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Issue - 10곳 중 3곳(유가증권시장 상장사 580곳 중 160곳) 단기 상환능력(유동비율 100% 미만) 취약 

빨간불 켜진 기업 부채 

대한전선·동부제철·한진해운 등 재무상태 악화 … 금호산업 등 9곳 부채비율 1000% 넘어

▎서울 청계천로의 동양그룹 본사. 동양그룹은 과도한 부채로 위기를 맞았다. 증권가와 재계에선 제2의 동양 블랙리스트가 나돈다.



한국경제는 정부·가계·기업이 진 ‘빚의 삼각대’ 위에 위태롭게 놓여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세 경제 주체의 총 부채는 상반기 말 현재 3800조원에 달한다. 기업(2100조원, 공기업 포함)·가계(1180조원)·정부(520조원) 순이다.

가계·정부에 가려 관심은 덜 하지만, 기업 부채 문제는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 빚 증가 속도는 빠른데 돈 벌어 갚기는 점점 어려워진다는 게 문제다. 최근 일부 중견·대기업의 잇따른 추락 역시 부채의 덫에 걸린 탓이 크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부채·유동비율과 차입금 현황을 통해 기업 채무 리스크를 긴급 점검했다.


“동양그룹과 유사한 대기업이 4곳 더 있다.” 10월 18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나온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의 이 말 한마디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증권가에선 즉각 블랙 리스트가 나돌았다. 가장 먼저 파편을 맞은 곳은 동부그룹이다.

LIG투자증권은 ‘차입구조가 동양과 유사하다’는 리포트를 냈다가 동부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일부 오류를 인정하는 정정 보고서를 다시 냈다. 동부그룹은 정말 괜찮은 걸까. 동부그룹 주요 계열사의 재무 구조가 나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코노미스트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유동비율과 부채비율, 단기차입금 현황을 조사한 결과 그렇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동부그룹 주요 계열사의 부채비율은 동부제철이 272%, 동부하이텍 369%, 동부건설 499%다. 산업·업종·개별 기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통상 부채비율이 200% 이상이면 적정 선을 넘었다고 본다. 더 큰 문제는 유동비율이다. 유동비율은 1년 이내에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을 1년 안에 갚아야하는 유동부채로 나눈 값이다.

은행이 기업에 대출할 때 상환능력을 판단하는 주요 지표로 활용해 ‘은행가 비율(Banker’s ratio)’이라고도 부른다. 기업의 단기 부채 상환능력을 나타내는 유동비율이 높을수록 현금 동원력이 좋다는 뜻이다. 경영학계에서는 이른바 ‘2대 1 원칙(two to one rule)’이라 해서, 200% 이상을 적정유동비율로 여긴다. 증권가에서는 통상 유동비율이 100% 미만이면 유동성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다.


유동비율 50% 미만 25곳

동부그룹은 1년 이내에 만기가 돌아오는 단기 차입금이 3조5000억원 가량이다. 하지만 주요 계열사의 단기 상환능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부하이텍은 유동비율이 53.7%다.

동부제철은 49.7%, 동부건설은 87.3%다. 특히 동부하이텍은 2분기 기준으로 단기 차입금이 지난해 말보다 74.7% 늘었고, 장기 차입금은 33.9% 증가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임원회의에 직접 나서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의 의구심이 쉽게 가시지 않는 이유다. 이에 대해 동부그룹 관계자는 “부채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룹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은 아니다”며 “부채비율이 높다는 것과 유동성 위기는 별개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는 “차입금 대부분이 담보를 제공한 제도권 금융 여신이고, 자산 매각과 보유한 현금을 통해 충분히 갚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동부건설과 동부제철에 대한 일부의 유동성 위기 우려는 상당부문 해소됐다”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중 지난해 말과 비교 가능한 58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많아 유동비율이 100% 미만인 곳은 전체의 27.6%인 160곳이었다<표 참조>. 통상 적정 수준으로 보는 200%를 넘는 곳은 조사 대상의 25.2%인 146곳에 불과했다. 특히 유동비율이 50% 미만으로 고위험군에 속하는 상장사는 25곳이다.

조사 대상 중 유동비율이 가장 낮은 곳은 AJ렌터카였다. 렌터카 전문업체인 이 회사는 유동비율이 17.3%다. 이에 대해 AJ렌터카 관계자는 “렌터카라는 업종 특성상 유동비율로 단기상환 능력을 판단하기는 무리가 있다”며 “AJ렌터카의 경우 유형 자산의 90%가 즉시 현금화가 가능한 상품성 자산이며 이를 재고 자산으로 보면 유동비율은 200%가 넘는다”고 밝혔다.

