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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로 본 일본의 빈곤층 - 빈곤의 덫 모든 세대로 확산 

연금으로는 어림없는 노후의 공포 ... 편부모 가정 빈곤율 54.6% 


▎빈곤에 시달리는 다카하시 미에코의 연금이체통지서와 공공요금 등의 지불 기록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 거의 없고, 식비를 절약해 버틸 만큼 어려운 처지다. / 사진:동양경제 제공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있다. 일하고 싶지만 채용해주는 곳이 없다.” 사이타마현에 살고 있는 다카하시 미에코(가명·76·여)는 이렇게 털어 놓는다. 그는 방 2개짜리 월세 아파트에서 혼자 생활한다. 연금을 받고 있으며, 취재차 방문한 3월 시점의 수령액은 한달에 약 8만7600엔(약 80만원)이었다. 집세가 약 4만5000엔, 전기요금 등 공과금을 빼면 고작 2만7000엔(약 25만원)이 남는다. 거기서 식비와 의료비 등이 빠진다. 하루하루 생활하기가 빠듯한 실정이다.

46살에 이혼한 다카하시는 두 자녀와도 떨어져 산다. 필사적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해왔다. 62살까지는 통신설비 회사의 남자 기숙사에 더부살이를 하며 식모로 일했다. 2년 뒤엔 실버 인재센터로부터 소개받은 회사에 들어가 저녁 5시부터 밤 10시까지 전화 안내나 주차장 당번일을 했다. 희망하는 사람이 많아 3년 후 계약이 끝났지만 운 좋게 같은 건물에 입주한 청소용역회사에 채용됐다. 이렇게 70세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왔다. 하지만 그 이후엔 나이 탓에 채용해주는 곳이 없었다. 일을 하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수년 전까지 600만엔(약 5500만원) 정도였던 예금 잔고도 지금은 바닥이 났다. ‘일하고 있을 때 좀 더 저축해둘 걸’ 하고 후회하지만, 당시 월급도 실 수령액(월급에서 보험료와 소득세, 주민세 등을 제한 금액)은 15만엔(약 135만원) 정도였다. 결코 여유 있는 생활을 보냈던 것은 아니란 얘기다.

노후 생활자는 빈약한 연금에 휘청


지금은 어찌됐든 하루하루 절약하며 살고 있다. 식자재 관련 일을 하는 지인에게 시장에서 팔지 못하는 야채를 얻어 부족한 식비를 메운다. 의료비가 부족할 때는 형제들에게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도쿄에서 만나 차 한잔 할 여유가 있었지만, 그것도 이젠 옛날 얘기다. 요즘에는 라디오를 듣는 게 유일한 낙이다. 중고서적 판매점인 북오프를 찾아 역사책 등을 구입해 어떻게든 기분을 달래고 있다.

그는 최근 ‘다카하시씨 정도의 상황이라면 생활보호대상자가 될 수도 있으니 신청해보면 어때요?’라는 연금조합 지인의 조언을 들었다. 이 이야기를 장남(43)에게 하자 ‘어머니께는 크면서 신세를 졌고, 아직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있지 않느냐’며 매월 2만엔(약 18만원)씩 용돈을 줬다. 그러나 사실 자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일하고 싶어도 76살 먹은 노인을 채용해줄 곳을 찾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을 잘 안다. 지금은 자원봉사로 땀을 흘리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당장의 걱정은 병이나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수입도 거의 없고, 연금도 부실한 상태에서 쓰러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다카하시는 항상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일을 그만 둔 후에 수입은 줄어들고, 연금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는데 저축도 바닥을 치는 ‘노후 파탄’ 상태에 빠진 고령자가 늘고 있다. 매년 증가하는 생활보호 수급 가구 숫자의 증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161만 세대로 또 한번 과거 최대치를 넘어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령 수급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그 숫자가 76만 세대에 달한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다카하시처럼 혼자 사는 고령자가 약 600만명을 웃돈다. 이 중 절반이 수준 이하의 연금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탄을 맞은 계기가 꼭 생활고만은 아니다. 도쿄 도내에 살고 있는 다나카 켄이치(가명·74)는 2개월 전 생활보호대상자가 됐다. 젊을 땐 요리사로 실력을 키우며, 여러 가게를 거쳤다. 50세 후반에 심장병으로 은퇴한 후 연금은 미납 상태였지만 적금이 충분해 생활에 곤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 뒤에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약한 치매를 앓기 시작하면서 판단력이 떨어졌다. 2년 전에 살고 있던 임대 아파트에 물이 새 살 수 없게 되자, 집을 나와 호텔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그 와중에 현금이 들어있던 가방을 잃어버리고, 노숙 생활을 하다 지원단체로부터 도움을 받게 됐다. 그 후 방을 빌렸지만, 올해 적금이 바닥났다. 지금은 생활보호로 받는 월 13만엔(약 118만원) 정도가 전부다. 다나카는 표정이 풍부하고, 목소리도 기운이 넘쳐 언뜻 보기에 건강해 보인다. 하지만 심장이 약해 ‘언제 쓰러질 지 몰라 무섭다’고 이야기한다.

