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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FTA는 한국 제조업의 재앙? - 1만2000개 상품 중 83%(1만개) 치명상 우려 

‘제조업 이득, 농수산업 손해’는 단순 셈법 연내 타결 고집 말고 치밀한 전략 짜야 




중국은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한국은 중국의 최대 수입국이다. 교역하는 상품만 1만2000개에 달한다. 이런 두 나라가 벌이는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속도를 내고 있다. 양국 정상이 연내 타결에 합의하면서다. 국내의 관심사는 주로 우리 농수산물 시장 개방에 쏠려 있다. 하지만, 대중 수출의 99%를 차지하는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은 간과하는 듯하다.


한·중 FTA가 국내 제조업에 약이 될까, 독이 될까. 속단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낙관은 금물이다. 이미 중국 제조업은 여차하면 우리를 제칠 태세다. 중국 제품에 밀려 도태되는 우리 기업이 속출할 수 있다. 타결 시한에만 매달리다 중국 제조업발 쓰나미에 쓸려갈지도 모른다.

‘제조업 이득, 농수산업 손해’. 한·중 FTA 단순 셈법이다. 정부도 연구기관도, 관련 업계도 그렇게 여긴다. 그동안 공식 협상이 열두 차례 열릴 때마다 농민단체는 격렬한 반대 집회를 열었지만, 제조업 관련 단체는 잠잠했던 이유기도 하다. 협상장에서도 최대 쟁점은 농수산물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 동아시아FTA협력단 관계자는 “중국 측이 우리 농수산물 시장개방 확대를 집요하리만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한국은 중국과 교환한 양허안(개방 계획서)에 주요 농수산물을 ‘초민감품목군’으로 분류했다. 시장을 열 수 없다는 것이다. 초민감품목은 관세를 현재대로 유지하는 양허 제외, 관세를 일부 깎는 부분 철폐, 일정 물량만 무관세로 수입하는 저율관세할당(TRQ) 등으로 나뉜다.

농수산물-영세 중소기업 제품 우선 보호

정부가 농수산물 시장 개방을 꺼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중국과 도저히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세를 100~500% 매겨도 더 값싼 중국산 농수산물은 이미 우리 식탁을 점령한 지 오래다. 여기에 관세까지 없어지거나 인하되면 기존 미국·EU FTA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과연 농수산업만 위험한 것일까. 우리나라 대중 수출의 99.4%를 차지하는 제조업은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정부 설명대로 제조업은 중국보다 경쟁 우위에 있으니 양국 관세가 철폐되면 우리가 더 이득을 보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제조업도 제조업 나름이다. 중국과 기술격차가 없거나 역전된 업종은 한·중 FTA로 인해 중국산 제품이 국내 시장에 범람할 수 있다. 한국이 확실한 비교 우위에 있는 분야 역시 안심하기엔 중국의 추격 속도가 가파르다. 중국 휴대전화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샤오미에 역전 당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관계 기사 42쪽>.

한국과 중국은 양국이 교역하는 1만2000개 상품을 놓고 양허 협상을 벌이고 있다. 교역 상품의 90%(수입액 기준 85%)를 개방한다는 게 양측 합의 사항이다. 이 중 10%인 1200여개는 양국이 개방을 꺼리는 초민감품목군이다. 나머지는 일반품목(즉시 관세 철폐~10년 내 철폐)과 민감품목(10년 초과~20년 내 철폐)으로 분류된다. 우리 정부는 주요 농수산물과 영세 중소기업제품을 초민감품목에 포함했다. 중국은 석유화학·철강·기계 등이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품목이 초민감품목군에 포함됐는지 일체 밝히지 않고 있다. 중국 측 요구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 언론은 최근 ‘1200개 초민감품목 중 1000개 정도가 농수산물’이라고 보도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은 품목 수로 약 1600개다.

