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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무한경쟁에 내몰린 인간 군상(群像)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손창섭 『잉여인간』의 ‘잉여’와 ‘결핍’ 개념 … 잉여가치 분배 안 돼 양극화 심화

▎칼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잉여가치가 자본을 가진 소수에게 과도하게 쏠리면 빈부격차가 심화하고, 이를 견디지 못한 노동자 계층이 혁명을 일으켜 자본주의가 무너진다고 주장했다.



‘만기 치과의원에는 원장인 서만기씨와 간호원 홍인숙양 이외도 거의 날마다 출근하다시피 하는 사람 둘이 있다. 그 한 사람은 비분강개파 채익준씨요, 다른 한 사람은 실의의 인간 천봉우씨다.

두 사람은 다같이 서만기 원장의 중학교 동창생이다. 그들은 도리어 원장보다도 더 먼저 나와서 대합실에 자리잡고 신문을 읽고 있는 날도 있었다. 더구나 채익준은 간호원보다도 일찍 나오는 수가 많았다’ - 손창섭 『잉여인간』 중


나는 조직에 유익한 인간인가, 있어도 그만이거나 없어도 그만인 존재인가. 손창섭의 『잉여인간』은 이런 물음에서 시작한다. 때는 한국전쟁이 끝난 1950년대 말.

전쟁으로 많은 것이 파괴된 이후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제한됐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실직이 넘쳐났고, 전쟁이 남긴 트라우마로 방황하는 사람이 많았다. 서민기 원장은 병원 건물과 시설을 빌려 쓰는 가난한 치과의사다. 그는 10명의 식솔을 건사한다. 간호원의 월급은 석 달치가 밀려있다. 하지만 외유내강의 멋진 남자다.

‘자기의 능력과 노력과 성의로써 차근차근 자기의 길을 뚫고 나가는’ 남자다. 한국전쟁 중 공습과 빨갱이 공포에 시달린 친구 익준은 언제나 불안한 긴장 상태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고지식한 성격인데 기술도, 빽도 없어 취직을 못했다. 아내가 병에 걸리자 모친이 생선장사를 하면서 손주 셋을 먹여 살린다. 전란 통에 가족을 잃은 봉우는 영 딴 사람이 됐다. 세상만사가 귀찮다. 아내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먹고 살며 만기의 병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만기 병원의 간호사인 홍인숙을 좋아해 따라다닌다.

나는 조직에 얼마나 유익한 인간인가

이 작품은 친구인 세 사람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 여기에 네 명의 여인이 추가된다. 서남기 원장을 흠모하는 봉우의 처다. 서남기로부터 세를 받는다. 그는 돈을 앞세워 서 원장을 유혹하는 팜므파탈이다. 건물을 팔아버린다며 서 원장에게 ‘항복’을 강요한다.

서남기 원장에게는 현모양처 아내가 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서도 서 원장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동정하는 사람이다. 형부를 좋아하는 처제 은주도 있다. ‘형부 같은 사람이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앙증맞은 처제다. 간호사 홍인숙은 서남기 원장에게 소중한 사업 보조자다. 병원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하자 새로 개업하라며 자신의 전 재산을 다 내놓는다. 그는 아내의 애정과 처제의 열정을 갖고 있다.

이들 등장인물을 움직이는 것은 ‘잉여’과 ‘결핍’이다. 서남기 원장은 자본의 결핍 상태다. ‘잉여’ 자본을 가진 봉우의 처가 그를 흔든다. 서 원장도 ‘잉여’ 상태인 게 있다. ‘정서’다. 무려 네 여인으로부터 애정 공세를 받는다. 최익준은 자본도 정서도 ‘결핍’이다.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가장이면서 가족에게 아버지로서의 정도 주지 못한다. 봉우는 아내 덕에 자본은 ‘잉여’지만 정서는 ‘결핍’이다. 간호사 홍인숙을 따라다니며 사랑을 갈구한다. 아내에게는 애정을 잃은 지 오래다. 등장인물들은 잉여를 내세워 상대를 움직이게 하고, 결핍을 메우기 위해 행동한다.

6·25 직후나 지금이나 잉여가치는 화두

잉여와 결핍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두 엔진이다. 자본과 상품은 잉여인 곳에서 결핍된 곳으로 흘러가면서 교환이 이뤄졌다. 자신이 먹고 살만한 양보다 더 많은 양, 그러니까 잉여생산물의 등장은 자본주의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자본과 노동이 투입된 이상의 것인 ‘잉여가치’가 생겼고, 이를 축적한 사람들은 자본가로 성장했다.

