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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신 - 핀테크지원센터장] “금융 사각지대서 핀테크 먹거리 찾아야” 

핀테크 개발 업체 금융·법률 멘토링 … 변화 맞은 금융사의 연착륙 전략도 필요 


▎사진:전민규 기자
금융(financi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인 ‘핀테크’는 올해 경제·산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단어다. 모바일 전자결제 시장이 성장하면서 관련 분야인 핀테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핀테크 관련 업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핀테크 산업 육성책을 내놓으면서 시장에 불을 지폈다. 지난 5월 6일 열린 제3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은산분리 완화, 비대면 실명확인 도입을 골자로 한 ‘핀테크산업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완화해 금융사와 IT 업체가 핀테크산업에 좀 더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이보다 앞선 3월 30일에는 경기도 판교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내에 ‘핀테크 지원센터’가 문을 열었다. 금융위원회가 핀테크산업 활성화를 위해 핀테크 기업과 금융사의 현장 접점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만든 공간이다. 핀테크 기업이 금융사 관계자를 만나기 쉽지 않다는 애로사항을 반영한 조치다. 5월 12일 만난 정유신 핀테크지원센터장(서강대 경영학부 교수)은 “벤처와 금융사, 정부가 서로 멘토링을 하면서 핀테크와 관련한 아이디어를 얻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센터장은 굿모닝신한증권 부사장, 한국SC증권 대표를 지내고, 지난해까지 한국벤처투자 대표를 역임해 금융과 기술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깊다. 그는 4월 21일 핀테크지원센터 초대 센터장으로 위촉됐다.

정 센터장이 핀테크지원센터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핀테크 관련 벤처 기업의 멘토링이다. 핀테크와 관련된 사업을 진행 중이거나 기술을 개발해 창업하려는 예비 창업자들이 센터에 방문하면 상주하고 있는 금융당국·금융사 관계자와의 상담을 통해 수익 모델을 시장 상황에 맞춰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금융산업에 뛰어들었을 때 해결하기 어려운 ‘법적 문제’도 전문 법무 담당관 등이 상주해 돕는다. 또 여기서 발굴된 우수 핀테크 업체를 월 1회 ‘데모데이(Demo-day)’ 행사 등을 통해 금융사와 연결해 해당 기술을 금융사가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데모데이는 지금까지 상담을 받았던 기업들 중 선발해 금융당국과 금융사가 심사하는 일종의 ‘공개 오디션’이다.

와해적 혁신-상생적 혁신의 투 트랙 접근

정 센터장은 “현재 국내 핀테크 시장은 금융사는 기술을 모르고 기술 업체는 금융을 모르는 상황”이라며 “우리 금융환경에 맞는 서비스를 업체가 만들고, 금융사가 이를 활용해 수익이 창출되는 구조를 만드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센터가 문을 열고 한 달 남짓 동안 41개 업체가 상담을 받았다. 그중 22개 업체가 금융사와 연결돼 서비스 개발을 논의 중이다. 정 센터장은 “현재는 은행·카드사를 중심으로 상담을 진행 중이지만 향후 증권·보험 등 모든 금융권이 참여할 계획”이라며 “이들이 핀테크 기업과 만나 송금·결제·브로커리지·자산운용 등 금융 권역별로 수익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핀테크 산업 전반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정 센터장에게서 조급한 기색이 드러났다. 글로벌 기업은 빠르게 치고 나가는데 국내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않아서다. 그는 국내 핀테크산업 성장의 걸림돌로 ‘상생에 대한 의심’을 꼽았다. 특히 금융권에서 ‘핀테크가 혁신 서비스인 건 알지만 내 자리를 없애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번져 과감하게 나서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 센터장은 “핀테크는 ‘와해적 혁신’과 ‘상생적 혁신’으로 나눠 두 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기존에 금융사들이 하고 있는 서비스에 핀테크가 침투하는 것은 와해적 혁신이다. 이미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에 일반 기업이 쉽게 접근하려는 영역이기도하다. 하지만 금융사의 반발과 같은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정 센터장은 “핀테크는 피할 수 없는 변화이기 때문에 최대한 갈등으로 인한 낭비를 줄이면서 여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일종의 ‘연착륙’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권이 투자를 통해 기존 사업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고, 직원들이 여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핀테크로 윈-윈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 산업 환경이 조성될 거라는 게 정 센터장의 기대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은산분리 완화, 비대면 실명확인 도입을 담은 정부의 활성화 방안이 핀테크 산업화에 도움이 될 것”이고 평가했다. 현행 법률은 은행 등이 출자할 수 있는 대상을 ‘금융업 관련 회사’로 한정하고, 산업자본의 경우 최대 15% 이내 지분 투자만 허용하고 있다. 사모펀드·벤처펀드 등을 통한 산업자본 간접 투자도 최대 30%까지만 허용한다. 이 때문에 핀테크 기업도 산업자본으로 분류돼 은행이 이들 기업을 인수하려면 금융위 승인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이번 방안에 따라 이르면 5월부터 핀테크 기업에 대한 은행의 출자가 자유로워진다. 비대면 실명확인 도입도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과 직결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국내 핀테크 산업의 전환점이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일정 수준 보안 위험 용인해야”

핀테크의 다른 접근 방법은 ‘상생적 혁신’이다. 핀테크가 기존 금융이 하지 않았거나, 하더라도 미미했던 사업에서 특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롱테일(long tail)’ 영역이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아마존은 온라인 판매를 통해 1년에 단 몇 권밖에 팔리지 않는 ‘흥행성 없는 책’들의 판매량으로 ‘잘 팔리는 책’의 매상을 추월하는 롱테일 현상을 만든 바 있다. 이 같은 변화를 금융에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정 센터장은 소액자금·저신용 대출을 예로 들었다. 기존 금융사가 규모경제의 역설로 인해 접근하기 힘들었던 분야를 핀테크가 커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해외에서 출시된 온라인 P2P 대출 서비스인 ‘랜딩클럽’은 이 분야에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정유신 센터장은 “규제 완화에 집중한 와해적 혁신과 달리 상생적 혁신은 인센티브를 통해 모험적 자본이 투입될 수 있도록 조성하고 빅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가 개발되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잘 만들어진 핀테크 서비스가 한국의 강점인 모바일 기기 제조에 실려 나가면 우리가 40년 동안 못한 금융 수출까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한편, 핀테크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보안 이슈에 대해 그는 “보안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지만, 100% 막을 수 있는 방패는 없다”며 “용인할 수 있는 위험 수준을 정하고 그 이상의 사고에 대해서는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보안 기술과 핀테크산업이 같이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286호 (201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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