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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장원석 기자의 ‘앵그리 2030’ ② 멀어지는 ‘내 집 마련의 꿈’ - 월 390만원 벌어도 내 집 마련 17.4년(無대출, 전국 평균 가격 기준) 

자산 증식 어려운데 집값은 별로 떨어지지 않아 부모의 도움이 곧 빈부격차 




한국이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를 넘어 고령 사회가 목전입니다. 노인을 위한 사회적 준비와 배려도 점점 개선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미래 세대를 키우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현실은 좀 다릅니다. 요즘 20~30대의 삶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대학 입시라는 높은 벽을 넘으면 취업이라는 일생일대의 장애물이 놓여 있습니다. 꿈 같은 취업을 하고, 서른이 돼도 삶은 여전히 팍팍합니다.

쥐꼬리 만한 월급에 집 한 채 마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멀리 내다보면 살기에는 결혼·육아·승진 등의 짐이 너무 버겁습니다. 젊은이들이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지면에 옮깁니다.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공간이 아닌 부모 세대와 소통하는 공간으로 이해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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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장 때 일입니다. 길을 잃었죠. 주택가를 헤매고 있는데 낮은 울타리 너머로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버지로 보이는 이가 아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독일어라 제대로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줄을 잡은 아들에게 왼쪽, 오른쪽으로 이동하라고 지시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줄을 놓고 그 위에 선을 긋더니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흙을 뿌리고, 꽃을 심고, 물을 줍니다. 갑자기 아들이 아빠에게 물을 뿌리며 장난을 겁니다. 이내 호스를 빼앗긴 아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칩니다. 길을 잃은 것도 잊고 한참을 서서 그들을 지켜봤습니다. ‘이게 바로 집이구나!’

집은 ‘살 곳’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대부분 아파트에 사는게 안타깝긴 해도 사회학적으로 인간에게 집만큼 의미가 큰 공간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식구(食口)가 함께 먹을 것을 나누는 공간. 그 안에서 부대끼고, 다투며 사랑을 키워가는 공간.

이곳에서 우리는 세대를 잇고, 문화를 전수합니다. 이와 달리 경제적으로 보면 집은 ‘살 것’입니다. 누가 집을 공짜로 주지 않거든요. 더구나 매우 비쌉니다. 개인이 살 수 있는 무언가 중에 가장 비싼 축에 속합니다. 2등이 자동차랍니다. 보통 집값은 자동차 10대 가격과 비교합니다.

절약과 저축만으론 답 안 보여

한국감정원이 매달 발표하는 전국 주택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전국 평균 주택 가격(7월 기준)은 2억3238만원입니다. 서울은 4억4443만원, 수도권은 3억2015만원, 지방은 1억5071만원입니다. 사실 20~30대에겐 이게 어느 정도 액수인지 감이 잘 안 옵니다. 이만한 돈을 가진 경우가 극히 드무니까요. 종종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몇 년이 걸린다’와 같은 제목의 기사가 나오곤 하는데 정확하지 않습니다. 소‘ 득을 다 모았을 때’와 같은 비현실적인 가정이 붙거나 인플레이션, 소득 증가액 등을 감안하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이 참에 직접 계산을 한 번 해볼까요?

통계청에서 분기별로 발표하는 가계 동향을 살펴보겠습니다. 가계의 소득을 5구간으로 나눠 소득과 지출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5분위는 최상위 20%, 4분위는 소득 상위 60~80%, 3분위는 소득 상위 40~60%, 1분위는 하위 20%를 나타냅니다. 기준을 가운데인 3분위로 잡아보겠습니다.

3분위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391만2800원입니다. 여기서 비소비지출(세금이나 이자비용 등)을 뺀 금액을 처분가능소득이라고 하는데 이게 319만9200원입니다. 이제 써야죠. 쌀도 사고, 옷도 사고, 병원에 가고, 영화도 봅니다. 이렇게 쓰는 소비지출이 한달에 264만3000원입니다. 그럼 55만6200원이 남네요. 이걸 가계 흑자액이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 돈을 저축하거나 부채를 갚는데 씁니다.

과연 55만6200원을 몇 개월 동안 모아야 2억3238만원(전국 평균 주택 가격)을 모을 수 있을까요? 무려 417개월입니다. 34.8년이네요. 물론 인플레이션을 감안하지 않은 계산입니다. 원금만 모으진 않을 테니 연 3% 적금(단리)에 가입했다고 칠까요? 그러면 약 313개월이 걸립니다. 환산하면 26.1년입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중간에 소득도 늘 겁니다.

해마다 가계 흑자액이 5만원씩 증가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래도 209개월, 약 17.4년이 걸립니다. 3분위에 속하는 30세 가장이라면 47세가 돼서야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집 살 돈 모으다가 평생을 보내겠다’는 말이 농담만은 아닌 셈입니다. 30~50세가 대부분 자녀양육과 부모 봉양 등으로 지출이 많은 시기임을 고려하면 돈 모으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앞으로 집을 사야 할 20~30대가 가진 부담은 생각보다 큽니다. 치솟는 전세 가격때문에라도 집을 사긴 사야겠는데 절약과 저축만으로는 답이 안 보입니다. ‘부모 도움 없이 집을 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과거와 비교해보면 지금 20~30대가 처한 어려움이 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초저금리 시대, 돈 굴릴 방법이 안 보인다

첫째, 소득에 비해 집값이 너무 비쌉니다. 제가 아는 한 선배는 1996년 서울 군자동에 있는 1억원짜리 아파트(25평)를 구입했습니다. 선배의 첫 집이었죠.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약 5년 만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 살, 연봉은 약 2000만원이었으니 집값이 약 5배 수준이었습니다. 지금 이 아파트의 매매 가격은 3억4000만원 정도입니다. 요즘 30세 직장인이 약 5000만원(사실 이 정도 받기 쉽지 않습니다)의 연봉을 받는다고 쳐도 6.8배나 됩니다. 버블 시기를 지나면서 집값은 크게 높아졌는데 소득 증가율은 그렇지 못한 탓입니다.

