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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essay - 좋은 리더 나쁜 리더 

 

진재욱 하나UBS자산운용 대표

진재욱 하나UBS자산운용 대표
얼마 전 뒤늦게 <명량>을 관람했다. 꼭 봐야 한다는 지인들의 권유가 많았다. 그럴 만했다. 단순한 영화 한 편 이상의 감흥이 있었다. 추가적인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순신에 대한 궁금증이라기보단 그 시대에 관한 포괄적 호기심이었다. 특히 당시 임금인 선조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해졌다. 여러 책을 뒤졌다. 학창시절 선조는 임진왜란이란 대형 국난을 극복한 성군이라고 배웠다. 잘못 알고 있었다.

그는 결코 성군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능하고 한심한 군주였다. 선조는 일본에 보낸 통신사로부터 전쟁 가능성이 크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안일한 태도로 정보를 무시했다. 외교적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선조는 어떠한 전쟁 준비도 하지 않았다. 일본군의 침략이 시작됐고, 남쪽부터 수많은 백성이 처참하게 희생당했다. 온 국토와 백성이 유린당한 그 때 위정자인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했다. 심지어 명나라로 망명할 의지까지 피력했다. 첫째, 선조는 비겁했다.

선조는 즉위 초기만해도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듯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집권하는 동안 그의 주변에는 이황·이이·유성룡 등 출중한 신하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적재적소에 쓰지 못했다. 당파싸움에 정치가 궤멸되는 상황에서도 그의 관심은 오로지 왕권 강화였다. 심지어 자신을 대신해 어려운 난제를 처리하고, 백성의 신망을 얻은 아들(광해군)까지 시기하고 견제했다. 전쟁이 시작되자 조정은 간신배로 들끓었다. 이순신 같은 충신을 중상모략하고 제 한 목숨 건사하기 바쁜 이들이었다. 선조는 그들에게 둘러 쌓였다. 듣기 좋은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던 그에겐 누가 충신인지 간신인지 가려낼 안목이 없었다. 둘째, 선조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자 선조는 의주로 피난하는데 도움을 준 신하들을 호송공신으로 책봉하여 가장 우대했다. 함께 도망간 사람들에게 상을 준 셈이다. 결사항전의 각오로 나라를 구한 이순신 등 무신들의 공은 폄하했다. 풍전등화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도 푸대접을 받았다. 관군 못지않게 용감히 싸웠지만 곽재우·김덕령·조헌 등은 공신에서 제외됐다. 특히 의병장 김덕령에게는 역모 혐의를 씌워 처형하기까지 했다. 셋째, 선조는 상벌을 엄중히 다루지 않았다.

피해는 모두 백성에게 돌아갔다. 가뜩이나 가난하고, 배고팠던 이들은 전쟁을 겪으며 최소한의 삶의 터전마저 보존하지 못한 채 쫓겨 다녔다.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간 임금으로부터 받은 상처도 컸을 터다. 무능한 리더십은 이렇게 다수의 희생자를 양산한다. 물론 선조의 실패엔 위에서 지적한 세 가지보다 더 많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사실 ‘좋은 리더’와 ‘나쁜 리더’는 그리 큰 차이가 아니다. 회사의 사장이든 조직의 장이든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누구나 선조처럼 비겁해질 수 있고, 사람에게 속을 수 있고, 힘을 잘못 휘두를 수 있다. 위기에 봉착하면 누구도 그렇지 않으리란 보장을 못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위해 그 자리에 있는지 곱씹어보지 않으면 좋은 리더도 순식간에 나쁜 리더로 바뀐다.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려면 자신이 먼저 희생하고, 사람을 가려 쓰고, 권력을 조절할 줄 아는 리더가 많이 나와야 한다.

1263호 (201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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