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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구조개혁 - 방향은 잘 잡았지만 일방통행식 추진으론… 

올해는 구조조정의 골든타임 ... 구체적 대안 마련하고 대타협 이끌어야 


▎박근혜 대통령이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구조개혁을 강조했다.
“장그래와 같은 청년들의 소망을 외면할 수는 없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의 신년사 중 일부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장관은 드라마 <미생> 비정규직 사원을 언급했다. ‘장그래’는 정규직 일자리가 부족해 비정규직으로 사회의 첫발을 내딛는 우리나라 노동 구조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당장 구조개혁이 필요한 건 노동시장뿐만이 아니다. 비대한 공공 부문의 재정 지출이나 백년대계인 교육 구조, 그리고 금융 분야도 구조조정이 시급하다. 때문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15년을 구조조정의 해로 규정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구조개혁 분야는 공공·노동·교육·금융이다.

4대 부문 구조개혁이 절실하다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구조개혁을 강조하는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방향은 맞다”며 “오히려 그간 너무 경제활성화와 경기 부양에만 집중해서 구조개혁 시점이 늦었다”고 말한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정부가 구조개혁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유병삼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펴도 약발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구조개혁이라는 방향 자체는 잘 잡았다고 본다”며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구조개혁의 영향을 받는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는 과정을 보완해야, 4대 구조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른바 ‘4대 구조개혁’의 내용은 무엇이며 이를 성공적으로 이룰 해법은 무엇일까.

공공 부문 -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만 되풀이


“공공 부문 개혁은 모든 개혁의 시작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2013년 말 기준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의 부채는 약 523조원. 이미 국가채무 482조원을 넘어섰다. 특히 최근 5년 동안 공공기관의 부채는 무려 244조원이나 늘었다. 지방 공기업 부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전국 지방자치단체 산하 지방공기업 394곳의 2013년 말 기준 부채는 총 73조9000억원으로 2009년 58조2000억원에 비해 27%가량 증가했다. 경영 손실 역시 같은 기간에 2874억원에서 1조1826억원으로 급증했다. ‘국가채무+공공기관부채+지방공기업부채’로 구성되는 국가 부채(1058조원) 중 무려 600조원이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 때문인 셈이다.


이에 정부는 공공부문 재정지출을 효율화해서, 경기 회복에 필요한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계산이다. 구체적으로 올해부터 부채 감축과 방만 경영 개선, 중복 기능 통폐합 등을 추진한다.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 차단 장치도 마련한다<35쪽 표 참조>.

문제는 정부가 2013년 대대적으로 내놓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도 별반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다. 공기업 부채 축소 등 공공기관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가시적 효과는 크지 않다. 김영신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부채관리 강화 방안만으로는 공기업이 부채를 감축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부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김영신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공기업 대주주인 정부 보유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정부가 공기업 지분을 1% 이상만 보유해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면서, 나머지 지분을 매각한다면 공기업 부채는 줄이고 수익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공공 부문 핵심 과제 중 하나인 연금개혁은 정부가 말 바꾸기를 하면서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을 위해 정부는 지난해 2조5000억원을 지원했다. 이대로 가면 2018년엔 8조원을 지원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공무원연금의 납입부담금은 늘리고, 받아가는 연금은 줄이는 방식으로 개혁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공무원노조는 공무원연금 재정 악화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반발한다. 정부가 연금 재원으로 써야 할 돈을 이전 정부가 편법으로 기금에서 빼내 쓴 게 현재 재정 악화의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민간 기업에 비해 임금과 퇴직금이 낮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절대 연금액 자체가 높은 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한다.

정부는 2015년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하면서 군인연금·사학연금 개혁안도 제시했지만, 여당 반발로 하루 만에 백지화했다. 전문가들은 “사학연금·군인연금 관계자들에게 경계심만 부추기고 연금개혁 추진력만 약화됐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대해 하태형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서두르지 않고 정도를 밟아 차근차근 연금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 원장은 “일본은 2005년 공무원연금 개혁을 시작했는데 2012년 4월에야 개혁 법안이 통과됐다”며 “시간에 쫓기지 말고 정부 부처, 여당, 야당, 공무원 전체, 국민 설득이라는 단계를 밟아나가야 연금개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공무원연금 개혁이 성공하면 박근혜정부 최대 업적이 될 것이며, 사학연금·군인연금 등 다른 연금을 개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 부문 - ‘장그래’만 더 늘어날 우려


노동 부문에서 정부의 초점은 어떻게든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겠다는 것. 구체적으로 비정규직 처우를 높이고, 외국인 인력을 유치하고, 여성 경제활동을 증대해 생산가능인구를 늘린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비정규직 처우개선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35세 이상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기간 최대 4년까지 연장, 3개월 이상 근무 때 퇴직금 지급, 계약 갱신 횟수 2년간 최대 3회로 제한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와 달리 정규직 근로자는 근로시간, 임금, 고용 경직성을 완화한다.