이에 대해 정부 협상단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구체적인 숫자는 밝힐 수 없지만 농수산물이 1000개 포함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중소기업 관련 단체와 협회 등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자체적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거쳐 경쟁력이 약한 영세중소기업 제품을 초민감품목군에 상당수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400개 안팎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정부가 보호하려는 영세 중소기업 제품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협상단 관계자는 “중국에 비해 기술적 우위가 거의 없고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제품들”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천연실 같은 섬유제품, 의류 제품, 손톱깎기나 손거울 같은 잡화, 일부 가공식품이나 완구, 생활용품 등이 포함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말 교환한 1차 양허안과 올 5월 11차 협상 때 교환한 2차 양허안에도 영세 중소기업 제품군은 비슷한 수준으로 포함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정부가 밝힌 제품들은 이미 오래 전에 중국산 저가 제품에 밀려 국내 산업이 공동화됐거나 구조조정 된 것이 대부분이다. 협상단 관계자는 “중국 측에서도 농수산물에는 민감하지만 영세 중소기업 제품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굳이 이들 제품을 초민감품목에 포함시킨 것은 “경쟁력이 약한 분야를 우선 양허 제외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FTA 협상의 기본이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양국이 교역하는 1만2000개 상품 중 일부 농수산물과 영세 중소기업 제품을 제외한 제조업 기반의 1만개 상품은 FTA 타결과 동시에 즉각 관세가 사라지거나, 기간을 두고 줄여가야 한다. 1만개 상품이 모두 중국보다 경쟁력이 있을 수는 없다. 양측이 어떻게 협상을 하느냐에 따라 일부 분야는 중국 제품에 잠식당하고 도태될 수 있다. 재계와 산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섬유·의류·비철금속·건설기계·정밀화학·자동차 부품·기계 부품·전기기기 등을 위험 업종으로 꼽는다. 한·중 FTA가 자칫 국내 제조업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섬유·의류·비철금속·기계 등 경쟁력 취약

중국의 기술 추격 속도나 최근 양국 수출입 환경, 산업구조 변화 등을 따져보면 기우만은 아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1∼7월 우리나라의 대 중국 수출액은 814억 달러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1.2% 줄었다.

5월(-9.4%)과 6월(-1.0%), 7월(-7.0%) 모두 감소했다.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올 7월 25.3%로 1년 전에 비해 2.9%포인트 줄었다. 특히 석유화학 업종이 고전 중이다. 이는 중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연관이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최필수 중국팀 부연구위원은 “석유화학 제품의 대중 수출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중국 자체의 생산 증가와 제3국의 대중 수출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일부 업종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일본을 제치고 중국의 최대 수입국 지위에 올랐다. 하지만 중국 수입시장에서 한국 제조업의 영향력은 갈수록 줄고 있다.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이 관세를 부과하는 제조업 품목 5943개 중 약 60%인 3600여개 품목에서 우리나라의 중국 수입시장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2007년 중국 수입시장 점유율 6.5%였던 의류는 올해 5월 말 현재 3%로 줄었다. 섬유는 같은 기간 14.2%에서 10.2%로 하락했고, 석유제품은 5.3%에서 2.3%로 줄었다. 광물·금속과 화학제품, 수송기기 등도 점유율이 감소했다.

특히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좁혀졌거나 거의 없는 품목은 지난 10년 간 중국 내 점유율이 급감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컴퓨터 분야는 중국 내 점유율이 지난 10년 새 34%포인트 줄었다. 신발은 31.7%포인트, 휴대용품은 12.8%포인트, 안경은 9.5%포인트, 섬유제품은 5.4%포인트 감소했다.

