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Issue | 장원석 기자의 ‘앵그리 2030’ ③ 여전히 멀고 먼 ‘반값등록금’ - 등록금 부담 ‘반의 반(23.7%)’만 줄어<5분위 대학생, 전체 대학 등록금(665만원) 기준> 

사립대생 많은데 국·공립 기준으로 장학금 지급 … 까다로운 조건, 카드 결제 거부도 문제 

, 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박현영 인턴기자
한국이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를 넘어 고령 사회가 목전입니다. 노인을 위한 사회적 준비와 배려도 점점 개선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미래 세대를 키우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현실은 좀 다릅니다. 요즘 20~30대의 삶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대학 입시라는 높은 벽을 넘으면 취업이라는 일생일대의 장애물이 놓여 있습니다. 꿈 같은 취업을 하고, 서른이 돼도 삶은 여전히 팍팍합니다. 쥐꼬리 만한 월급에 집 한 채 마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멀리 내다보면 살기에는 결혼·육아·승진 등 어깨의 짐이 너무 버겁습니다. 젊은이들이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이들의 작은 목소리를 지면에 옮깁니다.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공간이 아닌 아버지 세대와 소통하는 공간으로 이해되길 바랍니다.

“대학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분명하게 낮추겠다는 것을 확실하게 약속하고 해내겠다.” 2012년 8월 23일 전국대학총학생회모임과의 토론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당시 새누리당 후보)이 한 말입니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반값등록금’은 경제민주화만큼 뜨거운 이슈였습니다. 당시 박 대통령의 공약 중반값등록금의 위상은 대단했는데 국민행복 10대 공약 중 3번인 ‘교육비 걱정 덜기’의 한 축이 바로 반값등록금이었습니다. 경제민주화와 반값등록금의 시너지 효과는 상당했습니다. 이 공격적인 ‘좌클릭 정책’은 박 대통령이 중도 성향과 젊은층의 표를 흡수하는데 큰 역할을 했죠.

국가 장학금 늘었지만 체감 효과는…

상대방이었던 문재인 후보도 같은 정책을 내놨습니다. 용어는 같았는데 내용은 달랐습니다. 문 후보의 공약은 등록금 고지서에 찍히는 금액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것, 즉 명목등록금을 반으로 낮추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공약은 소득 분위별로 장학금을 지원해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이었죠. 박 대통령은 선별적 지원, 문 후보는 보편적 지원을 말한 겁니다. 이런 차이 때문에 ‘반값등록금’이란 용어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등록금을 납부하는 입장에서 ‘내는 돈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의미이니 그냥 쓰기로 하겠습니다.


선거의 승자는 박 대통령이었습니다. 임기 2년을 채워가는 시점에서 공약이 후퇴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공약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과연 박 대통령은 약속을 제대로 지키고 있을까요? 하나씩 따져보죠. 당시 박 대통령의 약속은 ‘2014년까지 소득 하위 80%에 속하는 대학생에게 (소득연계형) 국가장학금을 지원해 대학등록금 부담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와 소득 1~2분위는 장학금 전액 지원, 3~4분위는 75%, 5~6분위는 50%, 7~8분위는 25%를 지원한다는 내용입니다.

올해 기준으로 살펴보면 소득 3분위까지 약속은 지켰습니다. 4~8분위 역시 약속에 조금 못 미치긴 해도 지급되고 있습니다. 특히 3~5분위에 속하는 대학생도 올 2학기부터 꽤 많이 늘어난 돈을 받게 됐습니다. 한국장학재단에 장학금 신청을 하면 심사를 거친 뒤 등록금에서 장학금을 제한 금액만큼 학생이 납부하는 방식입니다. 예전 대학생들은 구경도 못해본 ‘국가장학금’이 생겨난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실제 대학생들의 목소리는 어떨까요? 서울 모 대학 인문계열에 다니는 김희철(22·가명)군은 “지난해엔 85만원 정도 받았는데 올해(2학기)는 많이 올라 168만원 정도(소득 3분위) 받았다”며 “군에 입대하기 전에는 없었던 장학금이 생겨 부모님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김군이 한 학기에 내는 등록금은 340만원 정도입니다. 약 절반 정도를 국가 장학금으로 받고 있으니 거의 ‘반값등록금’에 근접한 셈입니다. 취재한 대부분의 대학생 역시 김군과 비슷한 반응이었습니다. 액수가 많든 적든 부담이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는 점에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습니다.

