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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투자 전문가 6명이 말하는 ‘신(新) 가치투자 전략’] 못난이로 오해 받는 미인 찾아 구애하라 

자신이 가치투자 성향인지 파악하는 게 우선 … ‘중국·우선주·지배구조·소비재·성장성’이 키워드 


‘증시 분위기는 좋아졌지만, 기업가치(기업이익 대비 낮은 밸류에이션)를 중시하는 가치 투자자는 매우 고통스러운 국면에 있다. 증시 하락 국면에서보다 더 큰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있다.’ 지난 3월 신한금융투자가 낸 보고서 중 일부다. 주가수익비율(PER)을 기준으로 상장 종목을 5등급으로 나눠 최근 3개월 수익률을 조사했더니, PER가 가장 높은 종목군이 가장 싼 종목군보다 수익률이 더 좋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등한 증시에서 고평가된 종목이 저평가 종목보다 주가가 더 많이 올랐다는 얘기다. ‘싼 종목을 골라 오래 보유하라’라는 원칙을 따르는 가치 투자자 입장에선 한숨이 나올 만한 통계다. 실제로 아모레퍼시픽·한샘·호텔신라처럼 PER가 40배 이상 비싼 주식 가격은 크게 올랐다. PER는 현재 주가를 1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수치다. 이 수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기업의 수익에 비해 주식이 비싸다고 판단할 수 있다.

‘싼 주식 장기 보유’만으론 2% 부족

그렇다고 가치투자를 접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가 않다. 3개월 수익률을 놓고 ‘박탈감’을 운운하는 자체가 가치투자의 철학과 맞지 않다. 더욱이 요즘처럼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는 ‘달리는 말(급등하는 주식)’에 잘못 올라탔다가 낙마하는 수가 있다. 물론 단기 수익률만 따지면 가치투자가 손해 본 장사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을 늘려 보면 다르다. 지난해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는 2조5000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같은 시기 ‘가치주 펀드’에는 1조원이 순유입됐다. 가치주 펀드 수익률이 좋아서다. 펀드 평가사 등에 따르면 55개 가치주 펀드의 3년 평균 수익률은 12%가량 된다. 이 시기 코스피 지수는 박스권에 갇혀 0.8% 오르는데 그쳤다. 펀드매니저 600여명의 3년 수익률을 분석해보면 10명 중 8명이 가치투자자였다.

중요한 것은 가치투자도 가치투자 나름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싼 주식을 사서 무작정 오래 보유하는 것’을 가치투자로 여기던 시절은 지났다. 또한 가치투자가 단기 매매보다 투자 수익률이 낮다는 것 역시 오해다. 가치투자 전략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펀드시장을 주름잡는 가치투자 대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투자를 할까? 2008년 결성된 ‘가치투자포럼’ 회원 6명으로부터 비법을 들었다.

전문가들은 일단 좋은 비즈니스모델에 주목했다. 막연한 시장 전망이나 저렴한 주가가 아니라, 사업성 자체가 ‘가치’ 있어야 한다는 전제다. 사업이 잘될 수 있는 기업인데 단기 실적이 부진하거나 호재를 못 만난 종목이 이들의 노림수다. ‘저평가된 싼 종목’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짜는 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는 “단기 악재가 산적해 있지만 비즈니스모델이 우수한 홈쇼핑에 주목하고 있다”며 “또 독특한 성장 전략을 가진 금융업에도 관심이 많다”고 말한다. 역발상 투자를 선호하는 그는 시장의 오해로 주가가 잘못 평가된 기업에서 투자기회를 찾는다. 최 대표는 “오해를 겪은 기업의 주식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오해가 풀리면서 주가가 반등한다”면서 “지난해 반정부 시위로 경제가 흔들린 태국에 투자해 100% 가까이 수익률을 올린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미 여러 차례 태국공항을 탐방해 기업의 실제 가치를 잘 알고 있었던 그는 반정부 시위가 격해져 태국공항 주식이 급락하자 집중 투자를 결정해 높은 실적을 낼 수 있었다.

기업 외형에 휘둘리지 말라

장기투자·분산투자·균분투자로 포트폴리오를 짜는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부사장은 ‘당신이 오너가 되어도 충분히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을 만한 경쟁력을 가진 기업인가’로 투자를 판단한다. 오너의 관점에서 기업을 분석한단 얘기다. 허 부사장은 현재 일본의 화장품 등 내수산업에 연관성이 높은 회사들에 투자하고 있다. 엔저 영향으로 중국 특수가 예상되고 오랜 기간 이어진 불황을 견딘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절대 저평가주에 투자하는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아무리 최고의 기업이라 해도 주가가 이미 크게 올랐다면 절대 투자하지 않는다”며 “반드시 내재가치보다 저평가돼 정말 싸다고 생각될 때만 투자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이 부사장이 판단하는 기준은 PER 10배 이하, PBR 0.5배 이하다.

