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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석 기자의 ‘앵그리 2030’⑭ 당신의 국민연금은 안전할까?] 소득대체율보다 보험료율 인상이 급하다 

부과식 전환 어쩔 수 없지만 고갈은 최대한 늦춰야 … ‘더 내고 더 받자’ 사회적 합의 필요 



어린 시절 세뱃돈을 받은 기억, 다들 있으시죠? 저도 할머니·할아버지·삼촌·고모까지 식구 많은 집이라 명절 때면 수입이 꽤 쏠쏠했습니다. 받긴 했는데 곧 엄마에게 회수를 당했죠. ‘걱정 하지마. 나중에 엄마가 다 돌려줄 거야!’ 철석같이 믿었지요. 하지만 그 세뱃돈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맡긴 사람도 걷은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잊은 게지요. 이제와 그 돈을 내놓으라는 건 아닙니다. ‘엄마표 은행’은 사라진 세뱃돈의 몇만 배에 달하는 경제적 지원을 해줬고, 사랑이란 이자까지 쳐줬으니까요. 이 세뱃돈처럼 국민이 정부에게 맡기는 돈이 있습니다. 바로 국민연금입니다. 명분은 비슷합니다. ‘네가 관리하긴 어려울 테니 나중에 나이가 들면 돌려주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매달 월급에서 조금씩 걷어갑니다.

국민연금은 물가 반영하는 최고의 재테크 수단

당장은 좀 서운하지만 국민연금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습니다. 일단 꽤 훌륭한 재테크 수단입니다. 국민연금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합니다. 물가가 올라도 그 실질가치를 보장해준다는 건 굉장한 매력인데 가입 당시 소득이 100만원이었더라도 현재가치로 재평가한 소득이 500만원이라면 이를 소득으로 인정해 연금 지급액을 계산합니다. 실제 연금을 받는 기간에도 전국 소비자물가변동률에 근거해 지급액이 조정됩니다. 지금 40만원의 연금을 받고 있다고 할 때 매년 3%포인트씩 물가가 변동한다면 20년 뒤엔 72만2000원을 받게 될 겁니다. 시중에 판매하는 어떤 연금상품도 국민연금보다 물가를 감안한 실질 수익이 뛰어난 건 없습니다. 가입 대상자가 아닌데 임의로 가입하는 사람이 있는 이유입니다.

국민연금은 사회보장적 성격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빈곤을 해소하는 제도적 장치 중 하나죠. 국민연금엔 건강보험처럼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는데 아마 국민연금을 내는 사람 중에 자신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국민연금의 급여액 계산식엔 가입자의 평균 소득이 포함돼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전체 가입자의 평균 소득이 본인의 소득보다 높은 저소득층은 자신이 낸 보험료보다 더 받고, 평균 소득보다 위쪽에 위치한 고소득층은 상대적으로 덜 받는 개념입니다. 현재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2028년까지 단계적 인하)인데 소득재분배 기능에 따라 저소득층의 소득대체율은 60% 이상으로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데 국민연금엔 난제가 하나 있습니다. 현재의 장점을 천년, 만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사회적 연대 성격이 있는 국민연금은 의무 가입이 원칙입니다. 소득이 있는 국민은 좋든 싫든 보험료를 내는데, 아직은 이렇게 걷는 돈이 나가는 돈보다 많습니다. 자연히 돈이 쌓이게 됐죠. 1988년 도입된 이후 지난해까지 차곡차곡 모은 기금이 약 430조원이나 됩니다. 정부 추계에 따르면 올해 처음 500조원을 돌파하는데, 2043년엔 무려 2561조원으로 늘어납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돈이 완전히 사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7년. 현재 예상대로라면 국민연금은 2060년에 완전 고갈됩니다. 받을 사람은 많아지고, 낼 사람은 줄어드니 당연합니다. 한국 사회를 물귀신처럼 따라다니는 고령화·저출산의 그늘입니다.

18년째 9%에 묶여 있는 국민연금 보험료율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엔 우리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이 있습니다. 운영하는 방식엔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크게는 쌓아둔 돈으로 연금을 주는 적립식과 필요한 돈을 해마다 걷어서 연금을 주는 부과식으로 나뉩니다. 이 둘을 합한 부분적립식도 있는데 우리나라가 대표적입니다. 현재 국민연금은 ‘당사자가 낸 보험료+현 근로세대가 내는 보험료+국민연금기금의 운용 수익’으로 연금을 지급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2060년까지 현 제도를 손보지 않으면 쌓인 돈이 고갈될 테니 어쩔 수 없이 부과식으로 전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독일 등 유럽 선진국은 대부분 이 방식으로 공적연금을 운영합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보험료를 내는 건 같겠지만 액수는 크게 달라집니다. 지금은 연금을 받은 이전 세대가 이미 납부한 보험료도 있고, 기금의 운용 수익도 있지만 그 때는 모두 사라지고, 근로세대가 내는 보험료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죠. 당연히 보험료율이 올라갈 겁니다. 정부의 예상대로라면 2060년 부터 보험료율을 당장 21.4%로 올려야 합니다. 지금이 9%니까 2배가 넘는 수준입니다. 우리는 9%만 내고 연금을 받으면서, 우리 자녀세대에게는 ‘월급의 5분의 1을 우리를 위해 내놓으라’고 말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해야 합니다. ‘너희가 받을 연금은 너희 자식들에게 걷어라’.