가족과의 관계 악화 때문에 빈곤층으로 전락한 경우도 많다. “홀몸으로 가족으로부터 도망쳤다”고 말하는 야마모토 코이치(가명·67)는 생활보호를 받으며, 현재는 생활빈곤자를 위한 무료 저가 숙박소에 몸을 숨기고 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식품회사와 물류회사 등에 근무하며 순조로운 회사 생활을 보냈다. 인생의 톱니바퀴가 어긋난 것은 내연녀(50)의 가정폭력 때문이었다. 학생 때 결혼한 전처와는 50대에 이혼하고, 그 후 당시 근무했던 회사에서 내연녀를 만났다. “처음 사귈 때는 몰랐다”고 야마모토는 말한다. 아내는 수시로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둘렀다. 하이힐에 맞아 실명할 뻔한 적도 있다고 한다. 휴대전화를 부수거나 일을 못하게 자동차 열쇠를 감추는 등 폭력은 점점 심해져 갔다. 경찰에도 이야기했지만 해결되지 않았고 간신히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지금은 안정된 생활을 되찾고 사회 복귀를 위해 일을 찾고 있다. 그는 “생활보호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기댈 곳이 없다는 불안감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6가구 중 1가구는 빈곤에 처한 양육 가정


고령자가 한번 빈곤 상태에 빠지면 거기서 벗어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수입을 얻으려 해도 체력적인 문제로 직장을 구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금은 그러한 고령기의 빈곤을 어느 정도 늦출 수 있지만, 미납하면 지급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제도 밖에서 발생한 빈곤에는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결코 만능은 아니다. 사실 어느 날 갑자기 빈곤에 처한 고령자는 많지 않다. 대부분 이전 직업이나 자산 형성과정, 가족 상황 등의 영향을 받는다. 쉽게 말해 노후 파탄은 고령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현재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와 같은 비정규직으로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이후 고령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에 대한 후생연금 적용 확대 등을 통해 사회보장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일본에서 끊이지 않는 이유다.

더 큰 걱정은 빈곤이 점차 전 세대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빈곤 가정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죠.” 도쿄 시내에서 자영업을 하는 남편(43)과 초등학교 1학년 딸, 유치원생 아들과 살고 있는 사치코(가명·41·여)는 적금도 할 수 없는 현재 생활을 돌이켜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장남을 임신하고 직장으로부터 퇴직을 강요 받아 원치 않게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출산 후부터 남편의 일을 돕고 있지만 남편의 일은 불안정하며 월 수입이 20만엔(약 180만원) 정도다. 자녀들이 컸을 때 교육비를 충당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이야기한다.

후생노동성 ‘2013년 국민생활기초조사 개황’에 따르면 자녀가 있는 현역 세대의 상대적 빈곤률(2012년)은 15.1%에 달한다. 자녀를 양육하는 6가구 중 1가구는 빈곤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특히 편부모 가구의 경우 빈곤률이 54.6%에 달한다. 자녀가 있는 세대의 상대적 빈곤률은 1985년에 10.3%였다. 빈곤 가구가 30년 만에 50% 증가했다는 의미다. 자녀를 키우는 가정 중 빈곤 가구의 생활상은 실제로 어떠할까? 도쿄 도내에 거주하는 고즈에(가명·26·여)는 남편의 부모와 함께 살며 한 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다. 교통사고 후유증을 앓으며 백화점 내 레스토랑이나 병원 등에서 일하는 남편의 수입과 합쳐도 월 소득이 20만~23만엔 정도밖에 안 된다. 부모님이 함께 벌기 때문에 그나마 버티고 있지만 3대가 동거하는 가계를 꾸려나가기가 녹록하지 않다.

모자 가정의 현실은 훨씬 가혹하다. 비영리민간단체(NPO) 싱글마더스 포럼의 조사에 따르면 모자 가정의 70% 가까이가 생활고를 호소하고 있다. 또한 전 남편과의 이혼으로 빚이나 도박 등 경제적 문제가 있거나, 폭력이나 학대가 있었다는 회답이 절반이 넘는다. 도쿄 도내에서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을 키우는 미혼모 사치코(가명·48·여)는 현재 양호사무소에서 관리사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 사정으로 주 4일밖에 근무하지 못한다. 실 수령액은 월 8만엔(약 72만원)에 그친다. 부족분은 생활보호지원으로 충당하고 있다. 그는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으로부터 6년 전 아이와 함께 도망쳐 2년 전에 이혼했다. 하지만 그 충격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아 지금도 불면과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충분히 일하지 못하기 때문에 적금을 하지 못한다. 아이 수학여행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이 고민”라고 사치코는 털어놓는다. 남편으로부터 도망쳤을 당시에는 우울증이 심해, 딸이 함께 인형놀이를 하자고 해도 “뭘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그는 “딸이 남성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며 걱정한다.

