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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데이터 날릴라 아이스크림 녹을라 

전력난에 울고 웃는 기업 

전자·석유화학·철강부터 금융·식음료 업계까지 노심초사 … 태양광 발전 설비 등 대책 마련



#1. 주력 제품인 빙과류 판매 성수기를 맞았지만 빙그레 직원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8월에 사상 최악의 전력난이 예상되면서 충남 논산, 경남 김해 등지의 생산공장에서 전기가 끊길까 걱정이다. “자체 발전기를 갖춰 대비하지만 만에 하나 블랙아웃이 길어지면 큰일이죠. 보통 빙과류는 영하 18도 이하의 냉동고에 사흘간 보관할 수 있는데 전기가 끊기면 (녹은) 제품을 다 버려야 합니다.” 조용국 빙그레 팀장의 말이다.

#2. 서울 수하동의 센터원 빌딩. 미래에셋이 관리하는 이곳은 한여름 전력 관리에 부쩍 신경을 쓴다. 금융거래 정보와 고객 데이터가 중요한 미래에셋자산운용·미래에셋증권 등이 입주해 있다. “건물 내부의 연료 주입식 자체 발전기를 수시로 점검합니다. 블랙아웃에도 이상 없이 작동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금융업은 고객관리가 생명인 만큼 전산데이터 보존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임명재 미래에셋자산운용 실장은 요즘 전력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촉각을 곤두세운다.

국내 원자력발전소 열 기의 가동이 멈췄다. 전국의 23기 중 절반에 가깝다. 해외 출장길에 올랐던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상황이 급박해지자 5월 29일 조기 귀국해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는 5월 31일 “8월 둘째 주 전력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지 모른다. 올 여름 사상 최악의 전력난이 예상된다. 블랙아웃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6월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불량 부품을 납품한 관련 업체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어떤 말로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며 “전력난에 대한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8월 둘째 주가 최대 고비

전력난의 직격탄을 우려하는 건 해마다 국내 전체 전력의 절반 이상을 소비하는 산업계다. 특히 24시간 공장 가동이 불가피하거나 여름철을 맞아 가동을 늘려야하는 기업엔 비상이 걸렸다. 그래서 정부의 절전 캠페인에 동참하는 한편 대책 마련에 여념이 없다. 삼성전자는 6월 10일부터 9월 말까지 임직원들에게 반팔 착용 등 복장 간소화 지침을 내렸다.

PC 모니터 절전모드 설정, 개인용 냉·난방기 사용 자제, 퇴근 때 주변 기기 전원 끄기는 기본이다. 생산 현장에서 5%, 사무실에서 10%, 각 가정에선 15%의 전력 소모를 줄인다는 목표다. 일반 생산라인은 하절기 전력 수요피크 시간인 오후 2~5시에 생산 외 지역 조명과 공조 제어, 비가동 설비 전원을 차단하는 등 의무 절전을 한다.

우려가 큰 쪽은 반도체 생산라인이다. 특성상 연속 가동이 불가피하다. 신영준 삼성전자 차장은 “반도체 라인에선 자동전원공급장치(UPS)를 비롯한 정전 대비시스템을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자동전원공급장치는 일종의 배터리 개념이다. 정전이 발생해 회선이 끊어지면 약 30분 동안 생산라인에 전원을 공급한다. 이때 끊어진 전원을 복구할 수 있지만 30분 안에 해결이 어려우면 자가 발전기를 돌려 라인 가동 중단을 막아야 한다.

24시간 공장 가동이 불가피하기는 석유화학 업종도 마찬가지다. 블랙아웃을 우려한 LG화학은 고심 끝에 석유화학 생산라인이 있는 전남 여수와 충남 대산의 공장에서 전력 피크 시간대에 일부 설비의 가동률과 정비 일정을 조정하기로 했다. 또 충북에 있는 오창·청주 공장에선 8월 3~11일 임직원 집중휴가제로 공장 가동을 멈출 예정이다.

우병민 LG화학 과장은 “여수 공장 전기분해로 공정의 정기 보수 일정을 전력 수요량이 가장 많은 7~8월로 변경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기분해로는 LG화학에서 가장 많은 전력을 사용하는 공정이다. 회사 측은 정비 기간 전체 전력 사용량의 10% 이상을 절감할 것으로 기대한다.

석유화학 업종에선 모든 설비를 정상 가동하면서 전체 소요 전력의 3% 이상을 절감하기는 어렵다. 냉동기·압축기 등 전력 소모가 많은 설비도 가급적 오전 10~11시, 오후 2~5시 피크 시간대엔 가동을 피할 계획이다. 여수와 오창에 있는 자가 발전기, 태양광 발전 설비로 자체 전력 공급 비중을 끌어올릴 계획도 있다.

