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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말 많고 탈 많은 단통법 - 분리공시? 요금인가제 폐지 논의부터 

시행 한 달도 안 돼 ‘누더기법’으로 전락 

#1. 10월 17일 오전 7시. 해도 덜 뜬 시간에 서울 강남 의 한 호텔에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방송통신위원장, 휴대전화 제조사, 이동통신회사(이하 이통사) 3사 사장급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이하 단통법)’ 시행 이후 소비자의 불만이 더 커졌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단통법 폐지 논란까지 불거지자 대책을 마련하자 며 연 긴급 간담회였다. 대화는 허심탄회했는데 성과는 없었다. 이들은 결국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호텔 문을 나섰다.
#2. 바른사회시민회의와 컨슈머워치는 10월 16일 ‘단통법 예견된 파행, 무엇을 간과했나’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단통법의 최대 수혜자는 소비자가 아닌 이통사라는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전 세계에서 유례 없는 법을 만들었는데 오히려 역차별을 불러오고 있으니 차라리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아직 복사기 온기도 안 빠진 새 법률은 벌써 누더기가 됐다.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의 한 휴대전화 매장. 단통법 시행 이후 고객이 급감했다.
단통법 시행 여파에 이동통신 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졌다. 10월 1일 시행됐으니 채 한 달이 안됐다. 시행 첫날부터 이전보다 소비자 부담이 훨씬 커졌다는 비난이 제기됐는데 상대적으로 이통사는 사업 환경이 좋아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자신들의 손으로 단통법을 통과시켰던 국회의원들마저 스스로 말을 뒤집으며 개정을 주장하고 나섰다.

단통법의 입법 취지는 ‘가계 통신비 부담 줄이기’다. 우리나라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 계 통신비지출은 4.3%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통신비 인하’가 핵심 공약으로 등장해 큰 관심을 받았던 이유다. 이통사의 지나친 보조금 경쟁으로 단말기 판매 가격에 부당한 차별이 발생한 것도 단 통법 도입 배경 중 하나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공약은 법안으로 구체화됐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한국전자 통신연구원 등에 소속된 전문가들이 법안의 골자를 만들고, 지난해 5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가 발의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논란 등으로 치열하게 싸우던 여야는 올해 5월 2일 민생법안을 긴급히 처리하자며 단통법을 131개 안건과 함께 무더기 통과시켰다. 준비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가 생략됐다.

마케팅 비용 줄어든 이통사만 ‘살 판’

단통법은 보조금 차별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단말기별 출고가, 지원금, 실판매가를 공개하는 동시에 방통위가 보조금 상한선을 규제하는 게 핵심이다. 정부가 과도한 보조금 경쟁을 막으면 이통사가 적극적인 품질·가격 경쟁을 벌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면 자연히 통신요금이 내려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시행해보니 결과는 달랐다. 방통위가 보조금 상한선을 제시하자 이통사는 경쟁 대신 평화를 택했다.

단통법이 시행되자 이통사들은 일제히 보조금을 낮췄다. 정부가 보조금을 제한해 더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겉으로는 슬픈 척했으나 속으로는 웃었다. 그동안 통신 3사는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해 치열한 점유율 확보 경쟁을 해왔다. 눈에 안 보이는 보조금 경쟁도 치열했고, 이걸 ‘고객 빼 오기’ 수단으로 활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보조금에 큰 차이가 없으니 경쟁할 유인이 사라졌다. 보조금은 덜 주고, 마케팅 비용도 덜 드니 일석이조다.

자연히 이익이 늘어난다. 증권업계는 보조금이 5%(1만 원)가 줄어들면 SK텔레콤의 영업이익이 5.7%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KT는 9%, LG유플러스는 약 10% 늘어날 전망이다.

