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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그룹 3·4세 승계 Ⅲ] 

LS그룹 / 금호아시아나그룹 / 대림그룹 / 동부그룹 / 현대그룹 / 현대백화점그룹 

LS그룹 | 형제 간 4:4:2 황금분할 지분 승계 중
오너 3세, 그룹 전면에 나서기 시작 ... 구본혁·구본규 등 임원에 올라



지난 2월 17일 저녁, LS그룹 오너 일가는 2세대와 3세대 간에 주식을 사고 팔았다. 형제 일가의 지분율을 맞추기 위한 조치다. 이날 구자열(62) LS그룹 회장은 LS주식 25만주를 장내 매도했고, 구 회장의 아들 구동휘(33) LS산전 부장은 25만주를 매입했다. 구자용(60) E1회장과 구자균(58) LS산전 회장도 각각 주식을 10만주 매도했다. 구자용 회장의 딸인 희나(31)·희연(26) 자매와 구자균 회장의 딸인 소연(30)·소희(29) 자매가 같은 수량만큼 매입했다. 구자은(51) LS엠트론 부회장이 매각한 주식 5만주도 그의 자녀들이 매입했다.

동시에 벌어진 가족 간 주식거래는 형제경영 전통을 이어온 LS그룹의 특징이다. LG그룹에서 분할할 당시 LS그룹은 구태회(4남)·구평회(5남)·구두회(6남) 등 3형제 간 지분율이 ‘4대4대2’로, 지난 12년간 변화가 없었다. 3세 경영자가 LS 지분을 추가 매입하려면 집안에서 주식을 사야 한다.

지난해 2월과 4월, 그리고 올해 2월 세 차례에 걸쳐 구자홍(69) LS미래원 회장, 구자엽(65) LS전선 회장, 고 구자명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구자철(60) 예스코 회장 등 LS그룹 2세 경영진들은 자신들의 지분을 3세에 넘겼다. 황금률을 지켜온 덕에 LS그룹은 커다란 분쟁 없이 후계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올해 들어 LS그룹의 3세 후계 작업은 속도를 더하고 있다. 기업 핵심 부서에 포진하며 본격적으로 기업 경영에 참여한 3세들이 늘었다. 선두주자는 지난해 11월 작고한 고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 아들인 구본혁(38) LS-니꼬동제련 전무다. LS그룹 오너 일가 3세 가운데 가장 먼저 임원에 올랐다. 그는 미국 UCLA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친 뒤 2003년 LS전선에 입사했다. 이후 2009년 지주회사인 LS 경영기획팀에서 경험을 쌓다가 2012년 임원이 되면서 LS-니꼬동제련으로 옮겼다. 구자엽 LS전선 회장의 아들인 구본규(36) LS산전 상무도 그룹 내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그는 원전 부품비리가 터졌던 2013년 연말 인사에서 임원에 올랐다. 오너 일가로는 유일한 승진이었다. 2007년 LS전선에 입사해 2010년 LS산전으로 옮겨 상무가 되기까지 6년 만에 이뤄진 초고속 승진이다.

LS산전에는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손주이자 구자열 LS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구동휘 LS산전 부장이 있다. 2013년 11월 LS산전 차장으로 입사한 그는 현장에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경영전략실 전략기획 부문으로 입사했지만, 부친 구자열 회장의 지시로 충북 청주의 LS산전 생산공장 생산기획팀으로 내려갔다. 그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는 구 회장의 권유로 입사 전에는 2년간 우리투자증권 투자은행(IB) 부문에서 일했다. 구태회 명예회장의 장손이자 구자홍 LS미래원 회장의 아들인 구본웅(36)씨는 미국에서 벤처캐피털 회사인 포메이션8을 창업해 벤처사업가로 활동 중이다.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통해 한국 최대 벤처기업으로 성장한 옐로우모바일의 주요 투자자다.

- 조용탁 기자 cho.youngtag@joins.com

금호아시아나그룹 | 금호산업 인수가 선결 과제
금호석유화학 계열 분리로 사촌 간 경영권 다툼 가능성은 작아져



금호아시아나그룹 3세 승계는 숨가쁘게 진행 중이다. 박삼구(70)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2012년 이후 최근까지 외아들 박세창(40) 금호타이어 부사장에게 금호산업 지분 4.98%를 넘겨줬다. 박 부사장은 2012년 금호산업이 유상증자를 하면서 아버지와 비슷한 수준(5.18%)까지 지분을 물려받았다. 두 부자 지분을 합하면 10% 내외다.

