부를 하고 낮에는 가이드로 뛰어다녔다. 그런데도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고객이 꾸준히 늘었다. 특히 해외출장이 잦은 항공사 직원이 많이 이용했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가장 중요한 관광지를 위주로 안내 받고 쓸데없는 쇼핑 코스는 일절 없는데다 가격이 싸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한 항공사 엔지니어는 ‘컴맹’인 장 대표를 대신해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줬다. 유로자전거나라의 첫 번째 홈페이지였다.

사업 시작 1년 만에 혼자서는 감당이 안될 정도로 손님이 늘자 직원 채용에 나섰다. 처음에는 유럽 현지에서 공부한 유학생을 위주로 뽑았다. 그런데 일이 워낙 힘드니 얼마 못 가 그만두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장 대표는 “가이드로 평생 일할 수 있는 열정이 있는 사람, 학벌도 성적도 개의치 않고 적성이 맞는 사람이 필요했다”고 회상한다.

여행 투어는 가이드가 전체 일정을 책임진다. 가이드가 회사의 가장 귀한 재산이나 다름 없다. 장 대표는 2달의 걸친 긴 면접 기간 동안 지원자에게 거듭 물었다. “막노동보다 훨씬 힘든데, 할 수 있겠어요?” 채용한 후에도 몇 달 간 숙식만 제공하는 수습기간이 이어진다. 종교사, 미술사, 세계사는 물론 음악사까지 두루 섭렵하고 공부해야 한다. 장 대표는 “가이드는 수도승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여행업계에서 가이드는 제대로 된 직업 대접을 받지 못했다. 보름 동안 가이드 뒤를 쫓아다니며 대강 훈련한 뒤 바로 가이드로 현장에 투입되는 아르바이트 생이 대부분이다.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지식 가이드로서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장 대표의 지론이다.

막노동보다 힘든 직업

유로자전거나라에서 6~8년씩 일한 차장급 직원의 연봉은 놀랍게도 1억원에 이른다. 결혼하는 직원에게는 1000만원의 상여금을 준다. “고급 인력인 가이드에겐 당연한 처우”라고 장 대표는 말하지만 뜨내기 가이드가 대부분인 국내 여행업계에서 드문 일이다. 직원들의 열정 없이는 지금처럼 성장할 수 없었을 거라는 장 대표의 믿음 때문이다.

현재 유로자전거나라는 연 매출 약 80억원을 유럽 7개국에서 올린다. 65명의 가이드와 직원을 두고 있는 어엿한 회사로 성장했다. 성수기와 비수기간의 차이가 심한 여행업계지만 유로자전거나라는 비수기를 따로 구분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손님이 뜸한 늦가을인 요즘도 투어 예약 손님이 꽉 차는 날이 대부분이다.

유로자전거나라라고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회사가 가이드 투어를 개발한 뒤 다른 여행업체들도 비슷한 상품을 쏟아냈다. 더 싼 저가형 투어 상품으로 고객을 끄는 곳도 있었다. 빗발치는 경쟁업체의 공세 속에서 유로자전거나라가 살아남은 비결은 바로 고객 만족이다.

모든 가이드가 최고의 가이드가 되도록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고 게시판의 작은 불만 하나도 일일이 체크한다. 가이드가 투어를 진행하는 동안 몰래 장 대표가 뒤따라가며 업무 능력을 평가할 정도다.

장 대표는 “여행업계의 물이 너무 흐려졌다”고 말한다. 제 살 깎아먹기 식의 과다 출혈 경쟁으로 마진율이 낮아진 여행사들이 현지의 쇼핑몰과 연계해 중간에서 수수료를 챙기는 식의 꼼수를 자주 부리기 때문이다. 유로자전거나라는 투어 요금에서 원가 비율을 낮추는 방법을 찾아 이익을 높였다. 고객은 저렴한 요금으로 여행하고, 유로자전거나라는 정당하게 일한 대가를 받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7~8년이 걸렸다.

“고객의 요구는 항상 바뀝니다. 한 명 한 명에게 감동을 주면 그 한 명이 100명을 데려왔기 때문에 지금의 유로자전거나라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박미소 이코노미스트 기자 smile8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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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호 (201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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