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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FTA 앞둔 국내 중소 제조업체는 지금 - “위기” vs “오히려 기회” 전망 엇갈려 

초민감품목 대상 기업의 경쟁력 오히려 높아 ... 중국과 기술격차 축소에 긴장도 

박상주 이코노미스트 기자

▎석유화학 기업들이 밀집한 울산 석유화학 공단. 한·중 FTA로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 중 하나다.



“한·중 FTA요? 우린 그런 거 걱정 안 합니다. 이미 중국 물건들 들어올 만큼 다 들어왔는데, 무슨 철 지난 걱정을 합니까?” 인천에 있는 사출성형 제조업체 정화프라텍 손희명 사장의 말이다. 손 사장은 플라스틱 안경테를 비롯한 생활용품을 만들어 국내외에 공급한다. 전형적인 ‘마찌꼬바(소규모 영세제조업체)’다.

마찌꼬바에서 만드는 품목들은 중국의 제조업체들도 잘 만든다. 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품목들이어서 중국산과 한국산이 상대국 시장에서 경쟁을 벌일 수 있는 것들이다. 이 때문에 소형 생활용품이나 잡화 등은 한·중 FTA 양허안 협상 중 한국측이 관세 유지를 요구하는 초민감품목에 오르고 있다. 중국산 플라스틱 안경테 등이 관세 없이 수입되면 정화프라텍 같은 중소기업이 어려워진다는 예상에 따른 조치다. 하지만 손 사장은 이런 예상에 대해 “공무원들만의 기우”라고 잘라 말했다.

“한국산 부품 쓰기 원하는 중국 기업 많아”

통상 한국의 플라스틱 사출성형 제품은 중국 제품보다 1.3배 비싸다. 하지만 대부분 중국에 수출하고 있을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정화프라텍의 기술직 직원들은 “중국산 제품들이 싸게 들어온다고 해도 아직은 한국산 품질을 따라오기는 어렵다”고 설명한다.

손 사장은 “정부가 말하는 초민감품목을 만들던 구로·부천·인천 등지의 마찌꼬바들은 20년 전쯤 중국 제품이 밀려 들어올 때 대부분 사업을 정리하거나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했다”면서 “사라져서 지킬 대상이 없는데 정부가 그런 품목들 지키겠다는 건 선뜻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정화프라텍과 협력 관계인 솔루션뱅크 마동우 대표도 비슷한 의견이다. 마 대표는 중국과 한국 양국에서 금형 디자인업을 하고 있어 중국 현지 사정에 밝다. 그는 “중국의 완성품 제조업체들도 부품은 한국산을 쓰길 원한다. 중국 부품사들은 제조할 때 눈속임으로 재생 재료를 섞어 써서 불량을 많이 내기 때문”이라며 “중국 소비자들도 중국산 완성품을 사면서 한국·대만 부품이 들어간 것을 확인할 정도”라고 전했다.

관세가 철폐돼 중국산의 가격경쟁력이 커진다 해도 중국 영세 부품사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어 중국인들이 잘 쓰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중국 부품사에 대한 신뢰가 쌓이는 데는 시간이 제법 걸리고 엄연한 기술격차가 있는 상황에서 한·중 FTA가 발효되면 한국산의 가격경쟁력만 높아져 유리하다는 예상이다.

한국에서는 볼품없어 보이는 작은 기업들이라도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마 대표는 “현재 한국에서 생활용품이나 잡화를 만드는 마찌꼬바들은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곳만 영업하고 있다”면서 “영세 중소기업들에게 한·중 FTA는 위기라기 보다 기회”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규모가 커서 걱정이 앞서는 기업도 있다. 한·중 FTA로 가장 악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 중 하나가 석유화학 부문이다. 석유화학 부문 국내 시장은 이미 공급이 수요를 초과했다. 최대 시장인 중국 수출로 돌파구를 뚫어야 한다. 하지만 중국 석유화학 시장에는 중국과 ECFA(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를 체결해 관세를 줄인 대만과 풍부한 원재료를 가진 중동국가들이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버티고 있다. 한국 제품은 FTA로 관세가 철폐돼도 대만과 중동 제품에 비해서는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석유 화학 업계는 FTA로 대중국 수출이 늘기보다 국내 시장만 잠식될 거라고 우려하고 있다.

연간 70만t의 폴리프로필렌을 생산하는 폴리미래의 전규범 영업기획 팀장은 최근 FTA 협상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걱정이 커졌다. 중국산이 품질이나 다양성·안전성 등에서 뒤쳐짐에도 월등히 높은 가격경쟁력으로 한국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 팀장은 “기술격차가 있어 소량으로 고급 품질을 요구하는 데서는 한국 제품이 밀리지 않겠지만 석유화학 제품은 특성상 대량으로 주문을 하는 수요가 많다”며 “그런 쪽은 가격경쟁력이 우선이기 때문에 중국 제품이 국내 시장을 대거 잠식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정부가 한·중 FTA를 연내 타결할 것이라고 발표한 직후 위기감을 느끼고 석유공업협회 등을 통해 한·중 FTA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한·중 FTA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실속파도 늘고 있다. 산업 특성에 맞게 사업전략을 바꾸는 것이다. 경기 부천에서 LED조명을 제조하는 소룩스 김복덕 사장은 유럽의 강소기업처럼 디자인에 특화된 제품에 주력할 예정이다. 어차피 가격으로는 경쟁이 불가능하니 중국 기업이 할 수 없는 것에서 답을 찾겠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가격이 싸다고 해서 중국에서 잘 팔린 것만은 아니다”며 “한국산이 중국산에 비해 더 좋은 면이 있다는 이야긴데 그런 장점을 더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기업이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소품종 대량 생산에 주력할 때 우리는 다양한 디자인을 내놓을 수 있도록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급 제품과 저급 제품 시장이 확연히 분리되는 조명기구 시장의 특성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품질인증을 받지 못한 조악한 제품들이 유통되는 대형마트 등의 시장은 과감히 중국에 내주고, 고급 제품만 사용하는 호텔이나 상가 등 납품하는 B2B(기업 간 거래)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설명이다.

디자인에 특화해 위기 돌파 준비도

하지만 이런 전략도 영원할 순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 사장은 “중국산은 현재 일본과 미국 시장에서 20%정도 디스카운트(평가절하) 되고 있지만, 광동성이나 장수성 등에 있는 메이저 조명회사들을 보면 대만 자본으로 운영되면서 기술력을 키우고 있다”면서 “애플의 아이폰처럼 대만에서 부품을 수입해 중국에서 조립하는 방식이 늘고 있어 한·중 간 기술격차가 계속 유지되긴 어렵다”고 우려했다.

대만의 기술과 중국의 생산력이 결합되면 중국산이 한국산을 금방 따라잡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김 사장은 “기술력마저 따라 잡히면 한·중 FTA로 우리 기업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며 “FTA에 대응하려면 또 다른 장기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1249호 (201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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