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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 개편 속도 높이는 재계 - 10대 그룹 ‘1석4조(승계 가속화·지배력 강화·규제 우회·경영 쇄신)’ 노린 지주사 설립 박차 

SK 이어 한진도 합병 통해 지주회사 체제 강화 … ‘원샷법’ 통과되면 개편 속도 더 빨라질 듯 



SK발 지배구조 개편 이슈가 재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긴 해도 공식 발표가 나오자 향후 다른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속도를 끌어올리는 시발점이 되리란 관측이 주를 이뤘다. 실제로 SK에 이어 한진그룹이 한진칼과 정석기업의 합병을 결정하면서 제대로 불이 붙었다. 4월 20일 SK그룹은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SK C&C와 SK㈜를 합병한 통합법인을 출범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SK C&C가 신주를 발행해 SK㈜ 주식과 교환하는 방식이다. 사명은 그룹 정체성 유지를 위해 SK주식회사로 결정했다. 일정 대로라면 8월 1일 합병회사가 출범한다.

2007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SK그룹의 명목상 지주회사는 SK㈜였지만 실제로는 SK C&C가 그 역할을 했다. 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은 현재 SK㈜의 지분을 단 0.02%만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지분 31.8%로 SK㈜의 최대주주인 SK C&C의 지분을 32.9% 보유하고 있다. SK C&C를 통해 지주회사인 SK㈜를 지배해 온 셈인데 지주회사 위에 또 다른 지배회사가 있는 ‘옥상옥’ 형태의 특이한 구조였다. 이 때문에 ‘지주회사인 듯 아닌 듯’이란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이번 합병에 따라 SK그룹은 ‘최태원 회장→SK C&C→SK㈜→계열사’로 연결되는 지배구조를 ‘최태원 회장→SK㈜→계열사’로 단순화하게 됐다. 이 합병회사로 SK하이닉스·SK텔레콤 등 계열사를 지배하는 진정한 의미의 지주회사 체제가 완성된 것이다.

합병으로 최 회장이 가진 SK C&C 지분 32.9%는 23.4%로 줄어든다.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최 회장의 여동생)의 지분 역시 10.5%에서 7.5%로 줄어든다. 오너 일가 지분이 43.4%에서 30.9%로 감소하지만 경영권 유지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란 게 SK측의 설명이다. 업계에선 이번 결정이 지배 구조 단순화를 통한 기업 가치 제고와 경영 환경 재정비란 두 가지 포석이 깔려 있다고 본다. 최 회장이 부재한 상황과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실적이 딱히 괜찮다 할 만한 계열사가 없는 현실 등을 반영한 쇄신책이란 의미다. SK그룹은 합병 후속 조치로 본격적인 계열사 사업구조 개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의 합병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는데, 장동현 SK텔레콤 사장은 일단 부인했다.

한진칼·정석기업 합병으로 조양호 한진 회장 지배력 강화

사흘 뒤인 23일에는 한진그룹이 한진칼과 정석기업의 합병을 공식 발표했다. 정석기업을 사업부문과 투자부문으로 분할한 뒤 투자부문을 한진칼과 합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정석기업이 보유했던 한진 지분 21.6%와 와이키키리조트호텔 지분 100%는 한진칼로 넘어가게 됐다. 부동산 임대 및 관리를 하는 사업부문은 정석기업으로 그대로 남아 한진칼 자회사 지위를 유지한다. 정석기업 지분 27.2%를 보유하고 있던 조양호 회장의 한진칼 지분은 15.6%에서 17.8%로 올라갈 전망이다.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포함하면 28% 정도라 지배력이 훨씬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한진그룹은 2013년 8월 한진칼 출범과 함께 지주회사 전환을 꾸준히 준비해왔다. 지난해 11월 상장자회사 지분요건을 채우기 위해 한진칼이 대한항공 지분 29.9%를 공개 매수했고, 다음달엔 ㈜한진이 보유했던 한진칼 지분(5.3%)을 매각해 ‘㈜한진-한진칼-정석기업-㈜한진’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었다. 그룹 지배구조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정석기업을 정리하는 게 마지막 과제였는데 합병에 따라 정리 작업이 완료된 셈이다. 이에 따라 지주회사인 한진칼 아래 3개의 자회사(㈜한진·대한항공·정석기업)가 있고, 그 아래 한진해운 등 물류 계열사가 손자회사로 자리한다. ㈜한진이 자회사가 되면서 증손회사의 지분을 100% 취득하거나 아예 매각해야 하도록 한 공정거래법상 증손회사 관련 규제도 피할 수 있게 됐다.

사흘 새 10대 그룹 중 2곳이 굵직한 지배구조 개편 소식을 내놨다. 당연히 관심은 다음 타자가 누구냐에 쏠린다. LG그룹 정도를 제외하면 너나 할 것 없이 가장 큰 고민이 지배구조 개편이기 때문이다. 순환출자에 얽힌 각종 규제를 피해가기 위해서라도 지배구조 개편은 꼭 필요하고, 특히 승계를 앞둔 그룹은 서둘러 답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 방향이 지주회사 체제란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면서 오너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면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간단한 지배구조를 만드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지주회사 체제에선 오너와 특수관계인이 지주회사 지분을 어느 정도(대략 30%)만 확보해도 계열사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사업구조를 정리하려는 목적도 있다. 과거에 비해 경쟁환경이 훨씬 치열해지면서 의사결정 구조를 단순화해 경영 효율을 높이려는 것이다. 지난해 삼성과 한화의 빅딜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려면 계열사를 쪼개고 모아서 한 줄로 세워야 한다.

