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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 전문기자의 ‘Car Talk’| 현대 고성능 버전 ‘N’] 글로벌 지속가능 브랜드 필수 코스 

BMW 고성능 연구소장 이어 벤틀리 디자인 총괄 영입 ... 뒤처진 주행 역동성 이미지 만회 전략 


▎현대차 i20를 기반으로 경주차로 개조한 WRC 랠리차. 고성능 버전을 의미하는 ‘N’이 새겨져 있다.
지난 6월 중순 현대·기아자동차가 해외 자동차 전문 매체에서 화제가 됐다. 벤틀리의 디자인 총괄이었던 루크 동커볼케가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로 이직한다는 믿을 만한 소식 때문이었다. 벤틀리는 영국의 고성능 프리미엄 브랜드로 현재 폴크스바겐그룹 산하에 속해 있다. 정작 현대자동차그룹은 이에 대해 “아직 결정된 바 없다”라며 동커볼케의 영입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이미 2011년 크리스 뱅글 전 BMW 디자인총괄 영입에 실패한 경험 때문일까. 당시 뱅글은 현대·기아차를 마다하고 삼성전자 디자인 고문 계약을 했다.

폴크스바겐그룹은 6월 초 동커볼케 자리에 스테판 질라프 폴크스바겐 인테리어 디렉터를 임명했다. 동커볼케는 2012년부터 벤틀리 디자인 총괄을 맡았다가 올해 5월에 물러난 상태였다. 그는 1965년 페루 리마에서 태어나 스위스 베베이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1992년 폴크스바겐그룹에 입사해 스코다·아우디·람보르기니·세아트의 디자이너를 거쳤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디자인은 수퍼카 람보르기니의 가야르도와 무르시엘라고다. 벤틀리 최초의 SUV로 개발 중인 벤테이도 그의 작품이다. 동커볼케는 연봉 협상이 차질 없이 마무리되면 피터 슈라이어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 후임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람보르기니 디자인 혈통을 고성능 N에 접목


▎고성능 버전 N 개발을 이끌 알버트 비어만(왼쪽)과 N 디자인을 맡을 가능성이 큰 루크 동커볼케.
현대·기아차는 올해 초에도 깜짝 영입을 단행한 바 있다. BMW의 고성능 버전인 M의 기술 책임자 알버트 비어만을 연구개발 부사장으로 스카우트했다. 그는 올해 4월부터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로 출근하면서 고성능차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비어만과 동커볼케의 영입으로 현대차의 고성능 버전인 ‘N’의 가닥이 잡히는 셈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남양연구소에서 2017년 출시를 목표로 N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NDMS 남양연구소(Namyang R&D Center)의 머리 글자에서 따왔다. 현재 N은 월드랠리챔피언십(WRC)에 출전하는 현대차 i20 레이싱차의 전용 브랜드로 사용된다. N 프로젝트는 300마력대 고성능 해치백(i30 또는 벨로스터), 400마력대 고성능 쿠페(제네시스 쿠페), 500마력 대 고성능 세단(제네시스) 등 세 종류의 고성능 버전 개발이 목표다. 국내에서는 날로 판매가 급증하는 수입차 시장의 대항마로 키우고 해외에서는 현대차 이미지를 높이는 게 목적이다.