중국의 1등주에 관심을 쏟는 조용준 하나대투증권 전무는 “장기투자가 가능한가, 수요가 안정적인가, 기업의 경쟁력이 있는가를 주로 본다”고 말한다. 그는 중국 소비재와 관련한 한국의 수혜주와 중국 현지의 해당 업종 1등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구체적으론 중국인민재산보험, 중국복성제약, 텐센트 등이다.

TSI투자자문 대표를 지낸 이택환 호서대 교수는 기업 내용에 앞서 시장 상황과 환경을 따져본다. 성장하는 국가의 소비 환경을 주시하는 것이다. 국가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각국의 소비가 얼마나 늘어나고 있는지 살핀다. 소비는 성장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확대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주로 소비 관련주에 투자하는데 보험·헬스케어·식음료 업종에 관심을 둔다. 이 교수는 “중국 소비주와 한국 내 지주사와 우선주에 투자하고 있다”며 “향후엔 중국의 비중을 키일 예정인데 한국과 유사한 점이 많은 베트남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 중국인민보험과 복성제약에 투자하고 있다. 중국의 손해보험이 향후 5배 이상 커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중국 제약시장에 대해선 낙관적이다. 한국의 경험에 비춰보면 5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는데, 매출이 5배 늘면 이익은 10배가량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교수는 “향후엔 중국의 화장품과 음식료 업체 주식을 사들일 용의도 있다”고 했다.

장기적 안목으로 꾸준히 공부해야

용환석 페트라투자자문 대표는 회사의 업종과 성장률·크기 등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회사의 실제 가치와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평가하다 보면 현재 보이는 기업의 크기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용 대표는 “주가가 회사의 실제 가치보다 낮다면 단기적으로 어떤 상황이든 투자하는 편”이라며 “단기 실적 전망이 좋다 해도 5~10년 후에도 좋을 것 같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관심이 떨어져 상대적으로 주가가 오르지 않고 있는 자동차 ·IT 업종 중에서 경쟁력 있는 회사를 골라 투자한다. 또 경기를 잘 타지 않는 기업의 우선주나 지주사 등에 주목하면서 지배구조가 개선되는 등 특수한 상황에서 저평가돼 있는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

가치투자자들은 각자 나름의 투자처 물색법이 있다. 최준철 대표는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소외된 업종을 지목한 뒤 그 업종 내에서 탁월한 실적을 내는 종목을 살핀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 인터넷 주식에 관심을 쏟고 있다. 최 대표는 “가치투자를 하기 위해선 관련 업종과 기업 등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면서 “유행을 쫓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을 늘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택환 교수는 증권사가 내는 기업 리포트를 참고해서 투자할 업종(섹터)을 고른 뒤 기업을 선별하는 방법을 쓴다. 소비재 주에 관심이 많은 만큼 변화하는 소비시장에 그 기업이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 보는 것도 투자포인트다. 이 교수는 “50대 투자 가도 앞으로 30년은 투자할 시간이 있으니 지금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일관되고 지속성 있게 투자하라”면서 “결국 투자는 지식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관련이 있으니 끊임없이 사유하고 공부하고 실행하라”고 조언했다.

용환석 대표는 “산업과 기업에 대해 이해하고 정확하게 분석하고 항상 보수적인 관점에서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면서 “시장 상황이나 단기 주가, 다른 투자자의 수익률에 흔들리지 말고 확신이 있다면 주가와 무관하게 종목을 보유할 수 있는 꾸준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허남권 부사장은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활의 변화에서 투자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한다. 소비시장 자체가 자신의 생활 주변에 있기 때문이다. 허 부사장은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 수준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고 자신의 지식과 성격, 판단능력 등 본인 스타일을 잘 알아야 한다”면서 “가치투자는 시간에 투자하는 전략이니만큼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어야 결정적인 순간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주가가 조금 떨어졌다고 손절매 하거나 조금 올랐다고 환매해 버리면 가치투자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채원 부사장은 “투자 세계에는 누구에게나 적합하고 완벽한 전략은 없다”면서 “투자자 자신의 성향이 가치투자에 적합한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투자하는 기업이 속한 산업 자체를 이해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것을 권한다. 투자에만 신경이 팔려 기업이 어떤 업황에 놓여있는지 모를 수 있으니 조심하란 의미다. 이 부사장은 “가치투자를 제대로 하려면 하루 2~3시간 이상은 꾸준히 연구해야 한다”면서 “투자는 요행이 아니라 지식과 연구로 수익을 올린다”고 강조한다.

조용준 전무는 “늘 리스크 요인을 살펴보라”고 주문한다. 가치투자도 잘못 판단하면 투자금을 날릴 가능성이 언제나 있다는 얘기다. 투자를 하기 전엔 자신이 투자하는 이유를 먼저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조 전무는 기대수익률을 정한 뒤 자신이 투자하는 이유에 대해 글로 써볼 것을 권한다. 투자가 합리적인지 객관화 시켜보라는 의미다.

1286호 (201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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