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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선택과 집중이 부른 혈육 간 갈등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카프카 『변신』의 ‘가난한 집 맏아들’ 개념 … 세상만사 ‘맏이 패러독스’로 설명돼

▎프란츠 카프카는 『변신』에서 불확실한 오늘의 삶과 존재의 불안을 난해한 언어와 심리묘사로 풀었다.



‘그레고르의 근심은 당시에 오로지 모두를 여지없는 절망으로 몰아넣은 사업의 불운을 식구들이 될 수 있는 대로 속히 잊어버리게끔 하는 데 전력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당시 그는 아주 특별한 열의를 바쳐 일을 시작했었고, 단 하룻밤 사이에 보잘 것 없는 점원 보조원에서 외판사원이 되었다’ - 카프카 『변신』중에서

누가 뭐라 해도 맏아들·장녀는 집안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 부모의 기대가 크고, 친척들이 보는 눈도 다르다. 어른이 된 뒤 둘째나 셋째, 혹은 막내가 집안에 큰 도움이 되는 경우도 흔하지만 첫째가 제구실을 못할 때 그렇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어느날 일어나보니 벌레가 된 한 ‘맏아들’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불확실한 오늘의 삶과 존재의 불안을 난해한 언어와 심리묘사로 풀었다.

이상의 『날개』나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과 분위기가 매우 닮았다. 마치 같은 작가가 쓴 다른 작품 같은 생각마저 들 정도다. 실제 세 작가는 공통점이 많다. 각기 다른 사회에 살았지만 20세기 초반 그들의 사회는 불안했다. 이들은 그 사회의 고독과 허무를 상징적인 언어로 이야기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도 닮았다. 카프카는 마흔의 나이에 결핵으로, 오사무는 서른 아홉에 자살로, 이상은 폐병으로 스물 여섯에 생을 마감했다. ‘천재’와 ‘광인’의 경계를 걸었다는 것도 유사하다.

벌레로 변한 자신보다 가족 생계가 걱정

카프카는 어떤 측면에서는 작품보다 작가의 이름이 더 유명하다. 독일의 문예용어사전과 독일어사전에는 ‘카프카적(KAFKAESK)’이라는 낱말이 있다. ‘우울하면서 기괴한, 부조리하고 악몽같은’ 이란 의미가 담겼다. 『변신』의 등장인물은 네 명이다. 이유도 모른 채 어느 날 거대한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가 있다.

외판 영업사원이다. 판매와 출장의 스트레스가 심각하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가 진 빚을 갚기 위해서다. 그레고르는 여동생이 있다. 그레테다. 오빠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신한 뒤 돌본다. 하지만 점차 짜증이 커지고 오빠를 집에서 내쫓으려 한다. 아버지 잠자는 권위주의적이면서 무능하다. 어머니는 가족을 매우 사랑하지만 마음이 여리다. 벌레로 변한 아들을 동정하면서도 혐오감을 갖는다.

소설은 그레고르가 잠에서 깨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레고르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혹은 해충)로 변해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등은 장갑차처럼 딱딱하고 배는 활모양의 각질로 나뉘어져 있다. 다른 부분과 비교해서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도 있다. 아침 5시 기차를 타야 하지만 눈을 뜨니 6시 반이다.

얼른 일어나 7시 기차라도 타야 하는데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가족들은 난리가 난다. 그레고르는 집에서 유일한 직장인이다. 방문을 열리자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레고르야”라고 외친다. 동생 그레테도 “오빠 어디 아파요?”라며 성화다.

가족들은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에게 충격을 받지만 점차 익숙해진다. 익숙하다는 말은 점차 생활이, 현실이 돼간다는 얘기다. 그레고르를 동정했던 시선은 점차 불편으로 바뀐다. 일할 능력을 상실한 그레고르는 이제 가족의 짐이다. 가계 수입이 없어 하숙을 쳤다. 하지만 그레고르를 보고 충격 받은 세입자들이 떠나가면서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집에서 떠나기를 원한다. 그레고르가 죽자 마침내 가족들은 생기를 되찾는다. 가족은 비로소 미래를 얘기한다.

