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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연비 vs 안전에 희비 엇갈리는 신차 개발 전쟁 - 경량화냐? 안전이냐? 두 토끼 잡기 딜레마 

BMW 5 시리즈 미 IIHS로부터 충돌 때 다리 치명상 판정 받아 안전도 높인 제네시스는 최상위 ‘우수’ 받았지만 중량 늘어 연비 나빠져 


현대차의 신형 제네시스가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의 충돌 테스트에서 29개 전 항목 만점을 받았다. 스몰 오버랩 충돌 테스트 후의 모습으로 운전석 공간은 온전하다.
#1. 지난 10월 초 일부 자동차 사이트를 중심으로 “BMW 5시리즈 타다 사고 나면 무릎팍 병신이 된다”는 괴담이 돌았다. 갑자기 무슨 괴담이냐고 궁금한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이 소문의 근원은 이렇다. 10월 2일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 협회(IIHS)는 BMW 5시리즈의 스몰 오버랩(Small overlap) 테스트 결과를 ‘미흡(Maginal)’으로 발표했다. 주석에 “비슷한 사고가 났을 때 각종 부품과 구조물이 운전석으로 침범해 왼쪽 다리 아래쪽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몰 오버랩은 차량 전면부 가운데 모서리에 해당하는 25% 부위만 고정벽에 충돌시키는 테스트다. BMW 같은 고급(프리미엄) 브랜드가 이런 충돌 테스트에서 수준 미달을 받은 것은 극히 드물다.

#2. 현대자동차는 지난 10월 13일 서울 도산대로 사거리에 있는 ‘현대 모터 스튜디오’ 건물에 갑자기 스몰 오버랩 충돌 시험을 한 제네시스를 전시했다. BMW 5시리즈와는 반대로 올해 5월 IIHS의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서 최고 등급(G)을 받은 것을 고객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전시된 제네시스는 올해 7월 경기도 화성의 현대·기아 남양연구소에서 소비자를 대상으로 충돌 시험을 했던 차량이다. 이곳 관계자는 “고객들이 전시된 제네시스를 보고 수입차보다 안전도가 우위라는 것을 알고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전했다.


*수치는 충돌 시험에서 나타난 피해 결과로 작을수록 충돌에 안전하다는 의미. / 자료: www.iihs.org
IIHS 충돌 테스트 결과가 속속 나오면서 자동차 업체마다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IIHS 테스트는 차량 안전도의 바이블로 불릴 정도로 신뢰도가 높다. 미국 소비자 구매와 자동차 보험료 산정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해마다 연구개발비로 수조원에서 수십 조원씩 쓴다. 제조 원가에서 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을 정도다. 이 가운데 상당 부문이 안전도와 연비 향상을 위한 연구 에 들어간다.


*한국 판매차 기준, 자료: www.iihs.org
요즘 자동차 회사들이 신차를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포인트가 ‘경량화’다. 가벼울수록 연비가 좋아진다는 물리학 법칙 때문이다. 역으로 경량화의 가장 큰 적은 ‘안전도’다. 가벼우면서도 각종 안전 테스트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게 신차 개발의 목표지만 이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뛰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처럼 난제다. 안전도를 위해 경량화를 일부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연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경량화를 추진하다 안전을 놓칠지 선택해야 한다. 두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차가 요즘 시대의 명차(名車)가 되는 것이다.

이번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서는 링컨 MKS가 가장 나쁜 등급인 P를 받았다. 동급차량 가운데 G를 받은 모델은 현대 제네시스, 볼보 S80, 벤츠 E클래스, 인피니티 Q70 등에 불과하다. IIHS의 스몰 오버랩 테스트는 시속 64km의 속도로 차량 운전석 앞 부분의 25%를 장애물과 충돌시켜 차체 구조와 신체 상해 정도(머리·목·가슴·엉덩이·다리), 사람을 대신해 테스트에 사용한 인형(더미)의 움직임을 종합해 평가한다. IIHS는 수 십년 동안 스몰 오버랩 이외에도 정면·측면 충돌, 전복 사고 때 안전도, 차량 지붕의 안전도 등 총 29개 항목에서 안전도를 테스트 했다.

