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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도 ‘통 큰’ 양보할 때 - 대기업 강성 노조부터 한 발 물러서야 

3조원대 적자 낸 현대중공업 파업 … 사회적 재원 독점 우려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이 울산 사업장 노조사무실 앞 광장에서 파업 출정식을 마치고 퇴근하고 있다.
‘19년 연속 무분규’ 기록을 세웠던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11월 27일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노사는 지난 5월 14일부터 6개월 간 임금과 단체협약(임단협) 교섭을 벌여왔다. 하지만 주요 쟁점에 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협력적이던 노사관계가 위기에 봉착했다. 노조는 임금 부문에서 회사의 추가 인상안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이 “추가 임금 인상안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1990년대 초까지 현대중공업 노조는 대표적인 강성이었다. 하지만 사측이 파업에 대해 ‘무노동 무임금’ 원칙으로 일관하고 합리 노선을 표방하는 노조 집행부가 출범하면서 19년 연속 무분규 기록을 이어왔다. 하지만 지난해 강성 노조가 들어서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울산 지역 언론들은 현대중공업 임금 협상이 올해를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1~3분기 3조2000억원 누적 적자를 기록하는 등 사상 최대 위기를 맞고있다.

옛날에도 강성, 지금도 강성

강성 노조는 마지노선을 미리 설정하고 사측이 이에 맞춰줄 때까지 협상을 끌거나 분규를 일으킨다. 생산 중단으로 다급해진 사측이 노조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특히 현대중공업과 같은 대형 사업장은 단 몇 시간의 파업으로도 엄청난 금전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강성 노조는 양보 없는 협상을 지속한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무분규 19년이 이어지는 동안 실적이 좋을 때는 높은 임금 인상률과 성과급으로 협상을 타결했고, 실적이 나쁠 땐 고용 보장과 복리후생비 확보 등을 통해 원만한 노사관계를 이어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조선업 위기감이 고조될 때는 오히려 노조가 사측에 임단협을 백지 위임해 임금 동결에 합의했다. 회사는 노사 공동 발전에 대한 보답으로 임금만 동결하고 일시 격려금과 1인당 평균 26주의 우리사주를 배정하며 화답했다. 하지만 강성 노조가 들어서면서 현대중공업의 이런 합의 정신은 깨졌다.

과거 노동탄압이 흔했던 시기 노동조합은 사회의 민주화를 이끌며 부당한 노동현장 문제를 개선하는 데 일조했다. 생존권 보장이라는 배수진을 친 투쟁방식이 필요할 때였다. 하지만 기업환경이 바뀐 최근 상황에서도 과거와 같은 방식의 노동운동을 벌이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일부 대기업 노조는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기 위해 모든 의제에서 합의를 보지 않으려한다.

이런 투쟁 방식은 업황이 어렵고 사회적 재원 전체가 부족할때는 환영 받기 어렵다. 특히 대형 사업장의 강성 노조는 심각한 저성장에 직면한 한국 경제에 위협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저성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생산여력을 좌우할 노동력이 힘을 발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경제 주체들이 인정하는 해법이다.

하지만 노사정 합의에서 일부 강성 노조가 늘 문제로 부각된다. 국가 전체적인 노동 이슈에서 일부 대기업 노조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높은 임금을 기반으로 적지 않은 조합비를 걷는다. 관련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나 민주노총에 미치는 영향력도 지배적이다. 이들 대형 노조는 단위 사업장 문제를 산별노조 등을 통해 사회적 의제로 확대시킬 수 있다. 특히 가장 첨예한 사회적 의제인 일자리 등 노동 이슈에도 대형 노조의 이기심이 발동한다. 이는 일자리 확대를 바라는 노사정 합의에 걸림돌이 된다.

정부도 지난 2월 내놓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계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노사관계 생산성부터 끌어올려야 한다고 보고있다. 이를 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를 줄이는 한편 비정규직에 대한 해고 요건을 강화할 방침이다. 본래 경기활성화를 통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려던 정책이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 이후 경기 침체가 지속되자 각 기업들의 재원이 부족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정된 재원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공유하기 위해선 정규직의 양보가 절실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대형 사업장의 정규직 강성 노조는 이에 대해 양보할 의사를 내비치지 않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정규직 노조의 협력과 양보는 불가피하다. 독일은 노조 차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 대책과 탄력근무제 도입, 직원 재교육 등을 사측과 협의한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을 위해 양보하고 타협안을 낸다. 사회적인 의제를 위해 노조가 한 발 양보하는 것이다. 한드 데틀레프 퀼러 퀼러콘토 대표는 한 강연에서 “독일에서는 모두의 발전을 위해 노조가 먼저 한 발 양보하는 경우가 많다”며 “독일 정부는 각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얼마나 공급하고 있는지 점검한 뒤 성과가 좋은 곳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과 너무 다른 한국 대기업 노조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본인들의 복지 혜택을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다. 단위 노조에선 높은 임금과 풍부한 복지혜택을 더 누리고 싶어한다. 한편, 이런 마지노선을 사회적으로 확장시키려 한다. 가장 선진적인 노조가 뒤로 물러나면 노동자 사회 전반의 임금과 복지가 후퇴한다는 주장이다. 언뜻 보면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등 사회 전체를 위해 전선을 긋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사회 전체를 볼모로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복지를 고수하는 방법으로 주로 활용된다.

경기가 극도로 어려워지면서 대기업 강성 노조의 투쟁은 중소기업·비정규직 노조·노동자와 나눠야 할 사회적 재원을 독점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사실상 종신고용을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재원이 부족해진 기업들이 새로운 20대 정규직을 채용하길 꺼리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20대 일자리는 2011년 310만개에서 2012년 302만개, 지난해 300만개로 줄었다. 대기업 강성 노조가 임금 인상률을 조금만 양보해도 20대 신입 노동자 수백명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 대기업 강성 노조가 단체협상에서 신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임금을 삭감할 테니 회사가 대응 재원을 투자하라고 요구했다는 걸 들어 본 적은 없다.

1267호 (201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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