박삼구 회장이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인 박 부사장에게 지분을 대거 물려준 것은 가족간 불화가 원인으로 보인다. 2014년 8월 박 회장은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으로부터 배임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이어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으며 검찰 수사까지 받았다. 워크아웃을 막 졸업하고 그룹 경영권을 되찾아야 할 시기에 오너 리스크가 발생한 것이다. 박 회장이 이에 대비해 박 부사장에게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지분을 미리 준 것이란 해석이 분분하다. 다만, 주식 대량 보유 상황보고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5% 미만 지분을 유지시키고 있다. 추후 박 부사장이 경영권 인수를 위해 대량으로 주식을 매수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잡음을 사전 차단한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3세 승계가 순조롭지만은 않다. 박세창 부사장은 지난해 12월 금호타이어 워크아웃 졸업 이후부터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경영권 승계에 속도를 높여왔다. 올해 4월에는 금호타이어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당시 재계에서는 박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승진시킨 후 그룹 부회장에 발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금호타이어 채권단은 대표이사 추가 임명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임명 철회를 요청했다.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을 졸업할 때 채권단과 맺은 특별 약정에 따라 산업은행 등 9개 채권기관으로 구성된 주주협의회 사전동의를 받아 대표이사를 선임해야 하는데 이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박 부사장은 취임 2일 만에 대표이사 자리에서 내려왔고, 경영권 승계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다른 걸림돌도 있다. 3세 경영권 승계에 성공하기 위해선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되찾아와야 한다. 현재 금호산업 지분 57.48%는 채권단이 쥐고 있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사실상 지주사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30.08%를 쥔 최대주주다. 박 회장과 대립하고 있는 동생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12.6%를 가지고 있다.

여러 재벌이 금호산업에 군침을 흘리면서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더해 금호산업 인수가격은 1조원 내외가 될 거란 얘기가 무성하다. 문제는 박 회장에게 그만한 인수자금이 없다는데 있다. 재계 관계자는 “박 회장이 한국 재계에 쌓아놓은 인맥이 두터워 다른 대기업이 선뜻 인수 의사를 밝히지 못할 뿐이지 재계 수위 그룹을 통째로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설명했다. 박 회장이 인수가격을 깎을수록 세금 등 박 부사장을 위한 승계 비용도 줄어들 수 있다. 반면 인수를 못하면 물려줄 그룹 자체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버릴 수도 있는 처지다. 금호석유화학과의 관계는 정리가 됐다. 지난 7월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는 박삼구 회장과 금호산업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금호석화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지정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을 받아들였다. 금호석유화학이 법적으로 계열 분리된 셈이다. 때문에 향후 박세창 부사장과 박준경(37) 금호석유화학 상무가 경영권 분쟁을 벌일 가능성은 매우 작아졌다.

