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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고용의 5가지 문제] 한번 들어온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않아 

직무 구분없는 ‘멤버십형’ 장기 고용 ... 성과주의 설 자리 없고 여성 경제활동에도 제약 


▎지난해 4월 열린 일본 도쿄 소재 한 기업의 신입사원 입사 행사. 일본 기업은 신입사원을 뽑을 때 직무로 구분하지 않고 일괄적인 고용 계약을 한다.
‘야근을 줄이고, 양육 시간을 확보하고 싶다’. 장시간 근로 등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일본 직장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때마침 국회에서 노동시간 규제 등을 다루는 법안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모두가 바라는 노동 개혁이 가속화될 조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커다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일본의 고용 관행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채 안일하게 외국 방식을 도입하고자 한다면, 과거 성과주의 붐과 같은 뼈아픈 일을 다시 겪을 것이다. 이러한 착오는 ‘우리는 일본형 고용시스템을 이해한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시작된다.

1958년에 출간된 제임스 C. 아베글렌의 저서 [일본의 경영]은 종신고용, 연공서열, 기업별 노동조합 등 세 가지를 일본 기업의 특징으로 규정했다. 이후 이 사고방식은 크게 확산됐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일본형 고용시스템이 만들어낸 ‘귀결(결과물)’이지 그 ‘근본’은 아니다. 이걸 근본으로 본다는 건 종신고용이나 연공서열이 없어지면 일본형 고용시스템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믿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하면 ‘미국처럼 해고가 쉬워진다면 일본 기업은 잘 굴러갈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않고 결과만 바꾸려 한다면 고용 시스템 전체에 무리가 발생한다. 개혁이 좌절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직무를 기준으로 임금을 결정할 수 없는 일본 기업

일본형 고용시스템의 근본은 무엇인가? 그 키워드는 바로 ‘멤버십형’이다. 멤버십형이라는 설명은 1980년대부터 나왔지만 최근 하마구치 케이치로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 총괄연구원 등의 새로운 해석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들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일본형 고용시스템의 본질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고용계약에 있다. 일반적인 고용계약은 ‘회계’라든가 ‘영업’이라든가 어떤 종류의 업무를 처리하는가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그 범위 내에서 노동자와 경영자의 관계가 성립한다. 이와 같이 구분된 노동 종류를 직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직무라는 사고방식이 희박하다. 직원을 직무로 구분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고용 계약을 한다. 노동자는 기업 내의 모든 업무에 종사할 의무를 가지며, 경영자는 그것을 요구할 수 있다. 실제로 노동자는 그 때마다 각각의 직무에 종사하지만, 경영자의 필요에 의해 그 직무는 회사에 다니는 동안 몇 번이고 바뀔 수 있다. 이는 배치전환(직무변경)이라는 명령에 따라 시행된다.

즉 ‘일본의 고용계약은 직무가 적혀 있어야 할 부분이 공백 처리돼 있다. 그 성격은 일종의 지위설정 계약이나 멤버십 계약으로 볼 수 있다’(하마구치 총괄연구원). 이러한 본질만 잘 파악하면 일본형 고용의 특징은 간단히 도출된다. 장기 고용관행(종신고용)을 예로 들어보자. 기술 혁신이나 실적 부진의 결과로 어떤 직무가 불필요해진다면, 그것은 일본 이외 국가에서 고용계약 해지(정리해고)의 정당한 이유가 된다. 특정 직무에 대한 고용계약이기 때문에, 다른 직무에 종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고용계약은 직무 규정이 없기 때문에 직무에 필요한 인원이 줄어도 다른 직무로 전환시켜 고용을 유지한다(전근 포함). 해고는 멤버십의 박탈을 의미하며, 달리 종사할 수 있는 직무가 있는 한 간단히 해고시킬 수 없다. 판례를 볼 때 배치전환을 거부한 노동자의 해고는 비교적 간단하다. 노동자의 배치전환 거부가 쉽다면 사내 질서를 유지할 수 없게 되고, 이는 멤버십 정신에 반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종업원이 전근을 전제로 일하는 것이 일본의 특유한 업무 환경이다.

일본 이외의 국가처럼 직무를 특정해 고용계약을 하는 경우, 임금은 그 직무의 난이도나 시장가치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이것이 전 세계에 통용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다. 일본에서도 이 원칙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있으나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유는 당연하다. 직무는 무한정 있고, 직무를 기준으로 임금을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직무마다 임금에 차이가 나면 배치전환 때마다 노동자는 임금이 변해 부당하다고 느끼게 된다. 임금이 낮은 직무로 이동시키기 곤란해지면 사내 인사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는다. 그 결과 일본은 임금은 직무와 별개로, 연령이나 근속연수, 나아가 직무수행능력(근속연수에 비례)을 기반으로 정해지는 연공임금제다. 이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으나 아직까지 직무별로 임금을 매기는 일본 기업은 거의 없다.

