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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진 타이거컴퍼니 대표이사] “1000개 中企 묶는 네트워크 만든다” 

상생·협력 생태계 조성이 발전의 밑거름... 일종의 중소기업 협동조합 문화 


▎김범진 타이거컴퍼니 대표이사. 그는 기업의 비기업적 활동 속에서 경제적 가치의 원동력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지난 4월 29일 오후 5시, 중소기업 대표 1000여명이 서울 삼성동 파르나스 호텔 그랜드볼룸으로 몰려들었다. 중소기업 사이의 소통 증진을 슬로건으로 내건 ‘밥 먹자 중기야’라는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중소기업 대표들이 모여 애로사항을 공유하고, 상생의 길을 고민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 실제로 이날 행사에서는 서로의 제품을 사주거나, 부족한 인력을 파견해 주고, 사무실이 없는 기업에 공간을 빌려주자는 등의 건설적인 논의가 많이 오갔다. 이런 행사를 기획한 곳은 직원 10명 남짓한 타이거컴퍼니라는 작은 IT 회사였다. 1억원을 들여 2개월 동안 준비했다.

서울 서초동 타이거컴퍼니에서 만난 김범진 대표는 대뜸 사무실 공유 이야기부터 꺼냈다. “지금 쓰는 사무실도 사실상 얻어 쓰고 있는 겁니다.” 타이거컴퍼니는 한 대형 행사대행사 소유의 빌딩 1개 층을 저렴한 임대료로 사용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돈이 많지도, 인력이 풍부하지도 않은데, 모든 것을 규격에 맞춘 듯 대기업마냥 일을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사무실 여유가 있는 회사가 없는 회사에 자리를 조금 내주고, 대신에 나중에 성공하면 다른 형태로 갚아주면 서로 윈-윈 아니겠습니까?” 이 같은 생각이 김 대표가 ‘밥 먹자 중기야’ 행사를 시작한 계기가 됐다. “기업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처음에 사무실을 구하고, 사람을 채용하고, 제품을 만드는 것도 큰 일입니다.” 중소기업들이 서로 협력해 신규 창업자가 초기 진입장벽을 돌파하는 데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은 기업이 성공하면 또 다시 후발주자를 도와주는 중소기업 생태계를 만들자는 것이 김 대표의 목표이자 비전이다. 일종의 중소기업 협동조합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것이다.

새내기 창업자의 진입장벽 낮춘다

“중소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은 직원들의 이직입니다. 그만두는 직원으로부터 제대로 된 업무 승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고, 근속 연수가 워낙 짧다 보니 업무의 연속성이 생기질 않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셈이죠. 또 중소기업에 취업하려는 사람이 적다 보니 결원을 채우는 일도 너무 어렵습니다.” 이에 김 대표는 중소기업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인력풀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밝혔다. 중소기업들이 자사의 보안·개발·마케팅·인사·영업·회계·법무 등 각 분야별 인력을 등록하고, 이 인력이 필요한 기업은 언제든 도움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 기업의 마케터가 장기 공석이라면 이 인력풀을 통해 타사의 마케터로부터 업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쉐어드 서비스라는 설명이다. 기업 간 인력 품앗이인 셈이다. “대기업이야 사람이 많으니 누구 한 명 빠져도 금세 다른 누군가로 대체하지만, 중소기업은 1인 3역, 5역을 수행하는 일이 많아 전문성을 키우기도 어렵고, 인력 누수시 타격이 심각합니다. 중소기업이 성장하려면 인력의 미스매칭을 우선적으로 해소해야 합니다.”

김 대표는 투자와 자본금 문제도 이 같은 시스템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돈은 있지만 투자할 곳을 못 찾는 기업, 아이템은 있지만 자금이 부족한 기업을 서로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타이거컴퍼니가 하겠다는 것이다. “창업자들은 대개 어떻게 투자를 받는가에 대해 감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용보증기금 지원이나 은행 대출, 혹은 사채를 끌어 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정부 정책이나, 적당한 투자자를 찾지 못하는 경우 이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밥 먹자 중기야’ 행사가 성공적으로 치러진 것도 많은 중소기업이 이런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자금과 기술력은 물론 환경적으로 불리한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사람’과 ‘관계’ 밖에 믿을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대안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위안이라도 받고 싶다는 욕구는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인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 방식으로 행사를 유치하다 보니 서로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을 겁니다.”

김 대표는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적인 관계가, 하향식보다는 수평적 방식에서 더욱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 한다. 네트워크라는 수평적 얼개 속에서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논의해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물리적이고 인위적인 관계 형성보다는 화학적 소통을 통한 결속력이 더욱 강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모두들 조금이라도 쥐어짜는 방식의 경영을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비경제·비경영적인 분야입니다. 그런 사고와 활동이야말로 경제활동과 부가가치 창출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 식사라도 하면서 담소를 나누면 보다 깊은 고민을 공유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이 같은 고민을 갖고 있다면 결국 그에 대한 해답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집단지성의 힘이기도 하지요.”

이런 행사와 활동을 두고 벤처 IT업계 일각에서는 비관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작은 기업이 다루기 어려운 규모의 일이며, 타이거컴퍼니가 돈이 안 되는 일에 지나치게 정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미쳤다고 했습니다. 갓 스타트업을 벗어난 5년차 회사가 서울에서 가장 좋은 호텔에서 중소기업인 1000명을 모아 식사를 대접하겠다니. 사람은 모이겠느냐, 비용이 부담되지 않느냐, 주변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중소기업 협력 모델에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고,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이 행사를 통해 1000억원의 경제 유발효과가 발생했다면, 1억원 정도는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통은 소프트웨적이고, 수평적이어야”

“이스라엘의 요즈마펀드가 아무리 부러워도 우리는 이를 만들어낼 환경적 토양이 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요. 우리 중소기업들은 건강한 자생력과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 수밖에 없고, 만들어야만 합니다. 전체 근로자의 88%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생 중 88%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나머지 12%는 대기업에 가거나 공무원이 되는 세상입니다. 12% 안에 들지 못하면 패배자 취급을 당하는 사회죠. 중소기업들도 상생 플랫폼, 공생 관계를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김 대표는 창조경제와 관련한 정부의 기업 지원책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내비쳤다. “분위기는 조성된 것 같은데 주변에 수혜를 받는 기업이 없어요. 당국도 일회성 지원에만 머물고 있고요. 솔직히 어떤 정책을 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원금이 예산 내에서 잘게 잘려 뿌려지고 있는데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나라가 도와주지 못한다면 중소기업들끼리 힘이라도 모아봐야지요. 화교가 전 세계 상권을 쥐고 있는 비결도 이런 거 아닐까요.”

대표는 앞으로 꿈에 대해서는 간략히 말한다. “1000개의 중소기업을 묶는 상생 플랫폼을 만들어 어느 정도까지 시너지 효과가 나는지 보고 싶습니다. 물론 신뢰가 기반이 돼야겠지요.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 1개 기업이 1년에 1억원씩 도움을 받는다고 하면, 매년 1000억원의 부가가치가 생기는 셈입니다. 10년이라면 1조원의 부가가치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1290호 (201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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