현대차의 현재 기술력으로 N 개발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현대차의 섀시 강성이 고성능을 감당할 만큼 좋아진데다, 일부 동력 계통의 손을 보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N의 디자인이다. 기존 양산차 모델을 사용하기 때문에 고성능 분위기를 풍기려면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바로 동커볼케의 역할이다. 그는 현대차에서 우선 N 프로젝트 디자인 총괄을 맡을 것이 유력하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 가운데 현대차는 고성능 모델 개발에 후발주자다. 단기간에 존재감을 살리기란 쉽지 않다. 자동차 업체들이 수퍼카나 고성능 버전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다. 브랜드 파워를 키우고 기술력에 대한 신뢰도를 얻을 수 있어서다. 성능으로만 따져 최정상은 수퍼카다. 그 바로 밑이 고성능 버전이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수퍼카 도전에 앞서 고성능 버전으로 기술력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다. 메르세데스-벤츠 AMG, BMW M, 아우디 S·RS, 재규어 R·R-S, 캐딜락 V, 렉서스 F가 대표적이다. 대중 브랜드인 현대차도 N을 통해 이 반열에 껴야 성공할 수 있다. 이처럼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예외없이 고성능 버전을 운용한다. 양산 모델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는 게 대부분이다. 성능은 500마력 전후의 고성능이지만 겉모습은 양산차와 큰 차이가 없다. 순수 스포츠카와는 다른 독자적인 시장을 형성한다. 통상 스포츠카가 2도어 쿠페라면 이들 고성능 버전은 4도어 세단이 기본이다. 프리미엄 브랜드들뿐만 아니라 대중 브랜드도 고성능 버전을 내놓는다. 폴크스바겐 R, 혼다 타입R, 도요타 TRD, 닛산 니스모, 포드 SHO, 크라이슬러 SRT 등이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광범위하게 고성능 모델을 적용하는 것과 달리, 대중차는 모델이 한정적이다. 성능에 있어서도 극단성이 떨어지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일부 매니어층을 흡수한다.

현대차가 고성능 브랜드를 선보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기술력에 대한 신뢰를 내세워 브랜드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다. 또 그동안 양적 팽창에서 질적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고, 수요가 늘고 있는 고성능차 시장에 진입하려는 게 이유다. 프리미엄 브랜드 대접을 받고 싶은 현대차에 있어서 고성능 버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아직까지 N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게 없지만 알버트 비어만 영입으로 미루어 BMW M을 벤치마킹하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현대차 N이 성공을 하려면 BMW M과 비슷해지려는 것보다 독자성 확보가 급선무다. 현대차만의 개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중차 브랜드 가운데 고성능 버전이 성공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중 몇몇은 특출한 개성과 성능을 뽐내며 프리미엄 브랜드와는 다른 고유의 매력을 발산한다. 현대차가 표본으로 삼아야 할 모델이 혼다 시빅 타입R이다. 아반떼와 비슷한 성능의 대중차 시빅을 고성능으로 개조해 진정한 스포츠카로 거듭났다. 최근에 선보인 4세대는 310마력, 40.8kg·m를 내는 2.0L 터보 엔진을 얹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도달 시간은 5.7초다. 성능 수치만 보면 특별한 성능이라고 할 수는 없다. 타입R이 특별한 이유는 고성능차의 결전장인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세운 최고 기록이다. 노르트슐라이페 서킷에서 7분50초63을 기록했다. 전륜구동 자동차 중에서 가장 빠른 기록이다. 이전 르노 메간 RS(275 트로피R)가 세운 기록을 3.7초 단축했다.

고성능 버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고성능 버전의 대명사인 BMW M3의 후계자인 M4를 넘어선다. 스포츠 주행에 불리한 전륜구동(FF)을 극복하고, 정통 스포츠카 구조인 ‘앞엔진 후륜구동(FR)’ 을 뛰어 넘는 성능을 발휘했다. 타입R의 고성능 기술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포뮬러1(F1) 같은 극강의 모터 스포츠에서 갈고 닦은 기술, NSX라는 수퍼카를 만든 경험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현대차의 고성능 버전은 시기적으로 적절하다. 글로벌 브랜드로 지속 가능하기 위해 꼭 거쳐야 할 과정이다. 그동안 현대차의 이미지는 주행 역동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술력이나 역동성과 관련한 기술과 경험 축적에서는 앞선 브랜드에 한참 뒤처진다. 그 격차를 일순간에 뛰어 넘으려다 보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10년 이상 장기 계획을 잡고 기술력과 자동차 매니어의 평판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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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2호 (201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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