-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

대림그룹 | 이해욱 부회장 일찌감치 3대 총수로 낙점
지주사인 대림코퍼레이션 최대주주에 올라 ... 3세 후계 경쟁 가능성 희박



대림코퍼레이션은 지난 7월 1일 이해욱(47) 대림산업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대림I&S와 합병했다. 대림I&S는 건설·정보통신기술(ICT)·건축 부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사실상의 개인 회사다. 이해욱 부회장이 지분 99.17%를 갖고 있다. 대림코퍼레이션은 대림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다. 대림코퍼레이션은 현재 그룹의 대표회사인 대림산업 지분 21.67%를 보유한 최대주주이자, 계열사인 대림C&S(1.5%)·대림에너지(30%)·켐텍(10%) 등 4개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합병으로 대림코퍼레이션의 지분율에 변동이 생겼다. 합병 후 이준용(77) 대림산업 명예회장의 지분율은 60.9%에서 42.7%로 낮아졌고, 이해욱 부회장의 지분율은 32.1%에서 52.3%로 높아졌다. 이 부회장이 대림코퍼레이션 최대주주에 오르며 이준용 명예회장의 뒤를 이을 3세 승계를 완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림그룹의 3세 승계에서 이해욱 부회장이 차기 후계자가 될 것이란 건 어느 정도 예상돼왔다. 이 부회장은 미국 덴버대 경영 통계학과, 컬럼비아대 응용통계학과 석사를 마치고 1995년 대림엔지니어링 경영기획부에 입사했다. 대림엔지니어링은 대림산업의 전신으로 기술용역, 해외건설용역, 산업설비 수출 등의 사업을 해온 회사다. 그는 이어 대림산업 기획실장, 석유화학사업부 부사장을 거쳐 2007년 대림코퍼레이션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2010년 대림산업 부회장으로 오른 이후 현재 회사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해욱 부회장은 대림그룹 이준용 명예회장의 3남 2녀 중 장남이다. 5남매 중 이 부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자녀는 대림코퍼레인션 지분율이 미미하다. 3남인 이해창 대림코퍼레이션 부사장만이 이해욱 부회장과 함께 유일하게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사장은 데림코퍼레이션 지분이 없다. 보유 지분은 대림산업(0.22%)과 화학합성 수지 도소매업 회사인 켐텍 지분(60%)뿐이다. 이해욱 부회장과 함께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이해창 부사장은 미국 유학 후 금융권에서 일하다 2003년 비상장 종합물류회사 대림H&L에 과장으로 입사해 2008년 상무가 됐다. 이후 2013년 대림코퍼레이션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3세 경영에 본격 참여했다.

미국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차남 이해승(46)씨는 대림산업과 대림코퍼레이션 지분을 각각 0.22%, 0.74% 보유하고 있다. 장녀인 이진숙(49)씨는 0.08%, 차녀인 이윤영(43)씨는 0.06%의 대림산업 지분을 갖고 있다. 대림그룹의 3세 후계 경쟁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4세들은 아직 어리다. 이 부회장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외손녀인 김선혜(44)씨와 결혼해 슬하에 지원(18)·동훈(14)·지희(12)를 뒀다. 이 중 동훈군이 이해욱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에이플러스디 지분 45%를 보유하고 있다. 에이플러스디는 부동산컨설팅 회사로 2010년에 설립됐다. 이해승씨는 아들 신영(16)군과 딸 유림(18)·지성(13)양 등 3남매를 뒀지만 자녀 지분은 없다. 이해창 부회장인 딸인 주영(15)양은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컴텍 지분 30%를 가지고 있다.

-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ins.com

동부그룹 | 혹독한 구조조정이 승계 작업 기회로
김남호 실장 지주사 최대 주주에 올라 ... 담보로 잡힌 동부화재 지분이 변수



동부그룹은 현재 2세 경영승계가 마무리 단계다. 김준기(71) 동부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남호(40) 동부금융연구소 금융전략실장이 경영수업을 받고 있고, 장녀인 김주원(42)씨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들의 자녀는 어려 3세 경영을 논하기는 이르다. 김남호 실장은 올해 첫 득녀를 했다. 김주원씨의 두 아들은 올해 14세, 12세다.

동부그룹은 한때 재계 서열 17위까지 올랐지만, 장기간 구조조정으로 17조원대였던 그룹 자산이 약 7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었지만 승계 관점에서는 기회였다. 구조조정 덕분에 그룹 수직계열화가 완성되고, 수직계열화의 꼭대기에 있는 계열사 주요 주주로 김준기 회장의 자녀들이 올라섰기 때문이다. 동부그룹은 올해 동부CNI를 동부로 변경하고 제조 계열사의 지주회사 격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했다. 동부는 동부대우전자·동부라이텍·동부팜한농(매각 추진 중) 등 주요 제조 계열사 지분을 보유해 동부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다. 또한 김준기 회장은 동부화재가 정점인 동부그룹 금융 계열사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지난해 동부화재가 동부제철이 보유 중이던 동부캐피탈 지분 30%를 55억원에 매입하면서다. 현재 동부화재는 동부생명·동부증권·동부캐피탈 등 동부그룹 금융 계열사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자리한다.