기업 단위 임금이니 노동조합도 기업별로


▎자료: 동양경제
이를 통해 일본의 노동조합이 왜 기업마다 있는지 알 수 있다. 일본 이외의 국가에서는 임금이나 노동 조건이 직무마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노사 교섭도 기업 차원이 아닌 직무 단위(산업별 노조)로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에 반해 일본의 임금은 기업 단위로 결정되기 때문에, 노조 역시 기업 단위가 아니면 무의미하다. 다만 특정 회사만 임금을 올리면 경쟁력이 저하되기 때문에, 춘투(춘계 임금투쟁) 등을 통해 임금 인상을 타사로 파급시키도록 유도한다.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높은 신입사원 일괄 채용이나 장시간 노동 문제 역시 모두 ‘멤버십’이란 일본형 고용관행에서 출발한다. 일본 이외 국가에서는 직무를 중심으로 채용하기 때문에, 어떤 직무의 노동자가 부족할 경우 그 때마다 연령에 관계없이 채용한다. 사전에 그 직무에 필요한 능력은 필수적으로 보유하고 있어야 채용이 가능하다. 이에 반해, 일본에서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백지’ 상태의 신입사원을 일괄 채용한다. 그 후 OJT(ON THE JOB TRAINING) 교육을 거쳐 배치전환으로 다양한 직무를 경험시키고, 능력 향상을 도모한다. 신입사원 전원이 임원 후보인 동시에 공동체의 멤버다. 자연히 채용할 때 능력이 아닌 ‘인간성’이 중시된다.

중요한 것은 직무 무제한과 배치전환이라는 일본형 고용시스템의 근간에는 양의성이 있다는 점이다. 경영자는 강력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고, 노동자 역시 장기 고용이나, 연공 임금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지금까지 본질에 손을 대지 못했다. 일본식 고용관행의 5가지 문제점을 살펴보자.

①장시간 노동 : 직무 범위가 불분명하므로 야근이 정당화

다양한 일본형 고용관행은 장시간 노동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모든 정규직 사원은 직무와 무관하게 임원 후보다. 승진을 위해 ‘장시간 야근경쟁’에 빠지기 쉽다. 높은 연공임금을 받는 중 장년층 사원들은 그에 걸맞은 큰 성과를 내야 하거나 책임이 주어진다. 이를 달성하려면 야근을 해야 한다. 직무의 특수성이 없다는 것은 동료의 업무를 내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연히 동료가 자리를 비울 때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일에 익숙해져 능률이 오르면 상사가 그만큼 일을 더 많이 시키는 일도 흔하다. 직무 제한이 없기 때문에, 경영진의 야근명령은 정당화되기 쉽고, 구속력도 강하다. 이를 이용해 정규직 사원수를 불황기의 생산 수준에 맞추고, 호황기에도 사원을 늘리지 않고 야근을 통해 메우려는 일본 기업이 많다.

②여성이 일하기 힘든 환경 : 멤버십형은 여성에게 가혹

노동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이를 보충하려면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기업에서 활약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면에서도 일본형 고용관행은 장애물이 된다. 우선 위에 나온 장시간 노동이 문제다. 대학진학률 증가와 함께 남성과 동등하게 일하고자 하는 여성이 꾸준히 늘고 있으나, 이는 남성과 마찬가지로 제한이 없는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여성이 장시간 노동이나 구속성이 강한 배치전환을 견디면서 일과 가정의 양립에 성공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일본 여성 연령별 노동 참가율은 출산·육아를 해야 하는 30대에 급격히 저하되고, 양육이 일단락되는 재취업 시기에 상승하는 ‘M자 커브’를 그린다. 하지만 일본의 멤버십형 관행에서는 한번 퇴직하면 그때까지 쌓은 커리어는 소용없는 것이 된다. 재취업을 하더라도 파트타임 등 비정규직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인생의 단계에서 노동시장 진출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미국식 직무형 고용관행에서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다.

블랙기업이 젊은층을 구속하는 논리는?

