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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대화 | [한국재벌사연구] 펴낸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 소유·경영 분리의 美 모델로 갈 것 

재벌개혁론자의 방대한 연구서 


▎사진:김현동 기자
재벌을 향한 국민의 눈초리가 매섭다. 3, 4세 시대로 접어들면서 경영권 세습을 위한 편법과 꼼수가 빈발하고, ‘땅콩회항’과 같은 사회적 문제도 곧잘 불거지면서다. 재벌은 한국 경제에 딜레마 같은 존재다.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지만,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에 서 있음을 부정할 수도 없다. 대부분의 경제정책도 결국 재벌에게 어떤 혜택을 주고 어떤 규제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다. 적절한 경제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재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때다.

이런 시점에서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한국재벌사연구]를 출간했다. 한국 재벌의 과거부터 현재, 미래를 짚은 책이다. 2월 2일 연구실에서 만난 최 교수는 “재벌이 등장한 지 50여년이 흐른 지금 재벌의 모습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재벌의 변화 과정을 통해 앞으로 한국 경제에서 그들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국내 재벌 연구의 권위자다. 재벌이 이슈가 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왔다. [한국재벌의 이론과 현실], [실패한 재벌정책], [재벌시대의 종언] 등 여러 재벌 관련 서적을 냈다. 대표적인 재벌 개혁론자로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 교수,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의 앞 세대에서 재벌 개혁을 주장했다. 현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한국재벌사연구]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한국 재벌은 시간이 지나면서 역할과 기능,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창업 총수 시절과 지금 재벌의 성격이 다릅니다. 특히 기업가 정신이 크게 후퇴했다고 봐야죠. 창업자들은 전문경영인 이상의 능력으로 무에서 유를 만드는 공격적 경영을 보였지만, 지금의 재벌은 안전 위주의 경영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최 교수는 “재벌이 한국 경제에서의 순기능이 약해졌음을 의미 한다”고 역설했다. 책의 네 번째 장에 이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재벌의 공과를 다룬 장이다. 재벌은 한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산업 고도화의 선구자, 기업 효율성, 기업가 정신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경제력 집중, 독과점, 황제 경영, 경영 투명성 저해, 노사 갈등은 부정인 결과로 남았다. 그런데 재벌의 성격이 창업주 때와 달라지면서 긍정적인 요소가 약화되고 있다는 게 최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국이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발돋움 하는 데는 기존의 재벌 시스템이 유효했지만,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 시스템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그리는 재벌의 앞날은 어떤 모습일까. 최 교수는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미국·일본 등 선진국의 재벌이 걸어왔던 길 중 하나를 걸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태평양전쟁 직후 강제로 해체된 일본의 재벌보다는 서서히 ‘소유-경영’이 분리된 미국식 모델을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미국도 100년 전에는 재벌 시스템이었다. 다만, 2~3세로 넘어가면서 부는 세습이 됐지만 경영권은 희석됐다. 상속 과정에서 세금으로 인해 경영권이 줄어드는 데다 역량이 없는 2~3세들도 경영권에 집착하지 않아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최 교수는 “한국도 지금 이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경영권을 통해 가질 수 있는 이득이 크다 보니까 이런 흐름에 역행해 소유와 경영을 모두 손에 쥐려 하고,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그는 “정책적으로도 이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끌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굳어진 시스템을 깨기 위해 많은 의지가 필요하겠지만, 이를 통해 철저하게 법적인 경영인에게 실제 권한과 책임을 줘 시장경제에 충실한 체제로 바꿔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재벌에 대한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최 교수는 “재벌에 대한 각종 기록과 문헌을 정리한 이 책이 어느 한쪽의 의견을 떠나 재벌 논쟁 자체에 작은 나침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재벌사연구]는 7가지 측면에서 재벌에 대해 서술했다. 재벌의 변화상을 시대보다는 특징별로 나눴다. 1장에서는 재벌이 누군지, 2장은 한국 경제가 왜 재벌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펴봤다. 3장은 재벌을 둘러싼 시대적 환경과 흥망성쇠를, 4장은 재벌의 공과를 따졌다. 5장과 6장에서는 각각 정부의 재벌정책과 재벌의 경영 세습을, 7장에서는 재벌 시스템에도 큰 변화를 불러온 외환위기에 대해 다뤘다.

1274호 (201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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