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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재계 배임죄 적용 논란 

한화·LIG·웅진 배임죄 적용 놓고 형평성 논란 … 상법 개정안 논의하는 세미나도 열려



최태원 SK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윤석금 웅진 회장…. 모두 재계를 대표하는 CEO들이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모두 배임죄 선고를 받거나 혐의를 받은 적이 있다. 최태원 회장과 김승연 회장은 최근 배임죄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두 그룹 모두 오너 경영자의 공백으로 사업 차질을 빚고 있다.

이에 따라 정·재·학계에서는 경영자의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배임죄는 기준이 모호하고 적용 대상이 넓어 누구든 걸면 걸릴 수 있어 경영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최준선 교수는 “업무상 배임인지 경영상의 판단인지는 검찰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며 “기업 경영자들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을 하는 현재의 법제도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업의 경영활동에 대한 과도한 형사적 개입은 경영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중시되는 경영활동을 위축시켜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사안 놓고 판결 엇갈려

실제 배임죄가 적용된 사례를 보면 의문이 드문 경우가 많다. 대표적 예가 김승연 한화 회장과 윤석금 웅진 회장의 판례다. 똑같이 배임죄를 놓고 재판을 받았지만 김 회장은 실형을 선고 받았고, 윤 회장은 불구속 기소에 그쳤다.

김 회장은 ‘2005년 사실상의 계열사인 한유통과 웰롭에게 다른 계열사들을 동원해 지원 행위를 한 것이 배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한유통과 웰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극심한 판매 부진과 원리금 상환 부담에 시달렸다. 결손금만 3000억원대로 자력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한화는 고민 끝에 한유통과 웰롭에 대한 담보를 제공하는 등 긴급 지원에 나섰고, 이들 자회사는 구조조정을 거쳐 되살아났다. 당시 ‘대기업 계열사의 부실은 자율적으로 처리하라’는 정부의 지침도 있었다.

배임죄의 중요 사항 중 하나인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지도 않았다. 김 회장의 재판부 판결문에도 ‘김 회장이 개인적 이익을 편취한 바 없고, 부실 회사를 살리기 위한 구조조정이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중형을 선고 받았다.

윤석금 웅진 회장은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1200억원대 사기성 어음(CP)을 발행한 혐의를 받았다. 윤 회장이 계열사가 부도를 내기 직전에 사기성 어음을 부당하게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끼쳤다는 것이다. 회사 신용도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기업 어음을 발행해 도덕성에 대한 논란도 일었다.

그럼에도 서울중앙지검은 윤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사기 발행으로 피해액은 크지만 사익 편취가 아닌 회사의 빚을 갚으려는 의도였고, 계열사인 서울상호저축은행 지원도 예금자 보호를 위한 것”이라며 정상 참작을 했다. 또 윤 회장이 기업 정상화를 위해 2000억원의 개인 재산을 내놓은 것도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경영활동 관련 배임죄 사라지는 추세

윤 회장과 비교되는 사건은 또 있다. LIG그룹 구자원 회장과 아들 두 명은 8월 2000억원대의 사기성 어음을 발행한 혐의로 검찰로부터 8~12년을 구형 받았다. 현재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2011년 LIG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을 앞두고 담보로 맡긴 주식을 환수하기 위한 자금 마련이 목적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한화·웅진·LIG 이 세 개의 케이스만 놓고 보면 배임죄의 형평성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며 “기업 총수에게 적용되는 배임죄를 보면 국민 여론이나 사회 분위기 등 감정적 부분에 따라 판결이 갈린다”고 말했다.

배임죄가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독일·일본·프랑스·미국 등 배임죄가 존재하는 나라에서는 모호한 법률에 대한 문제 제기가 꾸준히 있었다. 각국은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배임죄를 세계 최초로 도입한 독일에서는 ‘형법 266조는 언제나 통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형법 266조가 정의하는 배임죄의 개념이 너무나 모호하다는 것을 조롱하는 것이다.

이에 독일은 주식법 제3편 제291조에 결합기업에 관한 규정을 만들었다. ‘종속회사가 지배회사에 자금을 지원해 종속회사가 손실을 입었더라도 고의성이 없으면 배임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규정이다. 프랑스 역시 1985년 로젠블룸 판결에서 “자회사 또는 계열사 간 상호 지원이 있더라도 기업집단 간 발생하는 전체적 이익을 고려해 계열사 내부거래도 정당한 법률적 권리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일본은 배임죄를 정의할 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라는 표현을 명문화했다.

배임죄의 형평성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법률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올 4월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은 기업인에 대한 배임죄 적용을 완화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상법 282조 2항에 “이사가 어떠한 이해관계를 갖지 않고 경영상 결정을 내리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하더라도 의무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을 넣었다.

이른바 ‘경영판단의 원칙’이다. 이 개정안은 계속 논의되고 있지만 뚜렷한 결과물은 나오지 않은 실정이다. 일부 시민단체가 “기업 오너의 편법행위를 면책하는 법률로 악용될 것”이라고 주장해서다.

최근에는 좀 더 세부적인 논의가 오가고 있다. 한국입법학 연구소는 ‘창의적 경영을 위한 법률 제도 보완 확대 세미나’를 8월 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했다.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 부대표를 포함한 정·재·학계의 전문가들이 상법 개정안의 의미와 예상 결과를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윤 원내수석부대표와 참석자들은 “기업인의 창조적인 경제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상법개정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같은 날 박근혜 대통령은 재계 총수들과 만나 상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배임죄 타인의 업무를 대신 봐주는 자가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해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거나 업무를 이임한 사람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끼치는 죄(형법 제 355조 2항).

1203호 (201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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