『자본론』의 저자 마르크스는 노동가치설을 신봉했다. 노동가치설이란 상품의 가치는 노동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노동가치설은 17세기 전반에 처음 제기됐다.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가 계승했다. 이를 칼 마르크스가 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자본가가 아무리 돈을 주고 기계를 사와도 이를 돌리는 노동자가 없으면 상품은 생산되지 않는다. 자본·토지와 함께 노동은 생산의 중요한 요소다.

노동가치설에 따른다면 노동자가 일한 시간과 강도에 따라 물건 값은 똑같아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같은 우산이라도 비올 때와 비가 오지 않을 때 가격은 다를 수 있다. 투입된 노동력은 똑같은 데 말이다. 1년간 농부들이 열심히 일해 수확한 밀의 가격이 몇 시간 오븐에 구워 만든 빵보다 싼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마르크스는 그 해답을 ‘교환’에서 찾았다. 상품을 돈을 받고 판 다음 그 돈으로 다시 상품을 사는 거래가 있다고 치자. ‘상품-돈-상품’이다. 이때는 상품가치만큼 돈을 받고, 다른 상품을 사면된다. 물물교환과 비슷한 구조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먼저다.

돈으로 상품을 산 뒤 그 상품을 돈을 받고 다시 파는 거래가 더 많다. ‘돈-상품-돈’이다. 처음 산 가격과 똑같은 가격으로 물건을 팔고 싶은 사람은 없다. 처음 투자한 돈보다 몇 푼이라도 더 남아야 물건을 판다. 즉 ‘돈-상품-(돈+이득)’이 있어야 거래가 성사된다.

자본가는 초기 자신의 돈을 들여 기계를 사면서 리스크를 떠 안았다고 주장했다. 리스크를 감수한 대가만큼 투자에 대한 이득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대출자들은 돈 빌려간 기간만큼 이자를 달라고 한다. 돈을 빌려주면서 ‘떼일 지 모른다’는 리스크를 떠안은 대가다. 잉여가치는 여기서 발생한다. 잉여가치가 많을수록 사회적 부는 축적된다.

문제는 잉여가치가 어디에 귀속되느냐다. 잉여가치가 자본을 가진 소수에게 과도하게 쏠리면 빈부격차가 생긴다. 빈부격차를 이기지 못한 노동자 계층은 혁명을 일으키고, 자본주의는 무너진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복지와 같은 사회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이것이 마르크스 경제학의 핵심 이론이다.

봉우의 처는 잉여가치를 가장 잘 아는 등장인물이다. 병원 건물을 세를 놓아 셋돈을 받고 병원을 전면수리하기 위해 셋돈 석달치를 일시불로 줄 것을 요구한다. 건물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나타나자 팔아 막대한 수익을 남긴다. 별다른 노동을 하지 않고도 그의 부는 나날이 커간다. 반면 셋집살이하는 서남기 원장은 궁색해진다. 더 많은 잉여가치를 뽑기 위해 자본주(봉우의 처)가 건물 매각을 결정하면서 서남기 원장은 일터를 잃게 됐다.

1950년대 말 한국사회는 잉여가치를 얻기 위해 무한경쟁을 하던 시대다. 저자는 익준의 눈을 통해 이런 사회를 비꼰다. 어느 제약회사에서는 외국제 포장갑을 대량으로 밀수입해 몸에 나쁜 가짜약을 넣어 팔아 수천 만환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외국인과의 거래하는 한국인들은 한 몫 잡기 위해 거짓을 일삼는다. 익준은 “이 지구상에 우리나라처럼 도둑이 들끓고 판을 치는 나라가 또 있느냐”고 열을 낸다.

“우리나라처럼 도둑이 들끓는 나라가…”

『자본론』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과 함께 3대 경제학설서로 평가 받는다. 자본을 기업 입장이 아닌 노동자의 시각에서 해석했다. 사실상 폐기된 것으로 알았던 자본론은 금융위기 이후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자본의 또 다른 속성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익준이 돈을 벌기 위해 떠나 집을 비운 사이 그의 처는 숨을 거둔다. 뒤늦게 집으로 돌아온 익준은 아내의 상이 끝난 것을 보고는 ‘장승처럼 선 채’ 움직일 줄을 모른다. 자본의 과잉과 결핍의 교환 속에서 잉여가치를 확보하지 못한 사람은 점점 빈자로 추락해간다. 만약 의료보험이 있었다면 익준은 아내가 주사 맞을 돈을 벌기 위해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어도 될 터다. 복지를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문제는 재원이다. 복지 수준과 이에 따른 증세는 한국사회에 새로운 사회적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1205호 (2013.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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