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이젠 교수 눈도장까지 찍어야 하나 

삼성 발표에 취업 준비생 반응은 

삼성의 채용방식 변경에 갑론을박 … 대학선 “기업이 할 일 학교에 미뤄” 불만도



삼성그룹이 새로 도입하는 신입사원 채용방식을 놓고 대학생들과 취업 준비생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아직 명확한 밑그림이 제시되지 않았지만 삼성의 채용방식 변경은 다른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학생들과 대학마다 평가는 엇갈린다.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공정성·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서류전형 부활과 대학 총·학장 추천제를 놓고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그동안 삼성은 모든 지원자에게 삼성직무능력검사(SSAT)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했지만 앞으로는 서류 심사를 통과한 이들만 SSAT를 볼 수 있다. 단 대학의 총장이나 학장에게 추천을 받은 사람은 서류 심사가 면제된다. 삼성은 9000명의 예상 채용 인원 가운데 5000명 가량을 총·학장 추천제로 선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추천도 결국 스펙 평가?

서류전형 부활에 대해서는 그동안 과열된 SSAT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적지 않다. 전문 사교육까지 성행한 SSAT의 과열을 잠재울 기회라는 것이다. 취업 준비생 박소라(24)씨는 “SSAT만 잘 보고 합격한 친구들을 보면서 변별력에 대한 의구심이 많았는데 직무능력이 강조되면 객관적인 변별력을 갖출 수 있을 것 같다”고 평했다.

그러나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더 많다. 한 인터넷 취업전문사이트에서 ‘고니’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은 “결국 준비할 과정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라며 “갈수록 취업이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경희대 행정학과에 재학중인 유형근(26)씨는 “고시 공부를 하느라 스펙을 쌓지 못해 SSAT로 승부를 보려 했는데 서류전형을 본다고 하니 낭패”라며 “나처럼 SSAT만을 준비한 취업 준비생에게는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더구나 직무능력을 평가할 경우 전공에 의해 지원 분야가 제한될 수도 있어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탈(脫)스펙 기조가 퇴보한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숙명여대 경영학부 재학생 송지연(가명·25)씨는 “새로 시행되는 서류전형은 스펙과 상관없이 진행될 것이라 하지만 실제로 서류전형에서 스펙 외의 것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지원자들은 더욱 스펙에 집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대생의 걱정은 더 크다. 서류전형은 스펙이 부족한 지방대생에게 아무래도 불리할 수밖에 없다. 지방대를 졸업한 김은지(27)씨는 “삼성은 비교적 스펙 없이 취업할 수 있었는데 서류전형으로 취업 문이 좁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총·학장 추천제는 탈스펙을 위해 삼성이 꺼낸 히든카드다. 인터넷 취업전문 사이트에서는 ‘추천이 스펙을 무마하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평가도 있다. 지방대 안배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추천도 결국 스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학이 공정성 시비를 피하기 위해 학점과 어학 등 객관적으로 측정이 가능한 ‘수치’를 기준으로 추천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다. 송지연씨는 “총·학장 추천에서는 평소 교수와 친분을 쌓아오거나 좋은 학점을 받은 사람에게만 기회가 제한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삼성그룹이 대학 측에 추천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전달한 사안은 아직 없다. 추천 기준도 정해지지 않았다. 연세대 학생복지처 관계자는 “삼성 쪽에서 아무런 공식 요청이 없기 때문에 내부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른 대학도 사정은 비슷하다. 다만 “지금도 일부 기업에서 추천을 요청하곤 하는데, 주로 학점·외국어·자기소개서·봉사활동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추천을 받기 위한 교수와의 친분 쌓기가 학생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허태용(26)씨는 “총장이나 학장이 직접 평가를 하지 않을 테니 결국 실제 추천권을 가진 교수와의 친분을 쌓는 것 자체가 하나의 스펙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며 “교수 눈에 띄기 위한 강의실 ‘앞자리 앉기 경쟁’이나 교수실 방문 경쟁이 치열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지방 소재 이공계 대학을 다니는 장우성씨(22)는 “이공계의 경우 가뜩이나 교수들의 학생 편애가 심한 편”이라며 “추천제를 도입하면 교수 개인의 호불호가 학생의 취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추천 비리’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취업정보 사이트 게시판이나 온라인 카페에는 ‘총장과 친분 쌓으려는 로비가 횡행하겠네요’ ‘돈 많은 강남 엄마들은 바쁘실 듯’ 류의 게시물이 올라 오고 있다. 실제 비리 여부를 떠나 공정한 추천인지를 두고도 잡음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또 한편에서는 “교수와의 친분도 인성평가의 한 잣대가 될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서거석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전북대 총장)은 “시험이 아니라 추천에 의해 채용하는 이번 제도가 학벌주의·스펙 중심 채용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부작용 없이 인성과 실력을 갖춘 인재가 공정하게 선발될 수 있도록 대학의 명예를 걸고 추천하겠다”고 밝혔다.

추천제에서 소외될 수 있는 지방대·전문대·졸업(유예)자에 대한 형평성 논의도 필요하다. 삼성그룹에 따르면 할당되는 추천 인원은 대학마다 다르다. 한 지방대 학생지원처 관계자는 “차별을 줄인다고 하지만 과연 지방대에 어느 정도의 추천권이 할당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 측은 “대학별 추천 인원은 해당 대학의 삼성 입사 실적 등을 고려해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삼성에 입사한 졸업생이 많은 대학에는 추천 가능 인원을 많이 배정하고, 적은 대학에는 적게 배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나마도 전문대는 배제됐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의 방성용 주임은 “전문대가 배제된 것은 특성화 인재를 육성한다는 취지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전문대 학생들에게 상실감을 주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지방대·전문대·졸업유예자 형평성 논란도

최근 급증한 졸업 유예자도 추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취업을 위해 논문 제출을 미루고 졸업을 유예한 이원준(29)씨는 “졸업생이 추천 받을 방법이 마땅치 않고 설령 방법이 마련되더라도 취업률을 고려하는 대학은 대부분 졸업 전의 재학생들을 추천 대상으로 올릴 가능성이 크다”며 “추천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두고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학도 반기는 것만은 아니다. 한 대학 취업지원센터 관계자는 “대기업이 추천을 요구할 경우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별도의 위원회나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려야 할 상황이고, 공정성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다”고 털어놨다. 그나마 지방대는 관련 부서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관계자는 “기업이 할 일을 학교에 미뤄 업무 부담을 주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윤호상 인사PR연구소장은 “삼성의 채용이 사회·경제적으로 미치는 파급이 큰 만큼 변화 기간을 충분히 두는 등 대학과 대학생들의 혼란을 덜 수 있는 배려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1223호 (2014.02.0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