마케팅 비용 감소 효과도 크다. 마케팅 비용이 5% 감소하면 SK텔레콤의 영업이익은 6.7%, KT는 15.9%, LG유플러스는 20.8%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변수 없이 마케팅 비용의 축소만으로도 이통사의 이익이 10% 이상 증가한다는 것이다. 단 통법 시행을 앞두고 이동통신사의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한 것 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단통법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인 2월 17 일 SK텔레콤의 주가는 19만 6500원이었지만 법 시행 직후인 10월 2일 29만 8500원으로 치솟았다. KT 주가는 2만 8300원(3월12일)에서 3만 5050원으로 뛰었다. LG유플러스 역시 8890원(7월 15일)에서 1만 2300원으로 올랐다.

보조금을 덜 주면 소비자는 아무래도 휴대전화 구입을 꺼리게 된다. 실제로 단통법 시행 이후 현장에선 시장 냉각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각 영업점은 고통이 크겠지만 이통사 입장에선 전체 파이가 변하지 않는 한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 이미 대부분의 소비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고가의 요금제를 쓰고 있다. 단기적으로 휴대전화가 덜 팔려도 수익구조 엔 큰 변화가 없다. 게다가 단통법 시행 전 통신 3사는 하나같이 음성·인터넷·문자 등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요금제를 내놨다. 요금제 중에 서비스로 만들 수 있는 상품은 거의 다 마련해 둔 셈이다. 무제한 요금제까지 만들어놓은 마당에 굳이 가격 경쟁을 할 이유가 없다.

요금 담합 보호막으로 전락한 요금인가제

이와 달리 기대했던 소비자 부담 줄이기에는 실패했다. 법 시행 이후 보조금은 최대 60%가량 줄었다. 단통법 시행 전 60만 원 정도에 구입했던 삼성 갤럭시S5(광대역LTE-A)는 이제 75만 원에 사야 한다. 같은 휴대전화 가격이 한 달도 안 돼 15만 원이나 비싸진 셈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한 1인당 평균 보조금(지난해 5~10월 기준)은 SK텔레콤이 42만 원, KT가 43만 원, LG유플러스가 38만 원이었다. 하지만 단통 법 시행령에 따라 정부가 결정할 수 있는 보조금 상한선은 25만~35만 원이다. 보조금이 줄어든 만큼 최대 17만 원에서 최소 3만 원까지 소비자가 더 내야 한다는 의미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통법 시행으로 소비자 간 차별은 없어졌지만 보조금 상한선을 묶어두면서 단말기를 더 비싸게 구입하게 됐다”며 “최대 수혜자는 이통사이고, 소비자·제조업체·유통업체 등은 모두 피해자”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가계 통신비 인하가 목적이라면 요금인가제를 폐지해야 한다” 며 “요금인가제를 폐지한 상태에서 후발기업이 품질 개선을 할 경우 요금이 평균 8.7% 가량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1991년 도입된 요금인가제는 통신 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요금을 인상하거나 신규 요금제를 출시하는 경우 사전에 정부의 인가를 받도록 한 제도다. 1등 이통사가 파격적인 요금제를 내놓아 시장을 잠식하는 걸 막고, 후발사업자를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이동통신 시장이 처음 열리던 때라 정책이 제법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23년이 지난 지금 요금인가제는 사실상 이동통신 3사의 과점 체제를 보호하는 규제로 변질됐다.

1등 사업자가 지나치게 싼 요금을 받을 경우 후발주자의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이유로 비교적 높은 가격을 책정하도록 유도 하면, 후발주자는 비슷한 가격으로 따라가는 식이다. 자연히 3사 모두 비싼 통신비를 받게 된다. 우리나라 통신요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비싼 것은 요금인가제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세계에서 이동통신 요금을 정부에 신고하도록 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의원과 전병헌 의원 등이 “요금인가제가 통신 3사 요금 담합을 조장하고 있으므 로 이를 폐지해 본격적인 요금인하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며 폐지에 앞장 서고 있다.

일각에선 단통법 도입 과정에서 배제된 ‘분리공시제’를 도입해 다시 법을 개정하자는 주장도 있다. 분리공시제는 휴대전화 보조금 중에 통신사가 주는 소비자에게 주는 지원금과 제조사 가 이통사에 주는 판매장려금을 각각 구분해 공시하는 제도다.

