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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전문기자의 은퇴 성공학 - 자식 농사가 보람? 인생의 리스크 

저성장·고령화로 교육투자 효율성 떨어져 사교육비 줄이고 노후준비 나서야 

서명수 전문기자

‘자녀 리스크’란 말이 있다. 노후 준비를 희생하며 자녀에게 돈과 노력을 쏟아 부었지만 다 커서도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채 부모에게 부담이 된다는 뜻이다. 자녀를 키우는 게 보람은 커녕 삶의 위험 요인이 된다는 건 자식 농사가 인생의 성공 공식이던 시절이 저물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저성장과 고령화의 그늘이다. 이를테면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잡지 못하는 아들이 있다면 용돈 정도는 대줘야 한다. 은퇴 전이라면 모를까, 팍팍한 노후생활은 더욱 주름살이 갈 수밖에 없다. 더구 나 한술 더 떠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거나 해외 유학을 보내달라고 하면, 부모 입장에서 나 몰라라 할 수 없으니 어렵게 모아 놓은 노후자금을 헐어 써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못 말리는 교육열

우리나라 사람은 자식에 대한 가치관이 유별나다. 예로부터 좋은 부모의 조건은 자식에 대한 끝없는 내리사랑이다. 입을 것 제대로 못 입어도 자식만큼은 고급 옷 사 입히고 물로 허기를 채울지언정 자식에겐 끼니마다 쌀밥을 먹이는 부모가 부지기수였다.

더욱 못 말리는 건 교육열이다. 인생을 걸고 자녀교육에 올인 하다시피 한다. 대학등록금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성향이 강해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엄청난 돈을 자녀 교육에 투자한다. 30~40대엔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사교육에 돈을 쓰고 50~60대에는 자녀의 대학등록금과 결혼비용을 위해 돈을 쓰느라 허리가 휜다.

슬슬 노후 준비에 나서야 할 시기지만 자녀의 교육비 지출이 상승하면서 둘 중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 대부분 높은 교육열에다 자녀교육만큼은 남에게 뒤질 수 없다는 경쟁심 때문에 부모의 노후 준비는 뒷전으로 밀리고 만다.

요즘은 결혼 연령이 뒤로 미뤄지면서 덩달아 출산도 늦춰져 자녀가 대학을 채 마치기도 전에 직장에서 정년을 맞는 사례가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은 평균 28.7세에 결혼해 29.9세에 첫아이를 낳고 둘째는 31.6세에 낳는다. 결혼할 때 남성의 나이가 세 살 정도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은퇴 시점과 자녀의 대학 재학 시기가 겹치게 된다.

자녀 교육에 관심이 크다 보니 교육비 지출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교육비 지출 비율은 7.6%로 OECD 평균(6.3%)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더구나 민간 부문의 지출 비율은 OECD 평균(0.9%)보다 3배 이상 높은 2.8%로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만약 학원비라든가 음성적인 과외까지 포함시키면 사교육비 비율은 OECD 평균의 5배 이상을 될 것으로 추정된다.

학부모들 대부분은 교육비 부담에 허덕이면서도 ‘남들 다 쓰는 교육비를 나만 쓰지 않을 배짱은 없다’며 답답해 한다. 일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효율성이다. 과연 투자한 만큼 성과가 있느냐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교육 경쟁력이 형편없이 떨어진다는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하다 못해 기초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나라가 한국이다. 그렇게 투자를 아끼지 않았건만 성과는 창피할 정도다. 자녀 교육에 헛돈을 썼다는 불편한 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교육비 지출 비율 자료: OECD
‘에듀푸어’면 ‘실버푸어’ 각오해야

과거에는 평균 수명이 짧아 자녀에게 돈을 쏟아 부어도 그럭저럭 생을 꾸려갈 수 있었다. 조금 무리해서 좋은 학교에 보내면 좋은 회사에 취직했고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자녀가 부모를 봉양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리스크란 험악한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부모가 빚을 내서 사교육을 시키고 명문대학을 보내도 좋은 회사에 취직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좋은 회사에 취직해도 정년까지 다닐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평생직장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성공의 보증수표였던 ‘사(士)’달린 직업조차도 일자리가 줄고 있는 세상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은 “이젠 월급쟁이도 자영업자처럼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할 정도다.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한다 해도 여전히 독립하지 못해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 사는 캥거루족이 넘쳐나고 있다. 봉양은 바랄 수 없고 늙은 부모가 다 큰 자녀를 평생 뒷바라지해야 처지가 된 것이다.

100세 시대를 말하는 요즘이다. 과거에는 자녀가 취직하면 평균 5년 정도 봉양을 받으면 됐지만 평균 수명이 늘어난 지금은 자녀의 독립 이후에도 30년 이상을 살아가야 한다. 그 기간 동안 자녀가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면 좋겠지만 자녀 입장에선 어린 자녀와 늙은 부모를 동시에 장기간 돌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 세대처럼 자녀에게 모든 걸 걸고 자신의 노후를 책임져 달라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공식이 됐다. 어쩌면 노후 부담을 자녀에게 지우지 않는 것만 해도 훌륭한 부모랄 수 있다. 그게 자녀의 성공을 도와주는 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노후설계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자녀교육에 올인하 지 말라고 조언한다. ‘에듀푸어’로 살다간 ‘실버 푸어’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과외비 등 지나친 사교육비 지출을 줄이고 대신 노후에 해외 여행이라도 갈 돈을 모으는 등 자신을 위한 투자를 늘리라는 말이다. 자녀에 의지하지 않고 여유로운 삶을 꾸려가는 노후, 그게 멋지고 존경 받는 인생이다.



노후준비 갉아먹는 교육비 - 교육투자와 노후준비 균형 맞춰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간한 ‘연령별 소비성향의 변화와 거시경 제적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40대는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처분가능소득의 평균 14%를 자녀 교육비로 지출했다.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가구들로 한정할 경우 1인당 교육비 지출은 처분 가능소득 대비 2003년 8%에서 2013년 10% 정도까지 증가했다. 교육비 지출이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이와 달리 미국의 경우 40대 가구 기준으로 처분가능소득의 약 2.1%를 자녀 교육비로 지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40대의 교육비 지출 비중이 7배가량 큰 셈이다.

보고서는 이 같은 한국 장년층의 자녀 교육비에 대한 과도한 지출이 향후 노후대비를 위한 저축을 제약하는 매우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축을 늘려 노후를 대비해야 하는 시기에 저축이 부족하고 이는 노년층의 소비성향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보고서는 소비성향의 하향 조정은 은퇴시점이 가까워질수록 뚜렷해진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배우자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 지고 있는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한국 맞벌이 가구 비중은 2003 년 35%에서 2013년 38%로 상승했다. 50대 증가폭이 10%포인트로 특히 컸다. 보고서는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과 비효율적인 과잉교육을 제어할 수 있도록 정비돼야 하고 가계 역시 자녀에 대한 투자와 노후대비저축 간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1257호 (20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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