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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FTA 시대 성공 방정식 - ‘Made only for China(중국 소비자만을 겨냥한 제조)’가 답이다 

‘어떻게 싸게 만들까 → 어떻게 더 비싸게 팔까’로 발상 전환해야 

한우덕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소장

▎상하이의 한 고급 백화점에 자리잡고 있는 쿠쿠전자 매장. 이 회사는 효과적인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수출, 현지 생산·판매, 관광객 대상 판매 등 유통구조를 다각화하고 있다.



‘대박’이었다. 최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쿠쿠전자 말이다. 공모가(10만4000원)의 거의 두 배에 육박하는 18만원에 시초가가 결정되더니, 상장 첫날(8월 6일)에는 개장과 함께 상한가를 기록했다.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오랜만에 터진 잿팟이었다.

중국 요인이 컸다. 이 회사는 작년 면세점에서만 약 2005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수준이다. 올해도 100% 성장을 자신한다. 대부분 중국 관광객들이 산 압력 밥솥 덕택이다. 1980년대 일본에 간 우리나라 아줌마들이 귀국하면서 ‘코끼리 밥솥’을 끼고 오던 것을 연상케 한다.


증권가 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올해 중국인 대상 판매로만 약 6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전체 매출의 10%, 아직 중국 비즈니스 여지는 크다는 게 증시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이다. 손승균 동부증권 상무는 “중국에서의 추가 성장 기대감이 쿠쿠전자 인기 폭발의 요인”이라며 “중국 소비자가 ‘쿠쿠 신화’의 보이지 않는 주역”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경제는 중국 소비자에 코 꿰인 형국”

쿠쿠전자뿐만 아니다. 중국 화장품 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아모레퍼시픽, 중국 관광객이 늘면서 객실을 채우고 있는 호텔신라, 카지노·호텔 전문 업체인 파라다이스 등도 중국 소비자 덕택에 상승세를 타는 종목이다.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서 ‘이제 우리나라 모든 상장 업체는 중국 관련주’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박한진 KOTRA중국사업단 단장은 “중국 소비자가 한국 기업의 가치를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며 “중국 소비자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기업은 앞으로 시장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없는 상황에서도 한국 경제는 이미 중국 소비자에 코 궤인 형국이 됐다”는 해석이다.

한·중 FTA는 이제 현실이다. 이르면 올해 말 이론상으로는 두 나라의 경제 국경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쿠쿠전자처럼 웃을 수는 없다. 오히려 내가 갖고 있던 시장마저 중국 기업에 내줄 수도 있는 게 바로 FTA다. FTA로 인해 야기될 중국 비즈니스 패턴의 흐름을 읽고, 적절히 대응해야 하는 절대절명의 과제가 우리 기업 앞에 놓여졌다는 얘기다.

FTA 시대 중국 비즈니스 패턴을 이해하려면 그동안 한·중 경협이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중 수교 22년, 우리는 두 차례의 ‘중국 붐(boom)’을 경험했다. 제1차 붐은 수교 원년인 1992년부터 1997년까지 6년여 동안 진행됐다. 당시 양국 교역은 막혔던 봇물이 터지듯 크게 늘면서 연 평균 약 32%의 신장률을 기록했다. 2차 붐은 2001년 말 이뤄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비롯됐다. 중국 수출이 급증하면서 중간재(부품·반제품)를 위주로 한국의 대 중국 수출도 덩달아 늘었다. 2001~2005년 양국 교역 증가율은 연 평균 33.7%에 달했다.

그렇다면 3차 붐은 올 것인가? 온다. FTA가 계기가 될 수 있다. FTA 덕에 양국 경협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또 다시 경제 교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붐의 형태는 이전과 확연하게 다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교 이후 두 나라 경제협력의 고리는 제조업이었다. 가장 큰 형태는 한국에서 부품을 만들어 자사 중국 공장으로 수출하면, 중국 공장에서 이를 조립해 제3국으로 다시 수출하는 형태다. ‘투자유발형 교역’이다. 우리 기업은 1990년대 중국의 급부상으로 동아시아에 형성됐던 분업 구조에 능동적으로 대응했고, 중국의 성장 혜택을 누렸다. 지금도 우리나라 대중 수출의 70% 안팎이 중간재로 구성된 이유다.