‘제일모직이 지주회사 될 것’ VS ‘삼성은 당장 안 움직인다’


아무래도 시선이 집중되는 건 삼성그룹이다.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에 관해선 ‘시나리오만 1만 가지’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워낙 복잡한 출자 고리로 엮여있기 때문에 이를 해소할 방법 역시 매우 많다는 의미다. 이건희 회장이 와병 중이고 사실상 이재용 부회장 체제가 시작됐다고 볼 때, 삼성이 확실한 승계를 위해 지배구조를 정리해야 할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만약 삼성이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결정한다면 그 중심은 제일모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삼성 오너 일가는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한다. 제일모직은 이 회장(20.8%)에 이어 삼성생명의 2대 주주고, 제일모직의 최대주주는 23.2%를 보유한 이 부회장이다. 지주회사 후보로 가장 적합하다.

이 때문에 제일모직을 여러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삼성물산과의 합병해 지주회사로 만들 것이란 관측이 꾸준히 나온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 지분이 없어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최대주주 지분율이 10%대로 떨어진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 부문 사장이 각각 제일모직 지분 7.7%를 보유하고 있고,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하면 50%가 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지만 승계 과정에서 남매의 관계가 어떻게 틀어질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삼성전자를 인적분할해 별도의 지주회사를 만들고, 이 회사를 제일모직과 합병하는 방법 등이 언급되지만 방식이나 타이밍을 예상하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오히려 현 시점에서 가장 유력해 보이는 건 삼성이 당장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신규 순환출자가 막혀있을 뿐 현 체제로도 이 부회장이 계열사를 지배하는데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한 애널리스트는 “이렇게 큰 대기업 집단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려면 자회사 지분 매입 등 눈에 보이는 돈만 수십조원이 필요한데 이 정도의 돈을 쓰더라도 얻을 이익이 더 크다면 어떻게든 할 것”이라며 “그러나 증권가에 도는 소문처럼 삼성이 당장 움직일 가능성은 작고, 실행하더라도 아주 천천히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그룹과 마찬가지로 승계 이슈가 부각되는 현대자동차그룹은 오너 일가의 계열사 지분이 많지 않아 고민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다. 정몽구 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 7%, 현대차 지분 5.2%를 보유하고 있지만 정의선 부회장은 핵심인 현대모비스 지분이 없다. 정 부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을 늘리는 게 관건이다. 움직임은 관측된다.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은 지난 2월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각각 8.6%, 4.8% 매각했다. 표면적으로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였지만 일단 매각으로 두 사람은 1조1500억원 가량의 현금을 확보했다. 지난해 정 부회장이 이노션 지분을 매각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이렇게 실탄을 모아 현대모비스 지분을 늘린 다음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구체화할 것이란 설명이다.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정리해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는 방안, 현대모비스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현대글로비스가 현대모비스 지주회사와 합병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원샷법 6월 국회 제출, 구조 개편 탄력 받을 듯


재계에서 가장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가진 롯데그룹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롯데그룹은 순환출자 고리가 4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계열사가 얽혀 있다. 지난해부터 이 고리를 빠른 속도로 정리해가는 중이다. 일단 다른 그룹에 비해 오너 일가의 계열사 지분 비중이 큰 편이라 현 체제로도 지배력에 문제는 없다. 달리 말하면 지주회사로 전환하더라도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일본롯데홀딩스가 거의 전량을 보유한 호텔롯데가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데,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과 호텔롯데를 각각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나눈 뒤 두 지주회사를 합병하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한화그룹에선 최근 한화S&C가 관심의 대상이다. 비상장 IT 서비스 업체인 한화S&C는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는 김 회장의 나이를 고려할 때 10대 그룹 중 비교적 승계에 여유가 있다. 한화S&C가 작은 회사이긴 해도 신사업 등으로 덩치를 키운 뒤 현재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한화와 합병한다면 무난한 승계 작업이 가능하다.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 구조를 가진 현대중공업그룹은 이 고리를 끓기 위해 아예 3사를 합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오너 일가의 지분이 많지 않아 지주회사 전환 작업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SK와 한진이 연이어 화두를 던지면서 확실히 분위기를 탔다. 정부가 기업의 사업구조 재편을 도울 방안을 마련 중이어서 전환 속도가 더욱 빨라질 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다음달 ‘사업재편 지원 특별법(일명 원샷법)’ 초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각종 규제를 풀어주고, 세제 혜택 등을 패키지로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우선 인수·합병(M&A) 때 소액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1년 정도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소액주주가 합병의 이득보다 리스크가 더 크다고 판단했을 때 ‘정당한 가격에 내 지분을 사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물량이 얼마 안 될 땐 대세에 지장이 없지만 합병에 반대하는 소액주주가 많으면 합병 자체가 무산되기도 한다. 지난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무산 사례가 대표적이다. 기업 입장에선 없어지면 제일 좋겠지만 기간만 연장돼도 자금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일정 요건을 갖추면 주주총회 없이 합병, 주식교환, 회사분할 등을 할 수 있는 약식 사업재편 제도도 손을 볼 방침이다. 연장선에서 현행 최장 120일인 기업결합심사 기간도 줄여준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또한 대기업 집단의 지배구조 및 사업 재편 계획을 심사해 타당성이 인정될 경우엔 공개 매수 비용을 낮춰주거나 지주회사 관련 규제를 완화해주는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진원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원샷법은 지주회사 전환에 대한 중대한 규제 변화”라고 설명했다. 10대 그룹뿐만 아니라 순환출자 해소를 고민 중인 중견그룹 입장에서도 구미가 당길 만하다. 재계는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회사 보유를 허용하되, 규모가 클 경우 중간금융 지주회사를 도입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금융 계열사 지분을 정리하지 않고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데 통과되면 금융 계열사가 많은 삼성·현대차·롯데 등이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1283호 (2015.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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