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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규제 강화 그 후] 주택 매수자 “어, 좀 더 지켜보고…” 

거래 주춤하고 가격 보합세 … 분양 시장은 반사이익 기대 

황의영 중앙일보조인스랜드 기자

▎서울 송파구 잠실동 일대 한 아파트 단지 상가의 부동산중개업소. 가계부채 종합대책 발표 이후 손님의 발길이 줄었다. / 사진:뉴시스
#1.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이모(58) 사장은 최근 다 잡은 손님을 놓쳤다. 인근의 한 아파트 59㎡형(이하 전용면적)을 3억3000만원에 사려는 계약을 하기 직전 매수자가 갑자기 의사를 철회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당분간 주택 구입을 보류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사장은 “전세난에 시달려 집을 사려고 했던 매수자들이 앞으로 집값이 떨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며 “일단 좀 더 시장 흐름을 지켜본 뒤 매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휴가에 여름 비수기까지 겹쳐

#2. 지난 7월 29일 경기도 김포시 사우동의 김포 풍무2차 푸르지오 견본주택. 평일 오후인데도 아파트 모형과 유니트를 둘러보거나 직원들에게 분양 상담을 받는 방문객이 많았다. 양손에 아이를 한 명씩 데리고 온 부부나 유모차를 끌고 온 신혼부부도 여럿 눈에 띄었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서 왔다는 한재연(37)씨는 “휴가를 맞아 구경 왔는데 비수기인데도 열기가 뜨거운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정부가 지난 7월 22일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을 발표한 뒤 부동산 시장은 뚜렷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활기를 띠던 기존 주택 시장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데 반해 분양 시장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모습이다. 가계부채 종합대책의 핵심은 대출을 초기부터 원금과 이자를 갚게끔 ‘분할상환’ 하도록 하고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철저히 따져 대출심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나가는 신규 주택담보대출은 거치식을 활용하더라도 거치기간을 현재의 3~5년에서 1년 이내로 줄인다.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8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각각 60%, 70%로 완화하면서 대출 문턱을 낮춘 것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빚내서 집 사라’는 식의 부동산 정책 기조가 ‘능력 없으면 빚내지 마라’는 쪽으로 확 바뀐 셈이다.

부동산 시장은 ‘침묵 속 눈치 보기’에 들어갔다. 휴가와 장마가 낀 여름 비수기인데다, 집값 움직임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거래는 주춤하고 가격은 보합세다. 매수·매도자 모두 이번 대책의 파장을 예의주시하며 관망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서울 송파동 삼익공인중개업소 성낙곤 사장은 “방이동의 31㎡짜리 아파트를 사겠다던 수요자가 이번 대책으로 1000만원 정도 내리지 않겠느냐면서 구입을 미뤘다”며 “내년부터 대출을 받으면 원리금을 같이 상환해야 한다니까 부담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전세난을 피해 저금리 대출로 내 집 마련을 준비하는 20~30대 젊은층이 혼란을 겪는 분위기다. 대출 규제 강화로 주택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워지면 자칫 월세 시장으로 내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 한남동 이기호공인 이기호 사장은 “집을 사기 더 힘들어지고 전세 물건을 찾기도 쉽지 않아 이중고를 겪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전했다.

올 들어 거침 없이 가격이 뛰며 활발하게 거래됐던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도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35㎡형은 6억8000만원으로 한 달 새 3000만원가량 올랐으나, 대책 발표 이후 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 76㎡형도 최근 11억6000만원까지 찍은 뒤 거래가 주춤한 상태다. 재건축 아파트는 보통 대출을 많이 일으켜 시세차익을 얻으려는 투자 수요가 많은 만큼 이번 대책의 여파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개포동 행운공인 장유순 사장은 “가계부채 대책 얘기가 나온 뒤 매수 문의가 많이 줄었다”며 “아직까지 호가(부르는 값)가 떨어지진 않고 있지만 관망세가 팽배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분양 시장에서도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위축된 기존 주택 시장과 달리 분양 시장에는 여전히 활기가 돈다. 분양현장에 청약자들이 몰리고 청약 경쟁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단지가 잇따른다. 가계부채 대책이 발표된 직후인 7월 23일 포스코건설이 경기도 하남 미사강변도시에서 청약 1순위 접수를 받은 미사강변 더샵 센트럴포레는 평균 28.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394가구 모집에 1만1303명이 몰렸다. 같은 달 29일 분양된 호반건설의 동탄2신도시 호반베르디움 5차도 평균 13.4대 1로 1순위에서 마감됐다.

신규 분양 때 받는 중도금 대출 등 집단대출은 건설 업체 신용이나 주택도시보증공사(옛 대한주택보증)의 보증을 통해 이뤄지는 신용대출이어서 이번 대책과 무관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대우건설 하만채 김포풍무 2차 분양소장은 “대출 규제가 강화된다고 걱정하는 수요자는 거의 없었다”며 “분양현장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사들도 하반기로 잡은 아파트 분양계획을 그대로 이어 간다는 방침이다. 주택 업계에 따르면 10대 건설사의 하반기 분양 물량은 12만여 가구로 상반기 물량(5만여 가구)의 곱절보다 많다. 한 대형 건설사의 마케팅팀장은 “기존 주택을 사기 어려워지면 대출 규제가 없는 신규 분양 시장으로 주택 구매 수요가 유입될 것이란 판단이 깔려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휴가철과 맞물려 당분간 주택 시장이 소강상태를 보일 것으로 내다본다. 강원대 이재수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갑자기 대출 규제 강화에 나선 것은 시장에 경고 시그널(신호)을 주려는 것”이라며 “부동산 시장 활황세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시차를 두고 영향이 미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KB국민은행 박합수 명동 스타PB센터 팀장은 “대출 규제가 내년부터 강화되는 만큼 서둘러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인해 하반기 주택 거래는 크게 줄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내년에 대책이 실행되고 금리까지 인상되면 시장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와 달리 일각에선 “내년에도 가계부채 대책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고소득층의 거래가 활발해져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것 같다”(KDI 송인호 연구위원)는 의견도 있다. 신규 분양 시장은 오히려 주목받을 것이란 시각이 적지 않다. NH투자증권 김규정 부동산 연구위원은 “기존 주택 시장 거래가 위축되면서 분양 시장이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며 “그렇다 해도 수요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상환능력을 고려해 자금계획을 세우는 등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황의영 중앙일보조인스랜드 기자

1297호 (201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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