③블랙기업: 장시간 노동 강요하며 신분 보장 안 하는 기업

일부 일본 기업 중에는 정규직으로 고용해놓고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으로 젊은층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블랙기업’이 있다. 이들은 일본형 고용관행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일본형은 장시간 노동이나 배치전환의 강한 구속력 하에 일하면서, 그에 대한 보상으로 노동자가 장기 고용이나 연공임금을 보장받는 형태다. 하지만 블랙기업은 장시간 사원을 구속하면서 별도의 신분 보장을 하지 않고, 경영자의 이득만 취한다. 블랙기업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젊은이를 설득하는 논리를 갖고 있다. 우선 ‘인생을 회사에 맡기지 않고 자기 다리로 걸어라’라는 식으로 ‘회사 인간’을 부정한다. 동시에 ‘창업자는 회사에서 먹고 자며 일해 왔다. 너희들도 함께 꿈을 꾸며 24시간 열심히 일하자’라고 보람을 이야기하며,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유대감을 강조한다.

④비정규직 고용: 멤버십 밖의 삶은?

멤버십형은 정규직 사원에 한정된 이야기다. 이와 모든 면에서 정반대의 삶을 사는 것이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다. 직무는 한정돼 있고, 승진은 없다. 기업별 노조에도 가입하지 않는다. 사내 교육이나 복리후생 조건도 좋지 않고, 물론 고용 보장도 없다. 멤버십형 정규직과 반대인 비정규직 노동자는 예전부터 대조적으로 일본형 고용관행을 구성해왔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사람은 주로 주부나 학생이었다. 아버지가 멤버십형 정규직으로 일하고, 주부나 학생이 가계를 보조하는 구조였다. 그러므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황을 맞아 가장 먼저 해고돼도 큰 문제가 없었다. 지금은 아니다. 아버지가 비정규직 노동자인 경우가 많다. 앞으로는 임금 수준을 포함해 중간적인 고용형태를 모색해 갈 필요가 있지만 난제다.

⑤성과주의 붐 좌절: 애매한 직무로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앞서 밝혔듯 일본형 고용시스템에서 임금은 직무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근속연수나 직무수행능력과 같은 ‘사람 기준’으로 임금을 결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직무수행 능력에 따라 널리 보급된 것이 직능급(직무능력에 따른 급여)이다. 버블 붕괴 이후의 성과주의 붐은 이 연공임금을 부정하는 것이 목표였다. 직능이 아닌 성과나 업적을 바탕으로 매년 임금을 올리고 떨어뜨리는 것이 성과주의 임금이다. 중장년층 사원의 임금 삭감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직무 무제한 때문에 동료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 당연한 일본형 고용관행에서는 팀워크가 강점인 반면, 성과를 어떻게 개개인에게 배분할 것이냐를 따지기가 어렵다. 당연히 평가를 둘러싸고 불만이 확대되고, 장기 성과를 내는 사원이나 성과를 내기 어려운 직무에 배속된 사원들의 반발이 속출했다. 성과주의는 좌절됐고, 정기승급 폐지 등 중장년층 사원의 임금 플랫화(임금 변동이 없는 상태)만 목표를 달성했다.

그렇다면 일본 외의 다른 나라는 어떻게 다를까? 취업 이전 출발점부터 차이가 있다. 학교 졸업과 동시에 일제히 입사하는 형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기업 내 각 섹션에서 결원 보충이나 증원 필요성이 있을 때 현장 책임자의 판단으로 충원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때 직무 기술서라는 서류에 직무 내용이 기재되며, 거기에 필요한 능력도 명확하게 명시하고 있다. 응모자는 먼저 그 능력을 학교나 전 직장에서 익혀야 한다. 연령이나 성별은 응모 조건과 전혀 무관하다. 즉, 학교를 졸업해 처음으로 취직하는 젊은이와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 급이 연령에 관계없이 동일한 임금과 대우를 받는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층의 실업률이 높다.

버블 이후 제기된 성과주의 붐은 다시 제자리로

또한 같은 직무에 종사하는 한, 특정 범위 내에서 숙련도에 따른 약간의 보너스가 있지만 기본 임금은 바뀌지 않는다. 근무 외 시간에 학습이나 훈련을 통해 기술을 향상시켜 보다 고임금의 상위 직무를 노릴 경우, 사내 공석에 응모하거나 타사로 전근할 수 있다. 공석에 지원할 경우 직무가 바뀌는 것이므로 고용계약은 다시 이뤄진다. 미래 임원이 될 사람은 시작부터 다른 코스를 밟는다. 엘리트 대졸 인재가 몇 가지 전문직 루트를 밟은 뒤 상위 직무로 고용계약 체결을 반복하는 형태다. 그들의 삶은 출세를 반복하는 사이 치열해지며, 일본인 이상으로 장시간 근무한다. 해고에 관해서는 오해가 있다. ‘해외는 일본보다 해고가 쉽다’는 인상이 강하지만 실제로 경영자가 별다른 이유없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미국(노조활동이나 인종·성별 등의 이유로는 해고할 수 없음)이 거의 유일하다.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

1290호 (201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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