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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될 수도 

한진그룹 구조조정 

에스오일 지분 등 팔아 한진해운 지원 … 해운업 침체 이어지면 대한항공에도 악재



대한항공이 에스오일(S-Oil) 지분 3000만 주를 매각하는 안을 포함한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지난해 12월 19일 내놨다. 해마다 1000억원의 배당을 안긴 알토란 같은 지분을 울며 겨자 먹듯 포기한 것이다.

원인은 유동성 위기로 휘청거리는 한진해운에 있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987%의 부채비율을 기록한 한진해운은 2011~2012년 연속 적자를 봤다. 지난해 상반기 누적 영업손실은 1156억원으로 3년 연속 적자가 예상된다.


지난 연말까지 기업어음(CP) 약 2100억원과 회사채 400억원의 만기가 돌아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지난해 10월 말 지분을 담보로 대한항공으로부터 1500억원을 긴급 수혈 받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자구책 반응은 일단 긍정적

결국 대한항공은 에스오일 지분과 보유 항공기 일부, 부동산 및 투자자산을 팔아 3조50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내놓으며 한진해운에 대한 지원책도 함께 발표했다.

대한항공이 내놓은 에스오일 지분은 약 2조2000억원어치에 달한다. 자회사 한진에너지를 통해 지분을 사들이며 금융회사에서 빌린 차입금 중 남은 1조600억원을 갚으면 약 1조10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확보하게 된다.

이외에도 노후 항공기 13대를 매각해 2500억원, 율도 비축유 기지와 교육원 등 부동산과 투자자산을 매각해 1조4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한진해운에는 추가로 1000억원을 빌려주되 채권단이 신디케이트론(공동대출) 3000억원을 한진해운에 대출해주는 조건을 내걸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올해 상반기 중 한진해운 유상증자에도 4000억원 안팎에서 참여할 예정이다. 대한항공은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통해 800% 넘는 부채비율을 2015년까지 400% 선으로 낮출 계획이다.

한진해운 역시 고강도의 자구책을 마련했다. 벌크 전용선 사업부문을 3000억원에 매각하고 국내외 터미널 일부 지분을 팔아 3000억원을 마련하는 등 비주력 사업부를 유동화한다는 방안을 내놨다. 해외 사옥과 유가증권 등도 처분해 887억원을 마련한다. 적자가 나는 노선과 사업을 통폐합하거나 철수하며, 노후 선박을 매각하거나 없애는 등 구조조정 노력도 이어갈 계획이다.

대한항공의 자구책을 평가하는 시장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에스오일 지분 매각이 핵심인데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해 사실상 큰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전했다. 송재학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유사업 업황은 좋지 않지만 배당금액이 커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매력이 있어 매수자가 많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에스오일 지분은 1대 주주인 아람코가 우선매수권을 가지고 있는데 이외에도 다른 인수자도 심심찮게 거론된다. 대한항공의 계획대로 1분기 내 매각이 가능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부동산·항공기 등 기타 자산 매각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내놓지 않았지만 에스오일 지분 매각으로 확보되는 금액의 비중이 큰 만큼 기타 자산이 예상 가격과 다소 차이가 나더라도 유동성 확보에 큰 영향은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 지원과 구조조정도 지난 연말 몇 주 사이 빠르게 진행됐다. 채권단이 3000억원 신디케이트론 지원에 합의한 가운데 12월 30일 대한항공이 1000억원을 추가로 빌려줬다. 벌크 전용선 사업부 매각도 이미 완료됐다. 사업부를 떼어내 별도 법인을 설립하고 이를 사모펀드(PEF)인 한앤컴퍼니가 합작법인의 주식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3000억원에 벌크 전용선 사업부를 매각했다.

한진그룹의 유동성 위기는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통해 일단 급한 불을 껐다는 평가다. 한국신용평가 관계자는 “대한항공의 재무부담이 그리 크지 않은 선에서 한진해운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각 사의 재무부담이 완화되고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단기차입금 9977억원을 비롯해 총 4조5202억원의 차입금 상환을 앞두고 있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유동성 확보방안을 통해 1조원 이상의 현금이 유입되는데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현금성 자산 1조원이 있고 올해 대한항공이 2조원 넘는 현금을 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돼 유동성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진해운의 벌크 전용선 사업부 매각을 놓고 영업이익이 착실하게 나오던 사업부를 너무 성급하게, 그것도 지나치게 싼 가격에 판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현금 3000억원을 확보하면서 사업부가 진 부채 약 1조4500억원을 털어내 지난해 9월 별도 재무제표 기준 987%에 달했던 부채비율을 673%로 끌어내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선박금융 계약의 재무약정 중 부채비율을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한진해운의 부채가 그보다 높아져 조기상환 의무가 발생했다”며 “채권단이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사업부를 매각하도록 압박한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한진해운의 차입금 금액은 회사채·선박금융 등 약 1조2000억원에 달한다. 상각 전 영업이익(6000억원 예상)과 대한항공의 지원(1000억원 대출, 4000억원 유상증자), 금융권의 지원(약 3000억원)을 합하면 1조40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어 상환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알짜 자산을 팔아가며 계열사를 지원하는 것을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한 증권사 소속 채권전문가는 “이번 지원으로 끝이 아니라 대한항공은 더 발을 깊게 담그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 투자은행 관계자는 “2~3년 안에 해운업 경기가 좋아지면 한숨 돌리겠지만 대한항공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덩달아 재무구조가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2~3년 안에 해운업 경기가 좋아져야 한숨 돌려”

대한항공의 사정도 사실 여의치 않다. 일본노선 여객 수요가 줄고 세계경기 침체로 화물 수요가 하락하며 2012년 1~3분기 258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던 것이 올해 같은 기간에는 373억원의 영업손실로 적자 전환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신규 항공기를 도입하는 투자금이 많이 들어 부채비율이 높은 점은 항공업의 특성이라고 봐야 한다”며 “대신 현금 유동성이 좋아 수요만 회복되면 금세 만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림세를 이어가던 대한항공 주가는 최근 다시 오르고 있지만 증권가 관계자들은 신중한 입장이다. KTB투자증권 신지윤 연구원은 “유동성 리스크가 줄었다는 점, 그동안 너무 많이 내렸다는 시장의 반발 심리 때문에 주가가 최근 오르고 있다”면서 “하지만 지속적으로 오르려면 항공산업의 수요 회복이 급하다”고 말했다.

1220호 (201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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