전력 소모량이 많은 철강 업종에선 생산량 감소 가능성도 제기된다. SK증권에 따르면 동·하절기 각각 45일 하루 3시간씩 절전으로 공장 가동이 멈출 경우 연간 3%의 생산량이 줄어든다. 포스코를 비롯한 철강회사들의 영업이익 대비 전기요금비율은 20~30%로 부담이 만만찮다. 전력난에 전기요금 비중이 껑충 뛰면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소비전력 대비 자가발전 비율이 높은 포스코나 고려아연은 피해가 덜하겠지만 전기요금 비중이 더 큰 일부 회사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피크 시간대 공장 가동 줄여

최근 실적 부진 등 대내외 악재로 분위기가 좋지 않은 포스코 역시 전력난을 우려한다. 한미향 포스코 팀장은 “전기로의 일부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기로는 전기를 이용해 철강을 생산하는 설비다. 고철을 용해하는 과정에서 전력이 많이 소요되지만 한 번 가동하면 10년 이상 멈출 수 없는 용광로와 달리 비교적 자유롭게 가동을 멈추거나 재가동할 수 있다. 포스코는 경북 포항 제철소의 연산 200만t 규모 스테인리스 공장과 전남 광양 제철소의 180만t 규모 하이밀 공장에서 전기로 가동률을 낮추기로 했다.

또 하반기로 예정된 포항제철소 전기강판·후판 공장 수리 계획을 앞당겨 8월 중에 실시할 계획이다. 이 기간 2만㎾의 전기사용량을, 광양제철소 산소 공장 일부 가동을 멈춰 2만㎾를 추가로 줄인다. 아울러 제철소 부생가스 발전설비의 수리를 하반기 이후로 미루고 LNG 복합발전 설비를 최대로 가동해 16만㎾의 전기를 추가 공급한다.

그동안 포스코는 제철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생가스 등을 활용해 총전력 사용량의 70%를 자가 발전으로 끌어왔다. 가동률 하향으로 부족해지는 쇳물은 최근 준공한 광양제철소 1용광로에서 충당해 손실을 최소화할 방침이지만 고민은 깊다.

민자 발전사에게는 전력난이 호재

반도체·철강 못잖은 에너지 소비산업인 정유업계도 고민이 만만찮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등도 다른 업계처럼 전력소비량이 많은 일부 고도화 시설의 보수작업을 여름 전력 피크 기간에 하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 본사에선 대형 절전장치인 ‘빙축열 냉방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심야 시간대에 전력을 활용해 얼음을 얼렸다가 낮에 얼음이 녹을 때 생기는 냉기로 에어컨을 가동한다. 이를 통해 에어컨으로 소모되는 전기요금의 30%를 줄일 계획이다.

소비재 업계도 시름은 깊어졌다. 김기현 빙그레 실장은 “여름철은 주력 제품인 빙과류 성수기인데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이라며 “아직 생산량이 폭발적이라거나 공급에 문제가 있지는 않지만 전력난에 따른 각종 상황을 예의주시 중”이라고 말했다.

5월까지는 예년보다 춥다가 6월 들어 갑자기 무더위가 나타나는 등 변동이 잦은 날씨에다 전력난 우려까지 겹쳐 이중고다. 이마트·롯데백화점 등 유통업계도 매장 조명의 LED를 교체하고 개·폐점 전후로 출입문을 열어 건물 실내온도를 낮추는 등 7~8월을 앞두고 전력 사용량 절감에 나섰다.

제조·생산과는 거리가 멀지만 고객정보나 거래정보가 중요한 금융권도 예외일 수 없다. 외환은행은 최근 서울 을지로 본점의 옥외 환율 전광판을 껐다. 신한은행은 지점 건물 옥상의 간판 운영을 최소화하고 있다. 한국전력도 바빠졌다. 전력설비 품질 점검에 나선 한편 한전과 납품업체 사이 불공정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특별감찰팀을 운영할 예정이다.

박희숙 한전차장은 “모든 직원이 전력 수급 안정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며 “각 업체들에 비상 발전기 가동을 요청했고 각계도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협조적으로 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력난에 대부분 울상이지만 내심 즐거운 기업도 있다. SK E&S·포스코에너지·GS파워 등 민자 발전사가 그렇다. 이들 회사는 전력 수요가 늘고 전력난이 심각해질수록 수익이 늘 수밖에 없다. SK E&S의 당기순이익은 2010년 996억원에서 지난해 6097억원으로 2년 사이 급증했다. 올해는 수익성이 더 좋아질 전망이다.

민자 발전사들이 전력난에 큰 수익을 내자 여론은 곱지 않다. 정부는 올 초 민간 발전소 수익을 2년간 한시적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도입하기도 했다. 일종의 공공성을 감안한 상한제 개념으로 원료 가격 이상의 이익을 내지 않도록 제한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스스로 민자 발전을 장려한 상황에서 갈팡질팡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는 2027년까지 민자 발전 비중을 전체 발전의 3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민자 발전사들은 정부 규제가 오히려 전력시장의 발전을 막는다고 반발한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전력난에 돈을 버는 건 사실이지만 최근 1~2년 실적이 반짝 좋은 걸 문제삼는 건 지나치다”며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은 2015년 이후 가동률이 급감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앞날을 점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 민자 발전 시장이 개방된 2001년 이후 6~7년간 SK E&S 등의 영업이익률은 2~3%대에 머물렀다.

업계는 전기요금 현실화와 공급능력 확충만이 전력난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전력 예비율을 높이고 안정적 공급을 이루려면 정부가 규제 대신 시장 논리에 맡기는 게 최선책”이라고 강조했다. 여론 악화에 일희일비하면서 규제 범위를 늘리면 민간 투자가 위축되면서 전력 공급량이 계속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자 발전사가 가동하는 LNG발전기 대부분이 한전 자회사의 발전기보다 효율이 높다는 점도 업계가 강조하는 이점이다.”

블랙아웃(Blac

1193호 (201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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