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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적극적 휴식’ 시장이 뜬다 

휴식에서도 효율성 추구 ... 눈 베개, 메디컬 스파 등 관심 커져 

전미영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사진:중앙포토
대한민국 소비자는 피곤하다.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회사 일이 끝나도 학원을 다니며 제2의 인생을 대비한다. 학생들도 바쁘다. 하루 서너 개의 학원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초등학생이 적지 않다. 대학에 들어가도 끝이 아니다. 학교 수업과 각종 대회 참석은 물론, 어학 스펙까지 쌓아야 한다. 다들 바쁜 일정 쫓기다 보면, 거의 자정이 다 된 한밤중에야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주부들도 마찬가지다. 주말에는 자녀들을 데리고 체험학습을 다녀야 하고, 명문대 진학을 위해 정보탐색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이 모든 현상이 바쁘게 돌아가는 대한민국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런 분위기 때문일까. 한국 소비사회는 분주한 사람들의 삶을 위해 최적화되는 듯하다. 잠을 잊은 심야형 인간인 ‘호모나이트쿠스(밤을 뜻하는 night에 인간을 뜻하는 cus를 붙인 신조어)’를 타깃으로 24시간 운영되는 가게가 대표적이다. 2005년 탐앤탐스가 처음으로 선보인 24시간 카페는 이미 서울 시내에만 100곳이 넘고, 패스트푸드 업계 최초로 24시간 영업을 시작한 맥도널드의 경우 늦은 밤에 배달주문이 몰린다. 심야에 햄버거를 먹기 위해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속출한다. 이뿐만 아니다. 한밤중에 1대1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는 헬스클럽, 24시간 케이크를 파는 빵집 등 다양한 업종이 24시간 영업에 동참하고 있다.

심야형 인간 ‘호모나이트쿠스’ 넘쳐나

피곤함을 잊기 위한 카페인 소비도 날로 증가한다. 다른 국가에 비해 인구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음에도 대한민국은 커피 소비량 세계 6위를 자랑한다. 야근하는 근로자들과, 야간학습을 하는 학생들은 오늘도 커피 한 잔에 피로를 푼다. 카페인 중독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깨어있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 없는 처지다. 커피에 든 카페인만으로 피곤을 물리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고카페인 에너지드링크를 찾기도 한다. 시험 기간 학생들은 에너지드링크와 이온음료를 섞어 ‘붕붕쥬스’를 만들어 먹으며 밤을 지새운다.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온 대한민국 소비자들은 만성피로에 시달리며 고통을 호소한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그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현대사회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노예처럼 착취하는 ‘자기착취시대’라고 했다. ‘할 수 있다’는 과도한 긍정성으로 스스로를 탕진하다 급기야 우울증과 자살로 내몰리는 사회라는 것이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정신적인 극도의 피로감으로 인해 무기력증, 자기혐오, 직무거부 등에 빠지는 증상을 뜻한다.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탈진증후군이다.

이처럼 피곤함이 극에 달한 사람들은, 이제 그 반대의 가치를 찾아 나서고 있다. 바로 ‘적극적 휴식’이다. 그저 집에서 하루 종일 뒹굴며 쉬는 휴식이 아니다.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 좀 더 확실하게 나의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휴식에서도 효율성과 효과를 추구하는, 대단히 적극적인 방식의 휴식이 관심을 끌고 있다.

우선 수면과 관련해 사람들은 ‘최적화된 수면’을 찾아 나선다. 잠깐 동안 자도 피로를 말끔히 풀 수 있는 효율적인 수면을 취하겠다는 의도다. 지난해 7월 한국에서 실시된 두잇서베이 조사에 따르면, 성인 4300여명 중 18.1%는 자신의 수면의 질에 불만족했다고 응답했다. ‘수면의 질에 악영향을 미친 요인’으로‘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건강문제’가 1위로 나타났다. ‘침구류의 질’ ‘소음과 빛 등으로 인한 수면방해’ 등의 응답률도 높게 나타났다. 이에 부응하듯 한국 수면시장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편안한 수면을 도와준다는 라텍스 침구류의 매출이 상승하고 있고, 편안하게 안고 잘 수 있는 ‘바디 필로우’, 눈의 피로를 풀어준다는 ‘눈 베게’와 같은 신제품도 출시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건강한 잠을 지원하는 ‘국제수면박람회’가 코엑스 전시장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피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는 ‘안마 제품’이 인기를 끄는 현상도 적극적 휴식의 한 단면이다. 어깨에 걸치기만 하면 쉽고 편리하게 피로를 풀어주는 간편한 안마기 ‘휴플러스’는 이미 홈쇼핑 시장에서 인기 제품으로 등극한 지 오래다. 고가의 안마 의자를 빌려서 쓰는 서비스도 연일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혁신제품도 출시됐다. 핀란드 회사가 개발한 ‘Valkee’라는 제품은 귀를 통해 바로 뇌를 향해 빛을 쏘아 햇빛을 쐬는 것과 동일한 자극을 뇌로 전달해 광합성 부족으로 생기는 피로감을 해소해준다고 한다. 항공사 핀에어는 업계 최초로 장거리 비행자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 해당 제품을 적용, 시범 운영하기도 했다.

아로마 테라피나 스파(spa) 같은 전문 서비스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단순히 집에서 쉬는 것이 아니라,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좀 더 잘 쉬고 싶다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쉼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최근에는 의사에게 직접 몸 상태를 진단받고 그에 적합한 테라피를 받는 ‘메디컬 스파’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자신만을 위한 온전한 휴식을 갖기 힘든 남성 소비자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미용 목적의 전문 서비스가, 피로회복과 휴식이라는 키워드로 대체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에 부응하듯, 일반적인 스파 전문점은 물론이고, 롯데호텔서울의 ‘순환균형 패키지’ 더 플라자의 ‘숙취 해소 마사지’ 등 다양한 적극적인 휴식 테라피가 선보이고 있다.

안마 제품 인기도 적극적 휴식의 단면

이미 경제적 불황과 그로 인한 피로감을 한국보다 먼저 경험한 일본 시장의 경우에는 ‘휴식 시장’ 규모가 꽤 크다. 숙면을 도와주는 침구류와 잠옷은 물론이고, 쾌면을 유도하는 매트리스나 입욕제, 수면상태를 수시로 체크하며 최적의 수면을 제안하는 수면계 등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산소가 들어가 있어 마시면 심리적 피로를 해소해준다는 음료수나, 물에 담은 용기에 분말을 넣으면 산소가 분출되는 산소 발생기처럼 이색적인 제품도 있다. 이에 비해 한국에선 이제야 ‘적극적 휴식’ 시장이 태동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8월 서울시에서 실험적으로 추진했던 ‘낮잠제도’라든지,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낮잠 방’과 같은 이색 가게 등으로 미루어볼 때, 한국에서도 곧 자신의 피로감을 효율적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적극적 휴식’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바쁜 일상과 휴식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 이들을 위한 최적의 휴식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일이다.

전미영 -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겸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수석연구원. 2010년부터 매년 [트렌드코리아]를 공저하며 한국의 10대 소비 트렌드를 전망하고 있다. 2013년에는 [트렌드차이나]로 중국인의 소비 행태를 소개했다. 한국과 중국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를 산업과 연계하는 컨설팅을 다수 수행하고 있다.

1282호 (201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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