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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사장] 지역별 문화관광형 시장 늘린다 

전통+특산품+디자인+ICT 결합 ... 공공기관 경영평가 ‘E→ B+’로 껑충 


지난해 통합 출범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일규 초대 이사장은 명함을 두 개 만들었다. 휴대전화 번호가 없는 명함을 만들어왔길래 휴대전화 번호를 넣은 명함을 다시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이 이사장만의 생각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어느 정도 자리에 오른 사람은 명함에 휴대전화 번호를 넣지 않는 게 관행 아닌 관행이 됐다. 비서를 포함해 전화를 받아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불필요한 전화를 피하려는 목적도 있을 게다. 그러나 그만큼 뭔가 책임 있는 자리의 사람과 연락하려면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려 일 처리가 늦어질 수 있다.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일 처리를 중시하는 이 이사장은 그런 걸 못보고 지나가는 성격이다.

이 이사장은 1996년 당시 산업자원부 초대 디자인 정책국장을 역임했다. 정부 디자인 정책을 처음으로 입안하는 자리다. 이 이사장은 이후 여러 디자이너와 함께 일했다. 그 과정에서 ‘의미와 목적을 생각하고 그에 맞는 역할에 충실한 것이 잘 된 디자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 뒤 장관을 보좌하면서도 늘 휴대전화 번호가 들어있는 명함을 만들라고 건의해왔다. 일이 되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가장 실용적인 방법을 내놔야 한다는 그의 신조 때문이다. 정책 디자이너인 그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초대 이사장을 맡은 지 만 1년 반이 넘었다. 대전에 있는 공단 이사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해 소상공인진흥원과 시장경영진흥원을 통합했다.

“통합의 의미를 살리고 각각의 고유 사업을 공통 사업이 되도록 조정했다. 각 사업에 맞게 인력을 재배치하고 서비스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집체교육에 전력했다. 이런 일은 쉽게 진행할 수 있었다. 다만, 두 진흥원의 직원을 하나의 문화로 통합하는 화학적 결합은 아직 미진한 것 같다.”

통합 전에 ‘E’였던 공공기관별 경영성과 평가가 ‘B’로 3단계나 뛰어올랐다.

“E를 받은 조직을 인계받았을 땐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처음엔 직원들조차 ‘우리가 아무리 잘해봤자 D는 받겠냐’는 패배의식이 짙었다. 그래서 ‘우리가 공공기관 중에 꼴찌여서야 되겠느냐, 그럼 밖에서 우리 직원들도 꼴찌로 볼 거 아니냐’고 말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놓고 합리적인 단기 목표를 정한 뒤 여러 차례 중간점검을 했다. 정부 정책에 맞춰 ‘창조혁신실’도 만들었다. 창조와 혁신을 위해선 협업해야 한다고 생각해 사업의 키워드를 ‘협업’으로 정했다. 그런 면이 효과를 봤다.”

가뜩이나 불황인데 메르스 사태로 경기가 더욱 나빠졌다. 어떤 지원책을 준비했나?

“5월 20일 사태 발생 이후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의 매출이 35% 가량 떨어졌다. 피해를 입은 사람을 대상으로 2000억원 규모의 긴급자금을 냈다. 2.5%의 저리 대출을 했는데, 신용등급도 고려하지 않았다. 최근까지 7300여건, 3000억원 정도의 신청이 들어왔다. 예산보다 요청 규모가 크긴 한데, 운용계획을 수정해 1000억~2000억원 정도를 더 투입할 수도 있다. 이제 90% 이상 회복되긴 했지만 자금을 좀 더 빌려주고 있다. 장사가 잘 안 된 상인들이 일수를 내야 가게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이라고 부르지만 예전에 비해 시장이 크게 달라졌다.

