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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법인 바뀌자 흑자가 대규모 적자로 

주가 30% 넘게 폭락 … 일각에선 분식회계 의혹도 

투자자 울린 한신공영 ‘회계쇼크’


1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한신공영 빌딩.
지난 9월 1~2일은 한신공영의 주주들에게 악몽 같은 날이었다. 주가가연 이틀 하한가로 30%나 빠진 탓이다.


한신공영은 24만세대가 넘는 아파트를 건설해 온 중견기업이다.
주가 폭락은 다음날에도 계속됐다. 갑작스런 폭락에 놀란 투자자들의 투매가 이어졌다. 9월 1일부터 3일까지 기관 물량만 150만주가 쏟아졌다. 한국밸류자산 운용을 비롯한 운용사들의 물량이 대량 출회됐다. 이 과정에서 개인투자자뿐만 아니라 외국인·기관투자자도 큰 피해를 입었다. 장 시작부터 종료까지 하한가를 기록했던 지난 9월 2일 외국인은 8만7000주,기관은 52만3000주를 순매도 했다. 다음날에도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2만3000주, 96만4000주를 팔았다. 평소 1만4000원대를 유지하던 주가는 순식간에 1만원대로 급락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한신공영의 주가 급락은 회계 변경에 따른 손실 반영의 결과다. 한신공영은 8월 29일 장 마감 후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정정 공시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3억8900만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이 33억2100만원의 당기 순손실로 바뀌었다. 2012년 당기순이익도 159억2400만원에서 54억280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재무제표 수정으로 부채비율은 기존 250%에서 600%로 치솟았다. 한신공영 관계자는 “도급사업으로 분류했던 안산사업장이 자체 사업으로 평가되면서 시행사가 인식하 는 금융비용과 분양·임대수 수료가 2009~2013년 실적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한 투자자는“회사의 해명은 마치 지난 5년 간 대놓고 분식회계를 해왔다는 말과 같다”며 “상장기업이 금융감독원 공시를 통해 밝힌 실적을 하루 아침에 수정할 수 있다면 누가 공시를 믿고 투자할 수있겠나”고 지적했다.

한신공영은 국내 건설 업계 시공능력평가 기준 24위의 중견기업이다. 이번 사건이 불거진 이유는 지난 5년 간 금감원에 제공한 회계 자료에 문제가 있어서다. 더구나 금감원에 공시된 자료에 오류가 있었음에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결국 피해는 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회사 측의 해명에도 일각에서는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간 감사를 맡았던 EY한영회계 법인도 부실 감사 논란에 휩싸였다.

“공시 믿고 투자했는데…”

EY한영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 간 한신공영의 회계감사를 맡아왔다. 올해 들어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가 한신공영의 우선주를 관리종목으로 지정했다. 유통물량이 크게 줄어서다. 이에 따라 증선위는 새로운 감사인으로 삼일회계법인을 지목했다. 감사 결과 삼일은 한신공영의 안산 유통상가의 손실을 회계자료에 반영했다. 그동안 회계감사를 맡아온 EY한영은 안산상가의 시행사인 위트러스트에셋이 다른 회사라는근거를 들어 이 사업을 단순 도급사업으로 분류했다. EY한영관계자는 “실적을 잘못 올린 과정에서 고의성은 전혀 없었고, 피감사인이 준자료를 근거로 감사를 진행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자료 : 금융감독원
하지만 삼일은 한신공영이 안산상가의 사업시행권을 보유한 점과 위트러스트에셋과 수익과 위험 부담을 공유하고있는 점을 감사에 적용했다. 건설 공사에서 도급사가 사업에 따른 보상과 위험을 모두 부담한다면 실질적 사업 주체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한신공영과 위트러스트에셋의 특수관계도 주목할 점이다.

지분 49%를 보유한 최완규 위트러스트에셋 대표는 최용선 한신공영 회장의 차남이다. 한신공영은 위트러스트에셋의 단기 차입금 6500만원에도 지급보증을 선 상태다. 삼일이 위트러스트에셋이 진행한 공사를 한신공영의 자체 공사로 해석한 근거다. 삼일은 한신공영이 2008년에 사업권을 매입한 경기도 안산 전문공구유통상가의 손실을 반영했고 이 결과 5년 간 한신공영이 올렸다는 흑자는 사라지고 적자만 남게 됐다.

업계에선 이번 사건을 기업과 회계법인 사이에서 벌어진 ‘짬짜미 감사’로 보는 견해도 있다. EY한영이 한신공영과 위트러스트에셋의 관계를 파악하고도 그냥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회계 업계 한 관계자는 “각 기업이 경쟁입찰을 통해 감사인을 지정하기 때문에 회계법인 간 영업전이 치열하다”며“수주를 주는 기업의 눈치를 보며 회계 감사를 느슨하게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회계법인의 감사품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섰다. 그동안 금감원은 기업이 회계처리를 투명하게 진행하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춰왔다. 앞으로는 회계법인의 감사 품질에 관심을 두고 부실 감사 가능성을 줄여 나가겠다는 취지다. 예컨대 감사 품질이 기준에 못 미치면 다른회계법인에게 감사를 의뢰하는 동시에 해당 법인을 감사인에서 배제한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금융위의 회계법인 감사 품질 관련 법안이 구체화되는 대로 지정 감사인 배정을 위한 ‘회계 및 외부감사 규정’ 개정 작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일부 회계법인의 외부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감사 품질을 제고하기 위한 조항이 포함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개정안은 조만간 정부 입법안으로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나섰지만 증권가에선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평가가 나왔다.이미 수많은 투자자들이 피해를 봤지만 이를 보전할 방법이 없다. 증권가에선 이번 회계 오류 사건은 정말 질이 나쁜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수주산업인 건설업은 수주 시점부터 분기마다 수익을 반영하되 시간이 흐르면서 비용이 증가해 어닝 쇼크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건설 업종은 회계오류가 빈번한 업종이어서 금감원 회계감리의 주요 타깃이다. 장기 공사 계약에 대한 이익과 손실 반영의 일관성, 퇴직금 부채 산정에 대한 적정성, 영업권 등 무형자산의 회계처리, 자본성격 등이 모호해 조금만 감사를 소홀히 해도 금융 사고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뒤늦게 대책 마련 나선 금융당국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5년 간 쌓은 부실을 한번에 쏟아내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지난해 문제가 됐던 GS건설이나 삼성엔지니어링의 경우 수주 후 비용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닝쇼크가 발생했다. 하지만 한신공영처럼 장기간에 걸친 손실 반영이 기습적으로 이뤄진 경우는 없었다. 회사 측에서 의도적으로 움직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신공영은 공식적으로 분식 회계가 아닌 ‘회계 오류 정정’이라는 입장이다. 부실을 털었기에 기업 구조가 더욱 탄탄해졌다는 주장도 했다. 하지만 한신공영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시선이 고울 수 없다. 한신공영에 투자했던 한 펀드매니저는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까 회계 처리를 느슨하게 반영해왔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제 회사 사정이 좀 나아질 만하니까 한 번에 터뜨린 것으로 보이는데 주주를 기만한 행위이자 시장 질서를 교란한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1253호 (201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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