소비자가 받는 보조금(지원금+장려금)의 출처를 정확히 밝히 자는 의미다. 원래 분리공시제는 단통법 안에 포함돼 있었다가 마지막 조율 과정에서 빠졌다. 제조사의 장려금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상위법(단말기 유통법)에 위배된다는 규제개혁위원회의 권고를 방통위가 따랐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를 통해 “단통법 내에 분리공시제를 넣은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선언했다. 보조금의 구성 내역까지 투명하게 공개하면 단말기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분리공시제는 이번 단통법의 부작용과 큰 관련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일단 분리공시를 한다고 해서 보조금 규모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어차피 상한선은 방 통위가 정해두게 돼 있다. 보조금 상한선이 30만 원일 때 소비자 입장에선 그 돈을 제조사가 주든 통신사가 주든 전혀 상관 없다. 받기만 하면 된다. 영화관 카드 할인과 마찬가지다. 할인을 카드사가 해주는지, 영화관이 해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몇 %의 할인을 받느냐가 중요하다.

분리공시를 주장하는 측에선 제조사가 해외에 비해 국내에 서 스마트폰을 비싸게 판다고 말한다. 국가별로 장려금을 어느 정도 주는 것인지 공시하면 한국 제조사가 스마트폰 가격을 내릴 거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삼성이나 LG가 해외에서 딱히 저렴하게 스마트폰을 파는 것도 아니다. 삼성전자 갤럭시S5의 국내 출고가(9월 기준)는 86만 6800원이다. 중국은 5199위안(약 89만 원), 영국은 539.99파운드(약 92만 6000원) 등이다. 대략 비슷하다. 미국이 649.99달러(약 74만 원)로 조금 싼 편인데 해외에서 판매되는 갤럭시S5는 32GB 메모리를 탑재한 한국 출시 모델과 달리 16GB 메모리에 배터리도 1개다. 추가 배터리와 충전기를 별도로 사야 하고 DMB 기능도 없다.

이는 자칫 국내 제조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삼성전자의 해외 판매 비중은 97%를 넘는다. 타깃 자체가 해외에 있다. 분리공시로 제조사가 국내 통신사에 지원하는 장려금이 공개되면 해외 통신사들도 같은 수준의 장려금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해외 통신사들에게 스마트폰 1대당 장려금을 1만 원씩 인상하며 총 5조 원 가량의 추가 비용이 든다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제조사 입장에선 인상분을 출고 가격 인상으로 메우려 할 테니 소비자로서도 그리 좋을 게 없다.

제조사-이통사 분리한 ‘완전자급제’ 주장도

아예 단통법을 폐지한 뒤 ‘완전자급제’로 가자는 주장도 나온다. 완전자급제는 휴대전화 유통과정에서 통신사를 배제하는 방법이다. 소비자가 일반 매장에서 휴대전화를 구입하고 통신 상품은 통신사 대리점에서 별도로 구매하는 방식이다. 완전자 급제가 되면 자연히 보조금 관행은 사라진다. 제조사 간 경쟁으로 휴대전화 출고가가 떨어지고, 통신사 간 경쟁으로 요금이 저렴해질 것이란 논리다. 하지만 현재의 유통시장이 흔들리면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완전자급제를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면서도 “수만 개에 달하는 유통점에 대한 대책이 먼저 강구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제기된 부작용만으로도 단통법은 어떤 형태로든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앞으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연 22조 원에 달하는 이동통신 시장이 요동칠 전망이다.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단통법 시행으로 통신사에 비해 대리점들은 상당한 고통(비용)을 지불할 것이며, 외국계 제조사에 대한 국내 제조사의 역차별도 발생한다”면서 “정부가 애초에 제시한 대로 통신비 인하가 목적이면 가격과 품질경쟁을 유도하는 정책이 정답”이라고 지적했다.

1258호 (201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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