이렇게 지배구조가 재편되면서 동부그룹은 동부(전 동부CNI)와 동부화재 지분만 보유하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로 변모했다. 김남호 실장은 현재 동부 지분 18.59%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동시에, 동부화재 지분의 14.06%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외에도 김 실장은 동부그룹 계열사의 지분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경영수업만 끝나면 언제든지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다. AT커니에서 근무하다 2009년 동부제철에 입사한 김남호 실장은 당진제철소 현장근무를 경험하고 잠시 도쿄지사에서 일하다 2012년 1월 부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7월 동부팜한농 부장으로 근무하다 올해 4월부터 동부금융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김주원씨는 동부 지분 10.15%를 갖고 있고, 동부화재 4.07%를 보유한 3대 주주다.

변수는 있다. 금융 계열사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동부화재의 지분이 대부분 금융권에 담보로 잡혀 있어서다. 김 회장 개인 소유의 동부인베스트먼트와 동부스탁인베스트먼트가 지난해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3100억원을 빌리면서 맺은 동반매각 요청권(드래그어롱)이 아킬레스건이다. 이에 따라 동부메탈이 법정관리나 주식 차등 감자 등으로 빚을 갚지 못하면 FI가 동부화재 주식을 함께 내다 팔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김실장이 동부의 금융 계열사 지배력을 상실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에도 김회장은 김실장이 보유한 동부화재 지분을 두고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과 갈등을 빚었다.

승계 완성의 관건은 현금 마련을 통한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다. 김 회장은 올해 3월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동부화재 배당금을 늘리는 방식으로 급한 불을 껐다. 당시 동부화재는 보통주 1450원의 현금배당을 결정했다. 총 배당금 917억원으로 지난해(633억원) 대비 45% 증가한 규모다. 덕분에 김 회장 일가는 267억원의 배당금을 챙길 수 있었다.

- 문희철 기자 moon.heechul@joins.com

현대그룹 | 2대 걸친 여성 리더 등극 가능성
정지이 현대상선 전무 승계 유력 ... 지배구조 리스크는 커질 수도



고(故) 정몽헌 회장과 현정은(61) 현대그룹 회장 슬하에는 지이(39)·영이(32) 자매와 막내 영선(31)씨 등 3남매가 있다. 이 중 정지이 현대상선 전무와 정영이 현대상선 대리가 회사에 들어와 있다. 막내 정영선씨는 미국 유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회장이 재계 총수 중 비교적 젊은 편이고, 자녀의 나이 또한 어려 아직 후계 구도를 논할 때는 아니다. 정영선씨가 유학을 마치면 회사로 들어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아직 변수가 많다고 봐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세 자녀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경영에 참여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는 관측이다.

현대그룹 역시 지배구조가 복잡하다. 현대글로벌이 정점인데, 현 회장이 91.3%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글로벌은 현 회장(9.71%)에 이어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8.47%)다. 동시에 현대상선 지분도 1.98% 가지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다시 현대상선의 지분 19.54%를 보유하는 순환출자 구조다. 현대상선은 현대아산(67.58%)·현대증권(22.43%)의 최대주주이자, 현대유엔아이(27.28%)의 2대 주주다.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상 지주회사인 현대글로벌의 지분 확보가 경영권 승계의 키다. 정 전무는 현대글로벌 지분 7.89%를 보유하고 있다. 두 동생의 지분은 각각 0.23%, 0.58%다. 동생들에 비해 정 전무의 승계 가능성이 커 보이는 이유다. 그렇게 되면 2대에 걸친 여성 경영인 체제를 이어가게 된다.

이화외고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한 정 전무는 아버지 사후인 2004년 현대상선에 입사했다. 현대상선 과장과 현대유엔아이 기획실장을 거쳐 2007년 현대유엔아이 전무로 초고속 승진했다. 현대유엔아이의 지난해 매출은 약 1300억원이다. 2005년 출범 당시 100억원 정도였으니 정 전무가 10년 동안 회사를 13배가량 키운 셈이다. 지금은 현대유엔아이 사장 실장과 현대상선 전무를 겸임하고 있다. 그룹의 차기 리더로서 상징적 역할도 해왔다. 현대그룹의 숙원사업인 대북 사업이 속도를 낼 때마다 항상 현 회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2005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현 회장이 면담할 때 동행했고, 2007년 현 회장이 다시 김 위원장을 만났을 때도 함께했다. 사내에서는 “현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고, 대인관계도 좋은 편”이라는 평가가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재벌은 경영권 승계 사전 작업으로 비상장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덩치를 키워 상장하는 방식을 쓴다. 실탄을 마련하고, 증여세 등 각종 장애물을 피해가기 용이해서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여건이 좋지 않다. 2011년 유동성 위기에 몰린 직후 많은 계열사를 매각하며 그룹을 안정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미래는 밝지 않다. 알짜로 꼽히는 현대엘리베이터가 그나마 버텨주고 있지만 주력인 현대상선이 수년째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4년 동안 대표만 네 번 바뀔 정도로 길을 못 찾는 분위기다. 그룹 내에 마땅한 신수종 사업이 없는 상황에서 결국은 상징과도 같은 대북사업에서 실마리를 풀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최근 남북 고위급 협상이 타결되면서 대화 정국이 열렸지만, 북한 관련 사업은 워낙 변수가 많아 성패를 예측하기가 어렵다. 무리하게 경영권을 승계하려다간 가뜩이나 취약한 지배구조가 또 한번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ins.com

