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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폐기물 저장소 10년 후면 포화상태 

‘방폐장 논란’ 재점화 … 공론화 등 대책 마련 시급 


지난해 신월성 발전소가 완공돼 국내에서 운용 중인 원전은 23기로 늘었다.
발등의 불 ‘사용 후 핵연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2016년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월성(2018년)·영광(2019년)·울진(2021년)·신월성(2022년) 순으로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이 꽉 찬다. 사용후 핵연료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연료로 사용하고 난 다음 인출한 우라늄 연료다발이다. 1978년 고리원전 1호기가 처음 가동된 이후 올해 1분기까지 국내 원전 23기에서 발생한 사용후 핵연료는 총 39만 6884다발이다. 이미 전체 저장고의 수용 용량 52만 1627다발 가운데 76.1%가 채워진 셈이다. 사용 후 핵연료는 현재 한국수력 원자력이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 시설에서 보관·관리하고 있다.

2013년에 발생한 사용 후 핵연료가 1만 4140다발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8년이면 저장고가 꽉 차게 된다. 임시저장 중인 사용후 핵연료 간 간격을 30cm에서 24cm로 줄이고(조밀랙), 임시저장고의 사용후 핵연료를 아직 공간 여유가 있는 다른 원전 저장소에 옮기는 고육책을 쓰더라도 2024년이면 완전 포화상태가 된다. 앞으로 10년이면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할 자리가 없다.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 관계자는 “지금 필요한 것은 임시 방편이 아니라 항구적으로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할 수 있는 처리시설”이라며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수원 관계자도 “전력 생산량을 줄이면 기한을 몇 년 연장할 수는 있지만 한국 소비 전력의 27%를 담당하는 원전을 대처할 방안은 지금 없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자료: 사용후 핵연료공론화 위원회
저장 효율 높여도 2024년에 포화상태

원전 가동 중단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추가 저장시설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해법 마련이 쉽지 않다. 위험 시설이란 부정적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다. 경주에 핵폐기물 방폐장 설립을 결정하기까지 전국이 부지 선정을 놓고 홍역을 치른 일도 있다. 한·미 원자력협정 탓에 재처리를 임의대로 하기 힘든 현실도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를 어렵게 한다. 재처리 폐기물 양을 줄이면 저장공간 포화 시기를 늦출 수 있다. 하지만 한·미 원자력협정이 발목을 잡는다. 핵물질을 재처리 할 때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협정 개정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미국은 여전히 반대 입장이다. 핵무기 개발로 이어지는것을 우려해서다. 미국과 함께 핵무기로 전환이 어려운 재처리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실제로 적용하기는 기술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정부는 지난해 10월 민간 전문위원들로 구성된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올해 말까지 여론을 수렴한 처리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먼저 민간전문가 15명에게 연구를 의뢰했다. 전문가들은 지난7월 기존 원전 부지 내에 저장시설을 짓는 것이 가장 실현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서를 공론화위에 제출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기술력을 감안했을 때 영구처분·재처리·재활용 중 어떤 방식도 도입하기 어렵다”며 “기존 원전 부지에 추가 저장공간을 확보하면 원전 건설 당시 관련 규정과 절차가 이미 적용돼 별도의 부지 요건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현실적인 방안이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다. 저장시설 추가 건설을 위해 무엇보다도 지역주민의 동의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안면도·굴업도·부안에서 극심한 지역갈등을 겪은 경험이 있다. 한 원전학계 관계자는 “공론화위원회뿐만 아니라 정책 입안자들이 직접 나서서 사용후 핵연료 처리 시설이 왜 필요한지, 그걸 마련할 경우 어떻게 저장·관리할 것인지 등 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며 “시민·환경단체들도 만일 반대한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대안이 있는지를 제시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용후 핵연료 관리는 원전 선진국에서도 풀기 힘든 문제였다. 미국은 2002년 원자력 폐기물 최종 처리장으로 네바다주의 유카마운틴을 선정했다. 하지만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를 중단시켰다. 지역주민의 강력한 반대와 네바다 주정부의 거부권 행사가 이유였다. 유카마운틴 처리장이 중단된 이후 미국 사회는 극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영국도 셀라필드 지역에 유치했던 중준위 처분장 건설이 지역의회와 주민의 반대로 1997년 취소된 바 있다. 이들 국가에서 문제를 풀기 위해 들고 나온 방법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공론화였다.

지역 주민의 합의를 이끌어 내며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선진국에선 공론화 통해 문제 해결


미국은 2010년 각계각층 전문가 15인으로 구성된 블루리본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회는 2년 간 활동하며 관리시설 부지 선정 및 집중식 중간저장시설 건설, 2048년 심지층 영구처분장운영 등을 결과물로 내놨다. 영국 의회도 1999년 주민합의를 원칙으로 하는 정책을 시작했다. 2003년 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를 발족해 2년 11개월 간 공론화를 진행하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갔다. 미국 샌디아 국립연구소의 핵연료 전문가인 켄소렌슨 박사는 “견제와 균형을 갖춘 투명한 규제 절차가 안전한 핵폐기물 처리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고리 원전 방페물 저장고.
캐나다 정부도 사용후 핵연료 처리 시설 건설을 위해 먼저 방사성폐기물관리 전담기관을 먼저 설립했다. 기관 운영 위원회는 원자력, 인문사회,NGO, 갈등관리 전문가 등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2002년부터 3년 동안 공론화를 추진하며 30년간 소내 저장→30년간 중앙집중식중간저장→심지층처분이란 절차를 제시하며 국민공감을 이끌어 냈다.

