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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빛의 방향에 예민하라 

주기중의 사진노트 

주기중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포토디렉터
빛의 각도·종류에 따라 사진 딴판 … 피사체 표현하는 최적의 빛 찾아야

▎사진1



사진을 ‘빛 사냥’이라고 표현합니다. 빛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사냥’이라는 용어에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피사체를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빛을 찾으라는 뜻입니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를 요구합니다. 빛은 평면인 사진을 입체로 보이게하는 사진 미학의 핵심입니다.

중학교 때 미술반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데생부터 시작합니다. 선과 평면 도형을 그리며 공간감을 익힙니다. 그리고 입체 도형을 그리며 명암을 표현합니다. 빛에 눈을 뜨게 되는 거지요. 다음에는 아그리파 흉상이나 비너스상 같은 석고상을 수없이 그립니다. 참 지루하고 힘든 과정입니다. 그러나 꼭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데생은 빛을 보는 눈을 키우고 황금분할을 익히는 과정입니다. 이는 시각예술의 기본입니다.

‘보여지는 것, 그 자체.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마라. ‘문화적 의미’를 담으려 하지 마라. 아직 이르다. 이런 것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먼저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껴야 한다(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 안목, 21쪽).’

필립 퍼키스는 사진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걷지도 못하면서 뛰려고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기본기부터 다듬으라는 얘기입니다. 처음 사진을 찍을 때는 피사체의 밝고 어두움만 보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어떻게 똑같이 찍을 것이냐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빛의 종류나 방향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느낌은 훈련을 거친 다음에야 알 수 있습니다.

빛은 자연광과 인공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연광은 주로 햇빛을 말합니다. 물론 달과 별도 조명이 됩니다. 정말 좋은 빛은 사진을 아름답게 보이게 할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입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의 정서가 이입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비오는 날 북한강을 갔습니다. 캄캄한 밤입니다. 강에 물안개가 드리워졌습니다(사진1). 낮게 깔린 안개가 달빛에 반사돼 뿌옇게 보입니다. 파란 밤과 희뿌연 안개가 아스라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마치 피안의 세계 같습니다. 달빛이 아름다운 조명이 됐습니다.

인공광은 좀 더 다양합니다. 스튜디오에서 사용하는 조명기기(코메트)와 스트로보가 있습니다. 실내 조명등이나 가로등·랜턴·불도 빛입니다. 세상에서 빛을 내는 모든 것은 조명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공광은 때로 독특한 색감을 내며 사진에 윤기를 더합니다.

빛은 또 직사광과 산란광으로 분류됩니다. 맑은 날 햇볕이나 스튜디오의 조명기기는 직사광입니다. 공기 중에서 ‘빛은 직진한다’는 물리적인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다루기 쉽고, 좋은 빛입니다. 그러나 빛과 그늘의 노출 차이가 크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직사광은 아침이나 저녁 빛이 좋습니다. 빛이 부드러워 그늘진 부분의 질감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빛이 너무 강할 때는 반사광을 이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야외에서 인물 사진을 찍을 때 은박지로 된 반사판을 이용하면 훨씬 더 부드러운 빛을 얻을 수 있습니다. 흰색 벽이나 밝은 물체의 반사광도 좋습니다. 실내라면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밝은 기운을 이용하면 색다른 분위기의 인물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를 ‘윈도우 라이트’라고 합니다. 어두운 곳이라도 빛을 잘 살펴야 합니다. 카메라 스트로보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사진2
사진은 ‘빛 사냥’, 메타포는 그 다음 과제

빛은 공기 중에 습기나 먼지가 많고 적음에 따라 투명도가 달라집니다. 비가 오거나 구름이 많은 날은 빛이 공기 중의 수분이나 먼지에 반사돼 흩어집니다. 이를 산란광이라고 합니다. 이런 날은 빛과 그늘의 구분이 잘 되지 않을 뿐더러 빛의 방향을 파악하기도 힘듭니다. 그러나 빛과 그늘의 노출 차이가 없어 피사체를 고루 잘 보여줍니다.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의 방향을 읽는 일입니다.

빛을 등지고 찍는 것을 ‘순광’이라고 합니다. 빛이 피사체를 고루 비춰 주기 때문에 사람이나 사물의 형상을 자세하게 보여줍니다. 기록사진을 찍기에 좋습니다. 하지만 너무 밋밋하고 평면적이기 때문에 좋은 사진을 얻기 어렵습니다. 사진에 가장 어울리는 빛은 ‘사광’입니다. 피사체를 45도 각도로 비춰주는 빛입니다. 입체감이 살아납니다. 특히 스튜디오에서 인물 사진을 찍을 때 주가 되는 조명으로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풍경사진을 찍을 때 가장 무난한 빛이 됩니다.

‘측광’은 피사체를 옆에서 비춰주는 빛을 말합니다. 명암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매우 강렬한 느낌을 줍니다. 필자는 풍경사진을 찍을 때 측광을 자주 이용합니다. 빛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대자연의 위대함을 표현하는데 적절한 빛입니다.

가장 피해야 할 빛은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탑 라이트’입니다. 한낮에 인물사진을 찍으면 얼굴의 굴곡으로 그림자가 생겨 괴물같이 나오게 됩니다. 다만 사막이나 황무지 등 황량한 분위기의 사진을 찍을 때는 탑 라이트가 좋습니다. 비탈진 곳의 사진을 찍을 때도 빛의 각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강렬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피사체를 뒤에서 비스듬히 비춰 주는 빛을 ‘역사광’이라고 합니다. 피사체의 가장자리를 빛으로 에워싸 입체감을 주며 돋보이게 합니다. 아주 매력적인 빛입니다. 어두운 배경을 택해야 빛의 묘미를 극대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광이기 때문에 카메라에 직접 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사진2)는 역사광을 이용한 유채꽃 사진입니다. 풍경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꽃입니다. 유채는 텃밭에 심어 기름을 얻는 식물이기도 합니다. 아무 곳에나 심어도 잘 자랍니다. 길가에 핀 유채의 강한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 역사광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역광’은 피사체를 뒤에서 비추는 것입니다. 이 경우 사진 대상의 앞면은 배경의 밝은 부분에 묻혀 검게 나옵니다. 이를 실루엣 사진이라고 합니다. 즉 노출을 배경에 맞추고 피사체의 앞면을 완전히 검게 해 피사체의 윤곽만 표시하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명암의 미학을 표현하는데 적절합니다. 사람의 움직이는 모습을 실루엣으로 촬영하면 경쾌한 리듬감이 느껴집니다. 휴가철입니다. 카메라를 둘러메고 빛사냥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1199호 (2013.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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