현대백화점그룹 | 공격적 행보 돋보이는 젊은 ‘형제 경영’
정지선 회장, 재계 3세 중 최연소 총수 승계 ... 주력 계열사 역량 키우기 집중



‘은둔의 경영자’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2003년 오너 경영인 자리에 오른 후 조용한 행보로 일관한 정지선(43)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최근 굵직한 인수·합병(M&A)과 출점을 강행하는 등 거침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활을 걸었던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8월 21일 수도권 최대 규모인 현대백화점 판교점을 열며 절치부심한 모습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올 초 문을 연 현대프리미엄 김포아울렛과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에 이어 약 9200억원을 들여 판교점을 개점했다. 올해만 벌써 3번째 출점이다. 정 회장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과거와는 다르게 공격경영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3남 정몽근(73) 명예회장이 1999년 현대그룹에서 분리해 독자 출범했다. 2007년 정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장남 정지선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정 회장은 재계 3세 가운데 가장 이른 나이에 그룹 총수에 오른 인물이다. 2003년 부회장에 오를 때 정 회장의 나이는 31세였고, 5년 만인 2008년에 회장에 올랐다. 동생 정교선(41)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은 2004년 부장으로 입사해 2009년부터 현대홈쇼핑 사장을 맡았다. 이후 2년 만인 2011년 12월 부회장으로 승진해 정 회장과 함께 ‘형제 경영’을 펼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백화점·현대쇼핑·현대그린푸드 등 주력 3개사를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그리고 있다. 현대그린푸드→현대백화점→현대쇼핑→현대그린푸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로, 정점에 현대그린푸드가 있다.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는 현대그린푸드의 최대 주주는 정지선 회장이 아닌 정교선 부회장(15.28%)이다. 정 회장은 2대 주주로 지분 12.67%를 보유했다. 이와 반대로 그룹 주력 계열사인 현대백화점 최대 주주는 지분 17.09%를 보유한 정 회장이다. 2대 주주는 동생이 최대 주주로 있는 현대그린푸드(12.05%)다. 형제가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그린푸드와 현대백화점의 최대 주주 자리를 각각 꿰차고 있지만 지분율에서 형이 동생을 앞선다.

현대그린푸드는 현대백화점 지분 12.1%를 비롯해 현대홈쇼핑 지분 15.5%, 현대리바트 지분 28.5%, 현대H&S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그동안 경쟁사인 신세계푸드나 CJ프레시웨이보다 오너 일가 지분이 가장 많고, 내부거래 비중이 주를 이룬다는 한계를 드러내왔다. 현대그린푸드에서 매출 비중이 가장 큰 단체급식 사업의 경우 중국에서 현대자동차·현대위아·현대파워텍·현대다이모스 등에 급식을 제공하며 매출을 늘렸다. 정 회장은 그동안 현대그린푸드의 현대백화점 그룹 계열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2009년 51%에 달했던 현대그린푸드 내부거래 비중은 지난해 12%로 줄었다. 재계에서는 두 형제가 각각의 지배구조를 강화하면서, 정 회장이 현대백화점을 중심으로 유통 부문을, 정 부회장이 현대홈쇼핑과 현대그린푸드 대주주로 식품을 비롯한 제조업 부문을 맡는 구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 허정연 기자 hur.jungyeon@joins.com

1301호 (201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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