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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저치 기준금리 파장은] 소비 진작-수출 증대 효과 미미할 듯 

미국보다 장기 국채 금리 높아져 자본 유출 우려 ... 가계부채 더 늘 수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6월 11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없었다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로 내렸을까? 경기 회복을 기대하며 4~5월 금리 동결을 결정했던 금통위는 왜 전격 인하로 돌아섰을까? 이 시점에 굳이 기준금리를 내려야 했을까? 그래서 금리 인하 효과는 있을까? 효과가 없다면, 기준금리를 더 내릴 수도 있을까?

6월 11일 한국은행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1.75%에서 1.5%로 내렸다. 시장 반응은 대체로 ‘불가피했다’는 쪽에 모인다.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부진에 빠지고 저물가가 이어지는 와중에 메르스 사태까지 터지면서 기준금리 인하에 부정적이던 한은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는 것이다. 금통위 회의를 앞두고 당·청이 잇따라 금리 인하를 압박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마지막 카드를 던지고, 공을 정부로 넘겼다’는 평도 나온다. 이 총재는 11일 금통위 회의 직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금리 정책은 경기 대응이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구조적 개혁 노력이 중요하고 미시적인 대책이나 다른 거시 건전성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대해선 “전적으로 정부가 판단할 사안”이라고 했고, 가계부채 우려에 대해서는 “(정부가) 가계부채 총량을 관리하는 등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할 만큼 다 했으니, 이제는 정부에 달렸다는 뉘앙스다.

득보다 실이 많은 기준금리 인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린 표면적인 이유는 ‘메르스’였다. 이주열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 배경에 대해 “메르스의 부정적 영향을 미리 완화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메르스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지 불분명하고, 경제와 소비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미칠는지 분석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주열 총재 역시 “메르스가 어떤 영향을 줄지 파악 중이다”, “메르스 변수가 어떻게 진전될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만약, 메르스 사태가 조기 진화되면 금리 인하의 명분은 약해진다. 그동안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하라는 압박에 ‘정책 시차’와 ‘팩트(경기 지표)’를 강조해 왔던 한국은행의 입장과도 맞지 않다.

이번 기준금리 인하는 그간 박근혜정부의 재정·통화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자인한 꼴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과 10월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정부도 재정 완화 정책을 폈다. 하지만 경기 부양 효과는 미약했다. 그러자 한국은행은 올 3월 기준금리를 1.75%로 전격 인하했고, 정부도 10조원 규모의 단기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그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 시점이 올 2분기였다. 하지만 민간소비 증가율은 여전히 1%대의 함정에 빠져 있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2월 이후 6개월 연속 0%대에 갇혔다.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도 돈의 흐름(통화승수)은 시원하게 뚫리지 않았다. 실물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소득도 늘지 않는 유동성 함정 조짐이 뚜렷하다. 그 사이 가계부채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시중은행 가계대출 규모는 올해 1~5월 사이 25조5000억원이나 증가했다. 2월 3조7000억원, 3월 4조6000억원, 4월 8조 5000억원, 5월 7조3000억원 등 거의 매달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번 기준금리 인하 결정 역시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려 통화정책의 여력을 확보했다는 것 외에는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이번 금리 인하가 소비 진작이나 수출 증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이 대체적인 진단이다. 오히려 소비심리를 더 얼어붙게 할 가능성도 있다.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치로 하락하면서, 한국 경제가 정말 심각하다는 인식이 퍼지면 소비자들이 지갑들 더 닫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일단, 정부의 추가 경기부양책은 불가피해 보인다. 우리나라 분기별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분기 이후 줄곧 0%대다. 올 2분기 성장률 역시 1%대 달성이 힘겨워 보인다. 이대로라면 올해 3% 성장률도 버겁다. 때문에 정부는 기준금리 인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적극적인 재정 확장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 더욱이 지난해 4분기 세수 부족으로 더 이상 재정을 풀 수 없는 ‘재정 절벽’에 직면했던 점을 감안할 때, 세입·세출 추경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재정건전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일단은 돈을 풀 수 있는 만큼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기획재정부는 6월 말 발표할 예정인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추경 예산 편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 이상의 금리 인하는 ‘재앙’

한국은행 역시 ‘더 이상의 금리 인하는 없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줄 필요가 있다. 11일 금통위 회의 직후 이주열 총재는 향후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 “금리정책은 앞으로 상황에 달려 있다”며 “거시경제 흐름과 금융시장 움직임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원론적인 얘기 같지만, 시장에서는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적절하지 않은 발언이다. 한은이 ‘이번이 마지막 인하’라는 신호를 줄 경우 통화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임박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의 금리 추가 인하 신호는 독이 될 수 있다. 이번 기준금리 인하가 결정된 하루 전인 6월 10일, 한국의 10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미국보다 0.01%포인트 낮았다. 양국 장기 국채 금리가 역전된 것인데, 2006년 5월 이후 처음이다. 갑자기 일어난 일은 아니고, 서서히 금리차가 좁혀진 결과다. 더욱이 미국이 금리 인상을 기정 사실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면 외국인 투자금의 유출을 부추길 수 있다. 수출과 소비가 부진한 마당에 자본시장마저 침체하면 더 큰 위기가 온다.

이는 가계부채 문제와도 직결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신규 가계대출 금리는 2.96%로 사상 처음으로 2%대로 내려갔다. 이런 영향으로 4월 예금은행과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가계 대출 잔액은 765조원2000억원으로 전달 대비 10조1000억원이나 증가했다. 월 가계대출이 10조원 넘게 늘어난 것은 한은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3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이 와중에 금리가 추가로 인하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 가계 대출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향후 기준금리가 다시 오르면 부채 상환 부담과 위험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뇌관에 불을 붙이는 꼴이다.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입장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정부의 가계대출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안심전환대출처럼 단기·변동금리를 장기·고정금리로 바꾸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준금리 인하가 곧 대출금리 인하로 직결돼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 전환도 필요한 시점이다. 예대마진으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 금융회사의 후진적 행태도 문제지만, 정부가 금융권 대출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것 역시 가계부채 문제를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금융권 입장에서는 아무리 순마진이 박해도 대출을 늘릴수록 남는 장사다. 금융정보 웹사이트인 뱅크레이트닷컴에 따르면, 6월 11일 현재 미국 30년 고정 모기론의 금리는 4.11%, 15년 고정 모기론 금리는 3.25%다. 우리보다 기준금리가 1.5%포인트 낮은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우리보다 높다. 이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1290호 (201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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