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피로도 걱정도 사람처럼 친근하게 

기업·제품의 의인화 전략 먹혀 ... 소비자 스스로 별칭 만들어 재미 추구하기도 

전미영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현대차는 고객의 추억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캠페인 ‘브릴리언트 메모리즈’를 진행했다. 조형작가 칸의 소파(그랜저 시트), 아티스트 그룹 에브리웨어의 사진 감상대(싼타페 핸들·부품). / 사진:중앙포토
1831년 설립된 프랑스의 ‘미쉐린’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타이어 업체다. 미쉐린을 유명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화이트 타이어 맨’으로 불리는 특유의 브랜드 캐릭터다. 창업자가 한 전시회에 참여했다가 타이어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이 막연히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되어 탄생했다고 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최고의 기업 로고 및 마스코트’에도 선정된 기업 캐릭터의 대표주자다. 최근 이처럼 상품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타이어라는 무생물을 의인화(personalization)해서 소비자가 제품에 감정을 이입하고 공감하도록 유도한다. 기업에 인간의 감성을 불어넣는 의인화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이미 우리 주변에서도 의인화된 기업의 사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피로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한 약품은, 누구도 형체를 본 적 없는 ‘피로’를 의인화한다. 귀여운 악마복장을 한 유명 연예인이 “나는 당신의 피로물질입니다”를 외치며 피로를 표현한다. 한 보험회사에서는 ‘걱정’을 의인화하기도 했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걱정을 인형이 대신 도맡아 해준다는 ‘걱정인형’이란 캐릭터를 선보여 큰 인기를 얻었다. 그들의 주장이 진짜든 아니든 소비자들은 개의치 않는다. 눈으로 확인했으니 그만이다.

제품 특성과 속성에까지 인간의 감정 이입

굳이 캐릭터가 아니더라도 기업의 의인화는 가능하다. 가령 제품에 별칭이나 애칭을 붙여 더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전략도 구사할 수 있다. 이전에는 의인화하려 하지 않았던 제품 자체의 특성과 속성에까지 인간적인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다. 숫자로 색상을 구분하던 화장품 업계에서는 최근 제품의 특성을 반영한 이름짓기에 빠져있다. 화장품 브랜드 에뛰드 하우스에서는 ‘닮고 싶은 여배우 코랄’ ‘한번쯤은 일탈 레드’ ‘지적인 차도녀 코랄’ ‘숨겨진 청순본능 코랄’ ‘매혹적인 여신포스 베이지’와 같은 이름으로 사람들의 구매욕을 자극한다.

소비자들 스스로 별명이나 애칭을 만들어 부르며 기업을 의인화하기도 한다. 최근 소비자들의 구매 후기를 읽다보면 ‘감기몰에서 샀다’거나 ‘설탕몰에서 샀다’는 등의 글을 볼 수 있다. 여기서 ‘감기몰’이나 ‘설탕몰’은 기존의 ‘H쇼핑몰’과 ‘CJ쇼핑몰’을 의미한다. 감기에 걸려 기침할 때 나오는 ‘에이취’란 의성어나 과거에 설탕을 판매했던 기억을 가지고, 소비자 스스로 별명을 지은 것이다. 회사 담당자도 모르는, 자기들만의 은어로 이름을 지어 부르면서 소비자 스스로 재미를 추구한다.

자신의 애용품을 마치 생물화해 별명을 부르기도 한다.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에게 말을 거는 모습이나, 혼자 열심히 일하는 로봇청소기를 보며 “수고가 많다”고 한마디 거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현대자동차는 이처럼 애용품을 의인화하는 현상을 마케팅에 적용하고 있다. 2014년 겨울, 폐차 등으로 차량을 떠나보내는 고객을 대상으로 사연을 받아, 그들이 타던 차량과 부품을 유명 아티스트들이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주는 ‘브릴리언트 메모리즈(brilliant memories)’ 캠페인을 벌였다. 고객들에게 인생의 한 부분이었던 자동차와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게 한다는 취지다. 이는 몇 년 전부터 시행해온 ‘리브 브릴리언트’ 캠페인의 하나로, 자동차를 단지 이동의 수단이 아니라 마치 둘도 없는 동료나 친구, 또는 인생의 동반자로 인식하게 한다.

기업은 기업과 제품을 의인화하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구사해 고객과 기업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자 한다. 가령, 기술 위주 제품의 경우 소비자와 기업 사이에 정보격차가 클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요소들은 소비자들이 인지하기 어렵고 기억하기도 힘이 든다. 하지만 캐릭터를 사용하거나 의인화하는 전략을 활용하면 소비자들이 제품과 서비스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 복잡하고 어려운 것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에도 인격화 필수

기업이 캐릭터 등을 활용하는 이유를 마케팅 비용 절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스타 마케팅은 비용이 많이 들지만 캐릭터를 활용하면 적은 비용으로 나름의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모델로 활동하는 연예인이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릴 경우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위험성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인기 연예인의 경우 겹치기 출연으로 인해 기업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장기간에 걸쳐 자사 브랜드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인격화된 캐릭터를 사용한 캐릭터 마케팅이 유용하다.

기업이 전달하려는 핵심 속성을 이야기에 담는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위해서도 인격화는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스토리는 이야기·플롯·메시지·캐릭터로 구성되는데, 스토리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다른 어떤 구성요소보다 효율적으로 소비자에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캐릭터다. 보험회사가 고객의 걱정을 덜어주고, 피로회복제가 쌓여있는 피로를 없애준다는 핵심 속성을 이야기로 전달하는 데 있어서 캐릭터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의인화를 활용하면 기업의 역사나 창업주와 관련된 이야기, 제품이 개발되기까지의 뒷이야기 등을 스토리텔링하기가 더욱 용이하다.

인간은 원래 사물에서 사람의 특성을 찾는다는 주장도 있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 인류학과 연구진은 도시에 사는 오스트리아 사람과 자동차를 거의 본 적이 없는 에티오피아 시골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46종류의 차를 보여주면서 이를 사람의 특성으로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두 집단 모두 같은 방식으로 차를 인식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작은 창이 있고 뒤쪽이 넓은 헤드라이트를 가진 차를 통해 넓은 얼굴과 작은 눈을 가진 남성의 얼굴을 상상했다는 것이다. 연구 책임자인 소냐빈트하거 박사는 “사물에서 사람의 얼굴을 찾으려는 경향은 먼 옛날 자연 상태에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생존방식이 그대로 전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욱 치열해질 미래시장에서 단순히 제품을 만화처럼 표현하는 ‘의인화를 위한 의인화’로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 어렵다. 소비자들이 해당 상품에서 어떤 가치를 느끼고 있는가를 표현할 수 있을 때 기업의 의인화 전략은 더욱 빛을 발휘할 것이다.

전미영 -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겸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수석연구원. 2010년부터 매년 [트렌드코리아]를 공저하며 한국의 10대 소비 트렌드를 전망하고 있다. 2013년에는 [트렌드차이나]로 중국인의 소비 행태를 소개했다. 한국과 중국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를 산업과 연계하는 컨설팅을 다수 수행하고 있다.

1285호 (2015.05.18)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