얼마 전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런 ‘부과식’을 ‘세대 간 도적질’로 빗댔다가 호된 질타를 받았습니다. 주무부처 수장으로서 과한(숫자를 부풀린) 측면이 있지만 영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하나씩 따져보죠. 국민연금엔 ‘계층 간 소득재분배’ 기능뿐만 아니라 ‘세대 간 소득재분배’ 기능도 있습니다. 이는 애초에 연금 도입 초기가입자(주로 현재 60대 이상)를 배려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처음엔 낮은 보험료에서 출발해, 차츰 보험료를 올리는 식으로 설계를 한 것이죠. 이 세대의 상당수가 자신의 노후는 물론 노후 준비를 못한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지고 있었던 점을 고려했습니다.

실제로 1988년 도입 당시 3%였던 보험료율은 1993년 6%, 1998년 9%로 차츰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후 18년째 9%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200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제기됐고, 실제로 노무현 정부에서 12.9%로 올리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습니다. 당시 법안 통과를 막았던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요즘 당장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주장하고, 야당은 보험료율 인상에 소극적입니다. ‘어이가 없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겠군요. 그러는 사이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대체 왜 9%에 고정돼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세대 간 소득재분배’의 본질이 후세대가 부담을 더 지는 방식이라면 18년 사이 보험료율을 조금씩이라도 올려서 부담을 나눠졌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18년 동안 제자리에 머물고 있으니 이 기간 국민연금을 납부한 세대는 상대적으로 혜택을 본 겁니다. 연금 보험료를 세금처럼 여기는 터라 인상에 대한 거부감에 큰 데다, 정치권 역시 ‘미래를 위해 보험료를 더 내자’고 국민을 설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최근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서 야당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자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기사에서 언급했듯 꼭 필요한 겁니다. 생계를 걱정하는 빈곤 노인이 전체의 50%에 육박하는 상황인데 국가든 후세대든 이들을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40%라고 하지만 실질 소득대체율은 20~30% 수준에 머뭅니다. 생활비는커녕 용돈 수준입니다. 당연히 올려야 합니다.

젊은층이 가난한데 ‘부모세대 부양’ 논리 통할까


그러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공무원연금개혁 실무기구 공동위원장이었던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소득대체율 50%에 대해 “2007년 국민연금 개혁 당시 전문가 사이에서 가장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던 수치”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전문가 사이에서 지지를 받았던 의견은 또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보험료율 12.9%’였습니다. ‘더 내고 더 받자’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더 내자는 소리는 안 하고, 더 받자는 소리만 하니 납득을 못하겠다는 겁니다.

국민연금의 고갈 시점을 늦추려면 보험료율을 인상해야 합니다. 점진적으로 올려둬야 나중에 부과식으로 바뀌더라도 연착륙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소득대체율 인상은 그 다음이어야 합니다. 보험료율을 2~3%라도 먼저 올려야 지금의 40~50대가 조금이라도 젊은 세대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습니다. 앞서 살폈듯 40~50대는 보험료율이 고정된 18년 동안 이미 약간의 혜택을 본 세대입니다. 그런데 소득대체율을 먼저 올리자고 주장합니다. 올해 당장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고, 보험료율은 5년 뒤에 인상하기로 했다고 치죠. 그러면 현재 55세인 A는 10년 뒤 소득대체율 인상 혜택은 보겠지만, 60세에 퇴직할 때까지 보험료 부담은 그대로입니다. 퇴직한 뒤에 혜택만 보고, 부담은 후세대만 지는데 어떻게 젊은이들이 이걸 ‘세대 간 연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게다가 국민연금 도입 당시 포함시킨 세대 간 소득재분배 기능에는 후세대로 갈수록 더 잘 살 것, 그래서 보험료를 더 많이 낼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한창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였으니 나름 합당한 논리였습니다. 그러니 현 시점에 세대 간 연대가 성립하려면 지금 젊은층이 실제로 부모세대보다 잘 살거나 더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지금 상황이 그렇습니까? 불행히도 한국 경제의 고성장기는 사실상 끝났습니다. 저성장과 저물가로 천천히 굴러가기라도 하면 다행이고, 최악의 시나리오라면 일본이 겪은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해야 할 겁니다.

