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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약점 극복에는 기초 다지기가 ‘신의 한 수’ 

바둑 고수는 약점 극복 위해 기초부터 수련... 스타일 바꾸는 변신법도 배울 만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경쾌하고 능률적인 바둑을 구사해 ‘제비’ 또는 ‘속력행마’로 불렸던 조훈현 9단은 전투적인 면을 보완한 새로운 기풍을 선보였다. 그러면서 별명도 전쟁의 신을 뜻하는 ‘전신(戰神)’으로 바뀌었다. / 사진:중앙포토
사회 분위기가 좀 어수선하다. 뇌물스캔들로 총리가 사퇴하고 세월호 문제로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 절친 관계를 맺으며 우리의 외교상황에 불안감을 심어주고 있다. 지나가던 행인이 갑자기 땅 밑으로 추락하는 사건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사건사고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이 비슷한 패턴으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사건이 벌어지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난다. 우리의 대책이 미봉책에 그치고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중대한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약점은 부패 공화국, 안전불감증, 땜질처방 등과 같은 용어에 잘 나타나 있다. 질리도록 많이 들어온 말이다. 오래 전부터 나온 이런 불명예스런 말들이 사라질 때가 됐는데도 계속 떠돌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부패공화국, 안전불감증, 땜질처방 오명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부정적 요인들은 우리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안전관리 소홀로 인한 사건사고로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이 지출되고 있는가. 부정부패로 인한 날림공사, 재선거 등에 드는 불필요한 돈이 세수를 낭비시키고 있다. 땜질처방으로 인한 시행착오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면서 많은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대박 상품을 개발하는 것보다 이런 고질적인 약점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사회의 기초를 굳건히 하는 것이 썩은 집 위에 황금빛 누각을 쌓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우리의 중대한 약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를 바둑을 통해 알아보기로 한다. 바둑 고수들의 약점 극복 노하우에는 배울 만한 점이 있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바둑 고수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강점을 살리는 전략을 쓴다. 집짓기에 능한 사람은 돌의 경제성을 살려 집을 많이 만들어 이기는 전략을 쓴다. 전투에 능한 사람은 전투력을 발휘하여 승리를 얻어내려고 한다. 고수들은 이런 강점을 계속 강화시켜 나간다. 그렇게 해서 프로기사의 브랜드에 해당하는 별명이 생겨난다. 신산, 대마킬러, 우주류, 철의 수문장, 미학사, 컴퓨터와 같은 별명이 붙여진다. 이런 별명은 프로기사의 강점을 나타내고 있다. 신산(神算)은 계산력이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뜻이며, 대마킬러는 대마(大馬) 잡는 솜씨가 특출남을 보여준다. 프로기사들은 자신의 강점을 살리면서 또한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려고 노력한다. 항상 강점만으로 경쟁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약점이 두드러져서는 그것 때문에 허망하게 무너지는 경우가 생긴다.

바둑 고수들이 약점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그중 하나는 자신의 약점인 분야를 기초부터 다시 수련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형세판단 능력이 약하다고 판단되면 바둑수의 경제적 가치를 계산하는 방법부터 다시 배운다. 이미 연구생 시절에 공부했던 내용이지만 기초부터 다시 시작한다. 영어 공부로 치면 기초 영문법부터 다시 공부하는 것이다. 포석이 약한 사람은 [포석의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고, 사활(死活)이 약한 사람은 [기초사활]부터 다시 공부한다. 전문가가 이런 식으로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는 것은 다소 의외일 것이다. 왜냐하면 약점인 분야라도 이미 상당한 내공을 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초보자에게나 맞는 공부를 다시 한다는 것은 체면을 구기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고수들은 이렇게 하는 것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자신이 약한 부문을 획기적으로 고치려면 기초부터 다시 점검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본다. 기초부터 점검하며 차근차근 쌓아 나가야 약점이 수정될 수 있다고 본다.

[1도]처럼 진행된 포석을 사용한다고 하자. 흑1과 3으로 두는 것을 ‘양소목포진’이라고 한다. 이 포석에서의 전술과 전략은 다양하고 약간 복잡하다. 포석이 약한 사람은 이것을 연구하기보다 더 쉬운 모양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2도]는 화점만으로 이루어진 포석이다. 포석방법이 단순하고 명쾌하다. 이런 기초 포석부터 다시 시작해 소목포석, 외목포석 등으로 올라가는 편이 도움이 될 것이다. [3도]는 돌의 사활에 관한 모양이다. 우상귀의 모양은 귀에서 자주 나오는 형태로 비교적 기초적인 문제에 속한다. 그런데 여기서 좌하귀의 흑1과 백2를 교환하면 이 사활은 갑자기 고급 문제로 변한다. 이 문제의 해답은 지면관계상 생략하지만 우상귀의 기초적인 모양을 공부하며 올라가는 것이 의미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의 근본 체질 바꿔야

프로기사들의 이런 방식을 응용해 우리도 위에 든 약점을 기초부터 다시 공부해 보면 어떨까. 부패의 쇠사슬을 끊기 위해 도덕성 교육을 받도록 하고, 안전불감증을 치유하기 위하여 안전 관리와 위기관리 운동을 펼치고 국민이 기본적으로 이런 교육에 참여하도록 한다. 또한 미봉책으로 땜질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여 ‘신의 한 수’를 찾는 훈련을 하도록 한다. 기초부터 약점을 극복하는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확실히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프로기사들이 사용하는 또 하나의 노하우는 자신의 기풍(棋風)을 획기적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자신의 성향이나 철학을 바꿔버리는 것이다. 정치에 비유하면 보수파가 진보파로 탈바꿈을 하는 것과 같다. 몇 가지 예를 보자. 경쾌하고 능률적인 바둑을 구사해 ‘제비’ 또는 ‘속력행마’로 불렸던 조훈현 9단은 전투적인 면을 보완하여 새로운 기풍을 선보였다. 그러면서 별명도 전쟁의 신을 뜻하는 ‘전신(戰神)’으로 바뀌었다. 빠르게 집을 차지하는 전법만으로는 살아남기가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엄청난 파괴력으로 유명했던 ‘대마킬러’ 가토 마사오 9단도 자신의 스타일을 부드럽게 바꾸어 공격력과 유연성을 겸비한 스타일로 변신을 했다. 그렇게 변화하면서 가토 9단은 유명 타이틀을 여러 개 차지하며 5관왕에 올랐다. 공격 위주의 경직된 바둑을 두다가 집짓기를 가미한 바둑이 되니 승률이 크게 올라간 것이다. 이밖에도 기풍 변신의 사례는 상당히 많다. 프로기사들이 자신의 스타일까지 바꾸며 약점을 극복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방식을 응용해 우리 사회의 체질을 바꾸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검은 돈이 아닌 실력으로 승부를 하고, 안전관리를 최우선시하는 문화를 만든다. 또한 국가와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부각시키고 연구하는 풍토를 만든다. 우리나라의 반복되는 고질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바둑 고수들의 약점 극복 노하우를 알아보았다. 하나는 기초부터 근본적으로 다시 닦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자신의 스타일 즉 체질까지 변화시키며 약점을 보완한다는 것이다. 사실 어느 분야든 이렇게 한다면 약점을 극복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국가는 물론 개인적으로나 개별 기업에서도 이 노하우를 응용해 보았으면 한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285호 (2015.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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