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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포스코건설, 폐열회수보일러 발주 BHI에 몰아주기 논란 - 평범한 중소기업이 갑자기 세계 빅4로 

 

유례없는 초고속 성장 배경에 의혹 일어 ... 공사 경험 부족할 때도 현대重·두산重 추월

▎BHI가 포항제철소 파이넥스2공장에 설치한 폐열회수보일러 준공식.



평범한 중소기업이 특정 시장에서 갑자기 세계 4위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저가 수주를 할 수 있도록 뒤를 봐주는 대기업이 자리 잡고 있다고 의심한다. ‘폐열회수보일러(HRSG, 박스 기사 참조)’라고 불리는 보일러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업계에 회자하는 이 기업은 비에이치아이(이하 BHI)다. 발전설비와 제철설비를 제조하는 기업이다. 발전설비는 크게 주기기와 보조기기로 구분된다. HRSG는 주기기, 복수기·열교환기 등은 보조기기다. 1998년 범우이엔지라는 사명으로 설립된 BHI는 2000년대 중·후반까지 보조기기를 주로 제작했다.

5년 만에 HRSG 세계 4위 기업으로 도약

BHI가 급성장한 건 주기기인 HRSG 사업에 뛰어들면서다. BHI는 2005년 이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원천 기술을 보유한 미국 포스터휠러에너지(Foster Wheeler Energy)와 기술협약을 체결한다.

2007년 연간 38억원 규모의 HRSG 사업을 수주했던 BHI는 지난해 HRSG 공사만 3000억원 가까이 수주에 성공하며 몸집을 80배로 키웠다. 지난해 BHI 전체 매출에서 HRSG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47.6%다.

시장조사업체인 맥코이가 올해 발간한 최신 세계발전시장 수주동향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BHI는 2012년 기준 발전규모 1718MWe의 HRSG 공사를 수주했다.

시장 점유율 8.6%로 세계 4위다. 세계적 기업인 알스톰파워(10.5%), 누터에릭슨(9.7%), 밥콕-히타치 둥펑(9%)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2007년 매출 600억원대 중소기업이던 BHI는 어떻게 불과 수년 만에 세계 발전 시장을 주름잡을 수 있었을까.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복수의 관계자는 “성장 배경에는 포스코가 있다는 말이 돈다”고 귀띔한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크게 다음과 같은 근거가 있다.

최근 8년 간 포스코가 발주한 대형 프로젝트에 들어간 HRSG 공사는 모두 BHI가 수주했다. 세계발전시장 수주동향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이후 포스코에너지(전 포스코파워)가 발주한 50MWe급 이상 대규모 발전설비에서 HRSG가 설치된 공사는 모두 9건. 발전 설비 용량으로 따지면 총 1038MWe에 달하는 공사에서 HRSG 설치는 모조리 BHI가 따냈다.

포스코가 BHI에 맡긴 HRSG 공사는 더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정 프로젝트의 경우 포스코에너지가 턴키(용어설명 참조) 방식으로 포스코건설에 하청을 맡긴다. 일괄 하청을 받은 HRSG 등 공사를 전문업체에 재하청을 주는데, BHI에 공사를 맡긴 건도 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의계약을 통해 지금까지 모두 11건의 HRSG 공사를 BHI에 맡겼다”는 게 포스코건설 공식 입장. 하지만 포스코건설이 BHI에 총 26건의 HRSG 공사를 맡겼다는 말도 포스코 내부에서 흘러나왔다.

포스코가 BHI에 최초로 공사를 맡기던 당시 BHI의 공사 이력(레코드)도 논란거리다. 당시 BHI는 HRSG 시장에 갓 진입한 신규 업체였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HRSG공사를 수주하려면 기존 공사 경험이 상당히 중요하다”며 “갑자기 발전소가 멈추면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술력이 있더라도 과거 공사를 해본 경험이 없는 업체는 거의 낙찰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중공업 같은 대기업도 HRSG 공사 레코드가 부족해 수주를 거의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기술력이 있더라도 공사 이력이 없다면 수주는 힘들다는 말이다. 하지만 대형 공사 레코드가 부족했던 BHI에게 포스코는 2008년 대형 HRSG 공사를 맡겼다.

포스코의 기존 발주 이력을 봐도 의문이 생긴다. 포스코는 BHI가 HRSG 사업을 시작하기 이전까지는 현대중공업과 두산중공업(현 두산건설) 등 여러 곳에 분산해 발주했다. 하지만 BHI가 이 사업에 뛰어든 2007년을 기점으로 수주 기업이 BHI 한 곳으로 단일화됐다. 시장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