나라 경제가 이런데 개인의 삶이 윤택할 리 없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빚을 내고, 좁디 좁은 취업문을 통과해도 쥐꼬리 만한 월급과 바닥을 기는 임금상승률에 만족하고 사는 게 지금 20~30대 아니던가요? 돈이 없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자산 증식의 길은 막혀, 부모 도움이 아니면 내 집 마련은 아예 꿈도 못 꾸는 세대 아니던가요? 그런데 어떻게 세대 간 소득재분배를 위해 희생하라는 건지 1988년과 다른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언젠가 국민연금의 고갈을 피할 수 없더라도 현 시점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그 시점을 최대한 뒤로 늦추는 것’이란 점은 부인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일각에서는 이런 주장을 합니다. ‘국민연금은 애초에 쌓아둘 목적이 아니라, 노인에게 나눠주기 위한 것’ ‘기금은 쌓아두는 금융상품이 아니다’ 모으다 보니 적립이 된 것이고, 이 돈이 많이 쌓인 것일 뿐이란 주장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그런 의도로 설계했더라도 지금 상황에선 기금이 필요합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현재 500조원에 가까운 국민연금 기금은 대부분 국내 주식·채권·부동산에 투자되고 있습니다. 앞으론 1000조원, 2000조원을 넘어서겠죠. 이 돈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오겠지만 우리나라에 상장된 모든 기업의 주식을 몽땅 사고도 남는 돈입니다. 이 돈이 단기간에 빠지면 시장이 받을 충격은 어느 정도일까요? 정부 추계대로라면 이 큰 돈은 2044년부터 불과 17년 사이 사라집니다. 이미 기금이 쌓여 시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만큼 어쩔 수 없이 고갈되더라도 시간을 좀 버는 게 맞지 않을까요? 기금을 더 늘리자, 혹은 더 공격적으로 운용해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도 문제(안정성)가 있지만 기금이 없어지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도 쉬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45년이나 남았는데 그 때까지 이 제도를 가만히 내버려 두겠냐고 속 편한 소리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 전에 대안이나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처럼 이 세대, 저 세대 눈치만 보다간 정말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고령화·저출산 추세를 극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면 현재의 부분적립식을 그대로 가져가긴 어려울 겁니다. 그렇다고 꼭 곳간을 다 털어먹은 다음에 부과식으로 전환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부과식으로 가되 사전에 일정액의 기금을 따로 떼 내 운용 수익을 거두고, 이를 연금 지급에 활용하는 방식도 아이디어 중 하나입니다. 여유가 있을 때 500조원이든 1000조원이든 미리 떼서 무슨 일이 있어도 손대지 않는 별도 기금으로 만들고, 거기서 나온 수익을 활용하는 겁니다. ‘기금 수익+보험료’로 운영하는 거죠.

물론 이게 되려면 현재의 기금 운용 방식으론 어림도 없겠지요. 우리나라 국민연금 기금 운용체계는 그야말로 중구난방입니다. 돈을 어떻게 굴릴지 결정하는 기금운용위원회는 기본적인 금융 용어도 모르는 비전문가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 뒤에 전문가로 구성된 기금운용본부가 있지만 독립성이 없습니다. 기금 수익률이 좋을 리 없습니다. 지난해 국민연금 기금의 수익률은 5.25%에 그쳤습니다. 미국·일본·캐나다 등 주요국 연기금과 비교하면 답답한 수준입니다. 수익률 제고를 위한 여러 개편안이 논의 중이지만 답보 상태입니다.

중요한 건 하루빨리 2060년 이후의 국민연금을 어떻게 할 건지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고, 그 핵심은 ‘더 내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고, 전 세대가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20~30대가 그 중심이 돼야 합니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국민연금에 대한 청년의 고민을 들어주지 않더라도, 지금 20~30대가 따라 해선 안 됩니다.

지금의 50세는 15년 후인 2030년부터 연금을 받게 됩니다. 2060년 고갈이니 30년 동안, 즉 95세까지는 걱정 없이 받겠네요. 저는 그것이 ‘나만 받으면 된다’는 이기심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문제가 아니니 관심의 정도가 덜할 뿐입니다. 현재 상태를 내버려둬도 전혀 문제될 게 없으니까요. 그런 이들에게 맡겨 두니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20~30대, 기성세대의 무성의 답습하지 말아야


첫째, 매달 나가는 돈이라 무감각해지면 안 됩니다. 둘째, 알아서 챙겨주겠지 무작정 믿어서도 안 됩니다. 셋째, ‘더 받으려면 더 내야 한다’는 데 동의해야 합니다. 국민연금 홈페이지에 가면 이렇게 써 있습니다.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연금은 반드시 준다’. 한번 믿어보죠. 그러나 그때 받는 연금을 내 자식의 월급에서 떼야 한다는 사실만은 확실합니다. 지금 20~30대는 본인이 받을 연금의 안전성도 고민해야 하지만, 자식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고민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금 우리가 조금 더 내야 합니다. 현재 기성세대의 무성의를 답습하지 말자는 뜻입니다. 그 옛날, 엄마에게 맡긴 세뱃돈이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앞으로는 세뱃돈을 꼭 좀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래야 그들도 그렇게 하겠지요. 다음 번에는 ‘당신이 떠안은 복지비용’을 주제로 지혜를 모아보겠습니다.

1292호 (201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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