지진 피해 이후 끼니 잇기 어려운 가정도 많아


▎지진 피해지역의 모자 가정에 식료품이나 생활용품을 보내는 비영리민간단체 마더링크 재팬의 네지메 리에와 자원봉사자 폴 토케시. / 사진:동양경제 제공
이혼모인 리사(가명·41)는 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3학년인 두 딸과 도쿄 도내 아파트에 살고 있다. 사무원으로 주 4일 근무하고 있다. 고용기간은 2개월로 6년 반에 걸쳐 갱신을 반복 중이다. 급여는 한번도 오르지 않았으며, 시급은 편의점에서 일하는 큰 딸보다 고작 20엔(약 180원) 많은 수준이다. 가정 폭력과 경제적 이유로 헤어진 전 남편이 보내는 양육비는 늦기 일쑤다. 이혼한 2003년 당시 두 딸은 4살, 2살이었다. 도쿄로 도망온 직후부터 반년에 걸쳐 생활보호지원을 받았다. 그는 “그 때는 정말 지독한 우울증 상태였다”며 “너무 무리했다가 아예 일을 할 수 없게 된 일도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지금도 심리치료를 받으러 통원 중이다. 사춘기와 반항기가 겹쳐 아이들을 키우는데 애를 먹기도 했지만, 지금은 ‘모녀 간에 한 달에 한번씩 노래방에 가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말할 만큼 사이가 돈독하다.

그러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딸이 독립한 이후의 생활 때문이다. 편부모 가정에 대한 아동부양수당(자녀 2명의 경우 월 4만1000엔)과 도쿄도의 아동육성수당(자녀 2명의 경우 2만7000엔)은 18세까지만 지급된다. 그러나 곧 이런 지원이 사라지고 자신의 월급이 유일한 수입이 된다. 그는 가계가 힘들기 때문에 2003년 이후 국민연금보험료를 전액 면제 받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는 노후에 아주 적은 액수의 연금밖에 못 받는다. ‘자녀들과 서로 도와간다면 어떻게든 생활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가지면서도 리사는 장래 생활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가뜩이나 고된 미혼모들의 생활을 궁지에 몰아 넣은 것이 동 일본 대지진이었다. 피해지역에서 미혼모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마더링크 재팬’의 네지메 리에는 그녀들의 가혹한 일상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어느 편모 가정에서는 엄마와 자녀 셋이 생활하고 있었다. 이 집이 3년간 줄곧 1일 1식을 해온 것을 지원 활동을 통해 알았다.” 다른 가정에서는 돈이 없어 아이 신발을 사주지 못했고, 아이는 작아진 신발 뒷축을 구겨 신고 지내고 있었다. 병들고 다친 부모를 간호하기 위해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미혼모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지진 피해지역에는 쓰나미 피해를 입은 학교가 많다. 부모가 가정과 직장을 왕복하며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은 커다란 부담이다. 특히 혼자서 모든 걸 해내야 하는 편모 가정은 귀가길 자녀를 데리러 업무를 일찍 끝내야만 하는 사정이 있다. 병원에 근무하는 미혼모 마리코(가명·43)는 쓰나미로 3세대가 함께 살던 주택과 부모님을 잃었다. 서로를 지탱해오던 가족이 떠나게 되자 아이들 도시락 준비부터, 등·하교, 청소 등 모든 가사를 혼자서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마리코는 매일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아이들 도시락을 준비하고, 퇴근 후 집안일을 마친 후, 12시가 넘어야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의 임시주택에 사는 카오리(가명·39)는 현재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4학년 자녀 두 명과 함께 살며, 어업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카오리의 현재 월급은 10만엔이 채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보험료 면제 수속을 진행 중이다. 남편의 양육비 지원도 없어 여자 혼자서 한창 자랄 시기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앞으로 교육비가 더 들어가면, 일을 하나 더 늘려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카오리씨는 이야기한다. 사치에(가명·43)는 지진 전에 함께 살던 부모와 떨어져, 임시주택에서 자녀 3명과 함께 살고 있다. 그중 2명은 이미 성인이 돼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은 집에 월급의 일부를 보내주고 있어 생활이 전보다 나아졌다. 사치에는 시내 매장에서 하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밤 10시부터 2시간 동안 파칭코 가게에서 청소부를 하고 있다. 셋째가 초등학교 5학년으로 집에 혼자 둘 수는 없기 때문에, 장시간 근무는 어려운 형편이다.

기댈 곳 없는 미혼모 가계 지원이 급선무


마더링크 재팬이 이와테현 오후나토시와 리쿠젠타카타시, 미야기현 게센누마시에 사는 미혼모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2013~2015년)에 따르면 ‘가족에게 기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130명 중 54명이 ‘기댈 수 없다’고 답했다. 또한 노동 수입에 대해서는 133명 중 49명이 ‘10만엔(약 90만원) 이하’라고 답했다. 최근 정부는 ‘자녀 빈곤대책법’에 근거해 빈곤의 세대간 연쇄를 근절하기 위한 다양한 시책을 약속했다. 커다란 진전이지만 경제적 지원 등 가계의 살림살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구체적인 대책은 여전히 부족하다.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

1282호 (201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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