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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짧게 더 짧게’ 스낵 컬처 시대 

 

전미영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짧은 모바일 동영상 파급력 크고 인기 ... 청소·화장용품도 일회용 확산

▎이동통신 3사가 공격적으로 출시하고 있는 모바일 영상 서비스(IPTV)에서 스낵컬쳐화가 두드러진다.



유행가의 노랫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굉장히 짧은 후렴구를 여러 번 반복한다는 걸 알 수 있다. 2007년 히트송이었던 원더걸스의 ‘텔 미(tell me)’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경향은 당시 인기 가요를 휴대폰 벨소리로 등록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현상과도 관련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이후 한국의 대중가요에서는 ‘짧고 강한 후렴구가 있는 노래는 반드시 히트한다’는 법칙이 통하고 있다.

노랫말과 연관시키긴 다소 억지스러울 수 있지만, 최근 사람들이 문화를 즐기는 모습에서도 ‘짧게, 더 짧게’를 외치는 ‘스낵화’가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몇 줄짜리 짧은 시로 인기를 끈 SNS 시인 하상욱씨는 ‘서울시’란 시집 시리즈를 출간하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대중문화를 즐기는 모습도 갈수록 ‘짧고 간단한’ 형태로 바뀐다.

호흡이 긴 드라마나 영화보다는 평균 재생시간이 3~4분밖에 되지 않는 짧은 동영상을 즐기는 모습이 더 익숙하다. 드라마나 예능도 실시간으로 보기보단, 다운로드 해서 보거나 혹은 꼭 보고 싶은 부분만 편집된 영상을 찾아본다. 심지어는 전체 동영상을 보는 것도 귀찮아 누군가가 핵심 장면만 캡처해 줄거리를 달아놓은 인터넷 게시글 ‘리캡(recap)’이란 것도 눈에 띈다.

스마트폰으로 스낵 동영상 쉽게 만들어

스낵 컬처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는 인터넷과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이동통신 3사가 공격적으로 출시한 모바일 영상 서비스(IPTV)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지상파 채널이나 케이블 방송 등을 생중계하거나 추억의 인기 드라마를 재방영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모바일의 특성상 긴 프로그램보다는 10분 분량으로 압축한 동영상이 인기다.

모바일에서뿐만 아니라 집 안에 있는 TV에서도 짧은 동영상을 즐길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고 있다. 스마트TV의 ‘웹OS’는 마치 스마트폰으로 짧은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해당 콘텐트를 TV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기술이다. 비디오 대여를 하던 미국 기업 ‘넥플릭스’는 이처럼 온라인 콘텐트를 TV에서 바로 볼 수 있게 한 서비스로 대성공을 거뒀다. 국내에서도 Pooq, CJ E&M, My catch on 같은 기업을 중심으로 스마트TV에서 짧은 동영상을 바로 시청할 수 있게 한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직접 스낵 동영상을 손쉽게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모바일 산업도 부상하고 있다. 동영상 촬영 시간을 아예 10초 안팎으로 제한하거나, 몇 장의 사진을 모아 재미있는 ‘움짤(움직이는 짤방)’을 만들게 하는 등 스마트폰으로 부담 없이 스낵 동영상을 만들고 소비하게 만드는 서비스다.

트위터는 6초 모바일 동영상을 만들 수 있는 ‘바인’을 인수했고, 페이스북이 인수한 ‘인스타그램’도 15초 동영상 서비스를 내놨다. 네이버 라인에서는 4~10초 분량의 동영상을 촬영해 원하는 배경음악과 함께 라인 친구와 공유하는 ‘스냅무비’ 기능을 추가했다. 청소년층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스냅챗’도 동영상을 촬영해 움짤 형태로 친구와 공유하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문화 콘텐트를 빨리 빨리 소비하는 ‘스낵 컬처’ 트렌드 덕분에, 온라인 페이지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지표도 변하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발표하는 ‘TAT(Talking about This)’ 지표는 콘텐트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기준을 ‘얼마나 많은 회원 수를 확보했나’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콘텐트에 대해 이야기하는가’에 두고 있다.

이 지표에 따르면 독자 수가 얼마 되지 않는 인터넷 게시글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면 영향력 순위에선 1등을 차지할 수 있다. 덕분에 사람들은 수많은 콘텐트 중에서 하이라이트만을 편집해 순위를 올리고자 하므로, 결국 스낵 컬처화가 더 강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무엇인가를 오래 두고 소유하기보단 빨리 빨리 소모해버리는 ‘스낵화’는 단연 문화산업에서 두드러지지만 앞으론 다른 산업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스낵 컬처 안에 녹아있는 의미를 ‘속도가 빠른’ ‘금방 소모하는‘ 등의 가치로 확대해서 해석한다면 제품을 즉각 사용하고 쉽게 버리는 형태의 소비생활도 ‘스낵화’에 포함된다.

실제로 몇몇 산업에서는 ‘스낵화’가 이미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가령 청소기 시장을 한번 살펴보자. 스팀 청소기, 물걸레 청소기, 로봇 청소기 등 다양한 형태의 청소기가 시장에 선보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청소기는 바로 한번 사용하고 버리는 ‘일회용 청소용품’이다.

화장실 청소용품, 거실을 닦는 걸레까지 모두 한번만 사용하고 버리는 형태다. 뜻밖의 산업에서도 ‘스낵화’가 발견된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출시한 ‘일회용 화장품’은 소용량 파우치 형태로 되어 3~5번만 사용하면 바로 버릴 수 있는 스낵화된 제품이다.

빨리 소비하고 버리는 게 미덕?

하나의 제품을 구매해 오래오래 사용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사회에서 이젠 빨리빨리 소비하고 버리는 것이 미덕인 사회로 이행 중이라 말한다면 너무나 큰 비약일까. 앞으로 기업들은 빨리 소비해버리는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춰 제품을 기획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버리는 행동에서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심리적 가책을 최소화하는 아이디어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문화산업에서부터 비롯돼 다양한 산업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스낵화’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오래된 것이 아름답다’가 아닌 ‘순간적인 것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기억할 점은 소비자들이 시장의 빠른 속도전을 선호한다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원의 낭비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력을 최소화하려는 기업의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1244호 (201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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