또한 “유동부채의 대부분은 장기 차입금과 회사채로, 장기차입금은 매년 기존 차입금 이상 원금 상환하고 있는 등 현금흐름도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세계는 유동비율 22.1%로 조사 대상 중 둘째로 낮았다. 신세계는 센트럴시티·서울고속터미널 등을 인수하면서 부채비율은 오르고 유동비율은 낮아졌다.

신세계 관계자는 “지속적 성장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해 일시적으로 재무 부담이 커졌지만 부채 상환이나 운전자금용도로 빚이 늘어난 기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신성솔라에너지(24%)·넥솔론(26%)·동양고속운수(29.2%)·이마트(29.3%)도 유동비율이 30% 미만이었다.

유동비율이 100% 미만인 상장사 중엔 최근 어려움을 겪는 대기업 계열사가 적지 않다. 오너인 설윤석 사장이 경영권을 포기한 대한전선은 유동비율이 43.4%다. 유동부채만 1조7300억원이다. 대한전선의 부채 비율은 6월 말 기준 8300%, 차입금 의존도는 70%에 달한다. 웅진그룹이 매각 방침을 밝힌 웅진에너지는 45.7%, 웅진케미칼은 89.9%다.

유동성 위기설에 자주 거론되는 한진그룹도 사정이 좋지 않다. 한진해운이 특히 어렵다. 부채비율 700%를 넘긴 한진해운은 올해 안에 갚아야 할 기업어음(CP)이 2200억원에 달한다. 내년 3~4월에도 24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온다. 이 회사의 유동부채는 올 상반기 말 3조9400억원이다. 유동비율은 50.5%에 불과하다. 또한 대한항공 48.8%, 한진 50.6%, 한진중공업 94.9%로 주력 계열사의 단기 채무 상환능력이 취약했다.

설비투자가 많아 부채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해운·건설·항공·조선·화학·철강 관련 기업들도 빚 상환 여력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운업종에서는 KSS해운이 유동비율 31.2%로 가장 취약했다. 다음은 한진해운(50.5%)·흥아해운(60.9%)·현대상선(81.9%)·대한해운(93.9%) 순이다.

철강 분야에서는 동부제철(49.8%)이 가장 낮았고, 한국특수형강(67.2%)·한일철강(75.4%)·포스코강판(78.4%)·동국제강(98.2%) 순이었다. 건설 업종에선 신세계건설이 58.1%로 최하위다. 동부건설(87.3%)·태영건설(90.8%)도 100% 미만이었다. 화학 분야는 케이지케미칼(57.5%)·코스모화학(69.2%) 한화케미칼(84.6%) 웅진케미칼(89.9%) 순으로 유동비율이 낮았다.





동양건설산업 부채비율 8700%

주요 그룹 별로 보면,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모두 유동비율이 100%를 넘었다. 삼성정밀화학이 206%로 가장 높았고, 삼성SDI가 108.1%로 가장 낮았다. 삼성전자는 197.4%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도 현대자동차(195.6%)·모비스(221%)·글로비스(132.5%)·위아(169.7%) 등 대부분 안정적이었다. 그룹 내에선 현대제철이 101.5%로 가장 낮았다.

반면, LG그룹은 유동비율이 100% 미만인 곳이 3곳이었다. LG전자(85.6%)·LG생활건강(81.2%)·LG유플러스(74.3%)다. SK그룹 역시 SK네트웍스(79.6%)·SK텔레콤(76.9%)·SKC(95.6%)·SK C&C(98.4%)가 유동자산보다 유동부채가 많았다. 두산그룹은 두산건설이 103.8%였고, 중공업 3인방인 두산인프라코어(78.4%)·두산엔진(82.5%)·두산중공업(85.8%)은 100% 이하였다.

부채 총계를 자본 총계로 나눈 부채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동양건설산업이다. 무려 8700%다. 올 6월 말 현재 단기 차입금은 317억원으로 전년 대비 92% 늘었다. 이 회사는 동양그룹과는 무관하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중인 금호산업은 8149%, 최근 전 경영진의 횡령혐의로 거래가 정지된 나라케이아이씨는 2417%였다.

부채비율이 높다고 반드시 부실 기업인 건 아니다. 업종이나 시장 상황에 따라 해당 기업의 적정 부채비율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부채의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로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을 때 해당하는 얘기다. 경영학계에서는 통상 적정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보고, 400%를 넘어가면 업종과 상관없이 잠재 위험기업으로 친다.

