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주목하는 일본산 암 면역치료제미야타 토시오 일본의료정책기구 총괄은 “일본은 약값이 싸다는 인식이 바뀌고 있다”며 “이런 움직임을 보고 외국계 제약사들이 다시 일본 시장을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런 신약의 출현은 환자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의료 재정에는 상당한 부담이다. 2003년과 2011년을 비교할 때 의료비 항목 중 가장 많이 증가한 것이 약제비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도 일본의 약제비(GDP 대비 비중) 상승폭이 크다. 더구나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고속 고령화가 진행 중인 일본에서는 10년 후 단카이 세대(2차 대전 직후인 1947년~1949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75세 이상이 되는 ‘25년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의료비와 약제비 억제가 매우 중요한 국가 과제라는 뜻이다.지난 6월 각의에서 결정된 일본 경제재정운영 기본 방침에서는 제네릭 의약품(복제약 등 후발 의약품) 이용 촉진, 의약품 가치에 맞는 약값 도입 등 의료비 억제가 중요 안건으로 논의됐다. 특허 기한이 끝난 기존약에 대한 보험급부액을 복제약을 기준으로 결정하는 참조가격제도나 유사 의약품의 보험 적용 제외 등이 검토됐다. 좋은 신약은 제대로 평가해 가격을 낮추고, 기존약은 가능한 복제약으로 교체한다는 게 핵심이다.자연히 제약 회사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다. ‘지금까지 일본 제약 회사는 신약이라고 해도 기존약을 개량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앞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할 독자 신약이나 세포 의약품을 개발하지 않는다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우루시하라 료이치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 실력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다.지난 5월 말 미국 시카고에서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연차총회가 열렸다. 전 세계 의사와 암 연구자가 모이는 이번 이벤트에선 암 면역요법에 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면역요법 강연 열기는 주최 측에서 준비한 임시 회장까지 사람이 넘쳐날 정도로 성황이었다. 항암제는 아예 존재감을 상실했다. 어느 참가자는 “의사들이 이렇게 흥분하는 걸 본 적이 없다”라며 놀라워했다. 암 면역요법 열풍은 3년 전인 2012년 ASCO 연차총회로 거슬러간다. 당시 피부암의 일종인 악성 흑색종(멜라노마), 비소 세포폐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PD-1’이라는 단백질을 활용한 면역요법이 보고됐고, 이 치료법은 의료 관계자의 큰 관심을 끌었다.
효과 좋지만 치료 기간 오래 걸려
다른 치료법과 병행하면 활용 영역 무궁무진
면역치료제 시장에 사활 거는 일본 제약업계또한 기대되는 것은 병용요법이다. 면역요법은 단독으로도 효과가 있지만 다른 치료제와 병용하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조합 후보는 많지만, 그중 최선의 조합을 얼마나 빨리 찾아내는지가 중요하다’(사가라 오노약품 사장). 덕분에 일본 기업도 제약 시장에 파고들 찬스를 얻었다. 교와핫코기린은 혈액암 치료약 ‘포텔리지오’를 이용해 3개 진영과 제휴하고 있다. 포텔리지오는 면역을 억제하는 제어성 T세포를 죽여 면역을 활성화하기 때문에 다른 면역요법과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에자이·다이이찌산쿄 또한 병용요법으로 제휴를 진행 중이다. 다케다약품공업은 교토대 iPS세포연구소와 공동으로 암 면역치료제 개발에 착수했고, 아스텔라스 제약도 미국 회사와 손을 잡았다. 일본 기업이 3조엔 시장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