‘제조’의 시기를 지나 앞으로 다가올 제3차 붐 시기의 키워드는 ‘소비’다. 우리 기업에게 중국의 성격은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 아닌 제품을 판매하는 시장’으로 바뀔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의 경제 여건 변화가 낳은 현상이다.

1,2차 붐 때 우리 기업이 중국으로 가는 이유는 저임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금 중국 임금은 매년 20% 안팎 급등하고 있고, 노동자를 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중국의 정책도 내수 확대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경제 성장패턴을 기존의 투자·수출 중심에서 소비로 바꾼다는 ‘잔벤(轉變)’이 추진 중이다. 노동자 임금의 가이드라인인 최저 임금을 매년 15~20%씩 올리는 게 그 정책 중 하나다. 경기가 위축됐다고는 하지만, 매년 소비증가율이 10~15%에 달하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FTA는 그 시장으로 가는 고속도로다.

그동안 중국 비즈니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제품을 더 싸게 만드느냐’였다. 그게 ‘세계 공장’에서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소비의 시기에는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더 비싸게 팔까’를 고민해야 한다. 중국에서도 브랜드가 중요하고, 디자인이 필요하고, 또 마케팅이 중시돼야 할 이유다.

제조업 교류의 시대에 우리 기업은 중국 기계와 ‘대화’를 했다. 중국인은 내 제품을 싸게 만들어주는 노동 단위에 불과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내 제품을 소비해줄 고객으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 중국 소비자와의 소통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중국 상하이 난징동루 아모레퍼시픽 이니스프리 매장.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화장품 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리온·휴롬·한미반도체의 중국 매출이 더 많아

다시 쿠쿠전자 얘기다. 이 회사 칭다오법인의 조학래 법인장에 따르면 쿠쿠전자는 1년에 밥솥 약 24만개를 중국인에게 판매한다. 7만개는 칭다오 현지 공장에서 만들어 팔고, 7만개는 한국에서 직접 수출한다. 나머지 10만개는? 한국에 온 중국 관광객들에게 판다. 조 법인장은 “초기에는 칭다오 공장에서 만들어 한국에 수출하는 단순한 공급 구조였다”며 “지금은 제품별·고객층별로 다양한 유통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 국경을 허물어라, 그래야 보인다’. 그게 조 법인장의 지론이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제품을 중국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 아닌, 기획 단계부터 그들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메이드 온리 포 차이나(Made only for China, 중국 소비자만을 겨냥한 제조)’ 전략이다. 중국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상품만으로도 재벌이 될 수 있는 시대가 곧 온다. 락앤락·휴롬 등은 이 같은 흐름을 보여주는 회사다. 오리온·휴롬·한미반도체 등은 이미 중국에서의 매출이 국내 매출을 웃돌았다. 그들은 기존 대기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미래 대기업이 될 후보들이다.

영상·음악·공연 등 엔터테인먼트(연예)산업은 제3차 붐에 어울리는 분야다. 창의력이 농축된 ‘문화상품’에 기회가 있다는 얘기다. 사례는 많다. 지난해 개봉됐던 한·중 합작영화 ‘이별계약(分手合約)’은 수 주 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무언극인 ‘난타’, 비보이(B-Boy)공연, 게임캐릭터 등도 어엿한 중국 비즈니스의 상품이 될 수 있다. 박근태 CJ차이나 대표는 “좁아 터진 한국에서 아옹다옹 싸울 게 아니라 옆에 있는 거대 시장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옹골진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농업은 한·중 FTA의 최대 걸림돌이다. 그러나 거꾸로 보면 중국 농업·식음료 시장은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한국 농산물에 신뢰를 섞어 버무린다면, 우리 농산물은 중국 프리미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 한국 우유가 먹혀 들어가는 게 이를 보여준다.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는 유통 채널을 구축한다면 김치는 대히트 상품이 될 수 있다.

