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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전우치전]의 ‘깨진 유리창 법칙’ 

사소한 일 방치하면 큰 범죄로 이어져 … 도요타·맥도널드 등 초기 대응 미진해 곤혹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사장(오른쪽)이 2010년 2월 9일 도쿄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리콜 사태와 관련해 허리를 굽혀 사과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고전적 ‘구라’의 세계에서 노니는 귀여운 트릭스터(trickster). 영화 [전우치]를 만들었던 최동훈 감독은 전우치를 이렇게 정의했다. 전우치는 홍길동과 함께 한국 고전소설을 대표하는 의적이다. 그냥 의적이 아니고 신비한 도술과 현란한 변신술을 보이는 판타지 성격의 캐릭터다. 시대의 반항아지만 도덕적 일탈은 없다. 부모에 효도하고 임금에 충성한다는 유교적 컨셉트는 그대로다. 임금을 속이고 백성을 괴롭히는 탐관오리만을 혼내는 정의의 사자다.

저자도 알 수 없고, 언제 지어졌는지도 알 수 없다. 오래 전부터 구술돼 오다 보니 다양한 판본이 존재한다. 활자로 찍은 활자본도 있고, 사람이 베껴 쓴 필사본도 있다. 판본에 따라 이야기가 조금씩, 혹은 아주 크게 다르다. 심지어 [전우치전]은 배경도 다르다. 어떤 것은 조선 초, 어떤 것은 고려 말이다. 이름도 전우치, 전운치, 전윷치 등 다르다. 그러니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가 생기고 영화로 드라마로 계속 부활해도 ‘텍스트와 다르다’며 딴지 걸 사람이 없다. 전우치는 조선 성종 및 중종 무렵인 15세기 중반에서 16세기 중반에 실제 살았던 실존 인물로 알려져 있다. 보라매로, 호랑이로 온갖 변신을 하고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는 황당무계함 속에서도 친숙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전우치, 전운치, 전윷치 … 이름도 다양

문학동네에서 펴낸 [전우치전]은 ‘경판 37장본 전운치전’을 원본으로 한다. 이 책을 기준으로 보면 줄거리는 이렇다. 전운치는 명문가 자손 가문이다. 아버지 전숙은 벼슬에 뜻이 없어 초야에 묻혀 사는 산중처사다. 어느 날 어머니가 꿈을 꾼다. 몰려온 구름 속에서 동자가 내려오는 꿈이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운치(雲致)’다. 운치가 신기한 힘을 얻는 것은 여우로부터다. 여인으로 변한 한 여우로부터 여우의 넋인 호정(狐精)을 얻고, 또 다른 여인 구미호로부터 천서 3권을 얻는다. 이때부터 천문과 지리에 통달하고, 72가지의 변화를 부릴 수 있으며 술법에도 능하게 된다.

전운치는 신선의 시중을 드는 아이로 변해 임금을 속여 얻은 황금 대들보로 어머니를 봉양한다. 살인 누명을 쓴 백발노인의 아들을 구하고, 거만한 선비들을 혼내준다. 또 곤경에 처한 백성을 구해주고 배알이 나쁜 관료는 혼내준다. 또 가달산에서 역모를 꾀하던 염준 일당을 토벌하기도 한다. 하늘과 구름을 움직이고 축지법을 쓰며 온갖 변신과 변장을 하는 전운치의 도술을 이겨낼 사람이 없다. 하지만 모함은 피해가지 못한다. 역모를 꾸몄다는 모함을 당하자 벼슬을 그만두고 산으로 들어간다.

겁날게 없는 전운치지만 맥을 못쓰는 상대가 있었다. 명이 다한 사람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강림도령이다. 전운치가 친구를 위해 옥황상제를 빙자하며 수절한 과부를 납치하자 강림도령이 앞길을 막는다. “감히 필부(평범한 사내)인 주제에 요술을 배워 하늘을 속인다”며 크게 꾸짖는다. 강림도령으로부터 용서를 받은 전운치는 서화담(서경덕)을 만난다. 서화담은 황진이,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 삼절로 불리는 인물이다. 화담과 도술대결에서 패한 운치는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화담과 함께 영주산(중국 고대 전설 속에 신선들이 산다는 산)으로 사라진다.