[박스기사] 주목할 만한 신약기대되는 건 암 치료제만이 아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신약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이 신약의 효과와 부작용, 가격 등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논의가 일고 있다. 치료나 예방 측면에서 참고할 만하다.◇C형 간염 - 546만엔짜리 특효약 등장=지난 5월 발매된 C형 간염 치료제 ‘소발디’는 12주간 복용하는데 드는 비용이 무려 546만엔(약 5200만원, 병용약 포함)에 달한다. 그럼에도 높은 치료 효과 때문에 기대가 크다. C형 간염 바이러스(HCV)에 감염되면 자각증상이 없는 채로 약 20년에 걸쳐 30~40%가 만성 간염에서 간경변으로 발전한다. 그중 대부분은 간세포암 증상이 나타나고, 간세포암을 주체로 한 간장암은 사망률이 높아 일본에서 연간 약 3만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일본 내 HCV감염자는 100만~150만명으로 추정되며, 그중 40% 정도가 검사를 받지 않아 치료를 받지 못한다. 지금까지는 면역력을 강화하는 인터페론(항바이러스성 단백질)을 주사하는 것이 주 치료법이었으나 발열이나 발진 등 부작용을 견디지 못하는 환자가 많았다. 이런 가운데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개발한 소발디가 등장했다. 부작용이 적고, 임상시험에서 96~100%라는 높은 치료 효과를 확인했다. 올 7월에는 또 다른 C형 간염약 ‘하보니’도 인증을 취득했다. 소발디와 다른 치료제를 배합한 것이다. 이 약도 비싸겠지만 소발디와 마찬가지로 의료보험 적용을 받는다면 환자 부담은 많아도 월 2만엔(약 19만원) 정도다.◇알츠하이머형 치매 - 발병 전 원인에 접근=알츠하이머형 치매는 전 세계 약 4400만명이나 되는 치매 환자 중 60%가량을 차지한다. 초기 단계에서 원인을 차단해 본격적인 발병과 진행을 막기 위한 신약 개발이 진행 중이다. 현재 일본에서 알츠하이머 치료에 사용되는 약은 에자이의 ‘아리셉트’ 등 4가지다. 전부 뇌 속의 시그널 전달에 작용해 치매기능을 개선하는 대증요법(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법)에 불과하다. 이러한 치료는 그다지 효과가 없어 6개월에서 1년 사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제약 회사들이 현재 개발 중인 신약은 발병 구조 자체에 접근해 ‘질병의 자연 경과를 바꾸는 치료제’다. 알츠하이머에는 2가지 단백질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미로이드β(Aβ)와 타우다. 둘 다 뇌 속에서 오랜 기간 쌓여 신경세포를 죽게 한다. 제약 회사들은 이에 주목해 개발을 서두르는 중이다. 에자이는 미국 바이오젠의 약제와 배합해 Aβ·타우와 관련한 4가지 약품을 개발 중이다.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20년쯤 치료제를 선보일 전망이다. 지난 3월, 이 4가지 중 하나인 항Aβ 항체를 알츠하이머 발병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환자에게 투여한 결과, 뇌 속 Aβ가 감소하고, 인지기능이 개선됐다는 데이터가 발표됐다. 초기 단계지만 세간의 주목을 끌기 충분했다.◇역류성 식도염 - 필로리균 제거 보조 역할도=필로리균(헬리코박터 필로리) 제균 요법의 보급으로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은 환자 수가 줄고 있지만 역류성 식도염은 급증하고 있다. 위산 분비량이 과하거나 위와 식도 사이의 하부식도 괄약근의 기능이 약해져, 위에서 식도로 위산이 역류하는 것인데 가슴 쓰림을 비롯한 여러 증상을 유발한다. 서구식 식습관이나 비만 등이 주 원인이다.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 환자 수는 23만8000명(2011년)으로 1996년에 비해 5배 가까이 증가했다. 치료는 위산 분비를 억제하는 약물요법 중심이다. 일본 소화기병학회는 프로폰펌프 인터비터(PPI: 위산 분비를 담당하는 양성자펌프 활동을 저해하는 약물)를 추천한다. 그런데 올해 2월 PPI와는 다른 메커니즘으로 양성자펌프 활동을 막는 치료제 ‘다케캡’이 등장했다. 초기에 치료할 경우 약물 투여 기간이 기존의 절반으로 줄어드는 게 장점이다. 효과가 좋고, 투여기간이 짧으니 환자의 호주머니 사정에도 도움이 된다. 역류성 식도염은 아무 치료도 하지 않으면 반년 이내 80~90%가 재발하는 만성 질환이다. 의료 현장에서 다케캡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