BHI가 관련 업계에선 이례적으로 가파른 성장을 해온 점도 의혹을 부추긴다. 경쟁이 치열한 HRSG 시장에서 BHI는 불과 수년 만에 세계 상위권 업체로 떠올랐다. 2007년 최초 수주에 성공한 BHI는 불과 3년 만에 세계 7위 업체로 성장했고, 2012년 1~3분기에는 세계 1위 기업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업계관계자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성장”이라고 했다. 또 다른 HRSG 업계 관계자는 BHI가 분식회계를 했을 가능성도 제기했지만,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포스코그룹 내부에 HRSG 시장을 두고 BHI와 경쟁하는 계열사가 있다는 점도 미스터리다. 포스코그룹 철강·에너지플랜트 전문계열사 포스코플랜텍은 플랜트사업부문이 발전설비용 HRSG를 제조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포스코플랜텍은 지금까지 관련 공사를 포스코그룹 내부에서 수주하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내부 거래가 많은 포스코 문화를 감안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지난해 포스코그룹의 내부거래액은 15조5542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21.8%에 이른다. 내부거래가 비일비재한 포스코지만, 유독 HRSG 공사는 계열사보다 외부업체를 선호했다. 포스코플랜텍 입장에서는 계열사를 통해 제조할 수 있는 설비를 굳이 외부 기업인 BHI에 맡긴다는 불만이 터져나올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원한 포스코 관계자는 “포스코플랜텍은 업황 침체로 특히 플랜트사업부문에서 수주가 급감했고 지난해 630억원 규모의 영업손실로 적자전환했다”며 “더구나 포스코 플랜텍은 자사 기술연구소를 통해 폐열 회수 장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연구도 진행 중인데 계열사에서 연구개발(R&D)을 진행 중인 공사를 BHI와 대규모 수의계약하는 점이 특이하긴 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포스코플랜텍은 2012년에서야 HRSG 라이센스를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포스코건설의 해명과 달리 2012년 독일 발전·보일러 전문기업인 스탠다드 케슬과 기술제휴를 맺기 이전에도 포스코플랜텍 플랜트사업부문(당시 성진지오텍)은 이미 발전설비용 HRSG를 제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포스코 공사 사실상 독점 수주

BHI의 원가 이하 저가 입찰도 논란거리다. 이코노미스트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BHI는 그간 몇몇 주요 HRSG 공사에 원가 이하로 응찰했던 것으로 보인다(표 참조). 저가 수주는 품질 경쟁력 하락과 시장 교란 등 다양한 문제점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저가 입찰의 근거는 삼성물산과 현대산업개발이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에서 진행 중인 복합화력발전소 공사 관련 자료에서 확인된다. BHI가 2012년 HRSG 공사 4기 수주에 성공한 프로젝트다. 경쟁입찰에서 BHI는 1기당 2063만4000달러(당시 환율 1122원을 기준으로 약 231억5000만원)의 입찰가를 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자재비용, 이윤과 경비, 제작자금이자, 보증수리비, 간접비를 포함해 통상 전체 견적에 5% 안팎이 추가되는 이윤까지 제외하더라도, BHI는 1기를 제조하는 데 최소 2124만9000달러(약 238억4000만원)의 원가가 든다는 게 입수한 자료의 내용이다. 결국 BHI는 920억원 안팎에 총 4기의 HRSG 공사 수주에 성공했다. 원가보다 33억원 정도 밑지는 금액을 제시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HRSG 업계에서 이직한 한 관계자는 “보일러 업계에는 상식이란 게 있다”며 “BHI의 응찰가는 상식을 벗어난 가격이며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입찰가를 써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HRSG 원천기술을 보유한 보그트파워 관계자도 BHI의 입찰가가 원가 이하라고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물량 몰아주기 의혹에 포스코건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해명은 이렇다. “2008년 업무 협약 당시 국내에서 HRSG는 두산중공업만 제작할 수 있었다.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한 공급자 우위 시장이었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HRSG를 납품할 업체가 필요했다. 중소기업과 상생하려고 BHI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HRSG 공사를 맡긴 것뿐이다. 포스코와 BHI가 체결한 양해각서(MOU)에 따르면, BHI가 제시한 설비가 가격경쟁력이 있을 경우에만 수의계약을 진행한다.”

아울러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해당 문제에 대해 조사했지만 이미 포스코건설은 무혐의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정위에 확인한 결과, 해당 사건은 ‘포스코건설의 거래상 지위남용 행위’였다. 공정위는 포스코건설이 BHI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행위 자체가 공정거래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뿐, 개별 HRSG 입찰 계약 건의 공정성과 저가 수주 여부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았다.

포스코건설 “경쟁력 있어 공사 맡겼을 뿐”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BHI가 HRSG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어 공사를 맡겼다”는 해명도 내놨다. 물론 BHI의 경쟁력은 HRSG업계 관계자들도 인정하는 내용이다. 엔지니어가 귀한 발전플랜트분야에서 BHI는 엔지니어 처우를 높이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했다. 실제로 올해 3월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1000대 기업 대졸 초임을 분석한 결과, BHI의 대졸 초임이 국내 기업 중 1위(5400만원)로 밝혀져 화제를 모았다. 현대중공업(5200만원) 등 제조기업은 물론 한국투자증권(4760만원) 등 금융권보다 처우가 더 높다.

턴키(turn key) 일괄 수주 계약을 의미하는 건설업계 용어. 공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책임지고 다 마친 후 발주자에게 열쇠(key)를 넘겨주는 방식의 건설 계약이다.




1249호 (201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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