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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똑같은 회사 두고 7등급 넘게 격차 

달라도 너무 다른 국내외 신용평가회사 평가 등급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 지적 … 기업 수수료 받는 국내 신평사 신용 떨어져



현대제철은 올해 한국신용평가로부터 셋째로 높은 신용등급인 ‘AA’를 받았다. 외국계 신용평가회사(이하 신평사)인 무디스와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현대제철에 각각 ‘Baa3’와 ‘BBB-’를 부여했다. 이 등급은 두 외국계 신평사 기준상 위에서 열 번째에 해당한다. 특히 무디스가 현대제철에 부여한 등급 전망은 ‘부정적’이라 앞으로 6개월~2년 안에 투자부적격 등급인 투기등급으로 하향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올 들어 3분기까지 1000억원대의 영업적자를 낸 GS건설의 S&P 신용등급은 기업을 평가할 수 없는 ‘NR(비등급)’로 매겨져있다. 올 초 ‘BBB-’였지만 4월에 투기등급인 ‘BB+’로 내렸다. 그러나 정작 사정을 잘 알 만한 국내 3대 신평사의 GS건설 신용등급은 여전히 A‘ +’다.


기업 신용등급은 기업의 전반적인 채무상환 능력을 평가해 기업의 신용가치를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국내 신평사는 한국기업평가·나이스신용평가·한국신용평가, 외국계 신평사는 무디스·S&P·피치가 대표적이다. 국내외 신평사로부터 모두 평가를 받는 한국 기업은 22곳이다. 그러나 이처럼 국내 신평사들은 외국계 신평사보다 기업 등급을 후하게 매기고 있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10월 25일 현재 국내 주요 기업의 신용평가 등급은 국내 신평사(한국신용평가)와 외국계 신평사(무디스·S&P) 간 차이가 크다. 외국계 신평사가 매긴 국내 기업의 평균 신용등급은 BBB다.

투자등급이지만 상위 8~10순위 등급이다. 국내 신평사의 평균 신용등급은 AAA나 AA+다. 국내에서 높은 등급인 AAA나 AA+와 외국계 신평사 평균 신용등급과 비교한다면 격차가 7~9단계 이상 벌어진다. S&P 기준으로 삼성전자(A+)만이 국가신용등급과 같다.

그렇다면 신용등급은 왜 차이가 나는 걸까. 기본적으로 국내 신평사들과 외국계 신평사들의 운영 프로세스(과정)는 제도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외국계 신평사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됐다”면서도 “이들은 신용평가 과정에서 국내와는 달리 정보공시 범위를 확대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기업의 눈치를 덜 본다”고 설명했다.

또 신용평가보고서에도 신용등급 산정의 기초 자료 리스트와 평가 일정, 평가보고서에 평가수수료 등의 기재를 의무화시켜 신용평가 과정에서 투명성을 높인다. 이와 달리 국내 신평사는 구조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국내 신평사는 신용평가를 의뢰하는 기업의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나이스신용평가회사 관계자는 “기업이 자기 돈을 내고 등급을 받는데 자기 쪽에 우호적인 곳을 선택하지 않겠느냐”며 “평가가 마음에 안 들면 취소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으면 공시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등급이 계열사까지 연관되기 때문에 기업과의 거래관계가 해당 기업 계열사와의 계약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솔직히 정확하게 등급을 평가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딜레마가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계 신평사는 전 세계에서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국내 신평사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외국계 신평사도 정확한 등급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기업 눈치를 덜 보는 편”이라며 “그래서 시장 상황과 기업 재무제표를 볼 때 좀 더 보수적으로 판단해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7월 기준으로 발행된 전체 회사채 중 투자적격등급은 89.8%이다. 기업들은 공모 회사채를 발행할 경우 국내 3대 신평사 중 2곳 이상으로부터 신용등급을 부여 받아야 한다. 최상 등급이 AAA+이며 BBB 등급까지가 투자적격 등급이다. BB+ 등급 이하부터는 투기등급이다. 외국계 신평사인 무디스의 신용등급 분포 현황을 보면 A 등급 이상은 30%, BBB 등급 25%, BB 등급 이하 45%로 고르게 분포돼 있다. 국내 3개 신평사의 등급 분포는 A 등급 이상이 80%, BBB 등급 12%, BB 등급 이하 8%다.

외국계 신평사 GS건설 ‘비등급’, 국내사는 ‘A+’

그래서 기업이 부도가 나면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기 십상이다. 10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동양시멘트가 대표적이다.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 기준으로 이 회사의 기업어음(CP) 신용등급은 법정관리 신청 몇 달 전까지만 해도 A‘ 3-’ 등급을 받았다. 그러다 8월 29일 ‘B+’ 단계로 강등됐고 동양사태가 불거진 9월 말에는 ‘B-’로 떨어졌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9월 27일 웅진홀딩스의 무보증 회사채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D’로 강등했다. 웅진홀딩스가 전날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하루 만에 평가가 ‘채무상환 능력 높음’에서 ‘채무불이행’으로 바꾼 것이다. 지난해 6월까지 웅진홀딩스는 ‘A-’ 등급을 달고 세 차례나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렇다 보니 국내 기업 신용평가에 대한 신뢰도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가 ‘기업에 후한 등급을 주다 사고가 터지면 막판에 슬그머니 하향 조정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신평사의 신용등급 체감 신뢰도도 10점 만점에 5.04점이었다. 2011년 5.39점보다 낮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평가 독립성 점수가 전년에 이어 ‘보통 이하’이기 때문”이라며 “시장이 평가 독립성을 믿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신평사의 고무줄 등급을 뿌리 뽑을 방안은 마땅치 않다. 업계에서는 ‘독자 신용등급제도(Stand-alone rating)’ 도입을 하나의 대안으로 꼽는다. 양진수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분석실 수석연구원은 “계열 기업의 지원 가능성을 감안한 신용등급 평가 관행은 동양그룹 사태를 키운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개별 기업의 독자적인 상환능력을 나타내는 독자 신용등급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독자 신용등급제도는 정부나 모기업 지원 등을 제외하고 기업자체의 재무상태만 평가해 공개하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들은 기업의 상환능력과 함께 유사시 계열기업의 지원가능성까지 고려해 신용등급을 평가해왔다. 이 제도는 계열사 지원 등을 배제해 부풀리지 않고 공정한 등급을 매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금융위는 ‘독자 신용등급제도’ 도입 미뤄

금융위원회도 지난해 3월 독자 신용등급제도가 필요하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자 독자 신용등급제도 도입을 연기했다. 독자 신용등급제도를 도입하면 당장 신용등급이 올라가는 기업보다 떨어지는 기업이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독자 신용등급제도 도입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됐다. 독자 신용등급제도를 도입하면 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화될 가능성이 더욱 커진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등급’ 중심의 평가에서 벗어나 시장 전반에 대한 ‘신용분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FICC 리서치센터 팀장은 “그간 신용평가는 지나치게 기업 중심적인 정책으로 시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며 “앞으로는 신용등급만이 아닌 시장 전반의 신용분석에 대한 논의 등으로 신용등급을 부여하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 신용등급 국내 신용평가회사의 기업신용등급은 AAA, AA, A, BBB, BB, B 등의 순으로 D까지 이뤄져 있다. 각각 +, - 부호를 붙여 차이를 표시한다.




1211호 (201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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