가장 최근 공론화에 성공한 국가는 프랑스다. 유럽의 원자력 강국인 프랑스지만 원전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프랑스는 2012년 사용후 핵연료 영구 처분에 관한 국민토론회의를 열고 공론화 과정을 진행했다. 2년여의 논의 끝에 최종 권고안을 지난 6월 최종 확정했다. 끌로드 베르네 프랑스 공공토론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국민토론회를 통해 대중이 요구하는 모든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향후 불미스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며 “국민들이 자기 의사를 최대한 표현하는 것이 성공적인 공론화의 첫 걸음”이라고 말했다. 실제 프랑스의 국민토론회에서는 사용후 핵연료와 직접 관련이 있는 지역 주민들에게 심층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일례로 18만 가구가 살고 있는 뷰흐 지역의 경우 주민수에 해당하는 18만부의 정보지를 배포했다.

이들 국가의 공론화 사례에서 눈길을 끄는 점은 지역주민, 원전근로자, 환경단체, 종교단체 등 각계각층의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공론화를 추진하며 공론화토론회, 대학생토론회외에 과학기술계, 인문사회계, 원자력계 토론, 국제 심포지엄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으나 국민적 관심이 현저히 떨어진 상황이다. 그래서 내실 있는 결과를 위해서는 공론화와 국민의 적극적 참여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조성경 공론화위 대변인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용후 핵연료 처리 방안에 대한 국민 의견을 모은 뒤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에서 원전 중단 사태를 막는 해법은 민심을 어떻게 다독일 수 있느냐로 이어진다. 공론화위가 8월 20~27일까지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존 원전의 저장시설 확충에 대해 절반 이상(50.3%)이 찬성했다. 다른 지역의 새 저장시설 마련에 찬성한 의견(39.9%)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사용후 핵연료 건설지역주민에 대한 지원책으로는 공공기관·기업유치(73.8%)를 택한 의견이 가장 많았던 반면 현금 지원(40.8%)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지역민의 관심이 당장의 혜택이 아닌 지역발전에 있다는 의미다.

현재 공론화위에는 5개 원전부지 지역 대표가 위원으로 참석하고 있다. 여론 조사에 대해 경북 울진의 송재원 위원은 “국가적으로 생각할 때는 기존 원전 부지를 확장해 보관하는 게 나을것”이라며 “정부가 먼저 적절한 보상책을 제시한 뒤지자체가 주민 설득에 나서는 단계적 동의 절차를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저장시설 건설에 6~7년 걸려

사용후 핵연료 관리 방향을 정한 다음에도 시급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현재 사용후 핵연료 관리는 로드맵조차 없는 상황이다. 경주 지역이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로 정해지기 까지 19년이 걸렸다. 지금 당장 부지 후보자를 선정해도 과연 10년 안에 새로운 방폐장을 건설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공론화위 관계자는 “원전 저장시설 건설에 6~7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하루라도 빨리 기존 부지 확충안과 새 부지 선정안 가운데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두승 사용후 핵연료 위원장



“우리 세대에서 처리 문제 결론내야"

“친핵이던, 반핵이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나라는 원자력 발전을 하고 있다는 것, 둘째는 원자력 발전을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사용후 핵연료가 발생한다는 것, 그리고 셋째는 임시 저장시설공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홍두승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은 2년 가까이 첨예한 갈등의 한복판에 서있었다. 사용 후 핵연료 부지 선정과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최전선에서 방사성 폐기물을 둘러싼 갈등을 목격했다. 그의 임무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검토해 연말까지 산업통상자원부에 최적의 사용후 핵연료 관리 방안을 찾아 권고안을 내는 일이다. 그는 2005년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시설 부지선정 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갈등을 봉합했던 경험이 있다. 홍 위원장은 사용후 핵연료를 포함한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건립 과정에서 강한 저항과 반대가 나오는 원인을 소통 부족에서 찾는다. “정부 입장에서 주도하다 보니 저장소 인근에서 살아야 하는 당사자들의 입장을 반영하지 제대로 못했습니다. 이번에 공론화위원회를 만든 것은 정책 민주주의로의 패러다임 전환입니다. 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최선의 방안을 찾을 생각입니다.”

지난 20 년간 한국 사회는 방사성폐기물 처분장과 관련해 커다란 갈등을 겪었다. 여기에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원자력 발전에 대한 국민들의 경계심이 더욱 커졌다. 홍 위원장은 안전성은 공론화위원회가 사용후 핵연료 처리 방안 모색에서 가장 중시하는 절대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이야기는 안전이 보장된 다음에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크게 5가지 범주의 현안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 관리 주체와 저장 용량 초과분, 재처리, 최종 처분, 그리고 안전이다. 어느 것 하나 민감하지 않은 게 없다.

홍 위원장은 “현실적으로 모든 이해관계자를 만족시키는 합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다양한 의견을 듣고 충분한 논의와 숙고를 통해 균형적인 최선의 안을 도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공론화위원회는 정확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논의의 장을 열어 사회적 의견을 모으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홍 위원장은 강조했다.

공론화를 마무리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홍 위원장도 이에 공감했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를 뒤로 미루기 힘들다고 대충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는 사용후 핵연료는 우리 세대가 책임지고 답을 내야할 문제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홍 위원장은 “필요하다면 공론화 기간은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할 필요도 있다”며 “시간에 쫓겨 성급한 결론에 이르는 일은 없도록 최대한 균형을 잡아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1254호 (201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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