전운치에게 계속 골탕을 먹던 임금은 전략을 바꾼다. 그를 잡아죽이기보다 회유하기로 한 것이다. 임금은 사대문 밖에 방을 붙인다. 이를 보고 대궐 앞으로 비웃으며 온 전운치를 보며 임금이 생각한다. ‘이놈이 화술이 뛰어나 도처에서 난리를 일으키니, 차라리 벼슬을 주어서 달래자. 그런 다음에도 만일 다시 난리를 일으키면 그때 가서 죽이리라.’ 임금은 대역죄인 전운치에게 벼슬을 내린다. 전운치가 비록 각종 도술로 말썽은 피웠지만 아직은 역모를 꾸미거나 임금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임금은 왜 전운치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려 했을까.

임금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깨진 유리창 법칙’을 우려했다. ‘깨진 유리창 법칙’이란 사소한 것을 방치하면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범죄 심리학 이론이다. 1982년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월간지 [아틀란타]에 발표한 내용이다. 건물주가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해 두면 지나가는 행인들이 돌을 던져 건물의 나머지 유리창도 깬다. 그 건물이 관리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해 돌을 던져도 별 문제가 없으려니 하기 때문이다. 건물 유리창이 하나둘씩 깨지면 누군가가 와서 낙서를 하고, 쓰레기를 버려 곧 흉물스러워진다. 그러다 보면 불량배들이 얼쩡거리고, 그 주변에서 강력범죄가 일어날 확률이 높아진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필립 짐바르는 실험을 해봤다. 어두운 골목에 정상적인 차와 유리창이 깨진 차 두 대를 세워놓고 각각 보닛을 조금 열어뒀다. 일주일 뒤 유리창이 깨진 차는 배터리와 타이어까지 없어졌다. 사방에 낙서도 돼 있었다. 이와 달리 보닛만 열어둔 차는 처음 상태 그대로였다.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1994년 취임 직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이 법칙을 이용했다. 뉴욕시가 2년 간 한 것은 지하철 내 낙서 지우기였다. 또 신호를 무시하는 보행자와 운전자를 강하게 단속했다. “대형 강력범죄를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경범죄에만 매달린다”는 비아냥이 쏟아졌지만 결과적으로는 줄리아니가 옳았다. 깨끗해진 지하철에서 점차 범죄가 사라졌다. 경범죄도 원칙대로 처리하는 것을 보면서 강력범죄도 감소했다.

‘깨진 유리창 법칙’은 비즈니스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소비자의 불만에 대해 초기에 잘못 응대했다가 파문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경우다. 도요타는 브레이크 결함에 대한 소비자들의 리콜 요구를 무시하다 결국 미국 검찰로부터 사기로 고소당하고 경영진은 고개를 숙이며 사죄해야 했다. 이때 떨어진 도요타의 브랜드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맥도널드 사례도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장난감을 덧붙여 주는 어린이 세트를 팔았는데 주문이 폭주했다. 즉시 대응을 해야 했지만 맥도널드는 미적거렸다. 재고가 바닥나자 부모들의 항의가 급증했고, 뒤늦게 민원을 수습하느라 우왕좌왕대면서 다른 메뉴의 서비스도 덩달아 늦어졌다. 맥도널드는 미국에서 8년 연속 소비자만족지수 최하위라는 오명을 써야 했다. 대한항공 ‘땅콩회항’도 초기에 수습만 잘했더라면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이었다.

작고 사소한 차이가 기업 흥망 좌우하기도

식당의 물컵에 얼룩이 묻어있거나 수저가 깨끗하지 않으면 밥맛이 떨어진다. 홈페이지가 허술한 회사는 왠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은행에 갔는데 대기시간이 길면 거래하기 싫어진다. 작고 사소한 차이가 소비자의 선호도를 바꾸게 하는 경우는 참 많다.

봉건시대 왕들은 역모에 민감했다. 언제든 지방호족들이 힘을 길러 왕권을 노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그러다 보니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왕들의 대응은 가차없었다. 중국 청나라의 경우는 아예 해군을 없애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선조도 이순신 장군을 경계했다. 임금 입장에서는 각종 도술을 부리며 조정을 농락하는 전운치의 존재를 마냥 방치할 수 없었다. 자칫 백성들로부터 신망이라도 얻게 되면 그땐 늦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운치에게 벼슬을 내린 것은 ‘깨진 유리창’을 수습하기 위한 임금의 묘책이었던 셈이다.

1282호 (201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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