둘째, 자산 증식의 길이 사실상 막혔습니다. 1980~90년대라고 사는 사람 입장에서 집값이 싸다고는 생각하진 않았을 겁니다. 단 ‘가능하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좀 다릅니다.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내 집 마련 가능성을 물어보면 30% 이상이 ‘불가능하다’고 답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금리입니다. 우리나라의 가계저축률은 1990년에 25%에 달하는 등 1980~2000년 사이 연 평균 약 18% 정도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두 자릿수에 달하는 고금리가 저축 의지를 끌어냈습니다.

굳이 투자처를 고민하지 않고 은행에만 넣어도 돈은 자연스레 불어났고, 이렇게 모은 금융자산은 가계소득 증가와 맞물려 주택 구입을 위한 자금으로 쓰였습니다. 적어도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이 공식이 통했죠. 지금은 어떤가요? 적금 금리는 연 3%대, 예금은 2%대에 머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던 우리나라 가계저축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로 떨어진 이유기도 하지요. 펀드·주식·채권 등 이리저리 굴리며 잘 번다는 사람은 많은데 내 주머니는 늘 비어있습니다. 시장엔 좌절하는 개미(개인투자자)가 넘쳐납니다. 늘 그렇듯 투자 현장에서 개인은 힘이 별로 없습니다.

셋째, 집값이 오를 거란 기대를 갖기 어렵습니다. 집을 ‘살 곳’ 대신 ‘살 것’으로 본다는 것은 집을 투자 대상으로 여긴다는 뜻입니다. 투자는 오를 것이란 예상 또는 기대가 있을 때 합니다. 주식을 살 때 잃을 것을 가정하고 투자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요. 집을 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돈을 모아 사거나 대출을 받아 사거나. 요즘 전자가 어려운 이유는 위에서 살펴봤습니다.

후자도 어렵습니다. 간단합니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산다면 적어도 그 대출이자보다는 집값이 오르리란 예상이 가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1996년 1억원에 집을 샀다는 선배는 9000만원을 대출받아 집을 샀다고 합니다. 금리가 워낙 높던 시절이니 대출 금리도 10% 정도로 매우 비쌌습니다. 그래도 대출을 받습니다. 아파트 가격이 오를 거니까요.

실제로 3년 후 이 선배는 1억8000만원에 집을 팔았습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팀이 바뀌면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가 시행됐습니다. 지역·금융권 별로 차등 적용됐던 LTV와 DTI를 각각 70%, 60%로 일괄 완화했죠. LTV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때 은행에서 담보 가치로 인정해 주는 비율, DTI는 총소득에서 부채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입니다.

이렇게 바뀝니다. 서울에 있는 5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때 원래 LTV 50%를 적용 받아 2억5000만원까지만 대출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 3억5000만원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DTI 규제완화에 따라 연소득이 5000만원이면 연 대출상환액이 3000만원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하우스푸어 사태 목격한 뒤 불안감 더 커져

부동산 시장을 살려 내수활성화의 마중물을 붓겠다는 취지일겁니다. 정책 방향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나 실효성은 의문입니다. 대출 규제 완화가 집 사는 걸 두려워하는 젊은 세대를 움직일 확실한 유인이 될 지 의아한 때문입니다. 부진한 가계소득, 낮은 저축률, 과도한 가계부채를 감안하면 지금은 자기 돈으로든 타인 돈으로든 집을 사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요가 늘어야 가격이 오를 텐데 상승은커녕 떨어질까 두려운 마음까지 드니 선뜻 못 나서는 거죠.

결혼 3년차인 기자는 몇 달 전 전세금을 올려주느라 홍역을 치렀습니다. 불과 2년이었으나 그 사이 보증금은 5000만원이나 올랐습니다. 대체 신혼부부가 얼마를 벌어야 2년 새 5000만원을 모을 수 있을까요? 다행히 대출금리가 낮은 편이라 큰 부담은 없었지만 울컥 하더군요. ‘확 사버릴까!’ 그러나 두려웠고, 이내 포기했습니다. 저 같은 이들이 주변에 참 많습니다.

더구나 지금 20~30대는 2000년대 후반 대거 등장한 하우스푸어를 목격한 세대입니다. 불안감이 더 큽니다. 정부도 고민이 많은 듯합니다. 행복주택 등 젊은 층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효과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정책은 가계 소득이 올라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야 빚이 아닌 자기 돈으로 집을 살 수 있습니다. ‘부모의 도움이 곧 빈부격차’가 된 이상한 구조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볼까요? ‘살 것’의 문제가 해결돼야 ‘살 곳’이란 집의 참 의미가 되살아납니다. 제가 독일에서 본 그 집의 의미를 이 땅에서 다시 깨닫게 될 날이 올까요? 다음 번에는 ‘어느새 쏙 들어간 반값등록금’을 주제로 지혜를 모아볼까 합니다.

1250호 (201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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