이런 모든 충돌 테스트는 4단계 결과로 발표된다. 최고 등급이 우수(G:good)이고 다음이 양호(A:acceptable), 미흡(M:maginal), 나쁨(P:poor) 순이다. 스몰 오버랩은 충돌 테스트 가운데 가장 난이도가 높다. 신차 개발 설계 때부터 대응하지 않은 차들은 G를 받기 어려워 자동차 업계에서는 공포의 테스트로 불린다. IIHS가 2012년부터 스몰 오버랩을 도입한 이유는 이렇다. 1970년대 이후 신차 개발에서 안전도가 중요해지면서 자동차 업체들은 정면 또는 측면 충돌에 대한 대비를 적극적으로 해왔다. 해외 유명 안전도 테스트 기관의 기준이 정면·측면에 국한돼서다. 자동차 업체마다 이 분야에 대한 노하우를 30년 이상 쌓으면서 소형차부터 대형차까지 정면·측면 테스트에서 대부분 만점을 받았다. 어떤 차가 더 안전한 차인지를 검증할 수 없을 정도로 평준화됐다. 그러자 자동차 업체들은 “중국 차까지 정면 충돌에서 G를 받아 차별화 요소가 없어졌다”는 볼멘 소리가 나왔다. 미국 소비자 단체에서도 “안전도 테스트 결과가 대부분 비슷해 소비자가 차량을 구입할 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자동차의 안전도가 향상되면서 정면 충돌로 사망하는 경우는 급감했다. 상대적으로 전봇대나 교각 일부분에 부딪혀 사망하는 사고가 늘었다. 결국 IIHS는 2012년 스몰 오버랩 테스트를 개발했다.

이번에 망신을 당한 BMW 5시리즈는 2012년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서도 M을 받았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부분변경(페이스 리프트) 모델을 내놓으면서 무릎 에어백을 추가로 장착했다. 하지만 올해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결과적으로 차체 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의혹이 일었다. 업계에서는 안전과는 타협을 하지 않던 BMW가 경량화에 집중하다 보니 밸런스가 깨지면서 스몰 오버랩에서 경악할 만한 결과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BMW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M을 받은 것은 드문 경우다. 차량 가격이 비싼 프리미엄 브랜드는 대중차와 달리 알루미늄이나 고장력 강판 같은 가벼운 경량 소재를 많이 쓸 수 있다. 또 고급차를 타는 소비자들이 연비보다 안전도를 더 신경을 쓰기 때문에 경량화 부담이 대중차에 비해 민감하지 않다.

무게 줄여 연비 효율 높이니 안전에 문제

문제는 BMW가 신차 개발에서 경량화와 연비 향상을 최우선 타깃으로 뒀다는 점이다. 라이트 호퍼 회장이 취임한 2006년 이후 모든 신차 개발에서 경량화와 연비 향상을 강조했다. 그 결과 BMW는 프리미엄 브랜드 가운데 가장 연비가 좋은 메이커로 거듭났다. 달리기 성능을 앞세웠던 과거 ‘드라이빙 머신’에서 기름 냄새만 맡아도 굴러가는 연비 좋은 차로 변신한 것이다. 그런 대표적인 모델이 5시리즈 2.0 디젤 모델(520d)이다. 이 차의 공인 연비는 16.9㎞/L로 동급 차량 가운데 단연 최고다.