붐이 온다고 아무나 그 혜택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오히려 재앙일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10여년 동안중국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LG에어컨은 로컬(현지) 기업에 밀려 철수한 지 오래다. 이마트·롯데백화점 등 중국 유통시장에 진출했던 업체들도 고배를 마셨거나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박한진 단장은 “중국 저가 시장은 이미 로컬 기업이 잡고 있고, 고가 시장은 선진 글로벌 기업이 선점하고 있다”며 “어정쩡한 제품으로 중국 시장을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코 다치기 십상”이라고 강조했다. FTA는 경쟁력 없는 상품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제조업 분야가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빠르게 성장한 중국 기업은 철강·IT·조선 등 전통적인 우리의 경쟁 우위 분야에서도 우리 기업을 옥죄어 오고 있다. 국내 철강 산업은 중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제품으로 기반이 흔들리고 있고, 대표적인 IT제품이라는 스마트폰은 신예 샤오미(小米)에게 밀리는 양상이다. 조선은 세계 수주 1위 자리를 중국에 내준 지 오래다.

한국을 동아시아 산업 협력의 허브로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전문들은 ‘통합의 흐름’을 주목한다. 오승렬 외국어대 교수는 “제조업 분야 한·중 협력 패러다임이 ‘분업’에서 ‘통합’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까지는 한국에서 부품을 만들고, 중국에서 조립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웬만한 부품은 모두 중국에서 생산한다. 중국이 부품과 조립을 아우르는 ‘풀셋(Full-set)산업구조’를 갖춰가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 수출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올 1~7월 대중국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줄었다.

오 교수는 대응 방안으로 ‘서플라이 체인(공급사슬)의 다변화’를 제시한다. 부품·소재 분야의 경우 본사-자회사라는 단순 공급 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중국 업체에 제품을 공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이뤄진 ‘하이얼(海爾)프레젠테이션’은 그 사례다. 최근 한국의 중소기업 4곳이 칭다오(靑島)의 유명 가전업체인 하이얼을 찾아가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하이얼에 부품을 공급하기 위한 ‘맞춤식 마케팅’이었다. 반응이 좋아 곧 계약이 이뤄질 것이라는 게 행사를 주관한 KOTRA 칭다오무역관의 설명이다.

대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판매가 주춤하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삼성전기는 돌파구를 역시 중국에서 찾았다. 중대형 스마트폰 업체를 대상으로 배터리, 카메라 모듈, 콘덴서 등 부품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심상형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국 기업으로 공급처를 확대할 수 있느냐에 제조업 분야 비즈니스 성패가 달렸다”며 “그게 바로 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전방위 마케팅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좀 더 거시적인 눈으로 산업을 관찰하는 학계 전문가들은 한·중 FTA를 ‘동아시아 생산·통상의 허브(Hub)’라는 시각으로 바라본다. 박상수 충북대 교수는 “한·중 FTA가 체결되면 우리는 미국·EU·중국 등 세계 3대 시장으로 향하는 ‘통상 고속도로’를 깔게 된다”며 “한국 시장을 미국·유럽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는 교두보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까지는 동아시아의 산업 구도가 중국이라는 세계의 공장을 중심으로 짜였지만, FTA시대에는 한국이 동아시아 산업 협력의 중심에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중국에 없는 자유시장 질서가 살아 있고, 고급 인적자원이 풍부하다는 점 등을 부각시키면 서방 기업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국에 빼앗긴 우리의 고급 일자리를 찾아오는 게 우리가 한·중FTA를 체결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전체를 ‘고부가가치 산업단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충고도 곁들였다.

FTA허브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게 기업 환경이다. 기술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R&D) 지원 시스템, 협력적 노사관계, 공정거래 관행, 기업 중시 풍조 등의 비즈니스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허브는 공염불일 뿐이다. 정부의 정책 효율성 제고, 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야 말로 한·중 FTA의 가장 확실한 대비책이라는 얘기다.

1249호 (201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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