이에 대해 제현정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기계와 전기기기를 제외한 대부분 품목이 중국 수입시장 내에서 점유율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며 “FTA 연내 타결에 앞서 한중 교역관계의 변화 양상과 제품별 시장점유율 변화 등을 면밀히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 연구위원은 “타결의 목표 시한을 설정하면 협상의 효율성을 높일 수는 있으나 타결에 대한 압박으로 우리의 실리가 저해될 수 있으므로 남은 기간에 보다 신중하고 치밀한 협상 전략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중국의 제조업 기술력도 일취월장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중국 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최신 평가’ 보고서는 ‘중국의 제조업 내부구조가 크게 개선되고, 정보화 혁명이 추진되고 있으며, R&D 투입이 증가하는 등 중국 제조업이 고부가가치 단계로 뻗어나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중국은 대규모 투자가 장기간 누적되면서 국제표준 공업분류 22개 대분류 중 7개 대분류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세계 주요 공업 상품 500종 중 220종에서 생산량 세계 1위다. 최근 5년 간 연 평균 R&D 지출 성장률이 20%에 달하는 중국은 하이테크 제조업 분야에서도 한국을 위협한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전체 수출에서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16%에서 2012년 27.5%로 증가했다. 중고위 기술산업 역시 같은 기간 24.6%에서 27.5%로 늘었다. 이와 달리 저위 기술산업은 38.4%에서 24.5%로 줄었다.

중국의 수입 시장이 가공무역을 위한 중간재에서 소비재 등 내수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점도 우리에겐 불리한 여건이다. 중국의 수입 중 가공무역용 비중은 2007년 38.9%에서 지난해 25.5%로 줄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은 여전히 가공 무역에 의존하고 있고, 중간재 수출이 전체의 70%에 달한다. 물론 양국의 분업구조에 따라 우리나라 중간재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가 여전히 높지만 앞으로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중국의 독특한 관세 제도 역시 한·중 FTA의 대 중국 수출 효과를 반감시킨다. 중국의 평균 관세율은 9.7%다. 하지만 중국은 최종재에는 높은 관세를 매기고, 중간재에는 낮은 관세를 책정하는 차등 관세제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가공무역은 관세를 환급해 주기 때문에, 이 분야 수출이 많은 한국은 FTA로 인한 관세 철폐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

산업연구원 신현수 연구위원은 “중국의 성장전략 전환, 수출산업 구조 고도화, 소비시장 확대 등 중국 경제구조의 변화는 장기적으로 우리 제품에 대한 중국의 수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 점에서 중국의 경제구조 변화까지 감안해 FTA 협상에서 우리의 관심품목에 대한 중국의 양보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강조했다.

중국 경제구조 변화 감안해 협상해야

그동안 우리 정부는 한·중 FTA 효과로 제조업 경쟁력이 앞서는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이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해 왔다. 협상단 관계자는 “향후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좁혀질지 예측할 수 없고, 일부 분야에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총이익의 크기가 클 것이라는 게 정부의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의 셈법은 다르다. 임대희 경북대학교 아시아연구소장의 설명은 이렇다.

“중국의 대 한국 무역적자가 매년 600억 달러다. 중국 정책 당국은 이러한 적자를 줄이고 싶어한다. 중국이 한국에서 수입하는 70%가 중간재다. 이를 관세 없이 들여와 가공해 수출하면 생산원가를 낮추는 효과가 나타난다. 또한 한국에 농수산품을 쉽게 수출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무역적자 폭을 줄일 수 있다. 한국이 경쟁력이 앞서는 품목은 중국에서 현지 생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양쪽 시장이 개방(관세 철폐)되면 한국에서 수입하는 물량보다 가격경쟁력이 있는 중국 상품이 한국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게 중국 정책당국의 판단이다.”

농수산물 시장은 최대한 보호해야겠지만, 상품 분야 협상에 좀 더 신중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 측 협상태도는 여전히 고압적”이라는 게 정부 협상단 관계자의 얘기지만 양국 정상이 연내 타결에 합의한 후 가속도가 붙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서두르면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상대는 우리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이다. 실수는 곧 한국 경제, 특히 제조업에 치명상을 입힐 수있다. 한·아세안 FTA는 무려 24차 협상 끝에 타결됐다. 중국과는 이제 열두 차례 협상했을 뿐이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

1249호 (201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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