이코노미스트 조사 결과 올 상반기 말 기준으로 부채비율이 200%를 넘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89곳이다. 이 중 65%인 58곳은 부채가 지난해 말보다 증가했다. 부채비율이 1000% 넘는 곳은 넥솔론(2062%)·삼부토건(2022%)·삼호(1191%)·현대시멘트(1178%)·대한항공(1088%)·대한전선(1002%) 등 9곳이다.

고위험군으로 볼 수 있는 400% 이상 기업은 26곳이었다. 현대상선(850%)·한진해운(775%)·동양네트웍스(724%)·아시아나항공(654%)·동양(650%)·동부건설(499%)·코오롱글로벌(461%) 등이다. 부채비율이 400%를 넘는 26개 상장사 중 19곳은 단기 차입금도 지난해 말보다 늘었다.

변제 기한이 1년 내에 도래하는 단기 차입금이 급증한 상장사도 많았다. 374곳의 단기 차입금이 지난해 말보다 늘었다. 단기 차입금 증가율이 100% 이상인 상장사는 159곳이나 됐다. 5000억원이 넘는 곳은 32곳, 1조원이 넘는 기업은 18곳이다. 18곳 중 지난해 말보다 단기 차입금이 준 곳은 한국가스공사(-22.2%)·현대자동차(-19.9%)·삼성전자(-19.4%)·현대중공업(-13.7%)·대우인터내셔널(-4.8%) 5곳뿐이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말 6320억원이던 단기 차입금이 올 6월 말 1조9580억원으로 늘었다. 증가율 209%다. 대우조선해양은 68% 증가한 3조1670억원, STX는 62% 증가한 1조2160억원이다. 최근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STX조선해양 역시 1년 안에 갚아야 할 빚이 1조802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60% 늘었다.

부채비율이 높고, 당장 갚아야 할 빚이 많아도 실적이 좋으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재무구조가 나쁜 상장사 중에는 실적 역시 부진한 곳이 많다는 게 문제다. GS건설이 좋은 예다. 이코노미스트가 시가총액 상위 200대 상장사를 대상으로, 지난 1년간 시가총액 변동률과 지난해 상반기 대비 올 상반기 매출변동률·영업이익률 변동치를 합산해 미저리 지수(Misery Index: 고통지수)를 조사했는데(2013년 10월 28일자 참조), GS건설이 불명예 1위를 기록했다.

상장사 미저리 지수는 시가총액 변동률과 매출변동률, 영입이익률 변동치의 합이 음수일수록 기업 고통이 큰 것을 의미한다. GS건설은 시가총액이 48.3% 줄고, 매출증감률과 영업이익률이 각각 10.5%, 21.7% 떨어져 미저리 지수 마이너스 80.5점이었다. 재무 상태도 나쁘다. GS건설의 부채비율은 올 상반기 기준 246%다. 부채는 지난해 말보다 27.4% 늘고, 단기 차입금은 8.7% 증가했다. 이 회사의 이자보상배율은 상반기 기준 마이너스 12.9배다. 영업이익보다 금융이자가 12.9배 많다는 뜻이다.

특히 기업 규모가 크고 부채가 많은 기업 중에 예의주시해야 할 곳이 적지 않다. 이번 조사 대상 중 총 부채가 1조원 이상인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100곳. 이 중 부채비율이 200%를 넘는 곳은 28곳이다. 28곳 중 단기 부채 상환능력인 유동비율이 100% 이하인 기업은 14곳이었다. 대한전선·아시아나항공·대한항공·동부제철·한진해운·동양·대성산업·삼부토건·두산인프라코어·SK네트웍스·두산중공업·대한해운·코오롱글로벌·SK C&C가 여기에 속한다. 대부분 실적 악화에 고민하는 기업들이다.

벌어서 이자도 못 갚는 기업 수두룩

문제는 국내 기업들의 재무 상태가 좋아질 이유보다 나빠질 이유가 더 많다는 데 있다. 저성장 추세와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 환율 급변동, 중국 기업의 약진, 신흥국 침체가 겹치면서 갈수록 가시밭길이다. 한국은행이 4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대기업 100곳 중 29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충당하지 못하는 이자보상배율 100% 미만이었다.

중소기업은 100곳 중 37곳이다. 대기업 익스포저(여신성 채권)는 지난해 말 221조원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수준보다 높았다. 금융회사가 대기업에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요주의 여신’은 지난해 말 현재 7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0.3%포인트 증가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5월 ‘신용의 먹구름’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한국 비금융권 기업의 총 부채가 2017년 1조9820억 달러(22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22%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한국의 기업 부채는 GDP 대비 115%였다. 일반적으로 기업 부채는 GDP 대비 90%를 넘으면 위험 수준으로 본다.

1210호 (2013.11.04)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