그레고르는 자신이 벌레로 변한 것보다 가족들이 더 걱정이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의 이자로 가족들이 먹고 살기에는 턱없이 부 족했기 때문이다. 5년 전부터 일을 하지 않은 아버지나 천식으로 고생하는 어머니, 열일곱 밖에 안된 그레테가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그레고르는 ‘수치와 슬픔’으로 소파가죽 위에 웅크린 채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레고르는 전형적인 ‘가난한 집 맏아들’이다. 자신이 건사해야 하는 가족들이 줄줄이 있다. 가족들은 자신만을 쳐다본다.

가난한 집 맏아들이란 집안 대표로 가족들이 투자를 몰아줘 성장한 맏이를 말한다. 가족에 빚이 있으니 성공을 한 뒤에는 가족을 부양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소 판 돈으로 대학 등록금을 내고 의사나 변호사가 돼 가족을 돌보는 형태는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했던 당시의 자화상이다. 가정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가난한 집 맏아들’이 있다. 초고속 성장한 대기업 이면에 정부와 국민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성장한 맏아들이 과거를 잊고 성공은 내가 잘했기 때문’이라고 돌변하면 문제가 생긴다. 오늘날 경제민주화 요구의 이면에는 ‘배신한 맏이’의 정서가 깔려있다. 유진수 박사는 저서 『가난한 집 맏아들』에서 재벌의 성공 신화, 강남 불패, 선진국들과 글로벌 기업의 성장, 친일파의 후손을 ‘가난한 집 맏아들’의 사례로 들었다. 피해를 감수한 동생을 어디까지 책임지느냐는 경제 정의의 기준이 됐다.

삼성경제연구소장을 역임한 모 인사는 평소 삼성그룹의 사회공헌을 강하게 외쳤다. 그는 1980년대 초 삼성전자가 반도체 산업에 진출할 당시 경기도 용인 기흥 땅과 반도체 제작 장비를 낮은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도왔다. 당시 정부 관료였던 그는 “한동안 반도체 개발도 정부 연구소에서 지원해주는 등 범정부적 차원에서 삼성의 성장을 도왔다”고 회상했다.

현대자동차를 보는 국민들의 시각도 비슷하다. 높은 관세로 외제차의 수입을 막았고 각종 연구·개발(R&D) 자금을 몰아줬고, 국민들은 ‘국산차를 타자’며 힘을 실어줬다. 포스코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데는 낮은 전기료도 큰 몫을 했다.

서울 강남의 발전 신화 이면에는 강북의 희생이 있었다. 강북에서 걷은 세금으로 1980년대 강남에 인프라를 깔아줬다. 그 사이 강북 투자는 지체됐다. 이제 강남이 컸으니 강북을 좀 도와달라는 요구다. 종합부동산세 논쟁이 치열할 때 부각됐던 논리다.

선진국들이 개도국에 대한 대외 원조에 나서야 하는 이유도 ‘가난한 집 맏아들’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영국·스페인·프랑스 등 주요국의 부는 18세기 식민지 정책의 덕을 많이 봤다. 식민지를 수탈해 그만큼 성장했으니 이제는 이들을 도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논란도 선택과 집중의 부산물

가난한 집 맏아들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 ‘맏아들이 받은 직접적인 혜택+동생들에게 보상할 금액+동생들이 입은 암묵적 피해’로 맏이의 책임은 최대치가 된다고 유진수 박사는 설명한다. 동생들로서는 첫째가 대학 등록금을 독식하면서 기회를 놓친 암묵적 비용을 포기하기 힘들다. 하지만 첫째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집에서 대학 등록금을 대줬으니 그만큼만 되돌려 주겠다고 할 수 있다. 혹은 대학 등록금에다 동생들의 결혼 비용까지 대겠다고 할 수 있다. 동생들이 더 요구하면 집안의 분란이 생긴다. 동생들은 “형이 쩨쩨하다”고 생각할 테고, 형은 “내가 호구냐”고 반박할 수 있다. 첫째도 나름대로 입장이 있다. 개업의가 된 큰형은 집안에서 보면 ‘크게 성공한 맏이’지만 의료시장에 나와보면 ‘경쟁상대가 수두룩한 의사’ 중 한 명에 불과하다.

가난한 집 맏아들에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서울과 지방이다. 30년간 서울에 집중 투자해 이만큼 키워놨으니 이제는 지방을 도와달라는 요구다. 공공기관 이전이나 수도권 규제 요구는 이런 차원에서 나왔다. 하지만 서울도 급하다. 베이징·도쿄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정답 찾기가 어렵다.

1200호 (201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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