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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신사업의 숨은 함정 ① 최첨단 트렌드가 돈벌이 보장 못한다 

컷팅엣지(Cutting-edge)&레밍스(Lemmings) 바이러스 

박용삼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기술개발 쉽지 않고 경제성 떨어지기 일쑤 … 몰려 다니다 절벽 뛰어내리는 레밍스 될 수도



현재 비즈니스 세계는 사업적·기술적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고, 경쟁의 강도와 범위,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초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때에 기업의 지속성장과 생존을 담보하는 유력한 방법은 신사업 개척이다. 그러나 신사업의 성공 확률은 매우 낮다. 신사업의 성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뭘까? 행태경제학적 관점에서 이를 규명하고 극복할 방안을 연재한다. 신사업 아이템의 발굴부터 기획과 실행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 잠복한 여러 장애물이 신사업의 실패는 물론 회사 전체의 존립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각종 장애물을 ‘신사업 바이러스(New Biz virus)’라 명명했다.

뉴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 무렵을 전후해 정보기술(IT)을 필두로 온갖 종류의 신기술이 세상을 휩쓸었다. 그러다 보니 기업도 새로운 뭔가에 대한 기대와 환상에 취해 신사업 대상을 반드시 미래사업이나 첨단기술에서 찾고자 하는 오류에 빠졌다. 최첨단 또는 활력소란 뜻의 ‘컷팅엣지(Cutting-edge)’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사업의 성공 확률은 20~30%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최근 국내 주요 기업이 잇따라 신사업 진출을 유보하거나 철회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회사의 이미지 때문에 발표를 못해서 그렇지 내부적으로 진퇴의 갈림길에서 진통을 겪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렇듯 우리 기업의 신사업 성적표가 초라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컷팅엣지에 집착한 때문이다.

첨단기술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세상을 뒤바꿀 파괴적인 혁신 기술일수록 데드라인을 맞추기 어렵다는데 있다. 고객이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을 정도의 성능과 가격 조합을 찾기도 쉽지 않거니와 용케 경제성 있는 기술 개발에 성공해도 시장이 열리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일단 첨단기술 주변서 돈 벌 생각부터

컷팅엣지 바이러스의 진원지는 뉴스인 경우가 많다. 뉴스는 속성상 최대한 멋지고 화려하게 헤드라인을 뽑게 마련이다. 최근 한달여 동안 신문지상을 장식한 신사업 관련 뉴스만 봐도 ‘LED를 제2의 D램으로’ ‘전기자동차 시장 곧 개화’ ‘2차전지가 창조경제의 동력’ 등 당장이라도 돈벼락이 쏟아질 것만 같다. 이렇게 화려한 헤드라인에 신사업 담당자의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는 영락없는 컷팅엣지 바이러스인 것이다.

미국의 투자 귀재 워런 버핏은 첨단기술주에 잘 투자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첨단기술이 언젠가 세상을 변화시킬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특정 기업의 수익으로 연결되지는 않음을 간파한 때문이다. 물론 첨단기술이 가져올 시대의 변화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다만 무분별한 편승을 경계하고 제대로 흐름을 탈 필요가 있다.

여기에 한가지 팁이 있다. 경험적으로 볼 때 가장 적절한 신사업 아이템은 첨단기술이 가져올 미래의 메가 트렌드와 각 회사의 핵심 역량이 교차하는 중간 접점에서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이다. 골드러시 시대에 금을 캐러 달려가기보다는 광부를 상대로 곡괭이와 청바지, 먹거리와 잠자리를 팔라는 말이다. 이때 트렌드보다는 핵심 역량이 우선이다. 트렌드에 맞춰 부족한 역량을 개발하기보다는 기존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서 트렌드에 대응하는 것이 시간적으로 또 비용적으로 더 효과적이다.

이어령 교수의 『디지로그』에는 컷팅엣지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힌트가 담겨있다. 디지털은 아날로그에 비해 ‘살결 냄새’나 ‘체온’이 없어 무정(無情)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하는데 한계가 올 수 있다. 이때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컨버전스를 통해 디지털 제품에 아날로그적 ‘추임새’를 넣어주면 창조적인 신사업이 된다. 기존에 갖고 있던 아날로그적 역량을 다듬어 디지털 트렌드에 대응함으로써 차별화되고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신사업 찬스가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컷팅엣지 바이러스는 ‘가용성 편향(Availability bias)’과 관련이 있다. 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뉴스에서 떠들썩한 첨단 미래사업에 대해서는(즉 가용성이 높은 정보에 대해서는) 훨씬 더 높은 성공 가능성을 부여하고,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는 전통사업에 대해서는 마음을 닫게 된다.

이러한 가용성 편향은 컷팅엣지 바이러스를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시킨다. 가용성이 높은 정보가 전 세계 많은 기업에게 시시각각 노출되면서 레밍스(Lemmings) 바이러스가 싹트는 것이다. 레밍스란 나그네쥐로 먹이를 찾아 떼지어 다니다가 다 같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등 최후를 맞는 속성을 지녔다.

독일의 전문 투자자이자 인기 있는 심리학 강사인 롤프 도벨리는 『스마트한 생각들』에서 ‘수영선수 몸매에 대한 환상(Swimmer’s body illusion)’을 지적한다. 일반인들이 아무리 수영을 열심히해도 누구나 수영선수와 같은 몸매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로 수영선수들은 원래 멋진 몸매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수영선수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GE가 풍력사업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아무나 풍력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GE 정도의 내공이 되니까 성공한 측면이 더 클 수 있다.

다른 기업들은 모두 뭔가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데 나 혼자 멈춰서 있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다. 레밍스 바이러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지나쳐 독자적인 신념에 따라 움직이지 못하고 이른바 대세를 따르며 안전한 길을 택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렇듯 묻어가는 것이 당장에는 심리적인 안도감을 줄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이 거듭되면 훗날 더 큰 우환을 부른다. 1990년대 말 닷컴 붐이 불었을 때 너나없이 알파벳 소문자 ‘e’에 현혹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버블이 꺼진 후 실속을 챙겼다는 기업은 어디에도 없고 남은 것은 객장의 분노와 안타까운 사연들 밖에 없었다. 레밍스 바이러스는 치명적이다. 덩달아 시작한 당신의 신사업은 처음부터 실패할 운명인지도 모른다.

덩달아 시작한 新사업은 실패하기 일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지혜로운 자의 목표는 행복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피하는 것”이라고 했다. 신사업을 개척하는 기업도 컷팅엣지를 좇는 레밍스처럼 ‘따끈따끈한’ 아이템에 홀려 뻔한 불행을 자초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는 회사의 현 위치에 부합하는 짭짤한 ‘등잔밑’ 아이템에 관심을 쏟아야 할 때이다. 오류에서 자유로운 의사결정 과정 그 자체가 새로운 경쟁우위의 원천이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프린스턴대의 다니엘 캐너만 교수는 조직 내에서 인위적으로 건강한 의견 불일치를 조장하고 다양한 시각이 유입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 것을 권고한다. 컷팅엣지와 레밍스 바이러스에 노출된 우리 기업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충고이다.

1207호 (201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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