지급률만 놓고 본다면 ‘박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약속대로 부담이 정말 반으로 줄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노(NO)’입니다. 왜일까요? 간단합니다. 지급액 자체가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장학금의 최대 지급액은 연간 450만원입니다. 교육부는 이 지급 기준액이 국·공립대 연간 평균 등록금(403만원)보다 많은 수준이라고 설명합니다. 정직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전체 대학생 중 국·공립대에 다니는 대학생이 얼마나 될까요?

2013년 기준 전국 대학생(재학생)은 180만8445명입니다. 이 중 28.6%인 약 52만명만 국·공립대에 다닙니다. 나머지는 사립대 학생이란 얘기죠.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등록금 차이는 얼마나 될까요? 올해 기준으로 사립대가 연 734만원이니 국·공립대보다 무려 330만원이나 많습니다. 상당수가 사립대에 다니는데 지급 기준액은 국·공립대에 맞춰 놓고 지급률만 공약에 맞추고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소득 5분위인 대학생 A씨는 1년 동안 157만5000원(2014년 기준)의 국가장학금을 받습니다. A씨가 국·공립대에 다닌다면 평균 등록금 403만원의 39.0%를 장학금으로 충당하는 셈입니다. 교육부의 설명과 비슷한 수치입니다. 그러나 사립대학(등록금 734만원)에 다닌다면 장학금 비중은 21.4%로 뚝 떨어집니다. 전체 대학 평균(등록금 665만원)으로 계산해도 23.7%에 머뭅니다. ‘반값’이 아니라 ‘반의 반값 등록금’이라고 해야 맞겠군요. 이번 학기에 120만원 정도의 국가장학금으로 받았다는 한 대학생의 부모님은 “올랐다고 했는데 등록금의 3분의 1에 못 미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정확한 반응입니다. 이 가정은 소득 4분위에 속합니다. 연 247만5000만원의 국가장학금을 받는데 등록금은 연 800만원 정도랍니다.

조건도 꽤 까다롭습니다. 일단 이수학점 제한이 있습니다. 직전 학기에 12학점 이상 이수한 학생들이 대상입니다. 요즘 취업 준비를 하려 졸업을 미루고, 학점을 나눠 듣는 학생들이 많죠? 자칫 마지막 학기엔 장학금을 못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국가장학금은 소득기준을 충족한다고 모두에게 주는 돈이 아닙니다. 성적이 100점 만점에 80점 이하면 못 받습니다. F학점이나 이수 후 포기과목을 포함해 백분위로 성적을 산출합니다. 대학생 성적 기준으로 C+ 이하면 못 받는 거죠. 이런 학생들이 전체

대상자의 약 25~30%에 달합니다. 올해부터 기초생활수급자와소득 1분위에 한해 1회 경고 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C학점 경고제’를 시행하지만 나머지 학생은 대상이 아닙니다.



학점 모자라 국가장학금 못 받는 대학생 약 25%


“하루에 4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해야 용돈을 쓰고, 다음 학기등록금에 보탤 수 있어요. 그래도 공부할 사람은 다 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몸이 너무 힘들어 시험기간에 집중할 수 없었어요. 악순환 같아요. (장학금을) 같이 안 받을 때야 별 생각 없었는데 나만 못 받으니 억울한 생각마저 들었어요.” 이번 학기 국가장학금을 받지 못했다는 한 대학생의 솔직한 토로입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성적 관리를 못한 탓에 혹 장학금을 못 받을까 걱정하는 학생들이 꽤 많습니다. 오히려 저소득층이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소득층(기초~3분위) 장학금 지급율은 빠르게 높아졌는데 중간층(4~6분위)은 그렇지 않은 탓에 이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큰 상황입니다. 여러모로 제도를 손봐야 할 듯합니다.