노동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안이 기업의 비정규직 확대를 유도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상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정규직의 고용 경직성을 완화한다거나 비정규직 기간을 4년으로 늘린다고 그만큼 기업들이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나설 리는 만무하다”고 정부안을 비판했다. “고용의 질은 더욱 나빠지고 내수활성화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노동 분야 구조개혁에 대해 “목숨을 내걸고 싸워야 한다”고 주문한다. 워낙 이해관계가 첨예한 분야이기 때문에 상당한 진통을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강 전 장관은 “공공 분야에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인 공기업 노조, 교육 분야에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노조 등과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영진이 주도적으로 협상을 이끌어 노조와 대화하고 설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론은,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정책보다는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것에 모아진다. 가계소득이 늘어야 내수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훈 연구위원은 “대안은 비정규직 축소”라며 “우회로나 다른 대안은 없다”고 단언한다. 박근혜정부 들어 고용률이 증가한 이유는 중장년층 고용이 늘었기 때문인데, 이런 식으로 실적 위주의 고용률 증가 정책을 편다면 고용의 질이 낮아 내수활성화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노동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방법론으로는 현재와 같은 ‘기간 제한’이 아닌 ‘사유제한’식의 비정규직 허용 정책을 제시했다. 기간 제한은 2년 혹은 4년 등 기간을 지정해 비정규직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이에 반해, 사유 제한은 특정 업무를 위해서만 비정규직 채용을 가능케 하는 방식이다.

교육 부문 - 백년대계를 책상 머리에서 단칼에

교육 부문에서 요즘 최대 화두는 9월 학기제다. 정부는 50년 이상 이어져 내려온 봄 학기제를 가을 학기제로 바꾸는 방안을 공론화하고 있다. 하지만 산적한 난제들을 감안하면, 9월 학기제는 뜬금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소수 유학생들을 위해 학기제를 변경한다는 비판만 불러올 수 있다는 것. 한국교육개발원은 가을 학기제를 도입하면 10조원의 비용이 추가로 든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문상은 교육산업연구소장은 “근본적으로 구조를 바꾸는 조치가 포함되지 않았다”며 “지금은 과감하고 혁신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2016년부터 대학 정원을 조정한다는 정책도 탁상행정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대학 정원을 조정하려면 일단 공정한 대학 평가부터 이뤄져야 하는데, 이런 이슈는 비켜갔다는 주장이다. 정혁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현행 대학 평가의 문제점은 평가 기준이 너무 자주 바뀌고, 기준도 자의적이라는 점”이라며 “관련 법제도를 정비하고, 외부 평가를 확산하는 등 대학평가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부 평가는 외부평가위원단(external review committee)에게 맡기는 방안을 제안한다. 정부가 대학을 평가하거나 비전문가가 참여하는 위원회에 대학 평가를 맡기기보다는, 교육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들이 개별 대학에 필요한 정보를 요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평가를 한 다음, 결과를 개별 대학에 제공해 대학 스스로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등록금 문제, 교권 추락 등 민감한 문제는 개혁과제에 구체적으로 포함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많다. 대학 구조조정 등 민감한 문제는 피해갔다는 평가다. 문상은 연구소장은 “백년대계인 교육 부문은 단시간에 개혁이 어렵다”며 “교육 현장과 소통을 통해 핀란드의 교육개혁처럼 장기간에 걸쳐 교육부문 어젠다를 처음부터 다시 세팅한 이후 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 부문 - 개혁 외면하고, 지원 독려만


정부는 금융개혁을 위해 IT·금융 융합지원방안 마련, 사모펀드 규제 완화, 중소·벤처에 대한 투자 및 회수기회 확대 등을 제시했다. 금융 산업 경쟁을 촉진하고 모험자본 활성화를 통해 실물로 자금 순환을 촉진하겠다는 의도다. 핀테크·인터넷전문 은행 등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긴 했지만, 핵심은 기업에 금융지원을 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에 대해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들은 돈이 없어서 투자를 안 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에 금융 지원을 독려하면 무너지는 게 마땅한 기업도 살아남아 향후 경제에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나아가 금융산업 자체의 발전을 위한 개혁 과제는 빠졌다는 주장도 나온다. 예를 들어 금융권 낙하산 인사나 규제 완화 등을 꼽을 수 있다. 주요 금융기관장에 낙하산 인사를 보내는 관행이 관치를 강화했다. 이를 타파하지 않으면 금융권 혁신은 어렵다는 의견이다. 규제 완화도 중요하다. 조영무 연구위원은 “정부가 금융사 경쟁력 강화에 나서는 것은 아이러니”라며 “금융사가 알아서 스스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정부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등 일부 규제만 제외하고 나머지 규제를 통 크게 완화해주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말한다.

강봉균 전 장관은 낙하산 인사의 폐해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는 “금융 분야는 노동조합이 강성인 경우가 많다”며 “이렇게 된 배경에 바로 낙하산 인사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은행·KB국민은행· IBK기업은행 등 정부 지분이 많은 금융 기업에 낙하산 인사가 최고경영자로 가는 경우가 많아, 경영진이 노조에 당당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강 전 장관은 “금융회사를 통치한다거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등 금융 기업이 큰 구조개혁을 하려면 경영진 주도로 노조를 설득하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1271호 (201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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