“어렸을 적 봤던 시장과 비교하면 ‘신사’가 다 됐다. 바닥이 질퍽하지도 않고 아케이드를 설치해 비도 맞지 않는다. 최신 디자인으로 멋있게 만들었고 기능적으로도 훌륭해졌다. 더 나아가 문화관광형 시장을 만들고 있다. 시장별 특색을 갖추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상인회가 중심이 된 특색개발위원회를 만들었다. 우리 시장의 특색이 뭔지 개발해 보자는 얘기다. 시장상인회장이 중심이 돼 향토사학자·대학교수·주민대표·디자이너·지자체공무원들이 모두 참여하는 위원회다. 상품을 개발하고 이미지도 개선한다. 구미 중앙시장은 ‘새마을 정신’의 본고장이라는 의미를 담아 ‘새마을 시장’으로 만들었다. 부천의 역곡시장은 ‘부천 상상시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상부상조하자는 의미로 상상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외국에선 전통시장이 관광객의 인기를 끈다. 한국은 시장보다 면세점이 더 붐빈다. 한국을 찾는 해외 관광객 수가 연간 1300만명이 넘는데 이들을 전통시장으로 끌어들일 묘안은?

“유럽 시장은 일종의 관광코스다. 가봤는데 자연스럽게 돈을 쓰게 돼 있더라. 우리도 외국인이 와서 전통을 볼 수 있고 지역 특색이 가미된 먹거리를 개발해야 한다. 그래서 글로벌 명품 시장을 6개 만들었다. 남대문시장, 제주 동문시장, 부산 국제시장, 대구 서문시장, 전주 남부시장(한옥마을), 청주 육거래시장 등이다. 이들 시장은 그래도 규모가 크고 외국인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들 시장에 3년 동안 5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통·번역을 할 수 있는 인력을 지원하고 디자인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새로운 시장으로 꾸미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적인 먹거리 등 기본 인프라는 갖추게 될 예정이다. 외국인에게 맞는 애플리케이션(앱)도 개발하고 있다. 지도와 상품정보 등을 콘텐트로하고 20개 외국어-한국어를 실시간으로 통역해주는 기능도 넣었다. 앞으론 중국 상하이 공항이나 국제선 기내에서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한국을 찾으면서 자연스레 전통시장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주기 위해서다.”

제조업을 하는 소공인도 있다. 이들에 대한 지원 방안은?

“올해 새로 시작한 사업 중에 소공인 지원 사업이 있다. 지난해 28억원에서 올해 348억원으로 지원 금액을 늘렸다. 영세한 공인들이 모여있는 직접지 688개가 대상이다. 종로에 귀금속이나 성수동 제화의 거리, 문래동 철공소, 성남 빵공장 등이다. 그곳에 특화 지원센터를 만들어 주는 사업이다. 현재까지 25개를 지정했다. 기술개발을 했다면 상품화를 위해 자금을 1억원 내로 지원해 준다. 3월부터는 소상공인 사관학교를 열었다. 창업을 하려는 사람을 위해 5개월간 체험교육을 시킨다. 6개 광역시에 교육장을 두고 있는데 교육장당 50명만 교육한다. 교육 후에는 3개월 동안 점포를 임대해 영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시험을 쳐서 상위 20%에 들어가면 자금을 지원해 준다. 사업 자금이 필요하다면 연결시켜주기도 한다. 1기는 수료했고, 2기는 지난 7월에 시작했다.”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도 적지 않을 텐데.

“사실 가장 주력하는 일의 방식이다. 서로 돕고 엮어주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에 도움이 될 만한 전문가를 불러 함께 만나게 해준다. 각 지역에 대기업 임직원이나 금융회사 지점장, 대학 교수, 공공기관 직원, 공무원, 컨설턴트, 법무사, 변호사 등을 휴일에 초청한다. 10개조로 5명씩 조를 짜준다. 조별로 간단한 트레킹을 한 뒤 휴식시간에 각자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내가 도움을 받고 싶은 것’을 각각 1분 내에 말하는 시간을 가진다. 의외로 반응이 좋다. 나중엔 헤어지면서 서로 아쉬워하더라. 이제는 서로 모임에 들어오려고 노력할 정도다.”

-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

☞ 문화관광형 시장 : 전통시장을 지역의 역사와 문화, 특산품 등과 연계하거나 시장의 고유한 특성을 발굴·개발해 국내외 관광객이 장보기와 함께 관광을 즐길 수 있도록 개발 중인 시장

1297호 (201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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