논쟁의 처음으로 돌아가보죠. ‘반값등록금’을 시행해야 한다고 하면 여전히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이 비싸지 않다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비쌉니다. 엄밀히 말해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보다 등록금이 비싼 나라는 미국뿐입니다. 지난해 교육부는 ‘2013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를 인용해 세계 2위였던 한국 대학 등록금이 세계 4위로 내려갔다고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정부 정책 때문에 등록금이 부담이 낮아진 것처럼 발표한 건데 여기엔 교묘한 꼼수가 있습니다.

OECD가 발표한 세계 사립대 등록금은 미국(1만7163달러)·슬로베니아(1만1040달러)·호주(1만110달러)·한국(9383달러) 순이었습니다. 국·공립 기준으론 아일랜드(6450달러)·칠레(5885달러)·미국(5402달러)·한국(5395달러)순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립대 2위 슬로베니아는 단 1%의 학생만이 사립대학에 다닙니다. 3위 호주 역시 사립대에 다니는 학생 비중이 4%밖에 안 됩니다. 70%가 사립대에 다니는 우리나라와 비교할 통계가 아닌 거죠. 국·공립 통계 역시 그렇습니다. 아일랜드는 명목등록금 액수가 6450달러라는 거지 그 돈을 학생이 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일랜드는 전일제 학교에 다니는 자국과 유럽연합(EU) 학생의 등록금을 정부가 냅니다. 칠레는 국·공립이 사립대보다 훨씬 많습니다. 사립대 비중이 매우 큰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하는 건 애초부터 틀린겁니다.

이 참에 세계 1위 미국도 살펴보겠습니다. 미국 대학의 등록금이 우리나라보다 비싼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미국에 비해 싸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4만5000~5만 달러 정도되는 아이비리그 대학의 등록금을 포함시켜 미국 대학 평균 등록금이 3~4만달러에 달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이비리그에 다니는 대학생은 미국 전체 대학생의 1%도 안 됩니다. 게다가 이들 대학은세계 대학 평가 순위 10위권에 포함되는 명문 대학입니다. 수업의 질, 장학금 지급률, 학습 여건 등에서 우리 대학과 비교가 안 됩니다.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많은 돈을 받겠다는 미국식 경제의 전형일 뿐 우리 대학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문제가 아닙니다. 2012년 기준으로 미국 4년제 공립(주립대학)의 경우 8000~1만 달러, 사립대학은 2만5000~3만 달러입니다. 2.2배인 국내총생산(GDP) 격차를 감안해 국·공립 대학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고, 사립대학만 2배 정도 비싸다고 보는 게 정확합니다.

반대로 등록금을 내지 않고 대학에 다닐 수 있는 나라도 꽤 많습니다. 독일이 대표적이죠. 예전부터 등록금을 받지 않았던 독일은 몇 년 전 일부 대학이 약 70만원의 정도의 등록금을 받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대학생들은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안 내던 돈 70만원을 내야 해서가 아닙니다. ‘왜 배움에 돈을 지불해야 하느냐’는 기본적인 질문을 던진 겁니다. 독일 기성세대와 정치인들은 대학생의 편에 서줬습니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다음 시대를 살아갈 젊은 세대가 마음껏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등록금 신설은 없었던 일이 됐습니다.

미국의 국·공립 등록금 한국과 비슷

단순히 등록금이 ‘비싸다’, ‘싸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육을 바라보는 철학의 차이가 한국과 독일의 차이입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집 자식이 공부도 잘한다’는 슬픈 시대를 사는 이유도 이런 철학의 차이 탓이 큽니다. 당장 이런 철학 격차를 해소할 수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죠.