차체 중량도 1630kg으로 일반 중형차 수준이다. 사륜구동인 X드라이브의 연비도 무려 16.0㎞/L에 달한다. 같은 급의 현대 제네시스의 3.3 가솔린 모델보다는 거의 배에 육박할 정도로 연비가 우수하다. 이런 뛰어난 연비 때문에 520d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줄곧 베스트 셀링 모델에 올랐다. 올해 역시 월 평균 1000대(사륜구동 X드라이브 포함) 이상 팔리며 인기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BMW는 연비 향상을 통해 전 세계 판매에서 성공했지만 안전도는 희생한 셈이 됐다. 올해 초 520d를 구입한 박상은(자영업)씨는 “6000만 원 전후 가격대에서 먼저 현대 제네시스를 계약했다가 520d 연비가 월등히 좋아 망설이지 않고 구입했다”며 “이번 스몰 오버랩 테스트 결과를 알았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제네시스는 올해 5월 IIHS가 실시한 ‘대형 럭셔리 세단’ 충돌 테스트 전 부문에서 최고 등급을 받았다. 특히 스몰 오버랩에서는 동급 모델 가운데 최고 점수였다. 충돌시험 종합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인 ‘탑 세이프티 픽 플러스(Top Safety Pick+)’에 선정됐다. 29개 충돌 테스트 세부 항목 모두 만점을 받은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신형제네시스에는 60kg/mm 이상의 고장력 강판을 51.5%나 적용해 기존 모델보다 3.8배 강성을 높였고 구조용 접착제를 사용해 차체 강성을 보강해 스몰 오버랩에서 최고등급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미국 IIHS의 BMW 5시리즈 스몰 오버랩 충돌 테스트 화면.
경량화·안전 만족시켜야 명차

제네시스는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서 운전석 구조물이 충돌 후에도 거의 완벽한 형태를 유지했다. 더미의 머리와 목·가슴·엉덩이·허벅지와 무릎 아래 부위와 발등에 별다른 상해를 입지 않았다. IIHS측은 테스트 평가서에 “제네시스의 운전석 공간이 충돌 후에도 잘 유지됐고 더미의 부상 위험성이 매우 낮았다”며 “정면 에어백과 사이드 커튼 에어백이 적절하게 작동해 외부 충격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고 기술했다.

제네시스가 이처럼 IIHS 충돌시험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냈지만 기존 모델보다 중량이 크게 증가한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더구나 일반 강판보다 가벼운 고장력 강판을 대거 사용했는데도 차체 중량이 무거워졌다. 신형 제네시스의 공차 중량 1900~2000kg으로 기존 모델과 비교해 사양 별로 150~200kg나 살이 쪘다. BMW 520d 보다 300kg 정도 무겁다. 결과는 나쁜 연비로 이어졌다. 기존 모델의 연비가 9.3~9.6km/L였는데 신형 제네시스는 이보다 나쁜 8.5~9.4km/L의 연비를 받았다. 2010년 이후 나온 신차가운데 기존 모델보다 무거워진 차량은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 자동차 업계의 신차 개발 추세인 ‘경량화’와는 동떨어진 셈이다.

현대·기아 연구소 측은 이런 해명을 내놓는다.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서 최고 등급을 받기 위해 무게 증가는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모서리 부위에 강철 프레임을 보강하고 무릎 에 어백과 보행자 보호를 위한 액티브 후드를 기본 장착했다. 여기에 강성을 높이기 위한 철강재 사용 역시 10% 가량 늘었다는 것이다. 현대차 측은 고급 승용차 수요층은 차량 선택 때 일반적으로 안전성을 미세한 경제성 차이보다 우선 고려하기 때문에 연비 감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스몰 오버랩에서 G를 받으려면 고장력 강판을 사용해도 모서리 충돌 부위에 보강재를 대야 해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며 “연비 향상을 위한 경량화와 반대의 결과를 가져와 연구부서 사이에 경량화와 안전을 놓고 종종 갈등이 생긴다”고 털어 놓는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이런 해석을 내놓는다. 고장력 강판과 안전장비를 대거 달아 충돌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신차 개발 방식이라고 꼬집는다. 무릎 에어백 같은 추가 장비를 달지 않고 스몰 오버랩을 통과할 정도가 돼야 기술력을 인정받는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자동차공 학회 교수는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들의 신차 개발 추세는 안전을 강화하면서도 중량을 줄이는 경량화에 포인트가 맞혀져 있다”며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 무게를 늘린 것은 현대차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1258호 (201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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