정부의 고충도 이해합니다. 교육에 하는 투자는 바로 결과가 보이지 않습니다. 당장 돈 쓸 곳도 많은데 꼭 대학 등록금에 나랏돈을 써야 하느냐는 비판도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등교육 예산은 여전히 GDP의 1%에도 못 미칩니다.OECD 국가 평균에 한참 모자라죠. 결코 과도하게 쓰고 있는건 아니라는 점,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얼마 전 “대학의 명목등록금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장학금을 지급하는 현 제도에서 더 나아가 등록금 인하 혜택이 모든 대학생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등록금 자체를 낮추겠다는 뜻입니다. 현재 전국 대학 등록금 총액은 약 14조원입니다. 올해 정부는 3조7000억원 가량을 장학금으로 씁니다. 내년에 이를 4조원까지 늘리고, 대학의 장학금 3조원을 더해 7조원을 만든 뒤 명목등록금을 반으로 낮추겠다는 구상입니다.

그런데 의문입니다. 대학이 과연 3조원을 내놓을까요? 한 번 내면 해결되는 기금도 아니고, 매년 3조원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못합니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입니다. 아예 3조원만큼 등록금을 낮추면 됩니다. ‘반값등록금’을 실현할 의지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장학금을 늘릴 게 아니라 대학의 등록금부터 손봤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이 어떤 곳인가요? 대학을 ‘장사치’로 볼 수밖에 없는 사례가 있습니다. 등록금은 카드 결제가 힘듭니다. 국내 대학 중 등록금 카드 결제를 허용하는 대학은 3분의 1이 채안됩니다. 편의점에서 1000원짜리 콜라 하나를 사도 카드를 쓰는 나라에서 300만~400만원이나 되는 등록금은 현금으로 내랍니다. 수수료 때문이죠. 지난 18대 국회 때부터 논란이 됐던 내용이지만 법안 통과는 지지부진하고, 대학들은 말을 안 듣습니다. 알아보니 등록금의 카드 결제 수수료율은 약 1.2% 정도더군요. 300만원을 내면 3만원 정도입니다. 입학도 안 한 지원자에게 매년 수십 억원의 전형료부터 받는 대학이 이 수수료 몇푼은 아까운 모양입니다. ‘할부로 낼 수 없겠냐’는 얘기라도 했다간 정말 크게 혼날 판입니다.

왜 대학이 문제일까요? 우리나라 많은 대학은 경영이 투명하지 않습니다. 비교적 재정 상황이 좋다는 대학은 재단적립금이란 명목으로 과도하게 돈을 쌓아둡니다. 주로 건물 신축 등에 쓴다는데 제대로 썼다면 10조원 넘게 쌓였을 리 없습니다. 이돈으로 금융 투자에 나섰다가 손실을 보는 일도 허다하죠. 등록금을 자신의 ‘주머닛돈’으로 생각한 이사들이 저지르는 사학비리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 이런 부패한 대학 중 상당수가 매년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금을 받아왔습니다. 기업처럼 공시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경영에 실패한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되지만 수 년 간 누적된 적자에 시달려도 대학은 퇴출이 어렵습니다. 이미 거대 권력으로 커버린 대학은 어지간한 압력에 굴복하지도 않습니다.

‘등록금 인하’ 함께 가야 진짜 반값등록금 가능

선거에 이용했든 아니든 많은 이가 ‘반값등록금’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 정도의 진전도 없었을 겁니다. 대학이 등록금 인상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고, 국가장학금 도입도 더뎠을 겁니다. 부실 대학 구조조정 역시 속도를 내지 못했겠죠. 여전히 갈 길은 멉니다. 지금부터라도 장학금 인상과 등록금 인하가 함께 가야 효과가 납니다. 결국 부실한 대학을 크게 흔들지 않으면 제대로 된 ‘반값등록금’은 어렵습니다. 다음 번에는 ‘우리나라엔 왜 청년당이 없을까?’를 주제로 지혜를 모아볼까 합니다.

1252호 (2014.09.08)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